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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7)화 (11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7화

잠시 농장의 일상(4)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계약이 무산돼 버렸지만, 두 분 모두 시현 님과의 거래를 끊을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드라스의 물음에 두 상인은 앞다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아무리 상인이 돈밖에 모르는 냉혈한이라지만, 어찌 시현 님께 받은 은혜와 그간의 인연을 모른 척하겠습니까?”

약간 감정적으로 말하는 에르긴과 달리, 알고트는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저희 상회에서는 시현 님이 가지는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번 계약이 무산된 것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시현 님에 대한 평가가 변하지는 않을 겁니다.”

두 상인은 계속 거래를 이어나갈 생각을 밝혔다. 대답을 들은 안드라스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두 분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일단 거래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하시는 것과는 별개로. 이번에 단순히 위약금만 받아가신다면 조금 섭섭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흠흠, 뭐 그렇겠지요. 손해가 아니더라도 상인의 처지에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건 그리 달갑지 않으니까요.”

“상회에 보고를 해야하는 입장이라 당연히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두 분이 위약금을 받아가실 수도 있지만. 혹시 그 위약금으로 투자를 해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안드라스 입에서 투자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두 상인의 눈이 조용히 번뜩였다.

“아마 여러분도 잘 아시는 내용일 겁니다. 바로 딸기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오오…… 딸기잼!”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두 분도 딸기잼을 맛보셨겠지만. 이미 많은 곳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히 신선한 딸기를 즐기기 어려운 분들은 더더욱 딸기잼을 특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죠.”

두 상인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최근에 딸기밭 확장뿐만 아니라, 딸기잼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방 건설을 계획 중입니다.”

“자, 잠깐만요. 안드라스 씨?”

“왜 그러십니까, 시현 님?”

“저는 딸기잼 공방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언제 그런 계획이 결정됐죠?”

“최근에 휴가를 다녀오시는 동안에 결정됐습니다.”

“그걸 누가 결정했는데요?”

나는 살짝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딸기밭의 주인인데 누가 그런 결정을…….

“마왕님께서 직접 명하신 일입니다.”

“아! 그럼 인정이죠.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계속 이야기 나누시죠.”

마왕님의 등장에 나는 곧바로 수긍하고 물러섰다.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어도, 이미 마음으로는 평생 모셔야 할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억지로 일을 시키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안 주는데, 보상은 빵빵하게 챙겨주는 최고의 고용주 아니겠는가?

농장의 카네프가 약간 바지사장 느낌이라면, 마왕님은 거대한 계열사들을 거느린 회장님이라고 할 수 있지. 암!

내가 물러서자마자 안드라스는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딸기잼 공방 건설의 기술자들은 마왕성에서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건설 재료나 기타 물품들은 현지에서 조달하는 게 훨씬 편하겠죠.”

“흐음…… 그런 일을 돕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약금을 포기하면서까지 투자해야 할 만한 일은 아닌 듯합니다만…….”

알고트는 천천히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끝을 흐렸다. 에르긴도 뭔가 애매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안드라스는 이미 그들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건설 재료 조달은 과정일 뿐입니다. 진짜 두 분에게 드리고 싶은 제안은 따로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에 두 상인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투자의 대가로 딸기잼의 독점 거래권을 드리는 겁니다.”

“독점권?!”

“그게 정말입니까?”

“아, 물론 영구적인 독점권은 아닙니다. 첫 생산 날부터 정해진 기간 만큼만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두 상인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 그들은 위약금과 건설 재료 조달, 그리고 딸기잼의 독점권. 이것들의 손익을 철저히 따지고 있을 것이다.

먼저 계산이 끝났는지 에르긴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기, 기간! 독점권의 기간은 얼마나 인정해 주실 겁니까?”

“지금은 두 달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달?! 그건 너무 짧습니다.”

“맞습니다. 두 달이면 겨우 첫 번째, 두 번째 딸기잼 정도만 얻을 수 있다는 건데. 그러면 독점권의 의미가…….”

두 사람이 크게 흥분하며 항의했다. 그 모습에도 안드라스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처음 딸기를 거래했을 때, 황금 시계 상인분께서는 얼마 되지 않은 기간에 거의 독점적인 권한으로 많은 이득을 보셨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크흠, 큼…….”

에르긴은 찔리는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딸기잼은 딸기보다 보관, 운송이 편합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도 훨씬 수월하죠. 딸기가 가지는 가치보다 절대 낮지 않을 겁니다.”

“…….”

“…….”

안드라스의 논리적인 설명에 두 상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런 딸기잼의 독점권을 두 달이나 드리는 겁니다. 위약금, 건설 재료 비용 정도는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두 달은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최소한 여섯 달은…….”

“독점권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어쩔 수 없죠. 두 상인분에게 곧바로 위약금을 지급하는 거로…….”

“왜 그렇게 급하십니까? 아직 충분히 대화도 나누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희에게도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에르긴과 알고트는 잠시 자리를 떠나 서로 긴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서로 협력해서 안드라스에게 대응할 생각인 것 같았다.

평소에 서로 그렇게 으르렁거리다가도, 눈앞에 이익을 위해서 곧바로 협력하는 모습에 진짜 상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끝낸 두 사람은 다시 안드라스와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주도권은 안드라스가 꽉 쥐고 있었다.

“두 달은 너무 짧고 다섯 달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는 두 달 독점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넉 달로 합시다.”

“석 달! 석 달이면 넉넉한 기간이 될 것입니다.”

결국, 두 상인은 위약금을 받는 대신 딸기잼 공방에 투자하기로 했다. 대가로 석 달 동안의 딸기잼 독점 거래권을 얻어냈다.

구두 합의가 끝나자마자 세부적인 계약서 작성도 순식간에 끝마쳤다. 두 상인은 딸기 대신에 받게 된 계약서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안드라스에게 다가가 슬쩍 속삭였다.

“안드라스 씨, 저렇게 독점권을 막 줘도 되는 건가요?”

“딸기잼을 생산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저기 두 상회와 거래하게 될 겁니다. 독점권을 준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두 상회가 담합해서 가격을 후려칠 수도 있지 않나요?”

“이미 생산 단가를 계산해 최저 금액도 설정해 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두 사람은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없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독점권에서 제외해 놓았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부분?

안드라스는 계약서를 꺼내 한 부분을 가리켰다.

-황금시계 상회와 오르펭 상회는 딸기잼 공방에서 생산된 제품의 독점적 거래권을 가진다.

-이 권리는 첫 제품 생산이 이뤄진 시점부터 석 달 동안 유효하다.

“이게 뭐가 어떻다는 거죠?”

“농장에서 만들 수 있는 딸기잼은 한 가지 종류가 아니지 않습니까?”

“…… 아?!”

그제야 나는 안드라스의 의도를 깨달았다.

내가 만들어낸 딸기잼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벌꿀을 넣어 만든 딸기잼, 나머지는 설탕을 넣어 만든 딸기잼.

당연히 딸기잼 공방의 설비는 설탕으로 만드는 딸기잼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대량으로 생산하기에는 벌꿀 자체가 넉넉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벌꿀로 만든 딸기잼은 공방에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 말은 독점 거래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벌꿀을 넣은 딸기잼은 설탕을 넣은 것과 비교해 풍미가 훨씬 뛰어납니다. 주된 구매층인 귀족이 어떤 딸기잼을 원할지는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결국에 독점권에 포함되지 않는 벌꿀 딸기잼을 얻기 위해 두 상회는 우리와 다시 계약해야겠군요.”

“그들도 독점권으로 충분한 이득을 취할 겁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그 권리를 휘두르지는 못할 겁니다. 가장 중요한 히든카드는 아직 우리 손에 남아 있으니까요.”

와…… 언제 이런 걸 다 생각해 오셨지?

독점권을 대가로 큰 금액의 위약금을 포기하게 만들고, 공방 건설에 필요한 재료도 받을 수 있게 됐다.

“뭔가 저 두 사람을 속이는 것 같아서 약간 마음이 불편하네요.”

내가 불편하다는 말에 안드라스는 냉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현 님이 처음 딸기를 판매하셨을 때. 황금시계 상회에서 수십 배가 넘는 차익을 챙긴 것을 생각해도 말입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아주 양심적이고 공평한 거래인 것 같네요. 정말 수고하셨어요, 안드라스 씨!”

“감사합니다. 시현 님에게 도움이 되고자 꽤 열심히 고심했습니다.”

나는 깔끔하게 마음의 불편함을 다 날려 버리고, 안드라스와 마주 보며 웃었다.

* * *

“이야기는 잘 끝나신 겁니까?”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라구스가 걱정스럽게 물으며 다가왔다.

“네, 모두 다 잘 끝났어요.”

“위약금이 너무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새로운 투자 계약을 맺어서 위약금은 없는 거로 마무리했어요.”

“오오…… 정말 다행입니다.”

라구스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을 사람 중에 위약금의 존재에 대해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위약금을 냈더라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안 됐을 거예요.”

위약금이 적은 금액이 아니긴 해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다. 그동안 모아둔 돈도 많이 있고, ‘붉은 어금니’ 본거지에서 털어온 재물도 꽤 많았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습니까? 저희 때문에 시현 님이 큰 손해를 보신 거나 다름이 없는데…… 마을 사람들도 위약금에 대해 알았다면 얼굴을 들지 못했을 겁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분들이 괜히 불편하지 않게 계속 비밀로 해주세요.”

“시현 님…… 훌쩍!”

라구스의 눈망울이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크게 감동을 하였는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내려는 모습에 일부러 다른 주제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엘린과 레빌 씨가 안 보이네요. 여기에 같이 계시지 않았나?”

“훌쩍, 그 두 사람은 저쪽에서 아이들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라구스가 가리킨 곳에 아이들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엘프리드와 레빌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 모두 조잡한 목검을 들고 있었지만, 우렁찬 기합을 내는 소리를 보니 사뭇 진지해 보였다.

엘프리드는 한 명 한 명의 자세를 직접 잡아주며 자상하게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를 무자비하게 땅바닥에 굴릴 때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은율이는 잘 놀고 있으려나?

문득 은율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그때, 에르긴이 내 쪽으로 다가와 대화를 요청했다.

“시현 님, 계약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말씀드리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데.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무슨 일이에요, 에르긴?”

그는 잠시 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시현 님께서 보호하고 계신 여자아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은율이요?”

약간 놀라며 되물었다. 옆에 있던 안드라스와 라구스도 관심을 드러내며 에르긴의 말에 귀 기울였다.

“제가 보기에는 그 은율이라는 아이가 은월(銀月)족 출신인 것 같은데.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

입을 다문 채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은율이가 은월족 출신이라는 건 이미 예전에 들었었다.

“최근에 은월족 출신 몇 명이 이 지역 근처에서 한 여자아이를 찾아다닌다고 들었습니다.”

“……?!”

“은월족이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닌지라,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시현 님과 함께 있던 아이가 떠오르더군요.”

나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손바닥이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현 님께서 그 아이를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서, 일단 이야기를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 그렇군요. 혹시 그 사람들이…… 아닙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럼 저는 이만…….”

에르긴이 떠나가고.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가 했던 이야기를 곱씹었다.

-은월족 출신 몇 명이…….

-여자아이를 찾아다닌다고…….

“시현 님?”

“괜찮으십니까?”

라구스와 안드라스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예…… 예, 괜찮아요.”

나는 일단 울렁거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몇 번 머릿속으로 상상해 봤던 상황인데도, 직접 닥쳐온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

“아빠!”

멀리서 앙증맞은 발걸음 소리와 함께 은율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넘어질까 걱정이 될 정도로 빨리 달려오더니, 언제나처럼 내 품 안에 안겼다.

“아빠, 아빠! 미루 언니랑 언니 친구들이랑 같이 놀았는데. 내가 숨바꼭질에서 제일 잘 숨었어.”

“으…… 응.”

“그리고 내가 술래일 때는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찾아냈어. 미루 언니가 나 엄청 잘한다고 칭찬해 줬어.”

“그래…… 잘했네.”

“……아빠?”

은율이는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뒤늦게 나의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억지 미소를 지었다.

“숨바꼭질을 그렇게 잘했다고? 정말 대단하네! 우리 은율이!”

“헤헤.”

다행히 은율이의 얼굴에 미소가 되돌아왔다. 은율이를 품 안에 꼭 껴안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중에 농장 식구들이랑도 같이 숨바꼭질해 볼까?”

“응, 하고 싶어. 아꿍이랑 규리도 같이 할 거야.”

“그래. 리아네 씨, 안드라스 씨, 엘린, 사장님까지 다 불러오자.”

나는 농장 식구들과 즐겁게 술래잡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불안감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하지만 한 번 커지기 시작한 불안은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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