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3화
여유롭게 보내는 휴일(4)
“할머니, 다음에 또 올게!”
-무우우! 무우우!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뾰!」
“그래, 우리 귀여운 아가들! 시현이 말 잘 듣고 건강해야 한다.”
휴가 마지막 날 아침.
어머니와 아이들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제 또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크게 슬퍼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며 작별 인사를 마무리했다.
“어머니, 그럼 가보겠습니다.”
“고마워요, 리안 씨.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이렇게 데리러 와줘서.”
“하하, 별말씀을요. 이것도 다 저에게는 중요한 업무나 다름없습니다.”
“엄마, 나중에 퇴근하고 연락할게.”
“그래. 아이들 잘 챙기고. 농장에 계신 분들에게도 안부 꼭 전해드려!”
“알았어. 이제 날 더우니까 빨리 들어가.”
나와 발레리안을 마지막으로 차량은 어머니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뒷유리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휴가는 재미있었나요, 작은 친구들?”
“응, 재미있었어.”
-무우우!
「당연히 재미있었다, 뾰!」
발레리안의 질문에 아이들이 앞다퉈 대답했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나에게도 똑같이 질문을 던졌다.
“시현 씨는 어떠셨나요?”
“저도 잘 보낸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어머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혹시 농장에 출근하기 싫어지신 건 아니시죠?”
그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계속 휴가를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언제까지 쉴 순 없죠. 그리고 무엇보다 농장에 있는 분들도 저에게는 소중하니까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발레리안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그건 그렇고. 이틀 연속으로 리안 씨를 귀찮게 해드렸네요. 어제는 아이들이랑 수목원에도 데려다주셨는데…….”
“이제는 지구에서의 업무 중 시현 씨를 보좌하는 일도 꽤 중요한 업무라서 괜찮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의 보좌라는 말을 흘러나오자, 민망함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으으…… 그 보좌라는 말은 너무 적응이 안 되네요.”
“하하하, 그럼 ‘서포트’라고 해두죠.”
“그건 그나마 좀 낫네요.”
“시현 씨도 차를 하나 구입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물론 저의 ‘서포트’ 활동은 계속되겠지만, 시현 씨의 사적인 일을 위해서도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만.”
발레리안이 말한 대로.
차량의 필요성을 이번 휴가 때 많이 느꼈다.
출퇴근이야 완전 익숙해져서 상관없지만.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려면 개인 차량 없이는 너무나도 불편했다.
또 계좌에 목돈이 들어와서 그런지, 최근에 그런 생각이 더더욱 강해졌다.
“괜찮으시다면 저에게 맡겨주시죠. 원하시는 차종이나 옵션에 맞춰 세팅해 놓겠습니다.”
“오오…… 차에 대해서 잘 아시나 보네요?”
“크게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건 아닙니다. 취미 생활 겸, 조금 관심 있게 지켜보는 정도죠.”
발레리안이 저렇게 겸손하게 말할 정도면 꽤 믿을 만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급스러운 발레리안의 이미지와 겹쳐서 더욱 믿음이 갔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만 주시죠.”
* * *
차원의 문을 넘어 도착한 마계.
동굴의 출입구 앞에는 안드라스와 엘프리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현 님, 휴가는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이야, 선배! 너희들도 안녕!”
“안녕!”
-무우! 무우!
「안녕이다, 뾰!」
나와 아이들은 두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겨우 며칠 만인데도 왠지 오랜만에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부터 죄송하네요. 이제 짐이 너무 많아져서 제가 혼자 다 들고 갈 수가 없거든요.”
“무슨 말씀을!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두 사람은 나를 도와 각자 짐 하나씩을 챙겼다.
손이 부족한 짐은 안드라스가 아티팩트를 꺼내 옮기기로 했다.
“아! 안드라스 씨. 그건 좀 조심해서 옮겨주세요. 깨질 수도 있는 물건이라.”
“다른 짐보다 굉장히 묵직합니다.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좀 무거울 거에요. 사장님이 부탁하신 맥주가 들어있거든요.”
-움찔!
사장님의 맥주가 들어있다는 말을 듣고 안드라스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그 짐을 챙겼다.
충분히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혹시나 잘못해서 짐의 내용물이 깨지기라도 한다면…… 으으!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아침에도 후덥지근하게 느껴지는 한국과는 달리, 마계는 아직도 선선한 아침 공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한 아침 공기를 깊게 들이마셔 가슴 깊숙이 집어넣었다.
「나는 먼저 마을로 돌아가겠다, 뾰! 빨리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뾰!」
“그래, 규리야. 나중에 딸기밭에서 보자!”
「안녕이다, 뾰!」
짧은 인사를 남기고 규리는 휙! 모습을 감췄다.
우리는 농장길을 계속 걸어갔다.
멀리서 익숙한 농장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건물 앞에 도착해 가져온 짐을 차곡차곡 내려놨다.
“시현 님. 저는 제르무어에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짐 정리하는 것도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뇨! 바쁘신데 이렇게 도와주신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하죠. 얼른 가보세요.”
“아침 식사는 어려워도. 점심에는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으니…….”
슬쩍 눈빛을 보내는 안드라스.
나는 금방 그 뜻을 알아채고 살짝 웃어 보였다.
“알았어요. 점심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최대한 준비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흠흠, 역시 저를 알아주는 건 시현 님뿐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엘린 군이 저 대신해서 시현 님을 잘 도와주십시오.”
“걱정 마세요, 안드라스 선배. 제가 열심히 돕고 있게요.”
안드라스는 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뒤, 차원 도약 마법으로 농장을 떠나갔다.
“선배, 저는 마구간 청소 먼저 끝내고 올게요. 짐 정리는 조금 있다가 같이해요.”
“알았어. 나도 아이들 먼저 데려다줘야 하니까 천천히 해.”
“아! 그리고 오후에는 저랑 검술 수련해야 하는 거 안 잊으셨죠? 3일 쉬었으니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빡빡하게 할 거예요!”
“끄응…… 알았어.”
엘프리드는 힘든 검술 수련을 예고하고 마구간으로 향했다.
나는 아꿍이와 은율이를 데리고 축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끼익!
조심스럽게 축사의 문을 열어 안쪽을 살폈다.
아직 작은뿔과 얌꿍이는 사이좋게 꿈나라를 여행 중이었다.
“아꿍아, 너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피곤하지? 형, 누나랑 같이 좀 쉬고 있어.”
-무우우…….
아꿍이는 축사로 들어가지 않고 내 다리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나는 자세를 낮춰 어리광쟁이의 이곳저곳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줬다.
“자, 그만 어리광부리고 가서 쉬어. 나중에 또 놀아줄 테니까.”
-무우우.
아꿍이는 어리광을 더 부리지 못해 살짝 아쉬운 듯 울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더 고집을 피우진 않고 천천히 축사 안쪽으로 향했다.
작은뿔과 얌꿍이 곁에 자리 잡는 걸 확인하고 축사의 문을 조용히 닫았다.
-툭, 툭!
바지를 잡아당기는 작은 손길.
아래를 바라보자 은율이가 졸린 눈을 한 채,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아빠…….”
“어이쿠, 여기에 어리광쟁이가 또 한 명 있었네.”
모두가 떠나자마자 어리광쟁이로 변한 여우 소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헤헤!”
은율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은율아, 농장에 돌아오니까 좋아?”
“응. 좋아. 할머니 집도 좋지만, 농장도 많이 좋아.”
“나도 그래.”
집에서 휴가를 보낼 때도 편하게 지냈지만, 농장으로 돌아오니 또 농장만의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건 마치 집에서 집으로 출퇴근하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나는 궁극의 직장 생활을 하는 걸지도?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은율이와 함께 농장 건물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관문 앞에서 누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아…… 시현 님…… 어서 오세요…….”
“어? 리아네 씨?”
잠옷 차림에 반쯤 눈이 감겨있는 리아네였다.
자주 볼 수 없는 귀여운 그녀의 모습에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으으음. 꿈에서 시현 님…… 목소리가 들려서…… 오랜만에 마중 나오고 싶어서 나와써요오오…… 헤헤, 저 잘했죠?”
그녀는 잠꼬대인지 환영 인사인지 구분하기 힘든 말을 하며 방긋방긋 웃어 보였다.
이렇게 휘청거리는 와중에도 내 마중을 나오고 싶었다는 말에 살짝 감동이 느껴졌다.
“고마워요, 리아네 씨. 마중은 잘 받았으니까 방에 올라가서 조금 더 누워있어요.”
“우웅. 아라써요.”
리아네의 말투가 더 어눌해지기 전에 손을 잡고 그녀의 방 앞으로 이끌었다.
“아빠, 나도 언니랑 같이 자면 안 돼?”
“그렇게 할래? 그럼 언니랑 같이 들어가서 자고 있어. 나중에 아빠가 깨우러 올게.”
나는 문을 열고 잠에 취한 두 사람을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리아네가 억센 힘으로 내 팔을 콱 낚아챘다.
“어엇?”
“시현 님…… 시현 님도 같이 자요…….”
“맞아. 아빠도 같이 자자.”
“허허…….”
위험한 발언을 하는 두 잠꾸러기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귀여운 리아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이대로 놔뒀다가는 그녀의 이불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얼른 두 사람을 방으로 밀어 넣었다.
둘이 사이좋게 침대에 눕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방문을 닫아줬다.
다시 농장 건물 밖으로 나왔다.
울타리에 가까이 다가가 풀을 뜯으러 나온 야쿰들을 구경했다.
-부우우우!!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야쿰의 울음소리.
그 소리의 주인공이 빠르게 울타리 쪽으로 다가왔다.
“예쁜아!”
-부우우!
오랜만에 만난 예쁜이가 얼굴을 들이밀며 격하게 반가움을 표했다.
예쁜이가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목덜미를 쓰다듬어 줬다.
“어우, 아꿍이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어리광쟁이가 됐나 궁금했는데, 예쁜이 네가 범인이었구나?”
-부우우. 부우우!
“하하하,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도 이렇게 어리광부리고 있으면서.”
-부우우…….
덩치만 컸지 이렇게 귀여운 녀석들을 왜 무서워하는지 정말 모르겠다니까.
오랜만에 예쁜이와 길게 교감을 나누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예쁜이가 떠나간 뒤에 다른 야쿰들도 한 마리씩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예쁜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는 녀석도 있었고, 스윽 다가와 냄새만 맡고 가거나, 멀찍이 떨어져 울음소리만 내고 돌아가는 녀석도 있었다.
모두 다 각자 나름대로 나를 환영하는 인사였다.
마지막으로 무리의 우두머리 큰뿔이가 천천히 다가왔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녀석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여어, 큰뿔아! 잘 지냈지? 나 안 보고 싶었어?”
-부우우우.
여전히 크고 웅장한 울음소리.
큰뿔이는 울타리에 멀찍이 떨어져 나를 곳곳이 살펴봤다. 아마도 혹시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나 다친 곳 없이 잘 다녀왔어. 이리와 큰뿔아! 오랜만에 형이 어리광부리는 거 받아줄게.”
내가 양팔을 벌리며 손짓하자 큰뿔이는 코웃음 치듯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녀석! 부끄러워하기는. 큭큭”
멀어지는 큰뿔이를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제 슬슬 짐 정리를 해보러 가볼까?
엘린이 마구간 청소를 끝내고 오기 전에 어느 정도 큰 짐들은 정리해 놔야겠다.
울타리를 떠나 다시 농장 건물로 향하던 길.
‘드륵’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리고 누군가 불쑥 상체를 내밀었다.
“다녀왔냐?”
부스스한 회색 머리, 여전히 모든 게 귀찮은 듯한 눈동자를 가진 카네프였다.
나는 반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잘 다녀왔습니다. 드물게 일찍 일어나셨네요?”
“밖에 저놈들이 하도 시끄러워서 일어났다. 겨우 며칠 못 본 것 가지고 무슨 난리인지 원…….”
카네프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말했지만, 얼굴에서는 짜증을 느낄 수 없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괜스레 틱틱대는 모습도 정겹게 느껴졌다.
“농장에는 별일 없었죠?”
“안드라스랑 엘린 그 두 놈이 식사를 더럽게 못 만들었다는 것만 빼면 별일 없었다.”
“사장님 요리 잘하시면서. 직접 준비하시지 그랬어요?”
“시끄러! 빨리 아침 준비나 해. 오랜만에 제대로 식사하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짐 정리만 끝나고 바로 준비할게요.”
카네프는 창문을 닫기 전에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뭐…… 잘 돌아왔어.”
-드륵, 탁!
뭔가 큰뿔이랑 반응이 비슷하게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짐 정리를 하러 들어가기 전, 다시 한번 넓은 들판과 농장의 전경을 눈에 새겼다.
가슴 속에 뿌듯한 감정이 차오르며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
오늘도 열심히 농장일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