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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02)화 (10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02화

바쁘게 지내는 휴일(3)

북적북적한 저녁 식사가 끝나고.

배불리 식사한 나와 발레리안은 거실 소파에 잠시 몸을 맡겼다.

아이들은 어느새 TV 앞에 모여들어 어린이 채널에 푹 빠져 있었다.

“애들아, TV 너무 가까이서 보면 눈에 안 좋아. 조금만 떨어져서 보자.”

슬금슬금 TV 화면으로 다가가는 아이들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시현 씨, 내일 일정은 알고 계시죠.”

“네, 오전 9시까지 준비하라고 연락받았어요. 차량도 준비해 주신다고.”

“오후에는 길드 일정도 있으시다면서요?”

나는 흐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휴일 첫날인데 힘드시겠어요?”

“원래는 길드 일정만 소화하려고 했는데, 이기석 본부장님이 계속 부탁을 하셔서…….”

이기석 본부장과 거래를 약속했던 ‘혹한의 쐐기마석’의 첫 구매자가 확정됐다.

국가에서 지원 중인 연구소에서 구매가 확정됐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연구소의 소장님이 꼭 나를 만나고 싶다나?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시간도 빡빡해서 거절했다.

그런데 차량 지원은 물론이고, 무조건 나에게 맞춰서 일정을 조절하겠다고…….

저렇게까지 자세를 낮춰서 부탁을 해오는데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 다 때려치우고 휴일 내내 아이들이랑 뒹굴고 싶다∼!

빡빡한 일정이 조금 짜증 나긴 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열심히 일해야 어머니한테 효도도 하고, 아이들 예쁜 옷도 입히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러지.

그래도 남은 휴일이 있으니까. 오늘은 내일 일정을 위해 일찍 잠들어야 할 것 같았다.

* * *

“……으음.”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눈이 떠졌다.

양쪽 옆구리에서 은율이와 아꿍이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제 여름으로 접어들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엄청 뜨겁게 느껴졌다.

이제 에어컨 있어야겠네. 엄마 방이랑 거실에도 하나씩 설치하고…….

생각난 김에 남은 휴일에 시간 내서 사야겠어.

옆에 놓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9시까지 준비하면 되니까……. 조금 더 누워 있자.

나는 평소에 느낄 수 없는 여유를 맛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올 듯 말 듯 한 나른함을 즐겼다.

시간이 흘러 문밖에서 아침을 준비하시는 어머니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

문을 열자마자 구수한 찌개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일어났니? 애들은?”

“아직 자고 있어. 나 먼저 씻고 천천히 깨우려고.”

“오늘 9시까지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늦은 거 아니야?”

“괜찮아. 그쪽에서 집 앞까지 차 보내주기로 했거든. 나 씻고 나올게.”

간단하게 샤워를 끝내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꿈나라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깨우기 시작했다.

“은율아. 계속 잘 거야?”

“므으……. 아빠…….”

“할머니랑 아침 먹어야지.”

상체를 슬쩍 일으켜 세워주자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은율이는 반쯤 잠에 취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두 팔을 뻗어 안아달라는 자세를 취했다.

안아주면 다시 잠든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도저히 안아주지 않고는 못 배길 귀여움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안아주자 은율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어쩔 수 없이 은율이를 안은 채로 다른 아이들부터 깨우기 시작했다.

일일이 아꿍이, 규리까지 깨워, 모두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아가들 일어났어?”

“으으음…… 할머니…….”

은율이는 이번엔 어머니를 향해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어머니도 그 귀여움을 이길 순 없었다. 나에게서 은율이를 받아들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은율이는 잠꾸러기네. 할머니가 맛있는 아침 만들어놨는데, 안 먹을 거야?”

“먹을 거야…….”

“잠 좀 깨워서 밥 먹어야겠네. 시현아, 아꿍이랑 규리 아침 좀 챙겨줄래. 식탁 위에 준비 다 해놨어.”

“알았어.”

어머니는 은율이를 안은 채 거실 쪽으로 향했다. 나는 탁자 위에 준비된 신선한 과일 채소를 아꿍이와 규리에게 챙겨줬다.

-무우우…….

「음냐…… 시현,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뾰! 동글동글한 아이스크림!」

“일단 아침부터 먹어야지. 나중에 먹고 싶은 거 꼭 사줄게.”

은율이와 마찬가지로 꾸벅꾸벅하던 아이들은 조금씩 아침을 먹으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식사를 먼저 챙긴 뒤, 나도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뜨끈한 된장찌개와 보들보들한 계란찜, 그리고 어머니가 평소에 잘 준비하지 않던 동그랑땡과 소시지도 보였다.

아마도 은율이를 위해 따로 준비하신 것 같았다.

어머니는 은율이와 뒤늦게 식탁에 앉았다.

은율이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평소보다 더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은율아, 식사할 때는 제대로 자리를 잡고 먹어야지. 할머니도 불편하시잖아.”

“뭐 어떠니?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할머니 집에 놀러 올 때만 그러는 건데.”

“버릇 나빠질까 봐 그러지…….”

“너 어렸을 때는 이것보다 더했어. 은율이 정도면 얼마나 얌전하고 착한 건데.”

“…….”

어머니만 할 수 있는 어린 시절 이야기에 나는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다.

은율이 앞에서 더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먼저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

곧바로 길드 일정에 참여할 계획이라 여분의 편한 옷과 속옷도 따로 가방에 챙겨 넣었다.

내가 외출 준비를 마쳤을 때,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방문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철컥!

문을 열자마자 서예린이 활기찬 모습으로 등장했다.

“안녕!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어허! 어디서 모른 척을 하려고. 어제 아기 천사님들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이미 접수하고 찾아온 건데!”

서예린은 장난스럽게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피식 웃어 보이며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끙차!”

“그건 뭐야?”

“응? 너 오늘 내내 일정 있다며? 그 사이에 아이들이랑 신나게 놀려고 이것저것 준비했지.”

그녀가 가져온 커다란 가방 안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먹을 것부터 장난감, 인형, 레고도 있었다.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샀어. 누가 보면 네가 애 키우는 줄 알겠다.”

“아이들 온다고 며칠 전에 듣고, 뭐하면서 놀면 좋을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이 샀더라고. 헤헤.”

서예린은 자신도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약간 민망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도 아이들을 생각해서 한 행동이기에 고맙게 느껴졌다.

“고마워. 이렇게까지 신경 써줄 줄 몰랐네.”

“고맙긴 뭘…… 그럼 아기들 얼굴 좀 볼까? 얘들아, 어딨니?”

“예린이 왔구나. 아침은 먹었어?”

“네, 간단히 먹고 왔어요. 은율아, 안녕!”

은율이는 잠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뒤늦게 그녀를 기억해내고 작게 손을 흔들었다.

서예린은 그마저도 엄청 기쁜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 예린이다, 뾰!」

-무우우.

“너희들도 안녕! 나 기억하는구나?”

아꿍이와 규리는 금방 서예린을 기억해내고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니에게 아이들 모두를 맡겨두기 미안했는데, 서예린 덕분에 조금 더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나는 나가볼게.”

내가 신발을 신으며 외출 준비를 하자, 아이들 모두가 현관문으로 쪼르르 뛰어나왔다.

“아빠…… 어디 가?”

“응, 오늘은 일이 있어서 좀 바쁠 것 같아.”

“으응…….”

시무룩해진 은율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대신에 내일은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오늘만 참아. 대신에 할머니, 언니랑 재미있게 놀고 있어. 알았지?”

-끄덕끄덕.

은율이는 아쉬움을 참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규리랑 아꿍이도 할머니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알았다, 뾰! 나는 말 잘 듣는다, 뾰!」

-무우우!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니,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속에서 뿌듯함과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왔는데, 집 앞에는 이미 이기석 본부장과 저번에 보았던 부하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시현 씨.”

“안녕하세요. 기다리고 계셨었나요? 조금 더 일찍 나올 걸 그랬네요.”

“아닙니다. 저희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타시죠.”

이기석 본부장은 직접 뒷문까지 열어주며 나를 공손하게 대했다.

나보다 연배도 높으신 데다가, 애초에 이런 대접은 영 익숙지 않아서 엄청나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차량이 출발하고

“…….”

“…….”

안에서는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생각해 보니 저번에는 발레리안이라도 있어서 그나마 괜찮았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어색했다.

이기석 본부장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혹시 지금 방문하는 연구소에 대해 궁금하신 점 없으십니까? 제가 설명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라면 짧게나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아…… 네. 으음…….”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대화를 시도하려는 상대방의 성의를 받아 억지로라도 질문거리를 생각해냈다.

“연구소 소장님이라는 분이 왜 저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 거죠?”

“아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쐐기마석’ 때문에 연구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시현 씨께서 판매해 주신 덕분에 상황이 좋아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드린 것도 아니고, 돈을 받고 팔았을 뿐인데.”

“저번에 설명해 드렸다시피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연구소장님 입장에서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셨을 겁니다.”

확실히 ‘혹한의 쐐기마석’이라는 물건이 귀하기는 귀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팔기만 했을 뿐인데 감사 인사를 들을 정도라니.

그렇게 귀한 물건의 교역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았다.

차량으로 1시간.

멀리서 연구소 건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력핵에너지 연구소.’

“한 가지 말씀을 안 드린 게 있는데. 시현 씨가 쐐기마석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연구소장님만 알고 계십니다. 다른 직원분들은 그냥 투자자 방문 정도로 전달받았을 겁니다.”

“투자자요?”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웠다.

이런 자리인 줄 알았으면 좀 차려입고 올 걸 그랬나?

내 표정을 읽은 이기석 본부장은 가벼운 미소로 나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편하게 견학 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도착한 것 같습니다. 같이 내리시죠.”

우리가 내림과 동시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년 남성이 빠르게 다가왔다.

“이기석 본부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늘 똑같죠. 연구소장님은 집에 다녀오신 모양입니다. 오늘 굉장히 멋지십니다.”

“하하!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귀한 손님이 오시는데 평소처럼 꾀죄죄한 모습으로 맞이할 순 없죠.”

두 사람은 서로 친분이 있는지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중요한 손님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임시현 씨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마력핵에너지 연구소를 맡고 계신 허영섭 소장님이십니다.”

하얗게 센 머리에 두꺼운 뿔테안경.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임시현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처음 뵙겠습니다. 허영섭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젊은 분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내 손을 꼬옥 잡더니 바로 연구소 입구로 이끌었다.

“얼른 들어가시죠.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입니다.”

“어…… 어어?”

연구소장의 너무나도 적극적인 태도에 당황하며 이기석을 바라봤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여유롭게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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