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94화
딸기밭의 불청객(4)
갑자기 엘든 마을로 돌아온 데릭.
그에 대한 평판은 사람들의 평판은 좋지 못했다.
마을의 영향력 있는 레빌이 싫어하는 인물이기도 했고, 힘들게 생활하는 누나와 조카를 내버려 뒀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데릭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매일 술집을 들락날락하면서 돈을 펑펑 써대기 시작했다.
처음에 곱지 않던 사람들의 시선도 데릭이 사주는 공짜 맥주 몇 잔에 조금씩 혹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데릭 주위로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데릭, 너 어디서 그렇게 돈을 벌어온 거야?”
“돈? 당연히 용병 일하면서 벌었지. 도시에서 빨리 돈 벌려면 목숨을 거는 것밖에 더 있겠어?”
“레빌 아저씨 말로는 안 좋은 조직에 들어갔다던데. 진짜야?”
“아∼ 그거? 친하게 지내는 형님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걸 보고 아저씨가 오해한 거야. 그리고 너희도 알잖아? 우리 같은 수인이 도시에서 버티려면, 어느 정도 힘 있는 형님들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거야.”
데릭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헛소문처럼 취급했고, 동시에 능력을 과시하며 엄청나게 성공한 것처럼 행동했다.
도시의 사정을 잘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점차 그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였고, 특히 도시를 선망하고 있던 젊은 수인들은 무의식중에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성공한 데릭이 고향으로 돌아와 생각 없이 방탕하게 노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는 치밀한 계획 아래에서 목표를 하나씩 달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획에 필요한 조건들이 다 모였을 때, 데릭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늦은 밤.
모두가 잠이 들었을 시간에 데릭은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손에는 데릭이 구매한 포장한 안주와 술이 들려 있었다.
“데릭, 이렇게 늦게 찾아와도 되는 거야?”
“괜찮아. 누나랑 조카는 벌써 자고 있을 거야. 조용히 술만 마시면 아무 문제 없어.”
데릭은 누나의 집을 마치 자신의 집인 양 행동했다. 일행은 아무런 의심 없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부엌 식탁에 술과 안주를 올려두고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집에서 술 마시자고 한 거야?”
“너희들한테만 조용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일이 있거든.”
“큰돈?”
데릭이 돈 이야기를 꺼내자 나머지 수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전에 내가 말했지? 아는 형님들이 있다고. 얼마 전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너희들이 필요할 것 같아서.”
“뭔데? 무슨 일이길래 우리가 필요해?”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봐!”
“자, 자!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설명해 줄 테니까.”
흥분한 일행을 잠시 진정시키며 데릭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목을 축인 그는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님들이 그 딸기에 관심이 많으시더라고. 요즘 굉장히 비싸게 팔린다면서?”
“그렇지. 덕분에 우리 마을도 먹고살 만해졌으니까.”
“지금 딸기밭 저장고에 딸기가 꽤 모였다던데…….”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일행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너…… 설마 저장고의 딸기를 훔치려는 거야?!”
“우리 보고 딸기 훔치는 일을 도우라고? 이 미친…….”
“워∼ 워∼ 진정해. 아직 내 이야기 다 안 끝났잖아. 화낼 때 화내더라도 일단 끝까지 들어봐.”
“…….”
이미 일행의 눈에는 경계심과 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데릭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딸기를 직접 훔치라는 게 아니야. 약간의 도움만 달라는 거지.”
“……뭐 어떻게 도와달라는 건데?”
“너희들 모두 딸기밭에서 일하면서, 자경단 활동도 하고 있지?”
“그런데?”
“며칠 뒤 새벽에 형님 식구들이 마을로 찾아올 거야. 그때 너희들은 자경단 일을 하는 척하면서 안내만 좀 해주고, 우리를 못 본 척만 해주면 돼.”
“그게 다야?”
“물론! 어렵지 않지? 성공하면 두둑하게 챙겨줄게.”
정말로 어렵지 않은 일에 수인들은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데릭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들을 몰아붙였다.
“어려운 일은 전부 형님 식구들이 할 거야. 만약에 걸리더라도 너희들은 모른 척 잡아떼면 그만이야.”
“그래도 저장고 터는 일을 돕는 건 좀…… 시현 님 덕분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도움을 받았는데…….”
“저장고 한 번 털린다고 그 사람이 망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그리고 딸기가 얼마나 비싸게 팔리는지 알아? 정작 열심히 일하는 너희들은 일당으로 쥐꼬리만큼만 받잖아.”
“그런…… 가?”
데릭의 주장은 분명 궤변이었다. 하지만 돈 욕심에 눈이 먼 수인들은 점차 그의 말에 홀리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런 시골에 처박혀 있을 거야? 빵빵하게 돈 벌어서 도시에 나가고 싶지 않아?”
“으음…….”
“이번 일 제대로 성공하면 형님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거야. 어때?”
수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결심을 굳힌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얼마나 줄 건데?”
“야! 너 진짜로 하려고?”
“딸기밭에서 열심히 일한 마을 사람들은 어쩌고?”
“어떻게든 되겠지. 저장고가 털린다면 결론적으로 방비를 제대로 안 해놓은 시현 님 잘못이잖아?”
“…….”
“…….”
“그리고 그 사람 마족들만 가까이하는 거 봤지? 아마 우리는 일하는 노예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걸? 나는 딸기밭에서 일한 몫으로 더 챙겨야겠어.”
데릭의 궤변이 작은 씨앗이 되어, 그들의 추악한 욕심을 끝없이 포장하고 합리화시켰다.
마지막에는 점점 자신의 행동을 정당하다 믿기 시작했다.
데릭의 입가에 득의의 미소가 피어났다.
“바로 그거야! 너희들 몫은 알아서 챙겨야지. 성공하면 딸기를 판 금액에 20% 떼줄게.”
“겨우 20%?”
“너무 적은 거 아냐?”
“아니지. 너희들은 위험한 일에는 전혀 가담 안 하잖아. 그리고 딸기를 몰래 팔려면 이것저것 빠지는 비용도 많다고. 20% 정말 넉넉히 챙겨주는 거야.”
수인들이 망설이자 데릭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고향 친구들 좀 챙겨주려고 했더니…… 쯧쯧.”
“아앗! 누가 안 한다고 했어? 조금 고민해 본 거지.”
“이렇게 좋은 조건인데 고민할 게 뭐 있어? 아아, 됐다 됐어, 없었던 이야기로 하고 술이나 마시자.”
이미 밑밥은 충분히 뿌려진 상태, 데릭이 슬쩍 미끼를 던지자 수인들은 곧바로 반응했다.
“하, 할게! 뭐든지 시켜만 줘!”
“으으…… 까짓거 딱 한 번만 해보자.”
“나도!”
“나도 할 거야!”
덥석 미끼를 문 수인들의 모습을 보며 데릭은 속으로 마음껏 비웃었다.
‘큭큭, 멍청한 놈들!’
하지만 겉으로는 굉장히 기쁜 척하며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역시 너희들밖에 없어. 자, 한 잔 더 마시자!”
* * *
데릭의 계획은 굉장히 단순했다.
마을의 야간 순찰을 하는 자경단 네 사람을 포섭하고. 그들이 방관하는 동안 조직의 사람들이 마을에 침투…….
그리고 촌장 라구스의 집에 침입해서 마을에 유일한 저장고 열쇠를 빼내 올 생각이었다.
라구스의 집 구조부터, 열쇠를 금고에 보관한다는 사실까지 철저히 조사한 상태였다.
‘저장고 열쇠만 있으면 끝이지!’
딸기밭에는 따로 경비 인력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열쇠만 있다면 저장고를 터는 일은 어려울 게 전혀 없다는 의미였다.
계획을 돕기로 한 수인들이 자경단의 순찰 시간을 미리 데릭에게 전달하고, 데릭은 다시 자신이 속한 조직에 이 사실을 전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약속된 날이 찾아 왔다.
늦은 밤, 데릭은 약속된 시간에 맞춰 누나의 집을 빠져나왔다.
일을 끝내면 당연히 마을을 떠날 생각이었기가 얼마 없는 짐을 모두 챙겨 나왔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달빛과 별빛을 가려줬다.
누군가의 잘못을 숨기기에 딱 좋은 밤이었다.
하늘도 자신을 돕는다는 생각에 데릭의 가슴은 흥분과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하지만 너무 흥분한 탓일까?
그는 집에서부터 자신을 뒤따르는 작은 발소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마을 입구를 벗어난 데릭은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조직에서 보낸 조력자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도마뱀의 외형을 가진 수인이었다.
“왔냐?”
“네, 형님들. 딸기를 실을 마치는?”
“네 말대로 미리 딸기밭 근처에 보내놨다.”
“잘하셨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움직이시죠.”
데릭은 두 명의 수인을 이끌고 다시 마을 입구로 향했다.
입구 근처에서 횃불을 들고 서성대는 자경단 두 사람이 보였다.
-휘익! 휘익!
새소리를 가장한 휘파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자경단원들은 수신호를 통해 안전하다는 의미를 보내왔다.
“지금입니다.”
데릭 일행은 재빠르게 마을에 입성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자경단 두 사람은 못 본척하며 마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을 자경단은 2인 1조로 3개의 조가 야간 순찰을 운영했다. 그런데 그중 4명이 데릭에게 포섭된 상황.
침입자들은 오히려 자경단의 안내를 받으며 라구스 촌장의 집으로 다가섰다.
“여기냐?”
“네, 형님.”
“집 내부 정보와 금고 위치는 정확한 거겠지?”
“물론이죠.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두 명의 도마뱀 수인은 장비를 꺼내며 데릭에게 말했다.
“15분! 15분이면 충분할 거다. 망 잘 보고 있어.”
“그럼 간다.”
둘은 은밀하게 집 울타리를 넘어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말 몇 초 걸리지도 않아 현관문의 잠금을 해제하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데릭을 울타리에 기대어 몸을 숨겼다.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빨리 15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1분…… 5분…… 10분…….
‘이제 됐으려나?’
초조하게 마음속으로 시간을 세고 있던 그때!
마을 거리 반대편 쪽에서 횃불을 든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도대체 뭐야? 자경단이 이쪽으로 올 수 없는데?’
데릭은 순간 일이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절박한 표정으로 현관문 쪽을 바라봤지만, 아직 도마뱀 수인들은 나올 기미가 없어 보였다.
‘젠장!’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했다.
그는 재빨리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경단원에게 향했다.
“야! 너희들 저기 다가오는 사람들 보이지? 빨리 가서 어떻게든 시간 좀 끌어봐!”
“뭐, 뭐야 갑자기? 우리는 안내만 해주면 된다면서?”
“걸리면 다 같이 죽는 거 몰라? 내가 잡히면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을 것 같아?”
데릭의 협박에 자경단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이, 이건 약속이랑 다르잖아?!”
“X발, 그러니까! 그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빨리 움직여!”
결국, 자경단원들은 데릭에게 떠밀려 다가오는 횃불들을 향해 다가갔다.
가장 맨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자경단을 이끌고 있는 레빌이었다.
“레빌 대장님…….”
“여기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게…… 야간 순찰을 돌다가…….”
그들은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 했지만, 벌벌 떨리는 몸과 목소리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레빌은 싸늘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당장 비켜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들도 침입자로 간주하겠다.”
“어…… 어어…….”
레빌은 정신 못 차리는 그들을 거칠게 밀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라구스의 집 앞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릭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저런 머저리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내가 뭔가 실수했나? 그럴 리가 없는데…….’
더는 방법이 없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계획이 물거품으로 변해버렸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라고는 일 초라도 빨리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때마침 라구스의 집에 숨어들었던 도마뱀 수인들이 허둥지둥 튀어나왔다.
“침입자다! 저놈들을 잡아!”
“도망간다, 어서 포위해!”
“거기 멈춰라. 이놈들!”
횃불을 들고 빠르게 달려오는 마을 사람들.
울타리를 뛰어넘던 도마뱀 수인 중 한 명이 중심을 잃고 땅바닥에 넘어졌다.
“으악!”
“뭐 해? 빨리 일어서!”
“으윽! 나 다리가 접질린 것 같아.”
도마뱀 수인은 일어서지 못하는 동료를 보며 갈등했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마을 사람들의 성난 외침에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미안하다.”
“자, 잠깐! 버리고 가지 마!”
도마뱀 수인은 동료를 버리고 재빠르게 달려나갔다.
얼마 안 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데릭과 합류했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 밖을 향해 달렸다.
“데릭!!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금고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돈을 펑펑 썼으면서, 이 코딱지만 한 마을 정보도 제대로 못 모았단 말이야?”
“으으…….”
“너, 나중에 보자. 큰형님한테 그대로 다 보고할 테니까.”
데릭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큰일 났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고민하며 달리던 데릭 앞에 작은 인영이 불쑥 튀어나왔다.
“데릭 삼촌!”
“뭐, 뭐야? 이건?”
“미루……?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깜짝 놀라는 도마뱀 수인과 달리, 데릭은 금방 작은 인영의 정체를 알아봤다.
“삼촌! 도망치지 말고 마을 사람들한테 죄송하다고 비세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마을 사람들도 용서해 줄 거예요.”
“…….”
“뭐 해? 지금 꼬맹이 상대할 시간 없다고!”
“언제까지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할 거예요? 이제 나쁜 짓 그만하고 여기서 살아요, 네?”
미루는 또다시 나쁜 길을 선택하려는 삼촌을 막으려 했다.
아빠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지만, 삼촌만큼은 다시 돌아오게 하고 싶었다.
데릭은 멍하니 미루를 바라보았다.
조카의 진심 어린 외침을 듣고 그는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 죄책감? 후회? 자괴감? 부끄러움? 슬픔?
안타깝게도 그의 머릿속에는 지극히 이기적이다 못해 추악하고,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 딸기 공자님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 미루를 아낀다고 했었지?’
추악한 생각이 끝맺음하기도 전에 그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미루를 덮쳐들었다.
“꺄아악! 삼촌?!”
“다치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미루는 데릭의 손을 깨물며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필사적인 건 데릭도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조카의 머리를 누르고 입을 틀어막았다.
미루는 공포심에 울먹이며 상냥하고 믿음직스러운 사탕 아저씨를 떠올렸다.
‘아저씨…… 아저씨…… 도와줘요…….’
안타깝게도 소녀의 외침은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
그저 땅바닥에 떨어진 예쁜 머리 장식이 소녀가 이 자리에 있었음을 쓸쓸히 알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