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97화
딸기밭의 불청객(7)
엘든 마을을 떠나기 전.
나는 작전에 궁금한 점을 레빌에게 물었다.
“그런데 굳이 소란을 일으키면서까지 몰래 들어가야 하나요?”
“물론이지. 경비병에게 정체가 발각되면 붉은 어금니 놈들도 눈치챌 가능성이 커. 세 사람의 존재는 들켜서는 안 돼.”
“그다음은요?”
“내가 어떻게든 놈들을 성문 밖으로 끌어낼 거야. 그럼 도시로 숨어들어 간 세 사람이 놈들의 본거지에서 미루를 구해내는 거지.”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놈들이 미루를 본거지에 남겨두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협상을 위해 데리고 나갈 수도 있잖아요.”
“그건 걱정하지 마.”
레빌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확신했다.
“욕심은 많은 놈일수록 생각은 단순해지게 마련이거든.”
* * *
칼디니움의 어두운 뒷골목.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미로처럼 얽힌 그곳에 붉은 어금니의 본거지가 있었다.
레빌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인 뻐드렁니는 급하게 본거지로 돌아와 조직의 두목을 찾았다.
“두목님! 두목님! 큰일 났습니다.”
뻐드렁니가 들어선 방 한가운데는 커다란 식탁과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커다란 덩치와 거무튀튀한 갈색 피부, 커다랗게 튀어나온 어금니를 가지고 홀로 식탁 앞에 앉은 돼지 수인.
그가 바로 ‘붉은 어금니’를 이끄는 두목. ‘발리크’였다.
“쩝쩝, 누가 내 중요한 식사시간에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거야?”
“어이, 뻐드렁니! 죽고 싶어? 감히 두목님의 식사시간을 방해하다니!”
식탁 주변에 서 있던 수인들이 험악하게 으르렁거리며 뻐드렁니를 압박했다.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보았던 것을 설명했다.
“혀, 형님들…… 그게 아니라. 정말 왔습니다.”
“뭐?”
“데릭이 말한 대로 놈들이 딸기를 잔뜩 싣고 왔습니다.”
-탁!
쉴 새 없이 음식을 집던 발리크의 손이 멈췄다.
그는 처음으로 음식에서 시선을 떼고 뻐드렁니를 바라봤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그게 지금…….”
뻐드렁니는 조금 전에 성문 앞에서 있었던 일을 빠르게 털어놨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발리크는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정말이야? 정말로 레빌, 그 배신자 새끼가 딸기를 마차에 가득 채워서 왔다고?”
“저, 정말입니다. 제가 직접 먹어봤는데 소문의 딸기가 분명했습니다.”
“직접 먹어봤다고?”
“네!”
“그렇게 맛있는 딸기였으면 당장 나한테 가져왔어야지!”
발리크는 버럭 화를 내며 먹다 남은 음식 뼈를 집어 던졌다.
“히이익!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뻐드렁니는 기겁하며 곧바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발리크는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이윽고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를 고민하던 발리크는 옆에 있던 부하에게 명령했다.
“야, 어제 도망쳐 온 그놈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잠시 후, 손발이 묶인 데릭이 발리크의 눈앞에 끌려왔다.
얼굴과 몸 곳곳에 구타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눈에는 공포심이 가득했다.
“데릭.”
“넵! 두목님!”
“네 말대로 놈들이 딸기를 가지고 왔다. 납치한 소녀와 교환하고 싶다는군.”
다 죽어가던 데릭의 표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딸기밭의 주인이 미루를 엄청나게 아껴서 무조건 움직일 줄 알았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데. 겨우 꼬맹이 수인 하나 살리자고 저 많은 딸기를 포기해?”
“어린아이 취향이거나, 아니면 고상한 취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흐으음, 그렇단 말이지…….”
발리크는 옆에 있던 부하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부하는 데릭의 묶여 있던 손과 발을 풀어줬다.
“두목님, 감사합니다!”
“너는 가서 그 꼬맹이나 살피고 있어. 우리의 아주 소중한 인질이니까.”
“알겠습니다.”
데릭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후다닥 방을 나섰다.
“뻐드렁니. 레빌 그놈이 전력을 얼마나 데리고 왔지?”
“전력이요? 전력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애송이 같아 보이는 두 녀석을 제외하면 레빌 혼자뿐이었습니다.”
“겨우 셋이서 왔다고?”
발리크의 얼굴에 다시 의구심이 차올랐다.
‘겨우 그 정도를 데리고 무슨 자신감으로 나를 도발해 온 거지? 함정을 준비했나? 함정을 준비할 만큼 시간적 여유는 없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레빌의 의도를 알아낼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발리크는 머리 아픈 고민은 그만두고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꿍꿍이가 있든, 그놈이 진짜 딸기를 가져온 건 사실이야. 딸기만 뺏을 수 있다면 무조건 이득이지.’
마차에 가득 실린 딸기를 빼앗을 생각에 발리크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어떻게든 딸기를 빼앗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놈들이 사람들에게 나눠준 딸기도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귀한 내 딸기를 엄한 놈들이 손대게 할 수 없지. 최소한의 인원만 놔두고 모두 나설 준비해라.”
“그 인질도 데리고 갑니까?”
“아니, 인질은 놔두고 간다. 딸기밭 주인이 그렇게 아끼는 존재라면 이 정도로 넘겨주기 아깝지. 더 빼먹을 방법이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발리크는 자신을 배신하고 조직을 나선 레빌의 모습을 떠올렸다.
곧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어금니가 전부 드러나 보일 만큼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조직을 배신한 놈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오늘 조직원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줘야겠어.”
* * *
칼디니움의 뒷골목이 부산스러워졌다. 잠시 후, 흉흉한 기세의 수인들이 이곳저곳에서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담벼락에 몸을 숨긴 세 사람은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봤다.
“모두 계획대로 되어가는군요.”
“네, 레빌 씨의 작전이 통한 모양이에요.”
안드라스의 속삭이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레빌이 세웠던 작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요. 오랜만에 몸을 움직일 생각을 하니 벌써 손이 근질근질하네요.”
엘프리드는 검의 손잡이를 매만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무우우…….
“아꿍아, 조금만 더 참자. 이제 거의 다 됐어.”
답답해하는 아꿍이를 달래며 계속 뒷골목의 동태를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스러웠던 뒷골목에 고요함이 찾아 왔다.
드디어 붉은 어금니 조직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았다.
“이제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꿍아, 이제 네 차례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지?”
나는 다시 한번 미루의 머리 장식을 내밀었다.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확인한 아꿍이는 힘차게 거리로 나섰다.
“따라가죠.”
우리도 그 뒤를 쫓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꿍이는 어두운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여러 갈래의 길이 거미줄처럼 엮인 곳을 거침없이 통과해나갔다.
엘프리드는 그 모습을 보며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배, 정말 제대로 안내하고 있는 걸까요?”
“최대한 빨리 미루가 있는 곳을 알아내려면, 지금은 아꿍이를 믿는 수밖에 없어.”
개미굴에 갇혔을 때도 아꿍이의 활약 덕분에 탈출할 수 있었다.
그때의 능력을 다시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뒷골목의 어둡고 깊숙한 곳까지 도달했을 때, 험악한 분위기의 수인들이 우리의 길을 막아섰다.
“이놈들 뭐야?”
“마족? 푸핫! 정신이 나간 놈들이잖아. 마족이 겁도 없이 이곳까지 발걸음하다니.”
“심심하던 차에 잘됐네. 간만에 용돈 벌이라도 해볼까?”
수인들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물론 우리 중에 그 모습을 보고 겁을 먹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아꿍이도 미루의 흔적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가 맡을게요. 선배들은 물러나 계세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엘린 군.”
“적당히 해야 하는 거 알지?”
“물론이죠. 선배랑 대련할 때보다 더 살살할게요.”
나랑 대련할 때도 좀 살살해 주지…….
엘프리드는 검도 꺼내 들지 않고 수인들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보여주는 오만한 태도로 상대를 도발했다.
-까딱까딱!
“시간 없으니까 모두 한꺼번에 덤벼.”
수인들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며 엘프리드에게 달려들었다.
“이 건방진 마족 새끼가!”
“죽어라!”
“하앗!”
-퍽! 퍼억! 빠각!
아주 당연하게도 수인들은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엘프리드가 너무 압도적으로 처리해버려서, 끙끙 앓고 있는 수인이 안쓰럽게 보일 정도였다.
엘프리드는 쓰러진 수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어이, 너희들이 붉은 어금니인가 뭔가 하는 놈들 맞지?”
“으으…… 그게…….”
“본거지로 가는 길이 어디야?”
“…….”
“흐음. 입을 안 열겠다는 거지?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가 좀 바빠서 말이야.”
그는 쓰러진 수인들을 향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수인들이 공포에 벌벌 떨고 있을 때, 그들을 도와주는 존재가 나타났다.
-무우우! 무우우!
아꿍이가 뭔가를 발견하고 나를 향해 울음소리를 냈다.
“뭔가를 찾아낸 거야?”
-무우우!
하지만 아꿍이가 맴도는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뭐지? 아무것도 없는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안드라스가 곁으로 다가왔다.
“시현 님, 잠시만 비켜주시겠습니까?”
“아, 뭔가 발견하셨어요?”
“흐음…… 벽 내부에서 미세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군요. 평범한 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안드라스는 벽 이곳저곳을 만져보더니.
“이곳에 마력을 주입해 주면…….”
-철컥!
-그그그그그극!
아무것도 없던 벽이 갈라지며 숨겨진 통로가 드러났다.
안절부절못하는 수인들의 반응을 보아서, 이곳이 붉은 어금니의 본거지가 확실해 보였다.
“안드라스 씨, 어떻게 알아내셨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하하, 별일 아닙니다. 아꿍이가 흔적을 찾아주지 않았다면 저도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겁니다.”
-무우우! 무웃!
“그래, 너도 잘했어.”
아기 야쿰은 해냈다는 표정으로 귀여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우리 아꿍이가 완전 복덩이야, 복덩이!
“본거지로 들어가는 길은 찾았고.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할까요?”
엘프리드는 아직도 쓰러져 있는 수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중에 귀찮은 일이 안 생기려면 어떻게든 조용히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검을 매만지며 침묵의 방법을 논하자, 수인들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애원했다.
“히익!”
“사, 살려주세요!”
저 녀석도 참…….
생긴 건 귀족 집안 도련님처럼 생겼으면서, 가끔 어울리지 않게 섬뜩한 말을 한단 말이지.
“조용하게 만들려면 잠시 기절시키는 게 제일 깔끔하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우우우웅!
안드라스는 소매에서 ‘샤히트’라는 이름의 아티팩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티팩트들은 하나씩 수인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으으…….”
“제발…….”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낮잠을 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수인들에게 안드라스는 편안한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의 손짓에 맞춰 아티팩트의 주변으로 강력한 전기가 내뿜어졌다.
-파지지지직!
“끄으윽!”
“컥!”
수인들은 짧은 비명과 함께 정신을 잃고 픽 쓰러졌다. 주변으로 고기 탄 냄새가 은근히 퍼져 나왔다.
“……안드라스 씨? 이거 정말로 괜찮은 거죠?”
“물론입니다. 수인들은 마법 저항 능력이 뛰어나서 이 정도 충격도 큰 무리 없더군요. 적절히 조절했으니 걱정 마십시오.”
안드라스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으음, 정말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옆에 있는 두 마족과 같은 편이라서 참 다행인 것 같아.
기절한 수인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길 구석으로 잘 옮겨놓았다.
-무우우. 무우우?
“아꿍아, 만지면 안 돼. 지지야, 지지!”
쓰러진 수인들을 앞발로 툭툭 건드리는 아꿍이를 안아 들었다.
“제가 앞장설 테니, 두 분이 뒤쪽을 맡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부탁할게, 엘린!”
-무우! 무우!
엘프리드는 우리의 응원을 받으며 먼저 비밀 통로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나와 안드라스도 그의 뒤를 바짝 뒤따랐다.
미루야, 조금만 기다려.
아저씨가 금방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