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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03)화 (10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03화

바쁘게 지내는 휴일(4)

“저기 보이십니까? 우리 연구소에서 주력으로 개발 중인 마력핵 엔진입니다. 기존 엔진의 부피를 줄이고, 안정성과 출력을 크게 높였습니다. 이미 간단한 기계 장치에서는 뛰어난 효율을 보이고, 차세대 자동차 엔진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허영섭 연구소장은 직접 연구소를 데리고 다니며 진행 중인 연구과제를 소개해 줬다.

비전문가인 나를 배려해서 꽤 상세하고 쉽게 설명해 주기는 했는데, 그래도 못 알아듣는 말이 절반 정도는 됐다.

자세한 이해보다는 그냥

‘와……. 대단하다.’라고 느끼는 게 전부였다.

“이곳에서는 마력핵 전기 배터리를 연구, 개발 중입니다. 아직 미국이나 유럽의 몇몇 국가에 비하면 아직 기술이 조금 부족합니다.”

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깐깐한 윗놈들이 예산지원만 좀 빵빵하게 해줬으면…….”

“…….”

“크흠, 연구소장님?”

“어이쿠, 이런! 시현 씨 못 들은 거로 해줘요. 작년에 마석을 못 구해서 연구가 많이 힘들었거든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작년에는 대형 배터리 쪽에서 꽤 주목할 만한 기술 성장을 이뤘습니다. 거기다 시현 씨 덕분에 마석 걱정은 없어서, 올해는 벌써 기대가 많이 됩니다.”

허영섭 연구소장은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마치 맥주를 바라보는 사장님, 혹은 맛있는 음식을 바라보는 리아네 씨 같은 느낌?

그 뒤에 연구소를 돌아다니며 많은 설명을 들었다.

몇 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첫 번째로 쐐기마석이라는 게 정말 많은 곳에서 쓰이고, 핵심적인 자원이라는 것을 알았고.

두 번째로는 허영섭 연구소장이 정말 연구에 열정적이고 집중한다는 느낌이 받았다. 연구 성과를 설명하면서 보여주는 초롱초롱한 눈빛은 어린아이의 순수함마저 느껴졌다.

“여기는 마법 아티팩트 관련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상급의 아티팩트는 모두 쐐기마석을 핵심으로 사용합니다. 오랜 기간 사용해도 진동과 발열이 적고. 출력이 안정적이라 현재 대체가 불가능한 자원입니다.”

연구실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아티팩트들이 있었다.

반지, 목걸이, 귀걸이 같은 장신구 형태부터, 중세 시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커다란 갑옷 형태의 아티팩트도 눈에 띄었다.

진열된 아티팩트들을 신기하게 둘러보며 질문했다.

“와…… 이 연구소에서 아티팩트도 만드는 건가요?”

“아닙니다. 저희는 아티팩트의 마력핵 부분만 제작합니다. 혹시 ‘슈나르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슈나르페?”

“마계에서 아티팩트 장인 가문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최근에 슈나르페 가문 계약자와 연구 협력을 맺어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여기 진열된 것들은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이죠.”

슈나르페……. 슈나르페……. 아?!

커다란 덩치에 로브와 복면을 착용한 마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드라스 씨?!

나는 안드라스가 슈나르페 가문 출신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안드라스의 가문이라니 살짝 궁금증이 생겨 질문을 던졌다.

“그 슈나르페 가문이 그렇게 유명한 곳인가요?”

“유명하다마다요. 이쪽으로 관련된 연구소, 기업들 사이에서는 거의 신처럼 받들 여기는 존재들입니다. 지금 인간이 가진 기술력은 그분들의 발끝에 겨우 걸친 수준일 겁니다.”

“오오…….”

연구소장의 엄청난 극찬에 절로 감탄을 터뜨렸다.

안드라스의 가문이 마계에서 유명한 귀족 가문인 건 익히 들었지만, 이쪽 세계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슈나르페 출신 마족들은 모두 근면, 성실하고 기술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들었습니다. 연구자로서 존경할 만한 분들이죠. 한 번쯤 만나보는 게 제 소원 중 하나입니다.”

“…….”

근면, 성실? 끊임없는 노력?

안드라스를 싫어하거나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연구소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들이 너무나도 안드라스와 매치가 안 됐다.

안드라스가 최근에 보여준 끊임없는 노력이라면. 지난번 야유회 때, 완벽한 캠핑용품을 만들어 온 것 정도?

으음, 잘 만들긴 했었지.

옆에 사장님이 계셨다면 아마 연구소장님께 헛소리하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셨을 게 분명했다.

슈나르페 마족과 만남을 꿈꾸는 연구소장의 아름다운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 * *

연구소 구경이 끝나고.

나와 이기석 본부장은 허영섭 연구소장을 따라 그의 개인 사무실로 향했다.

“많이 어질러져 있지만 들어오시죠.”

그의 말대로 사무실은 전혀 정돈된 느낌은 아니었다.

두꺼운 서류뭉치들이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고, 깨알 같은 글씨와 두꺼운 두께의 외국 원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정말 만화나 소설 속에 등장할 것 같은 괴짜 과학자의 방 같이 느껴졌다.

다행히 손님을 맞이를 위한 공간은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연구소장은 직접 종이컵에 커피를 만들어 내왔다.

“대접이 부실해서 죄송합니다. 연구실 근처에는 커피를 제외하고, 먹을 걸 두지 않는 편이라…….”

나와 이기석 본부장은 괜찮다는 미소와 함께 따뜻한 커피를 받아들었다.

허영섭 연구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내게 질문했다.

“연구소를 둘러본 소감은 어떠십니까?”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사실 시현 씨가 오늘 방문한다고 해서 짧은 대본도 준비했었거든요.”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런 커다란 연구소의 대표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순박한 모습이었다.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분위기가 조금 무르익었을 때쯤, 허영섭 연구소장이 진지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흠흠, 제가 억지를 써가며 시현 씨를 모신 건 연구소를 보여드리기 위함도 있지만, 사실 꼭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입니다.”

그의 진지한 태도에 나도 덩달아 표정이 굳어졌다.

“제 개인적인 추측으로 시현 씨께서 쐐기마석의 여유분을 꽤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덧붙이자면 이기석 본부장님께서는 철저히 비밀로 하셨습니다. 정말로 제가 아는 정보 내에서 그렇게 예상했습니다.”

그는 혹시나 내가 오해할까 봐 아주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혹시 쐐기마석에 여유분이 정말로 있으시다면, 투자를 권해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정확히 어떤 투자를 말씀하시는 건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연구소장은 사무실 책상에서 서류 뭉치 하나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꽤 두툼한 서류 맨 위에는 ‘국내 쐐기마석 연구 프로젝트 목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미 들으셨듯이. 국내에 많은 연구자가 쐐기마석을 구하지 못해 연구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정말 잠재력이 높고, 투자가치가 뛰어난 프로젝트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큰 연구소도 연구 진행에 차질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잘은 몰라도 다른 곳의 상황은 더 안 좋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시현 씨께서 많은 금전적 이익을 원하시면, 해외 대기업이나 다른 국가와 거래가 좋을 겁니다. 하지만 미래의 가치를 생각해 보면 국내 연구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으음.”

“이 서류에는 정말 믿을 만한 프로젝트들을 정리해 뒀습니다. 억지로 강요를 드리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저 괜찮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꼭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연구소장이 건넨 서류를 잠시 훑어봤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내가 쉽게 볼 수 있도록, 각 프로젝트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이 돼 있었다.

허영섭 연구소장은 초조한 눈동자로 내 눈치를 봤다.

“일단 소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뭐라 대답하기가 힘드네요.”

“물론이죠. 저도 강요를 드리거나 압박을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는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

“정말 중요한 문제니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십시오. 혹시 궁금하신 점이나, 알고 싶으신 정보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셔도 됩니다.”

나는 공손하게 그의 명함을 받아들었다.

허영섭 연구소장과 대화를 마지막으로 연구소에서의 일정이 끝을 맺었다.

* * *

차를 타고 연구소를 빠져나오는 길.

“연구소 구경은 어떠셨습니까?”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본부장님은 연구소 구경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절 데려오신 거죠?”

나는 허영섭 연구소장이 건네줬던 서류를 살짝 들어 보였다. 그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시현 씨가 가지고 있는 쐐기마석을 조금 더 한국에 사용해 주시길 바라고 있으니까요. 혹시 기분이 나쁘셨습니까?”

“뭐…… 딱히 그렇지는 않네요. 연구소장님이 워낙 열정적이고, 진솔해 보이셔서. 저는 오히려 좋았어요.”

“하하, 다행이군요. 연구소장님이라면 어떻게든 시현 씨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이기석 본부장이 대뜸 이런 투자 제안을 했다면, 솔직히 꺼렸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줬다.

하지만 허영섭 연구소장은 전혀 달랐다. 짧은 시간 동안에도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자부심이 팍팍 느껴졌다.

아마도 저런 분들이 세상에 발전과 변화를 가져다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안을 천천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보다 어떻게 할까요? 집으로 모셔다드릴까요? 아니면 점심 식사라도 같이하시겠습니까?”

“죄송한데 바로 다음 일정이 있어서 식사는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러고 보니 길드 일정이 있다고 하셨었죠? 마계에서도 이쪽에서도 굉장히 바쁘게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바빠지게 된 이유에 이기석 본부장의 책임도 있었기에, 살짝 원망의 감정을 담아 그를 바라보았다.

이기석 본부장은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내 시선을 그대로 받아넘겼다.

“저 앞에서 내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 근처에서 차가 멈춰 섰다.

뒷좌석에서 내리자마자 운전하시던 분의 도움으로 트렁크에 있던 짐을 꺼내 들었다.

“여기까지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중한 휴일에 억지로 일정을 잡았는데, 당연히 해드려야 할 일이죠.”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떠나기 직전에 이기석 본부장은 나를 멈춰 세우더니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다 처리가 됐을 것 같습니다. 시현 씨의 기분이 풀리실지는 모르겠는데. 저번에 말씀해 주신 계좌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네?”

“연구소에 제공한 쐐기마석 비용이 처리됐을 겁니다. 더 궁금한 점 있으시면 연락해 주십시오. 이걸로 남은 휴일이 더 즐거워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이기석 본부장을 태운 차량이 천천히 멀어져갔다.

잠시 멍하게 서 있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폰 인터넷 뱅킹 어플을 켰다.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금방 계좌 정보와 잔액이 표시됐다.

일…… 십…… 백…… 천만…… 억…… 십억. 으음?

혹시 잘못 셌나 싶어서 다시 자릿수를 일일이 세기 시작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말로 내 계좌에 수십억이 찍혀 있었다.

-기분이 풀리실지는 모르겠는데…….

-……남은 휴일이 더 즐거워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새삼 느끼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평범한 사람인가 봐.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계좌의 자릿수에, 이기석 본부장에게 남아 있던 원망의 마음이 사르륵 녹아 없어졌다.

기분이 안 좋기에는 너무나도 큰 액수였다.

나는 계속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억누르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마음속에서는 남은 휴일의 일정이 점점 더 화려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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