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4화
잠시 농장의 일상(1)
오랜만에 모인 농장 식구들의 점심시간.
휴가를 다녀오는 동안. 열심히 농장을 지켜준 식구들을 위해 맛있는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 덕분인지, 아니면 3일 휴가 동안 못 먹을 것들을 먹어서 그런지 식구들은 아주 맛있게 점심 식사를 즐겼다.
그중에 평소와 다르게 음식을 깨작거리고 있는 리아네가 눈에 띄었다.
“리아네 씨, 혹시 음식이 입맛에 잘 안 맞으세요?”
“아, 아뇨! 너무 맛있어요. 그게…… 그냥…….”
그녀는 내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허둥지둥 대답했다.
아…….
나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잠옷을 입고 마중을 나왔던 일을 전부 기억해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리아네와 정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보였다.
오전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안드라스가 음식을 맛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아…… 역시 시현 님이 해주신 음식을 먹어야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
“칭찬해 주시는 건 고마운데. 그런 표현은 보통 집에서 먹는 식사에 쓰는 표현 아닌가요?”
“가문에서는 워낙 규율이 엄격해서……. 식단은 물론이고 식사 예절까지 꼼꼼히 따집니다. 솔직히 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닙니다.”
“귀족 가문은 다 그런 건가요?”
“가문마다 분위기가 아주 다릅니다. 저희 가문이 좀 많이 엄격한 편이죠.”
비슷한 귀족 가문 출신인 엘프리드를 바라봤다.
“저희 가문은 그렇게 식사 예절에 엄격한 편은 아니에요. 오히려 검에 관련된 것이나, 수련 방법에 관한 규율이 엄청 엄격해요.”
“오오…… 그렇구나.”
귀족 가문마다 고유의 분위기나 규율이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흥미롭게 들렸다.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 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휴가 도중에 생각했던 걸 떠올렸다.
“그런데 엘린.”
“……?”
“혹시 네가 나에게 잠시 빌려줬던 검 있잖아? 그런 비슷한 검을 내가 따로 구할 수 있을까?”
“검이요? 으음…… 형태가 비슷한 검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완성도나 품질까지 비슷한 검은 구하기 어려워요. 제가 가진 검들은 가문의 직계 자손들에게만 전해지는 물건이거든요.”
“쩝…… 그렇구나.”
“왜 그러시는데요, 선배?”
나는 길드의 공용 장비를 가지고 균열에 들어갔다가, 검의 상태가 안 좋아 고생했던 이야기를 풀어놨다.
엘프리드는 내 이야기를 듣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실력이 떨어질수록 무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법이니까요.”
“…….”
이 녀석은 말을 해도 꼭…….
기분이 나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잠자코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죄송하지만 저는 검을 구해드릴 방법이 당장은 없어요. 사실상 가문에서 쫓겨나온 입장이라 뭐라 부탁할 처지도 아니라서요.”
엘프리드와 그의 가문 간의 계속 이어지는 어색한 관계를 잘 알기에 더는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안드라스 쪽을 바라봤지만, 그 역시 난처한 표정을 짓는 건 마찬가지였다.
“저도 검에 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라서……. 엘린 군이 사용하는 수준의 물건은 쉽게 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역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군요.”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지만, 살짝 실망스러운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왕 내 무기를 구하는 김에 좋은 걸로 구하고 싶었는데…….
잠시 눈치를 보던 안드라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이곳에서 가장 좋은 검을 구하실 수 있는 분은 카네프 님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사장님이요?”
카네프는 자신의 이름이 언급됐음에도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식사를 이어나갔다.
나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눈빛으로 안드라스를 바라봤다.
“카네프 님이 태어나신 가문은 마계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 기술을 가진 곳으로 유명합니다. 마신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장비를 만들어줬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곳입니다.”
처음 듣는 카네프의 출신 가문 이야기에 여러모로 흥미롭게 느껴졌다.
반면에 다른 농장 식구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인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신기하네요.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대장장이의 이미지와 사장님은 잘 조합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카네프와 은율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울리지 않는 게 당연해. 그냥 거기서 태어났을 뿐, 대장장이 일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고.”
그의 반응을 보아하니 출신 가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마계 최고의 대장장이 가문이라…….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검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 주제를 불편해하는 것 같은 카네프에게 억지로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아쉽군요. 그곳이라면 시현 님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검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텐데.”
“…….”
“…….”
안드라스의 말을 끝으로 식당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엘프리드가 어색한 분위기를 참기 힘들었는지 불쑥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시현 선배, 당장 검은 구하기 힘들어도 강화 마법은 충분히 알려드릴 수 있어요. 당장 오후 수련부터 시작해 보죠?”
“으으음…… 엘린, 그냥 예전처럼 네 검을 빌리는 방향으로 생각해 보는게…….”
“안 되죠! 언제까지 무기에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실하게 알려드릴게요.”
의지를 불태우는 엘프리드의 모습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괜히 검 이야기를 꺼냈다가, 당장 오늘의 검술 수련이 끔찍해질 것 같은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 * *
화창한 오후.
“언니, 여기.”
“고마워, 은율아.”
은율이는 리아네를 도와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포근한 햇살, 널려있는 깨끗한 빨랫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농장 한쪽에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쪽에서는…….
-카앙! 깡!
“으윽!”
“선배 어떻게 된 거예요? 3일 동안 쉬었다고 너무 몸이 무거워지신 거 아니에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엘프리드 때문에 대답조차 하기 힘들었다.
정신없이 공격을 쳐내고 피하다 보니, 벌써 몇 번이고 땅바닥을 뒹굴었다.
오랜만에 입안을 맴도는 흙먼지 맛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래도 악으로 깡으로 버틴 끝에 마지막까지 검을 놓치지 않고 대련을 끝낼 수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선배.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건 칭찬해 드릴게요.”
“끄응…… 그것참 엄청나게 영광이네.”
나는 먼지를 털면서 어기적어기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수련은 여기서 끝?”
“아니죠. 아까 점심 먹으면서 말씀드렸잖아요. 오늘 선배님에게 강화 마법을……. 헉?!”
갑자기 엘프리드는 헛바람 삼키는 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카네프가 이곳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어? 사장님? 거기서 뭐 하세요?”
“뭐하긴? 네가 신나게 흙먼지 들이마시는 거 구경하고 있었지.”
“쓰읍. 그거 보고 계셨어요?”
내가 땅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지켜봤다는 사실에 입맛이 쓰게 느껴졌다.
한편 엘프리드는 여유가 싹 사라져 굉장히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여기는 뭐 하러 오신 거예요? 정말로 제가 땅바닥 뒹구는 거 보러 오신 건 아닐 테고.”
내 물음에 카네프는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떠듬떠듬 말을 이어나갔다.
“그…… 뭐냐. 강화 마법을 배운다고 해서. 으음…… 내가 좀 알려줄까 해서…….”
“아! 강화 마법을 알려주려고 오신 거예요?”
“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웬일이래?
귀찮은 일은 절대 하지 않으시는 분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카네프의 행동에 놀라는 사이, 엘프리드는 나와 전혀 다른 의미로 놀라며 소리쳤다.
“카, 카, 카네프 님이 직접 강화 마법을 가르쳐 주신다고요?!?!”
“윽! 엘린,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선배 지금 못 들었어요? 카네프 님이 직접 강화 마법을 가르쳐 주신다잖아요?!”
“그게 왜? 방금 너도 나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랬잖아?”
내가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자. 엘프리드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도대체 왜 저러지?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멀리서 리아네와 은율이 그리고 안드라스까지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왔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카네프 님이 시현 님을 가르치신다고 하셨습니까?”
“카네프 님, 정말이에요? 정말 그렇게 하실 거예요?”
두 사람도 굉장히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느껴지는 분위기로는 엘프리드와 놀라는 방향성이 달라 보였다.
“아니, 왜 전부 다 이렇게 호들갑이야. 그냥 시현에게 강화 마법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알려주겠다는데.”
두 사람은 핼쑥해진 표정으로 카네프를 만류했다.
“카네프 님. 무슨 일로 시현 님에게 벌을 주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사죄드리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를…….”
“시현 님 없으면 안 돼요. 은율이랑 야쿰은 누가 돌봐줘요.”
안드라스와 리아네는 나에게 큰일이라도 생길 것처럼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기 두 분.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사장님은 그냥 강화 마법을 알려주겠다고만 한 건데요?”
안드라스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시현 님. 그게 무서운 일이라는 겁니다.”
“네?”
“예전에 저와 리안이 카네프 님 밑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네, 그건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죠.”
“그 시절에 아무것도 모르고 카네프 님에게 가르침을 신청했던 적이 있었죠. 그 결과 우리 두 사람은 거의 일주일 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했습니다.”
“……?!”
보통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왠지 사장님이라면 그러고 남았을 것 같기도…….
“그뿐만이 아닙니다. 단원 중에 큰 잘못을 한 인물이 있으면, 항상 개인 지도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수련을…….”
“야이씨! 내가 언제 그랬다고!”
“제가 직접 본 것만 해도 로커스 씨, 테르잔 씨, 욘 씨…….”
안드라스 입에서 피해자 이름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러자 카네프는 약간 머쓱해진 표정으로 툭 내뱉었다.
“로커스 그 자식은 그렇게 당해도 싼 놈이었어.”
“으음……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그럼 로커스 씨는 빼는 거로…….”
그럼 나머지는 진짜라는 말?
카네프의 무지막지한 과거가 점점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나와 엘프리드는 공포심에 슬쩍 한발 물러섰다.
“그때랑 지금은 달라. 시현을 단원으로 키울 것도 아니고, 적당히 강화 마법만 알려주는 거라면 어려울 것도 없잖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카네프 님은 가끔 ‘적당히’를 까먹으시는 것 같아서 불안한데요?”
리아네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카네프를 바라봤다.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은율이가 카네프에게 다가갔다.
“사쟝님.”
“으…… 응?”
“우리 아빠 혼낼 거야?”
“아, 아냐, 그런 거 아냐.”
“사쟝님, 아빠 혼내지 마…….”
은율이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애원하자, 카네프는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색하게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대 네 아빠를 혼내려고 하는 게 아니야. 지금 혼나야 할 놈들은 따로 있거든.”
카네프의 매서운 눈빛이 안드라스와 리아네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은 찔끔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정말……?”
“물론이지. 약속할게.”
“헤헤! 고마워, 사쟝님.”
은율이는 방긋 웃으며 카네프의 다리를 꼭 껴안았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살짝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