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0)화 (110/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0화

여유롭게 보내는 휴일(1) 

-철컥!

-다다닷!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집 안쪽에서 ‘우다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여운 발걸음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벌써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빠!”

-무우우!

「시현이다, 뾰!」

아이들은 내가 신발을 벗을 여유도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안겨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사 온 아이스크림을 급히 바닥에 내려놓으며 아이들을 안아 들었다.

“어이쿠! 얘들아, 나 신발은 벗어야지.”

난처하다는 듯 말하면서도 입꼬리는 귓불에 닿을 정도로 끝없이 올라갔다.

“나 많이 기다렸어?”

“응! 계속 아빠 기다렸어.”

-무우! 무우!

「시현이 없어서 너무 심심했다, 뾰!」

“그래? 조금 더 빨리 돌아올 걸 그랬네.”

아이들의 대답에 내 얼굴에는 더없이 행복한 미소가 스며들었다.

아마 이 순간이 부모가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 베스트 3위에 들지 않을까?

“좋아 죽네, 좋아 죽어. 그렇게 애들이 좋아서 오늘 아침에는 어떻게 나갔데?”

“호호호, 시현이도 팔불출이 다 됐네.”

“어흠, 큼.”

서예린과 어머니의 등장에 나는 뒤늦게 표정을 관리했다.

뭔가 부끄러운 모습을 들킨 것 같이 굉장히 민망했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아이들은 내려주고 얼른 씻고 나와. 금방 밥 차려줄게.”

“알았어. 얘들아, 나 잠시만 씻고 나올게.”

계속 달라붙는 아이들을 내려주고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니 어머니가 식탁에 저녁을 준비해 놓으셨다.

내가 식탁 앞에 앉자마자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쪼르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너희들도 저녁 안 먹었어?”

“먹었어. 아빠 옆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돼?”

은율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럼 같이 먹을까?”

나는 은율이와 아이들을 안아서 무릎과 의자 옆에 앉혔다.

“밥 먹는 데 불편하지 않겠어? 엄마가 데리고 있을까?”

“괜찮아. 천천히 먹으면 되지 뭐.”

내가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내 곁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에 규리가 먹고 싶다고 했던 구슬 아이스크림이었다.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넉넉히 사 왔는데, 아이들은 욕심부리지 않고 구슬 아이스크림을 딱 하나만 꺼내왔다.

옹기종기 모여 사이좋게 나눠 먹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머니와 서예린도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지켜봤다.

불편했지만 그만큼 행복했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는 거실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물론 내 양 옆구리에는 아이들이 쏙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예린 언니랑 퍼즐도 맞추고, 인형도 같이 가지고 놀았어.”

-무우우. 무우.

「저기 있는 거 우리가 만든 거다, 뾰! 엄청 만들기 어려운 거다, 뾰!」

아이들은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반면에 서예린은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너는 표정이 왜 그래?”

“씨이! 오늘 정말 열심히 놀아줘서 아이들이랑 정말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오자마자 나는 신경도 안 쓰잖아.”

그녀의 질투 섞인 투정에 어머니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아이들이 워낙 시현이를 좋아하는데 어쩌겠니? 나도 가끔은 질투가 날 정도란다.”

“이익, 너무 분해요! 오늘 아이들을 완전히 제 매력에 빠뜨려서, 저 녀석이 울상짓게 만들려고 했는데!”

“꿈도 야무지셔라. 그래도 노력했다는 점에서 응원의 박수 정도는 쳐줄게.”

회장님 같은 포즈로 그녀를 향해 박수를 쳐줬다.

나의 허세 넘치는 표정에 서예린은 잔뜩 심통이 나 부들부들 떨었다.

“으으, 얄미워, 얄미워!”

서예린과 티격태격하며 노는 사이, 어느덧 아이들이 자러 갈 시간이 됐다.

그녀는 많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나는 이만 가볼게. 내일 길드 공격대 일정이 있어서.”

“오늘 네가 가져온 것들은 안 가져갈 거야?”

“어차피 전부 다 아이들에게 선물하려고 가져온 거야. 마계에 가져가도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받아.”

비싸 보이는 장난감도 많은 데다가, 아직 뜯지도 않은 물건도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 아까 놀렸던 일이 조금 미안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탄식을 터뜨렸다.

“아∼! 길드 일정만 아니면 계속 아이들이랑 실컷 노는 건데. 너무 아쉽다. 그냥 내일 콱! 쉬어버릴까?”

“자칭 에이스님께서 그렇게 쉽게 빠져도 되겠어?”

“당연히 안 되지. 길드장님이 나를 가만 안 둘 거야.”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현관문으로 향했다.

“저는 이제 가볼게요, 어머니.”

“그래. 오늘 아이들 상대한다고 고생 많았어. 내일 길드 일정 안전하게 잘 진행하고.”

서예린이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나는 상체를 숙여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내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문 쪽으로 쪼르르 움직였다.

“예린 언니!”

“응? 은율아, 왜 불렀어?”

그녀는 시무룩했던 표정을 조금 밝게 만들며 은율이와 시선을 맞췄다.

“오늘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

“……!!”

「오늘 정말 재미있었다, 뾰! 다음에 또 같이 놀자, 뾰!」

-무우. 무우우!

아이들은 각자 고마움을 전하며 서예린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그녀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금방 환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아냐, 내가 더 고맙지. 다음에 할머니 집에 놀러 오면, 또 같이 재미있게 놀자?”

“응!”

「약속이다, 뾰!」

-무우!

서예린은 아이들을 꼬옥 안았다.

정말 감동하였는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약 올리는 표정으로 혀를 살짝 내밀었다.

오늘 나 대신 아이들을 돌봐준 노력을 생각해 허허롭게 웃어넘겼다.

서예린은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밖으로 얼굴만 쏙 내밀고 그녀를 불렀다.

“예린아,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뭔데?”

“으음…… 나는 정말 논리적이면서 합리적으로 설명했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나 봐.”

“……?”

“혹시 내일 길드에서 험난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해.”

“뭐, 뭐야? 무슨 일이 있었는데?”

“무운을 빈다. 화이팅!”

“야, 야! 임시현!”

파이팅을 외쳐주고 차분히 문을 닫았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으으윽! 정말 아직도 진절머리가 났다.

서예린에게도 완전히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나머지 일은 모두 그녀에게 맡기기로…….

그리고.

나는 내일부터 진짜 휴가다!

* * *

다음 날.

진짜 휴가의 아침이 밝아왔다.

오랜만에 아주 느긋하게 일어나 늦은 아침을 챙겨 먹었다.

아이들은 TV에서 방송되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빠져 있었다.

나는 아이들 뒤에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인터넷 기사도 뒤적거리고, 재미있는 게시글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현아, 계속 집에 있을 거야?”

“응? 왜?”

“아이들이 많이 답답해할 것 같아서. 어제도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잖니?”

어제는 내가 없어서 웬만하면 집에서만 아이들을 돌보도록 했다.

평소에 농장을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이니, 어머니의 말대로 조금 답답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내일 다 같이 외출할 계획이었는데…….

오늘은 잠깐 산책하듯 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멍하게 TV를 보고 있던 아이들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얘들아, 나랑 같이 밖에 나가볼까?”

-휙!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반짝였다.

은율이와 아꿍이는 기쁨의 꼬리를 살랑거렸고, 규리의 주변에는 반짝이는 가루가 퍼져 나왔다.

“나가는 거야?”

-무우?

「나갈 거야, 뾰?」

저렇게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표정을 짓는데 누가 나가지 않을 수 있을까?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크게 기지개를 켰다.

찌뿌둥한 느낌이 사라지면서 약간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자∼! 그럼 우리 같이 나갈 준비 하자. 먼저 깨끗하게 씻어야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갈 수는 없으니 아이들과 함께 몸단장을 시작했다.

먼저 은율이를 씻겨주고, 다음에는 아꿍이의 털을 깔끔하게 빗질해 줬다.

규리는…… 그냥 옆에서 구경만 했다. 요정에게는 딱히 준비가 필요 없어 보였다.

“은율아, 마음에 들어?”

“응.”

어머니는 머리끈을 이용해 은율이의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주었다.

단순히 머리 모양만 바꿨을 뿐인데, 정말 색다른 귀여움이 느껴졌다.

하늘하늘한 흰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는 여우 귀를 가릴 수 있는 모자를 씌워주었다.

외출 준비를 끝내고 어머니는 어디선가 강아지 유모차를 가지고 나왔다.

“그건 어디서 난 거야?”

“응, 최근에 중고거래로 샀어. 요 근처에 사시는 분이 싸게 내놨더라고.”

“어…… 엄마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얘는!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잘 알걸?”

어머니의 핀잔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꿍이는 유모차 타고 나가자.”

-무우∼!

아꿍이는 유모차가 나쁘지 않은지 신난 울음소리를 냈다.

「나도 유모차에 타고 싶다, 뾰!」

규리도 아꿍이와 함께 유모차에 올라탔다.

은율이는 내 옆으로 와 손을 잡았다.

그렇게 아이들, 어머니와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점심때가 가까워지는 오전 시간.

마계농장에는 아직 선선한 날씨인 것과 달리, 이곳은 초여름 날씨가 되어서 햇볕이 따갑게 느껴졌다.

딱히 목적지를 정하고 나온 건 아니라서, 일단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아빠, 아빠! 이건 뭐야?”

은율이는 근처에 놓여 있던 자전거를 보며 호기심을 보였다.

“이거? 이건 자전거라고 하는 거야. 아래에 있는 페달을 밟으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와…… 자전거 한번 해보면 안 돼?”

“이건 주인이 있는 자전거라 안 돼. 내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마음대로 막! 만지면 안 된다고 했어.”

“그래, 은율이 완전 착한 어린이네. 나중에 자전거 탈 수 있게 해줄 테니까 조금만 참자.”

“응.”

“아유! 은율이는 아빠 말도 참 잘 듣고, 너무 착하네. 할머니도 칭찬해 줘야겠다.”

“헤헤!”

자전거를 못 타서 살짝 실망하는 것도 잠시. 나와 어머니의 칭찬 세례에 은율이는 금방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시현, 시현! 저건 뭐야, 뾰?」

-무우. 무우?

“할머니! 저기 초록색 빛나는 건 뭐야?”

아주 평범한 거리를 걷고 있을 뿐인데도, 이 호기심 덩어리들은 모든 게 재미있고 신기해 보이는 것 같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게 간판, 횡단보도와 신호등, 평범한 행인들까지. 모두 아이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나와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면서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분명 평소에 수십 번도 넘게 지나다녔던 곳인데도, 아이들과 함께여서 그런지 오늘따라 새롭게 느껴졌다.

평일 오전이라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길을 걷다 마주친 사람들은 꼭 한 번씩은 은율이와 유모차 쪽을 쳐다봤다.

가끔은 참다못한 아주머니들이 가까이 다가와 귀엽다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한산한 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도중에 작은 규모의 서점을 발견했다.

“엄마, 서점에 들렀다 갈까?”

“서점?”

“응, 은율이가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좀 사주게.”

“그것도 좋겠네.”

어머니는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서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투명한 유리 벽을 통해 슬쩍 가게 내부를 살펴보니, 30대 여주인 한 분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지금 영업하시는 거죠?”

“네! 어서 오세요.”

“저기…… 털이 있는 작은 동물이 있는데 같이 가게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지금은 다른 손님분이 없어서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다행히 서점 주인분은 흔쾌히 아꿍이의 입장을 허락해 줬다.

나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아이들, 어머니와 함께 서점으로 들어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