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01화
바쁘게 지내는 휴일(2)
“어서 오세요, 시현 씨. 작은 친구들도 모두 오랜만입니다.”
인페리스 사무실에 도착한 우리를 발레리안이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안녕…….”
은율이는 오랜만에 만난 탓에 어색한지, 내 다리 뒤에 살짝 숨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이다, 뾰!」
-무우우!
반면에 규리와 아꿍이는 어색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발랄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사무실에는 이 슈퍼 발랄한 두 녀석도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가 있었으니…….
“오랜만입니다. 임시현 씨.”
흰색 제복 차림에 여전히 무표정하고, 사무적인 목소리. 바로 페이슈타의 감시관, 천족 아슈미르였다.
「으악! 나쁜 천족이다, 뾰!」
-무우우…….
규리와 아꿍이는 아슈미르를 발견하자마자 후다닥 내 뒤로 숨어들었다.
아무래도 첫 만남이 워낙 최악이다 보니, 아이들은 아직도 많이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으음…….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나도 좀 무섭다…….
그래도 오늘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찾아온 건 아니니까. 최대한 웃는 낯으로 아슈미르와 대화를 시도했다.
“네, 안녕하세요. 그저께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을 안 보내셔서 혹시나 못 보신 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인간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나누는 일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답장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
“…….”
으아악!
나도 꽤 사회생활도 많이 경험했고, 사교성이 낮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도저히 천족과의 대화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치 감정이 전혀 없는 로봇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인간, 마족 중에 사교성 만렙인 발레리안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발레리안은 금방 내 의도를 알아채고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아슈미르 씨. 오늘도 역시 시현 씨와 함께 온 아이들 때문에 찾아오신 거죠?”
“네, 맞습니다. 아직도 차원의 규율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하니까요.”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저 아이들을 한곳에 모아주시겠습니까?”
나는 아슈미르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의자에 앉은 자세로 은율이와 아꿍이를 무릎 위에 앉혔다.
규리는 아꿍이의 머리 위에 살포시 자리를 잡았다.
“…….”
「우으으…….」
-무우…….
아이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몸을 파르르 떨었다.
“괜찮아. 저번처럼 혼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니까. 너무 긴장 안 해도 돼.”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들을 달래며, 두 팔로 살짝 끌어안았다.
덕분에 아이들의 떨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아슈미르는 저번과 같이 새하얀 빛과 함께 커다란 지팡이를 소환해냈다.
그녀가 지팡이를 한 손으로 잡아 우리 쪽으로 겨누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뱀 장식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쉬이익!
두 마리의 뱀은 몸을 쭉 늘려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이번에도 뱀들은 딱히 적의를 드러내지 않고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했다.
그때, 머릿속으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저 뱀들에게도 교감 능력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나는 반사적으로 교감 능력을 발동시켰다.
나의 의식이 뱀에 닿는 순간, 엄청난 전율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지? 이 인간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건가?
-특이한 존재로군. 우리와 소통을 시도하다니…….
머릿속으로 두 마리의 뱀의 생각이 느껴졌다.
야쿰이나 다른 마수에게 교감을 사용할 때 보다, 훨씬 선명하고 또렷하게 그 내용이 머릿속에 울렸다.
-내 말이 들리는 거야?
-그렇다, 인간.
-우리를 부른 목적이 무엇인가?
주인을 닮아서 그런지 두 마리 모두 태도가 아주 진지했다.
그냥 호기심에 불렀다고 말하기 뻘쭘해서 억지로 질문을 하나 생각해냈다.
-저번에 아이들을 공격하려다가 그만뒀잖아? 그건 왜 그랬던 거야?
-우리의 계약자가 이야기한 대로다.
-처음에는 분명 차원의 규율을 어겼지만, 나중에는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슈미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나는 곧바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왜 갑자기 달라진 거야? 무슨 이유로?
-그건…….
뱀이 대답을 하려는 순간 머리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찌이이잉!
-크윽!
-특이한 인간! 너는 아직 질문의 답변을 들을 수 없다.
-좀 더 영혼의 힘을 키우고 오도록 해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뱀과 이어졌던 교감이 바로 끊어졌다.
동시에 느껴지던 통증도 깨끗이 사라졌다.
뭐지? 좀 더 영혼의 힘을 키우라고?
두 뱀과의 대화는 하나의 의문을 남기고 종료됐다.
“시현 님?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뇨. 괜찮습니다. 잠시 조금 어지러운 것 같아서.”
중간에 발레리안이 내 찡그린 얼굴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일단은 적당히 둘러대서 뱀과의 대화는 숨기기로 했다.
아슈미르는 두 마리의 뱀을 다시 지팡이 장식으로 되돌렸다.
“지난번과 변함이 없습니다. 차원의 규율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얘들아, 봤지? 별로 안 무섭잖아.”
“응, 별로 안 무서웠어.”
「나는 처음부터 안 무서웠다, 뾰!」
-무우! 무우!
은율이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고, 규리와 아꿍이는 기세등등해졌다.
금방 분위기가 바뀐 아이들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한편, 아슈미르는 나와 아이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옷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시현 님?”
“네?”
“감시관의 업무에 필요해서 그런데. 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까?”
“물론 되죠. 저희는 계속 이렇게 있으면 될까요?”
“네.”
아슈미르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만지작, 만지작…….
“…….”
-만지작, 만지작…….
“…….??”
뭐, 뭐지?
설마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모르는 건가?
그녀는 사진은 찍지 않고 한참 동안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발레리안이 먼저 다가가 친절하게 사진 찍는 법을 알려줬다.
그제야 아슈미르는 사진을 찍을 자세를 취했다.
“찍겠습니다.”
-찰칵!
아슈미르는 스마트폰 화면으로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응? 잘못 본 건가?
그녀가 살짝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슈미르는 이번에도 자기 할 말만 남기고 쌩하니 인페리스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처음에는 저런 모습이 무미건조하고 무례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쓸데없는 인사치레를 할 필요가 없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시현 씨, 수고하셨습니다. 작은 친구들도 고생했어요.”
“이번에도 다행히 별일 없이 끝났네요.”
나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집으로 가실 예정이시죠? 제가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매번 신세를 져서 죄송하네요…… 아! 리안 씨, 혹시 오늘 뒤에 일정이 없으신가요?”
“일정 말입니까? 시현 씨를 모셔다드리고 나면, 저녁에는 따로 일정이 없습니다.”
“그럼 저녁 식사 같이하시죠. 어머니가 리안 씨 꼭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그래도 될까요? 혹시 민폐가…….”
“민폐라뇨. 어머니가 리안 씨 꼭 한번 데려오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는데요. 같이 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시관님, 확인은 다 끝나셨습니까?”
“네, 이번에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천족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인간이……. 감시관님?”
아슈미르는 옆에 있던 천족의 말은 듣지 않고, 오로지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스마트폰 화면을 만지던 아슈미르는 옆에 있던 천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왜, 왜 그러십니까?”
그녀는 스마트폰을 내밀어 보였다. 화면에는 은율이, 규리, 아꿍이가 임시현의 품에 안겨 있는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이 사진을 어떻게 하면 배경화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네??”
* * *
“할머니!!”
「우리 왔다, 뾰!」
-무우우.
“어이쿠, 우리 아가들! 잘 지내고 있었어? 어디 좀 보자. 키가 좀 커졌나?”
어머니는 아이들 하나하나 안아주며 반가워했다.
아이들도 어머니의 품이 그리웠는지, 그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맴돌았다.
은율이는 가방을 열어서 소중히 챙겨온 시험지를 꺼내 들었다.
살랑거리는 여우 꼬리와 쫑긋 세워진 귀, 이미 칭찬받을 생각으로 신나 있었다.
“할머니, 이거”
“이게 뭐야?”
나는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슬쩍 귀띔해 줬다.
“은율이가 마계에서 만점 받은 받아쓰기 시험지야.”
“어머나∼! 만점을 받았어?”
“응, 선생님도 대단하다고 했어.”
“우리 은율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쁘고, 똑똑할까? 정말 대견하네!”
“헤헤!”
어머니는 너무 대견하다는 듯 연신 칭찬했다. 은율이는 원한 것을 얻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 딸기밭에서 내가 제일 딸기 많이 열리게 했다, 뾰!」
-무우우! 무우우!
규리와 아꿍이도 어머니의 칭찬이 받고 싶었는지, 마계에서 자신이 잘한 일들을 어필했다.
“그래, 규리랑 아꿍이도 열심히 했네. 약속한 대로 착하게 지낸 것 같아서 할머니가 너무 기쁘네.”
어머니는 아이들 모두가 만족할 때까지 칭찬하고 보듬어주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뭔가를 기억해내고 깜짝 놀랐다.
“저기…… 엄마? 오늘 리안 씨도 함께 오셨는데…….”
그제야 어머니는 내 옆에서 어색하게 웃는 발레리안을 발견했다.
“어머! 리안 씨도 오셨구나. 죄송해요. 아이들에게 너무 신경을 쓰느라…….”
“괜찮습니다. 아이들이 그만큼 귀여우니까요.”
“누추하지만 어서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아이들, 발레리안과 인사가 끝나자마자 어머니는 바로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리안 씨는 가리는 음식 없어요? 외국에서 오셔서 한식이 마음에 드시려나 모르겠네.”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습니다. 한식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제 요리가 입맛에 맞아야 할 텐데…….”
“저는 아름다우신 분들이 만든 요리는 다 좋아하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호호호! 빈말이라도 기분이 정말 좋네요.”
발레리안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칭찬에 어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식탁 위에는 금방 요리와 밑반찬이 가득가득 준비됐다.
“반찬이 너무 많네요. 급하게 오느라 선물도 준비 못 했는데, 준비하느라 고생하셨겠습니다.”
“가짓수만 많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몇 개 없어요. 그리고 평소에 아들 챙겨주시는 것만으로도 항상 감사한 일이죠. 얼른 드세요.”
어머니는 아꿍이와 규리가 먹을 신선한 채소와 과일도 따로 준비해 챙겼다. 그리고 은율이 옆에 앉아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다.
“할머니, 이거 맛있어!”
“은율이가 밑반찬을 너무 잘 먹네. 시현아, 나중에 농장 돌아갈 때, 밑반찬 좀 가져가. 엄마가 많이 만들어놓을 테니까.”
“나야 좋지.”
“리안 씨는 음식이 입맛에 좀 맞으세요?”
“정말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항상 밖에서 사 먹는 일이 많은데, 오랜만에 정성 가득한 식사를 맛보는 것 같네요.”
“아이고, 매번 사 먹고 그러면 안 돼요. 음식이랑 밑반찬 좀 챙겨드릴 테니까 가실 때 꼭 챙겨가세요.”
“민폐인 건 알지만,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감사히 받아가겠습니다.”
“민폐라뇨. 어차피 남은 음식 싸드리는 거니까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호호호!”
워낙 베푸는 걸 좋아하시는 어머니.
발레리안에게 이것저것 챙겨줄 생각에 벌써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오랜만에 집에서 느끼는 북적북적한 식사 분위기에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