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05화
바쁘게 보내는 휴일(6)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향하는 가디언즈 길드원들.
2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
그중에서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우락부락한 30대 남자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신입 길드원들이 집합도 안 하고 따로 목적지에 가다니. 크흠, 이건 좀 그런데.”
“듣기로는 남진혁 길드원이 데리고 온다고 하더라고요.”
“남진혁 길드원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네. 길드에는 엄연한 규칙이 있는 법인데.”
“그…… 렇긴 하죠.”
여자는 마지못해 남자의 말에 동의했다.
그가 계속 불만을 쏟아내자, 옆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안경 쓴 남자가 슬쩍 입을 열었다.
“급한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요? 남진혁 길드원이 직접 데리고 오는 걸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
“최선오 아저씨 말이 맞지 않을까요?”
“어허! 누구는 사정이 없어서 그래? 길드의 일을 무조건 최우선으로 생각해야지! 그것도 신입 길드원이 말이야.”
“…….”
안경 쓴 남자의 말에도 우락부락한 남자는 오히려 언성을 더 높였다.
“독개미 여왕을 잡았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추켜세울 때부터 알아봤어. 벌써 이렇게 나쁜 버릇을 들여놓으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쯧쯧.”
“독개미 여왕을 잡은 것도 남진혁 길드원 혼자서 다 해치운 거 아냐? 경험도 없는 생초짜들이 뭘 할 수 있었겠어?”
“뛰어난 재능이다, 뭐라 하는데 제대로 보여준 것도 없잖아. 사람들이 너무 과장된 소문에 휘둘리는 거야.”
“솔직히 공격대원이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고. 벌써 예비 공격대원으로 선발한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쉬지 않고 신입 길드원의 험담을 내뱉는 남자.
안경 쓴 남자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창밖 쪽으로 돌려버렸다. 여자도 무척 난처한 표정이었다.
‘어휴, 이 저 사람은 변하지를 않네.’
조재헌.
가디언즈 길드에 꽤 오랫동안 몸담았던 인물이다.
오래 있었던 만큼 실력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공격대에 뽑힐 만큼 뛰어나지도 않았다.
결국, 공격대에 포함되지 못하고. 현재 상태에 안주해버린 탓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신입에게 항상 텃세를 부렸다.
지금은 예비 공격대원인 남진혁에게도 못살게 굴었던 전력이 있었다.
이번 신입 길드원들은 충격적인 사건과 재능으로 함께 많은 주목을 받다 보니, 열등감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제발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최선오가 신입 길드원들을 걱정하고 있던 그 시각.
어느 휴게소에서는…….
윤세희가 통감자에 소금을 뿌리는 모습에 정태호가 기겁하며 외쳤다.
“아앗! 통감자에 소금은 왜 뿌려!”
“어? 원래 소금 뿌리는 거 아니었어?”
“당연히 설탕을 뿌려야지!”
“우리 집에서는 다 소금 뿌려서 먹는데?”
“우리는 설탕만 뿌려 먹어.”
이번에도 극명하게 엇갈리는 두 사람의 취향.
나는 둘 사이에 끼어들며 타이르기 시작했다.
“얘들아, 조금씩 양보하면서 나눠 먹으면 되지. 왜 이렇게 싸워.”
두 사람의 집요한 눈빛이 이번에는 내 쪽으로 향했다.
“아저씨도 소금 뿌리는 게 더 좋으시죠? 그렇죠?”
“아니지? 아저씨도 설탕이 더 좋지?”
“…… 내가 잘못했어. 하나 더 사줄 테니까. 그냥 따로 먹어라.”
통감자를 하나 더 사서 정태호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싸움을 무마시켰다.
붙어만 있으면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며, 싸우는 일 없이 집에서 잘 놀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렸다.
우리 애들이 참 착하고 순해서 좋아.
남진혁도 두 사람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둘이 아직 어리긴 어리네. 먹는 거로 싸우다니, 참.”
“그러게 말이야.”
“아주머니, 여기 케첩 좀 주실래요? 아, 감사합니다.”
“……??”
-쭈우우욱!
남진혁은 우리가 나눠 먹을 통감자 위에 케첩을 쭉 뿌렸다.
“진혁아? 너 원래 케첩 뿌려 먹어?”
“어, 이게 소금이나 설탕보다 맛있지 않아?”
“……그건 좀 선 넘는 것 같은데?”
“아니, 케첩이 어때서?”
정태호와 윤세희도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솔직히 소금보다는 케첩이 나을지도?”
“너 혀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어떻게 케첩이 소금보다 더 낫다는 거야?”
“너희들이 아직 잘 모르는 거야. 감자튀김도 케첩에 찍어 먹잖아.”
열띤 토론을 벌이는 세 사람에게서 조용히 떨어져 나왔다.
“아주머니, 죄송한데 통감자 하나만 더 주시겠어요?”
* * *
휴게소의 통감자 사건을 뒤로하고, 우리는 부지런히 고속도로를 달려 춘천 지역에 들어섰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타고 20분, 드디어 합류하기로 예정된 장소에 도착했다.
“진혁아, 저거 가디언즈 길드 버스 맞지?”
“맞아, 아마 다른 분들은 먼저 도착한 모양이야. 모두 내리자.”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한 뒤,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길드 버스 쪽으로 다가갔다. 그 앞에서 길드원으로 보이는 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계셨네요.”
“남진혁 길드원, 오랜만이야.”
남진혁을 시작으로 우리는 세 사람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조재헌, 안경을 쓰고 약간 마른 인상의 최선오, 마지막으로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자 신효원까지.
무난하게 소개를 끝마쳤다고 생각했을 때, 조재헌이 살짝 언짢은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그런데 남진혁 길드원. 신입들은 당연히 길드 본부에 집합해서 같이 이동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번에는 사정이 좀 있어서…….”
“길드의 첫 일정이면서 이런 태도는 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선배들이 도와주러 왔는데, 신입은 일찍 일찍 나와서 미리 준비를 도와야 하는 게 예의 아닌가?”
“…….”
“남진혁 길드원이 예비 공격대원이 돼서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신입들의 버릇을 망치면 쓰나.”
아아…… 느껴진다, 느껴져.
꼰꼰한 향기가 느껴진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늦게 온 것도 분명 우리의 잘못이지만.
조재헌의 태도는 잘못을 훈계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남진혁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내가 앞으로 나섰다.
“조재헌 길드원이시죠? 사실은 제가 일정을 바쁘게 잡는 바람에 남진혁 길드원이 어쩔 수 없이 데려다주게 된 겁니다.”
조재헌의 불만 가득한 눈동자가 내 쪽으로 향했다.
“선배님 말대로 저희가 일찍 도착해서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준비도 도왔어야 했는데. 제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엄청 저자세로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조재헌의 얼굴에서 불만이 약간 사라졌다.
“크흠, 그래도 잘못한 걸 알긴 아는 모양이야.”
“물론이죠. 사회생활에서는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암! 물론이지.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데, 사회생활을 제대로 배웠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있으면 바로 균열에 진입해야 하니까. 준비 과정 같은 건 남진혁 길드원에게 듣도록 해. 나는 장비 점검 좀 하고 있을 테니까.”
선배가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잔소리만 실컷 하고 자기 할 일 하러 훌쩍 떠나버렸다.
“저도 장비 점검하러 가볼게요.”
“혹시 궁금한 점이나 필요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최선오와 신효원은 한 번 어색하게 웃어 보인 뒤, 각자의 장비를 확인하러 떠나갔다.
세 사람이 떠나간 것을 확인하고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진혁아. 네 말이 맞았어. 태호랑 세희를 우리가 데려온 게 잘한 일인 것 같아.”
“내 말 맞지? 괜히 그런 게 아니라니까.”
남진혁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정태호와 윤세희도 조재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희들도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되도록 너무 겉으로 티를 내지는 마.”
“…….”
“…….”
여전히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원래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런 거야. 언제나 마음에 드는 사람과 같이 일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 표정 풀어.”
나는 장난스럽게 두 사람의 뺨을 살짝 찔러줬다. 그제야 표정이 평상시처럼 돌아왔다.
마계농장에 취업하기 전,
돈을 벌려고 닥치는 대로 일하던 시기에는 조재헌 같은 사람을 수도 없이 많이 만났다.
상대적 우위를 이용해 상대를 괴롭히고 자존심을 짓뭉개고, 그런 행동으로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려는 악질들.
저런 사람들은 대충 장단을 맞춰주면서 무시하는 게 가장 속 편한 방법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거나, 요구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일단 남진혁의 안내를 따라 균열에 입장할 준비를 했다.
균열을 관리 감독하는 공무원에게 소속과 신분을 확인받는 절차를 먼저 끝낸 다음, 개인 정비 시간을 갖게 된다.
장비 같은 경우에는 길드에서 기본적인 무기, 방어구를 제공해 준다.
물론 무료로 제공해 주는 것들이기에 성능이나 품질이 좋을 순 없었다.
그래서 경력이 많은 사람은 대부분 개인 장비를 직접 구매해 사용한다. 특히 길드의 최고 전력인 공격대에 포함된 길드원들은 장비 하나의 가격이 집 한 채 가격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나는 따로 장비를 준비해 오지 않아서, 길드에서 제공해 주는 장비들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버스 짐칸에 있던 무기 중에서 검을 찾아 꺼내 들었다.
와…….
검을 손에 쥐자마자 온몸에서 거부감이 일어났다.
쓸데없이 무겁고, 검을 살짝만 휘둘러도 균형이 안 맞는 느낌?
진짜 엘프리드가 빌려줬던 게 얼마나 좋은 검이었는지 단번에 체감이 됐다.
내가 사용할 검을 하나 장만해야 하나?
엘린이 빌려준 것 정도를 구하려면 꽤 비쌀 텐데…… 으음? 근데 나 돈 많잖아?
갑자기 오늘 보았던 행복한 숫자들이 떠올랐다.
나중에 시간이 남으면 당장 내 마음에 드는 검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어쩔 수 없이 검을 챙기고 몸에 착용할 방어구도 챙겼다.
처음 착용해 보는 방어구에 조금 쩔쩔매고 있을 때, 안경을 쓴 최선오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길드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방어구라 처음 쓰시는 분들은 체형에 맞춰 조절하기가 쉽지 않아요.”
최선오는 방어구를 내 몸에 딱 맞춰 크기를 조정해 줬다.
그의 능숙한 실력에 살짝 감탄을 터뜨렸다.
“이제 딱 맞는 것 같네요.”
“원래는 이것도 딱 맞는 건 아니에요. 아마 균열에 들어가서 직접 사용해 보시면 약간 불편하실 거예요.”
“역시 공짜의 한계인 건가요?”
“하하!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래도 가디언즈 길드는 꽤 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다른 길드에서는 정말 쓸 수도 없는 것들을 방어구라고 나눠주거든요.”
다른 길드는 뭐 어떤 걸 나눠주길래…….
“이 방어구도 나쁘지는 않지만, 개인 장비를 맞추는 게 여러모로 편하더라고요. 성능, 편의성 거기다 위생 문제도 좀 신경 쓰이잖아요?”
“확실히 그렇겠네요.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너무 어렵게 대할 필요 없어요. 저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것 같은데.”
최선오는 그래도 조재헌보다는 훨씬 사람이 좋아 보였다.
방어구 착용이 끝난 뒤에도 가성비 좋은 방어구라든지, 구입할 때 주의사항 같은 걸 꼼꼼히 알려줬다.
“요즘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방어구도 가성비가 괜찮아요. 저도 예전에는 무조건 해외 직구였는데, 수리가 불편해서 요즘은 국내 제품으로 갈아탔어요.”
“그렇군요.”
“필요하시면 나중에 제품 추천을…… 아. 그럴 필요는 없겠네요.”
“……?”
“서예린 씨가 저보다 더 잘 알 거예요. 서로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들었어요.”
“굉장히 친한 사이는 아니고, 그냥 친구 느낌이에요.”
“그것만 해도 부럽네요.”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살짝 시선을 피했다.
윤세희는 신효원의 도움을, 정태호는 남진혁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여자 쪽과는 달리, 남자 쪽은 뭔가 티격태격하며 싸우고 있었다. 아마 무료로 나눠주는 방어구가 마음에 안 든 모양이었다.
다시 최선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균열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는 이게 끝인가요?”
“개인 정비가 끝나면 보통 브리핑 시간을 가져요. 미리 전해 받은 균열의 특성에 대해서도 알리고. 전투 진형이나, 위급 상황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지도 정하죠.”
“그럼 브리핑은 누가 하는 거죠?”
“공격대에는 전문적으로 브리핑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처럼 임시로 만들어지는 파티는 경험이 많은 연장자가 맡는 게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그는 말끝을 흐리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공무원과 농담을 따먹는 조재헌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브리핑을 준비하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균열에 진입할 시간이 다가오고. 준비를 끝낸 일행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에 맞춰 균열의 전조가 시작됐다.
-찌이이이잉!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
온몸을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공간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기기기기긱!
주변을 가득 메우는 비틀리고, 부서지는 소리.
곧이어 엄청난 마나의 흐름이 주변을 휘감았다.
정태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몸을 들썩거렸고, 윤세희는 약간 긴장한 듯 균열을 바라봤다.
경험이 많은 나머지는 담담함을 유지했다.
공간이 안정화 되고 균열이 완벽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던 조재헌이 슬쩍 앞으로 나섰다.
“다 모였지?”
그는 우리를 대충 둘러보며 말했다.
“브리핑은…… 뭐, 필요 있어? 생략한다. 그냥 균열 들어가면 내 말대로만 하면 돼.”
“…….”
“자, 들어간다.”
조재헌은 브리핑은커녕 헛소리만 대충 내뱉고 균열로 향했다.
나는 염려가 담긴 표정으로 남진혁을 바라봤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발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우리는 조재헌의 뒤를 따라 균열로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