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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6)화 (11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6화

잠시 농장의 일상(3) 

“으으음…….”

“시현 님, 정신이 드십니까?”

“선배, 괜찮아요?”

내가 천천히 눈을 뜨자 옆에서 안드라스와 엘프리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속에 느껴지는 걱정스러운 감정에 금방 내가 기절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갔다.

내가 끙끙대며 몸을 일으키지 못하자 옆에 있던 두 사람이 바로 도움을 줬다.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죠?”

“두 시간 정도 이렇게 계셨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는 것만 빼면…… 으악! 그러고 보니 오늘 마왕성에 보낼 보고서도 써야 하는데.”

“일단 안정을 취하시는 게 우선입니다. 마왕성에는 제가 사정을 말해놓겠습니다.”

안드라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휴식을 권했다.

분위기상 억지를 부리면 안 될 것 같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을 발견했다.

내가 검에 마력을 집어넣으려다가 기절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제가 뭔가 하긴 했던 것 같은데…….”

“으음…….”

“…….”

안드라스와 엘프리드는 난처한 듯 입을 열지 못했다. 대답은 다른 곳에서 흘러나왔다.

“뭔가 하기는 했지. 근데 우리가 예상한 대로 안 해서 문제지.”

조금 떨어져 앉아 있던 카네프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뭐 문제가 있었나요? 저는 마지막에는 굉장히 잘했던 것 같은데.”

“잘하기는 뭘 잘해? 이걸 콱! 그냥…….”

“왜, 왜 그러세요?”

“평소에는 성실하고 말도 잘 듣는 녀석이 꼭 이상하게 사고를 친다니까. 그것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말이야.”

카네프는 마치 사고 친 자식을 혼내는 듯한 모습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나 자신도 조금은 찔리는 부분이 있어서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너는 일단 강화 마법 사용 금지야. 절대 시도도 하지 마.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직접 가르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저…… 그냥 안드라스 씨나 엘린에게 배우면 안 될까요?”

나는 두 사람에게 도움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내 예상과는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죄송합니다, 시현 님. 강화 마법은 카네프 님에게 배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 선배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닌 것 같아요.”

“아니…… 그게 무슨?”

갑자기 발을 빼는 두 사람의 모습에 배신감이 느껴졌다.

“시끄러! 너는 불안해서 안 되겠어. 무조건 내가 가르칠 테니 그렇게 알아!”

카네프는 ‘이 녀석 잘 걸렸다!’라는 표정으로 윽박질렀다.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엘프리드는 카네프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안드라스는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씨! 처음부터 다른 사람한테 배운다고 할걸…….

* * *

강화 마법 소동이 있었던 다음 날.

나는 오랜만에 엘든 마을을 방문했다.

오늘은 카네프를 제외한 모든 농장 식구가 함께했다.

“사탕 아저씨!”

“미루야!”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귀여운 고양이 소녀가 우다다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혹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네. 라구스 촌장님이 오늘 아저씨가 올 거라고 해서 아침부터 계속 기다렸어요.”

“그랬구나.”

살짝 쓰다듬어주자 미루는 고롱고롱하는 소리를 냈다. 머리에는 내가 선물했던 머리 장식이 다시 달려 있었다.

나와 인사를 끝낸 미루는 다른 농장 식구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특히 은율이의 방문을 크게 기뻐하며 꼭 달라붙었다.

“은율아, 너무 오랜만이다.”

“응…… 미루 언니.”

“오늘은 계속 같이 노는 거야. 알았지?”

은율이도 반가워하는 미루가 싫지는 않은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꼭 잡았다.

친자매처럼 붙어 앉은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내가 마을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마을의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오늘도 준비해 온 간식들을 한 명씩 나눠줬다.

오늘은 안드라스와 엘프리드에게 아이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몰려들었다.

“형! 도시의 나쁜 놈들을 검으로 전부 때려눕힌 거 맞지?”

“오빠가 정말 미루를 구해오신 거예요?”

“진짜라니까! 아빠한테 들었는데. ‘붉은 어금니’ 놈들이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고 있데.”

“덩치 큰 마족 아저씨도 같이 가신 거죠?”

아이들은 미루를 구출해 온 이야기를 들었는지 열정적으로 두 사람에게 관심을 보였다.

특히 엘프리드에 비해서 안드라스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소문에 힘입어 인기가 급상승했다.

엘프리드가 검을 한 번 휘둘렀는데 조직원 수십 명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부터, 안드라스가 아티팩트로 적의 본거지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는 이야기까지.

이미 두 사람은 아이들의 영웅이 돼 있었다.

몰려드는 관심에 둘은 난처하다고 말하면서도, 얼굴에는 계속 미소를 유지하며 아이들을 상대해 줬다.

리아네는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정말 대단하네요. 두 분이 이렇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게 될 줄 몰랐어요.”

“그러게요. 특히 안드라스 씨는 오히려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많았었잖아요.”

큰 덩치에 로브를 뒤집어쓴 모습은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만한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나보다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아 조금 배가 아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행복한 두 사람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건 그렇고 리아네 씨.”

“네?”

“아이들 말고. 마을 어른들의 시선이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시선이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으음…….”

뭐라 말로 딱 집어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분명 나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친근함과 고마움의 뜻이 담겨 있었다면. 지금은 뭐랄까…… 굉장히 조심스럽고 기이한 열망 같은 게 느껴졌다.

변화의 이유를 고민하고 있던 사이, 옆에서 귀여운 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꽁자님, 꽁자님!”

“캐시야. 안녕?”

“안녕하세요, 시현 님.”

작은 아기 토끼를 안고 여성 토끼 수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캐시는 여전히 축 처진 토끼 귀가 너무나도 귀여웠다.

아기는 내 쪽을 향해 작은 팔을 버둥거렸다.

“엄마! 꽁자님한테 갈래!”

“캐시, 시현 님을 귀찮게 하면 안 돼!”

“갈래, 갈래!”

캐시는 나에게 안기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다. 난처해 하는 그녀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는 괜찮아요. 자, 이리로 오렴.”

내가 조심스럽게 안아 들자 캐시는 방긋 웃어 보였다.

보들보들하고 따스한 털의 느낌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옆에 있던 은율이와 미루도 아기 토끼의 귀여움에 눈을 떼지 못했다.

옆에 있던 캐시의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시현 님, 사실은 캐시가 며칠 전에 크게 배탈이 났었거든요.”

“저런! 지금은 괜찮은 건가요?”

“이제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아기의 배 쪽을 한 번 쓰다듬어주실 수 있을까요?”

“……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부탁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나한테 그런 부탁을…….

옛날에 할머니가 해주시던 할머니 손 약손 같은 걸 부탁하시는 건가?

너무 진지한 표정이라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거절하기도 애매해서 일단은 그녀의 부탁대로 아기의 배에 손을 올렸다.

-스윽, 스윽!

“꺄르르륵! 간지러워!”

처음에는 조금 간지러웠는지 품속에서 버둥거렸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익숙해졌는지 편안한 표정으로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빠, 나도, 나도!”

“알았어. 대신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야 해?”

나는 자세를 낮춰 쓰다듬을 수 있게 해줬다.

은율이는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여 아기 토끼의 털을 쓰다듬었다.

“엄청 따뜻하고 보송보송해. 그리고 완전 작아.”

은율이는 자신보다 더 작은 아기가 신기한지 눈을 반짝거렸다.

작은 토끼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축 처진 귀를 살짝 건드려보기도 했다.

큰 아기가 작은 아기를 쓰다듬는 것 같아서 묘한 어울림이 느껴졌다.

“자, 이제 캐시는 엄마한테 갈까?”

“아빠, 조금만 더 같이 있으면 안 돼?”

은율이는 많이 아쉬워하며 아기 토끼의 손을 꼭 잡았다.

“아쉽지만 다음에 더 같이 놀자. 알았지?”

“응…….”

아쉬워하는 은율이를 달래며 캐시를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려보내 줬다.

“감사합니다. 시현 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캐시를 안은 채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나는 아직도 그 감사의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그냥 어색하게 웃었다.

아기 토끼가 엄마와 함께 떠나고.

이번에는 다른 수인들이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시현 님. 제가 일을 하다가 손을 다쳤는데. 한 번만 만져주시면 안 될까요?”

“공자님, 제 아들이 며칠 내내 계속 악몽을 꿨어요. 괜찮으시면 머리를 한 번만 쓰다듬어주시겠어요?”

“저 이웃 마을에 있는 아가씨에게 고백하려고 합니다. 꼭 잘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아까 캐시의 엄마처럼 아픈 곳을 만져달라거나, 쓰다듬어 달라기도 하고. 심지어 나를 향해 기도하는 수인들도 있었다.

굉장히 당황스러워하고 있던 그때, 레빌이 나타나 주변을 정리해 주었다.

“모두 물러나! 시현은 바쁜 사람인 거 몰라서 이래?”

“우리는 그저…….”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상인들 맞이할 준비나 마저 끝내. 계속 이러면 라구스에게 말해서 딸기밭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할 거야.”

“아, 알았어. 가면 되잖아.”

레빌은 으르렁거리며 사람들을 위협했다. 그 덕분에 나에게 몰려들었던 수인들이 흩어졌다.

순식간에 주변을 정리한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군.”

“아뇨.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요. 뭘. 그런데 마을 주민분들이 갑자기 왜 저러시는 거예요?”

“쩝…… 그게. 약간 이상하게 소문이 나서 말이야.”

“이상한 소문이요?”

“그 이야기는 일단 다음에 하고. 지금은 라구스가 있는 쪽으로 가자. 조금 있으면 상인들이 도착할 것 같으니까.”

레빌의 말대로 우리는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사탕 아저씨. 나 은율이 데리고 놀러 가도 돼?”

“은율이도 같이?”

“응, 마을 친구들도 소개해 주고 같이 놀고 싶어.”

슬쩍 은율이의 얼굴을 살펴보니. 나를 따라가는 것보다는 미루와 함께 놀러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은율아, 미루 언니랑 같이 놀러 갈래?”

“응. 놀러 가고 싶어.”

상인들을 만나는 자리는 은율이에게 너무 따분하겠지. 근데 아이들만 보내는 건 조금 불안한데.

“그럼 제가 은율이와 미루를 돌보고 있을게요.”

“리아네 씨, 그렇게 해주실래요?”

“네, 아이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충분히 이야기 나누고 오세요.”

내 생각을 금방 눈치챈 리아네가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나머지 안드라스, 엘프리드, 그리고 나.

세 사람은 레빌을 따라 라구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라구스가 있는 곳에는 이미 황금시계 상회의 에르긴, 오르펭 상회의 알고트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와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시현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혹시 저를 잊어버리시지는 않으셨겠지요?”

“하하, 그럴 리가요. 두 분 다 반갑습니다. 에르긴 그리고 알고트 님.”

“저도 에르긴과 마찬가지로 편하게 알고트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으음…… 아직 그렇게 부르기는 어색하네요. 지금은 알고트 씨라고 부를게요.”

아무래도 알고트가 에르긴보다는 연배가 높아 보여서, 그냥 이름을 부르기가 껄끄러웠다.

그런데 두 사람은 내 말뜻을 잘못 이해했는지 표정이 엇갈렸다.

에르긴은 ‘이게 나와 너의 차이다!’라는 표정을 지었고, 알고트는 살짝 불편한 표정으로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쩝……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냥 이름으로 부를 걸 그랬나.

본의 아닌 차별 대우에 자신감을 얻은 에르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시현 님. 오다가 안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 저장고에 있던 딸기가 모두 소진돼 버렸다고…….”

“죄송해요.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이번에는 딸기 거래가 힘들 것 같아요.”

“허허. 역시나 그 소식이 사실이었군요.”

두 사람 모두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깜짝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새어 나오는 허탈한 감정까지는 숨기지는 못했다.

“혹시 얼마나 딸기를 소진해 버리신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으음…… 아마 마차 한 대 분량이었을 거예요.”

“허억?! 컥!”

“허어…….”

에르긴은 너무 놀라 기침을 터뜨렸고, 알고트는 깊은 탄식과 함께 콧수염이 뽑힐 정도로 강하게 쓸어내렸다.

나도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미루를 구하지 못했다면 더 큰마음의 짐을 떠안았을 테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이번에는 두 분에게 드리기로 약속한 딸기를 준비하지 못했어요. 계약대로 위약금을 지급할게요.”

“으음…….”

“계약대로라면 그렇게 진행하는 게 맞는 일이지요.”

두 사람은 뭔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로서는 위약금을 받으면 손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딸기를 받았을 때보다 이득은 아닌 상황이었다.

그때 상황을 살피던 안드라스가 나섰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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