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2)화 (11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2화

여유롭게 보내는 휴일(3)

“은율아?”

무언가에 홀린 듯 어디론가 향하는 은율이.

당연히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 뒤를 쫓았다.

뒤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커다란 매장의 안쪽. 헤드셋, 스피커 등등, 음향기기 제품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은율이는 그중에서도 노래가 흘러나오는 한 스피커 앞에 멈춰 섰다.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와 목소리였지만, 노래 자체는 완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다.

어리둥절한 나와는 달리 노래를 듣는 은율이의 모습이 너무 진지하다.

일단 어쩔 수 없이 나도 그 곁에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감미로운 선율이 끝나고, 뒤이어 빠른 템포의 힙합 음악이 흘러나왔다.

은율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노래를 더 듣고 싶었는데 다른 노래가 나와서 실망한 것 같았다.

“은율아? 방금 노래 아는 노래야?”

“아니.”

“……?”

“그런데 누가 불렀는지는 알아.”

“……??”

누가 불렀는지 안다고? 그럴 수가 있나?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은율이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누가 불렀는지 아는 거야?”

“응, 아빠가 나한테 처음 들려줬던 노래를 불렀던 사람이야.”

“…….”

“천둥 번개가 치고, 폭풍이 몰려와서 엄청 무서웠는데. 아빠가 이 노래를 들려주면서 잠자게 해줬어.”

“으음…… 아!”

은율이의 설명을 듣고 머릿속에 한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저녁 무렵에 폭풍이 불어와 퇴근도 하기 힘들었던 그 날, 어두컴컴하고 텁텁했던 창고에서 아기 여우와 밤을 보냈던 기억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때, 불안해하던 은율이를 위해 휴대폰으로 처음 틀어줬던 노래. 과거에 내가 정말 좋아했던 가수, ‘윤지운’의 2집 타이틀곡이었다.

은율이는 아직도 가끔 휴대폰으로 윤지운의 노래를 들려달라고 할 정도로 그의 노래를 많이 좋아했다.

아아.

방금 스피커에 흘러나왔던 노래가 ‘윤지운’의 노래였구나…….

은율이는 저 멀리서부터 ‘윤지운’의 목소리를 듣고 이곳으로 찾아온 것 같았다.

“뭐 찾으시는 제품 있으신가요?”

음향기기 쪽을 담당하는 듯 보이는 여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다른 건 아니고요. 조금 전에 이 스피커로 나왔던 노래가 ‘윤지운’ 노래 맞나요?”

“잠시만요.”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네요. 최근에 나온 신곡이에요.”

“새로 앨범이 나왔나 보네요.”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라고 하더라고요.”

와아…… 벌써 20주년?

내가 학생 때 좋아했던 가수가 이제 데뷔 20년 차라니…….

갑자기 확 체감되는 시간의 흐름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툭. 툭툭.

은율이가 나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크고 동그란 눈동자가 살짝 촉촉해진 상태로 나를 올려다봤다.

이미 많은 경험으로 뭔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보이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빠…….”

“응, 왜 그래?”

“아까 그 노래 다시 듣게 해주면 안 돼?”

“으음…….”

촉촉 눈동자 공격에 나의 마음이 무장해제 직전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도 매장의 폐를 끼치면서까지…….

“어머…… 방금 전에 나온 노래 듣고 싶어? 언니가 다시 틀어줄까?”

여직원은 안타깝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 표정이 은율이의 부탁이라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려는 표정이었다.

“응…… 듣고 싶어.”

“잠깐만 언니가 금방 틀어줄게.”

여직원은 다급히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만졌다.

아무래도 촉촉 눈동자 공격에 당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잠시 후.

앞에 있는 스피커에서 다시 윤지운의 신곡이 흘러나왔다. 은율이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고마워, 언니!”

“으응.”

여직원은 은율이의 강력한 미소 한방에 완전히 무장해제 돼버렸다.

그녀는 히죽히죽 웃다가 뒤늦게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표정을 수습했다.

“죄, 죄송해요.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그만…….”

“하하, 괜찮습니다. 그보다 필요한 게 있는데 혹시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 * *

전자제품 매장에서 일을 끝내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내 손을 잡은 은율이의 걸음걸이가 어느 때보다 흥겹게 느껴졌다.

“그렇게 좋아?”

“응!”

그 어느 때보다 신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어머니도 흐뭇한 모습으로 은율이를 바라봤다.

은율이가 이렇게 신난 이유는 내 손에 들려있는 가정용 오디오 때문이었다.

아까 윤지운의 노래를 듣고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휴대폰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은율이가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는 은율이가 가지고 다니기 좋게 MP3를 사주려고 했는데, 매장 직원에게 MP3 이야기를 꺼내니 굉장히 옛날 사람을 보는 듯 나를 바라봤다.

하긴, 요즘에는 다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으니까…….

매장에는 MP3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정용 오디오를 구매했다.

이 오디오로 앞으로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은율이는 엄청나게 기뻐했다. 지난번에 받아쓰기 시험을 100점 받았을 때보다도 훨씬 더!

“저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사줄 걸 그랬네.”

“호호, 은율이 모습을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네. 너도 어렸을 적에 MP3인가 뭔가 하는 거 생일선물로 받고 엄청 좋아했잖아.”

“맞아. 그때 아버지랑 같이 읍내에서 직접 사 왔었지.”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MP3를 아버지에게 선물 받고, 가슴이 터질 듯 설렜던 감정이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있었다.

그때 MP3에 온통 신경이 쏠려 아버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지금 내게 은율이를 바라보는 표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렸을 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감정을 깨닫는 일은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서글프게 느껴졌다.

“엄마. 엄마는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나? 조금 전에 에어컨 샀잖아.”

“그거 말고. 엄마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거 없어? 명품 가방이라던가, 비싼 화장품 같은 거 말이야.”

“내가 그런 게 왜 필요해. 그럴 돈이 있으면 아이들 맛있는 거 하나 더 사줘야지.”

“아이들 맛있는 거는 당연히 사주는 거고. 엄마가 갖고 싶은 거 생각해 봐. 얼른!”

내가 떼를 쓰듯 억지를 부리자, 어머니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갖고 싶은 거라…… 갖고 싶은 거…….”

골똘히 고민하던 어머니의 시선이 어딘가에 멈춰 섰다.

“시현아, 갖고 싶은 거 생각났어.”

“뭔데?”

어머니는 말없이 나와 아이들을 이끌고 걸어갔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쇼윈도 뒤에 많은 사진이 진열돼있는 동네의 평범한 사진관이었다.

“여긴……?”

“사진관이지. 우리 같이 사진 찍은 지 엄청 오래됐잖아. 이번 기회에 아이들이랑 함께 가족사진 찍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갖고 싶은 걸 말하라고 한 건 이런 게 아닌데…….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아쉬웠지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사진관의 문고리를 잡았다.

-띠링, 띠링!

문을 당기자 위에 달린 방울들이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사진관 안쪽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여 들어와, 들어와! 가족사진 찍으러 왔어?”

사진관 아저씨는 금방 방문 목적을 알아채고 물었다.

“네. 그런데 동물이 한 마리 있는 데,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주인 말 잘 들어? 막 날뛰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

“엄청 순해요. 말도 잘 듣고요.”

“그럼 상관없어. 데리고 와.”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밖에 있던 유모차에서 아꿍이를 안아 들고 다시 사진관으로 들어왔다.

-흠칫!

아꿍이를 발견한 사진관 아저씨가 잠시 몸을 떨었다.

그러다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아꿍이를 살폈다.

“으음…….”

-무우?

“뭐, 귀여우니까 상관없겠지. 안으로 들어와. 어머니도 들어오세요.”

아저씨는 쿨하게 우리를 사진관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조명과 카메라, 그리고 가족사진을 찍을 때 흔하게 볼 수 있는 긴 소파가 놓여있었다.

어머니는 설레는 표정으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옛날에 네 아버지랑 셋이서 가족사진 찍었던 거 기억난다. 네가 중학교 다닐 때쯤이었나?”

“맞아. 내가 중학교 들어간 기념으로 셋이 찍었었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때 찍었던 가족사진은 급하게 이사를 하면서 찢어졌던 거로 기억한다. 엄마가 정말 많이 속상해하셨었지…….

“자, 자! 젊은 친구는 거기 앉아서 복슬복슬한 친구를 무릎에 올려봐.”

나는 사진관 아저씨의 말대로 아꿍이를 무릎 위에 올렸다.

-무우?

“좋아. 그리고 어머니 사이에 예쁜 공주님 앉혀봐. 공주님 예쁜 얼굴 나오게 하려면 모자는 벗어야지.”

은율이를 옆에 앉히고 모자를 벗겨주었다. 은빛 머리칼과 뾰족한 여우 귀가 쫑긋 모습을 드러냈다.

-흠칫!

아저씨는 다시 한번 몸을 떨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사진의 구도를 잡아나갔다.

아저씨의 대범함에 내심 감탄을 터뜨렸다.

모두의 위치가 정해졌을 때, 숨어있던 규리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어디에 있으면 되는 거야, 뾰?」

-흠칫! 흠칫!

사진관 아저씨의 몸이 이번에는 크게 떨렸다.

“으으음…….”

그는 잠깐 침음을 흘리더니, 금방 다시 평상심을 되찾고 규리의 위치까지 조정하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흔들리지 않는 프로정신에 감탄을 넘어서 극찬을 보내고 싶어졌다.

“그럼 시범으로 한 번 찍어볼게요. 번쩍 할거에요. 하나, 둘, 셋!”

-파아앗!

-찰칵!

「왁! 깜짝 놀랐다, 뾰!」

-무우우! 무우우!

“…….”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시에 아이들이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사진을 확인한 아저씨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의외로 복슬복슬한 친구랑 작은 친구는 괜찮은데. 우리 예쁜 공주님이 표정이 너무 딱딱해. 젊은 친구랑 어머니가 어떻게 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은율이는 사진을 찍는 게 많이 어색한지 평소의 부드러운 표정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으로 은율이가 가장 좋아하는 윤지운의 노래를 틀어줬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은율이의 양손을 하나씩 잡아줬다.

조금씩 딱딱했던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은율아. 우리 다 같이 있잖아.”

“빨리 사진 찍고. 할머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무우우. 무우우.

나와 어머니, 그리고 아꿍이까지 은율이에게 위로를 전했다.

「내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뾰!」

규리는 날개를 펼치고 우리의 머리 위로 빙글 날아올랐다. 요정의 날개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떨어졌다.

가루에서 퍼져나오는 기분 좋은 향기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줬다.

은율이뿐만 아니라 모두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져나갔다.

사진관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사진기를 붙잡았다.

“오오! 좋아, 좋아! 드디어 공주님의 귀여움이 살아나는구먼. 자! 다시 한번 찍어볼게요. 하나, 둘, 셋!”

-파아아앗!

-찰칵!

사진관 아저씨의 능숙한 리드 덕분에 사진 촬영은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완성된 사진에는 나와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두 번째 가족사진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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