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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95)화 (95/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95화

딸기밭의 불청객(5)

평범한 농장의 아침.

나는 평소처럼 아기 야쿰들에게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있었다.

슬슬 아기들도 풀을 뜯을 시기라, 아침에 한 번 꿍유를 챙겨주는 게 전부였다.

첫째 작은뿔, 둘째 얌꿍이 까지 식사를 마치고. 막내 아꿍이 차례.

-쭙. 쭙쭙.

아꿍이는 힘차게 젖병을 빨며 꿍유를 마셨다.

조그마했던 시절에는 젖병 한 병을 비워내는 것도 꽤 오래 걸렸는데, 지금은 젖병을 문 지 얼마 안 돼서 금방 한 병을 비워낼 기세였다.

-쭙………….

빠르게 꿍유를 마시던 아꿍이는 갑자기 눈치를 보더니, 마시는 걸 멈추고 젖병을 가만히 물고만 있기 시작했다.

나는 금방 그 변화를 눈치채고 아꿍이를 추궁했다.

“어어? 너 또 일부러 안 마시고 물고만 있는 거지?”

-무우우?

아꿍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여운 모습 뒤에 영악함을 숨기는 아기 야쿰을 보며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꿍이가 젖병을 가만히 물고만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가 빨리 꿍유를 마셔버리면 그만큼 나와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나와 오래 있고 싶어서 응석을 부리고 있는 것.

하루에 세 번 챙겨주던 일이 한 번으로 줄었으니 아꿍이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꿍이가 만족할 때까지 젖병을 들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더 안 먹을 거면 나 그냥 간다? 진짜 갈 거야?”

-무, 무우! 무우우!

내가 젖병을 챙겨 들고 나가는 척 연기를 하자, 아꿍이는 당황해서 내 다리에 매달렸다.

에휴…….

작은뿔이나 얌꿍이는 응석 부리는 일이 좀 적어졌는데, 어째 아꿍이는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만큼 나를 좋아하고 따르는 건 기쁜 일이지만, 혹시 나에게 너무 의존적으로 되어서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항상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애절한 모습으로 끙끙대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약해졌다.

“아꿍아, 같이 있고 싶다고 몰래 속이고 그러면 안 돼. 나도 다른 농장일을 해야 하잖아?”

-무우우…….

그래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사실은 아는지, 내 시선도 못 맞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축 처져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안 좋았다.

“대신에 빨리 식사가 끝나도 남은 시간만큼은 꼭 같이 있어 줄게.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 속이려고 하지 마. 알았지?”

-무우. 무우우.

“이리 와. 빨리 남은 꿍유 마셔야지.”

-무우우!

내가 웃으며 부르자 아꿍이는 쏙 내 품 안으로 들어왔다.

손으로 녀석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한 표정으로 남은 꿍유를 마셨다.

남아 있던 젖병을 다 비워냈을 때쯤. 축사 밖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음, 뭐지?

엘린 마구간 청소가 벌써 끝났나?

잠시 아꿍이를 두고 슬쩍 축사의 문을 열어 밖을 살폈다. 그리고 금방 소란스러움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잠이 덜 깬 것 같은 모습의 요정 규리였다. 이른 아침부터 농장에 찾아온 건 처음이어서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 규리야? 네가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규리는 나를 발견하고 스르륵 내 쪽으로 날라왔다.

「하아암! 너무 졸리다, 뾰!」

“졸린 데 여긴 왜 찾아온 거야?”

「수인들이 새벽부터 딸기밭을 돌아다녀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뾰! 시현이 가서 좀 말려줘라, 뾰!」

“수인들이? 왜 그러지?”

「잘은 모르겠지만. 딸기밭에 일하러 오는 고양이 소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뾰!」

딸기밭에 일하러 오는 고양이 소녀라면 미루밖에 없는데…….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바쁜 아침 일과에 관한 생각은 전부 지워지고, 오로지 딸기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나는 급하게 축사를 뛰쳐나와 딸기밭으로 향했다. 마침 마구간 청소를 끝낸 엘프리드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선배, 그렇게 급하게 어디 가요?”

“딸기밭.”

“딸기밭은 갑자기 왜……?”

“일단 설명은 나중에. 빨리 확인해 봐야 해!”

“어어? 잠깐, 저도 같이 가요.”

엘프리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내 뒤에 따라붙었다.

우리는 빠르게 딸기밭 쪽으로 달려갔다.

-삐걱.

-무우우?

* * *

딸기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레빌의 모습을 발견했다.

“레빌 아저씨!”

“왔구나.”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게…….”

그 뒤로 다른 수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 다 표정이 좋지 못했다.

한눈에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젯밤 마을로 잠입해 라구스의 집을 침입한 놈들이 있었다.”

“침입자요? 라구스 씨는 괜찮은 거예요?”

“라구스 가족들은 무사해. 놈들은 딸기 저장고 열쇠를 노리고 찾아온 것 같은데, 열쇠를 금고가 아닌 곳에 보관해서 피해가 없었던 것 같다.”

“정말 다행이네요. 근데 딸기밭에는 왜?”

“미루가…… 사라졌다.”

“네?”

레빌은 괴로운 표정을 한 채, 어젯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설명해 나갔다.

데릭과 침입자들.

그리고 그들과 내통한 자경단원.

“미루가 저들의 계획을 눈치채고 알려 준거라고요?”

“그래…… 어젯밤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데릭을 미행해서 곧바로 나에게 알려줬어. 아마 평소에도 데릭의 행동을 수상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런데 미루는 왜 사라진 거예요?”

“나도 잘 모르겠다. 침입한 놈 중 한 명이 붙잡혔는데. 원래는 열쇠를 훔쳐 딸기밭 근처에서 합류할 계획이었다고 자백했다. 그래서 혹시 근처에 미루가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봤는데…….”

그러면서 레빌은 내 쪽으로 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 익숙한 머리 장식이 보였다.

미루에게 선물했던 머리 장식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머리 장식을 집어 들었다.

“아무래도 놈들이 미루를 납치한 것 같다.”

“…….”

정체를 알 수 없던 불안감이 적중하자 순간 머리가 어질해졌다.

미루의 머리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내려다봤다.

“레빌 아저씨!!”

멀리서 돼지 수인 그렉이 딸기밭으로 뛰어 올라왔다.

꽤 서둘렀는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레빌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크허엉! 아저씨! 방금 마을에 도착…… 헉! 이거 보세요…… 헉!”

그렉의 손에는 편지처럼 보이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레빌은 급하게 종이를 받아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글을 읽어내려갈수록 레빌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미루를 납치한 놈들이 보낸 편지야.”

“……!!”

“시현, 너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레빌에게 편지를 건네받았다.

아직 글 실력이 부족하지만, 최대한 집중해 편지에 적힌 글자들을 읽어갔다. 짧게나마 몇 개의 문장을 해석할 수 있었다.

-고양이 소녀는 우리가 데리고 있다.

-소녀를 안전히 되찾고 싶으면, 저장고의 딸기를 모두 가지고 와라.

“붉…… 은 어금니?”

“붉은 어금니! 칼디니움 뒷골목을 장악하고 있는 범죄 조직이야. 데릭 그 자식이 놈들을 마을로 데려온 게 분명해!”

내가 가지고 있던 편지를 옆에 있던 엘프리드에게 건넸다. 편지를 읽어내려갈수록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엘린.”

“네, 선배.”

“얼마 전에 너무 오지랖 부리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이건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너도 도와줄 거지?”

“물론입니다. 선배가 나서지 않더라도 이건 제가 참을 수 없습니다. 이런 추악한 짓거리를 벌이다니…….”

마계에 넘어오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재미있고 신비한 일도 많이 경험했고,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속을 가득 채운 것은 마계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바로 순수한 분노!

죄 없는 미루를 납치한 데릭과 그 패거리들을 어떻게든 응징하고 싶었다.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못하면 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머리를 냉정히 식혔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루를 안전하게 데려오는 일이었다.

“엘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만요. 이걸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이야…….”

엘프리드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작은 크기의 아티팩트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는 더듬더듬 장치를 작동시켰다.

“안드라스 선배, 들리세요?”

“안드라스 씨?”

“지금 도움이 좀 필요해서요. 그때 알려준 방법이요?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그러더니 다시 한번 아티팩트를 조정해 땅바닥에 올려두었다.

-우우우웅!

아티팩트에서는 마나의 진동이 흘러나오더니, 자동으로 허공에 마법진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마법진을 중심으로 모여든 빛무리는 아주 익숙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파아앗!

-툭!

놀라운 표정의 사람들 앞에 커다란 덩치 마족, 안드라스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안드라스 씨!”

“시현 님, 안녕하십니까? 다행히 휴대용 좌표 아티팩트가 잘 발동했군요.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던 안드라스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엘린 군, 농장에 가까운 곳이면 웬만하면 그 아티팩트 사용을 자제해 주시겠습니까? 농장에는 고정된 좌표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고, 휴대용 아티팩트는 사용할 때마다 비용적인 측면이…….”

그러면서 땅에 떨어진 아티팩트를 아깝게 쳐다보았다. 아마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아티팩트인 듯했다.

“아앗! 죄송합니다, 안드라스 선배.”

“처음 사용하는 거니 괜찮습니다. 다음부터 신경 써주시면 됩니다.”

“안드라스 씨, 언제 저런 아티팩트를 엘린에게 맡기신 거예요?”

“왠지 조만간 일이 생길 것 같아 미리 엘린 군에게 전해뒀습니다. 물론 이렇게 빨리 사용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보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과 미루가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빠르게 설명했다.

안드라스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상황인지는 대충 알겠습니다. 조금은 안타깝군요. 오히려 딸기밭에 침입했더라면 제가 설치한 경계 마법에 애를 먹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저들이 보여준 행동을 보아하니 원래 납치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소녀를 데려간 행동은 우발적으로 이뤄졌겠지요.”

“확실히…… 처음부터 미루를 납치하려 했다면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

레빌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드라스의 말에 동의했다.

“원래의 계획에 실패했으니, ‘붉은 어금니’라는 놈들도 지금 당황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 협박 편지를 보낸 것도 어쩌면 딸기를 내어주는 것만으로 손쉽게 인질을 데려올 수 있을지도 모르죠.”

“미루를 데려올 수 있다면 딸기는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루의 안전.

그걸 위해서라면 저장고의 딸기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일단 붙잡혔다는 침입자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겠습니다. 그래야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이…….”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숨을 고르고 있던 그렉이 갑자기 불쑥 끼어들었다.

심각한 분위기에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그는 움찔 몸을 떨었다.

“킁, 형님 뒤에 이상한 녀석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는 내 뒤쪽을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뒤에? 그게 무슨…… 억?”

나는 뒤를 돌아보자마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꿍아?”

-무우우!

아기 야쿰이 나를 올려다보며 해맑은 울음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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