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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8)화 (118/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18화

은빛 방문자(1) 

-부우우우…….

초롱이가 조금 힘겹게 울음소리를 냈다.

“물 마시고 싶어? 잠시만.”

나는 금방 양동이에 깨끗한 물을 담아 입 앞에 가져다주었다. 편하게 물을 마신 초롱이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을 보였다.

며칠 동안 물만 마시며 버티고 있는 초롱이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조금이나마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해주려고 털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아빠, 이제 조금 있으면 아기가 나오는 거야?”

-무우우?

뒤에서 은율이와 얌꿍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응, 조금 있으면 아기 야쿰이 태어날 거야.”

“와…… 대단해!”

-무우우∼!

곧 아기가 나온다는 이야기에 여우 소녀와 아기 야쿰은 처음에 감탄하다가, 뭔가 불안해졌는지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아기가 나오면 어떡해?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해?”

-무우우. 무우우.

“하하, 괜찮아. 아직은 아기가 나오려면 한참 남았어. 그리고 둘 다 걱정 안 해도 돼. 초롱이랑 아기는 내가 잘 돌볼 테니까.”

걱정이 가득한 둘을 안심시키며 차례로 쓰다듬어줬다.

아이들에게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불안한 상태였다.

처음 예쁜이가 출산했을 때, 아꿍이가 위험했었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했다.

출산은 언제나 엄마와 아기 모두에게 위험했다. 혹시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겉으로 태연한 척을 했다. 내가 불안해하면 지금 힘들게 버티고 있는 초롱이도 불안해할 테니까.

“아빠, 나도 초롱이 쓰다듬어줘도 돼?”

“음…… 대신 초롱이가 불편해하면 바로 그만둬야 해.”

“응, 알았어.”

나는 은율이와 함께 초롱이 근처로 다가갔다.

은율이는 작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초롱이의 털을 쓰다듬었다. 다행히 손길을 불편해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부우우…….

초롱이는 안정적인 숨소리를 내뱉으며 편안하게 자세를 취했다. 은율이는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초롱이의 배 쪽에 귀를 가까이했다.

“아빠…… 초롱이 배 안에서 꿀렁하는 소리가 들려. 아기가 내는 소리일까?”

-무우우. 무우우.

“얌꿍아, 너도 들어보고 싶어? 잠시만…….”

은율이가 자리를 비켜주자 이번에는 얌꿍이가 초롱이의 배 쪽에 얼굴을 묻었다. 둘은 배 안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도 아기가 보내는 인사라며 좋아했다.

“자, 이제 슬슬 초롱이가 쉴 수 있게 해주자. 계속 옆에 있으면 신경 쓰여서 불편할 거야.”

“응, 알았어.”

-무우우.

나는 은율이와 얌꿍이를 먼저 축사 밖으로 내보냈다. 혼자 남아 초롱이 주변을 깔끔히 정리해 주고, 양동이의 물도 다시 깨끗한 새 물로 교체해 줬다.

“초롱아, 편하게 쉬고 있어. 무슨 일 있으면 금방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부우우우…….

“그래, 나는 잠시 다른 농장일 좀 하고 올게.”

초롱이 혼자 편히 쉴 수 있도록 조용히 축사를 빠져나왔다.

축사 근처에는 이미 많은 야쿰들이 진을 치고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예쁜이가 출산할 때와 마찬가지로 삼엄한 분위기였다.

-무우우우!

-무우! 무우!

진지한 야쿰들 속에 작은뿔과 아꿍이는 생각 없이 뛰놀고 있었다. 저 두 녀석을 초롱이에게 안 데려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얌꿍이는 엄마 예쁜이 곁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은율이는 먼저 농장 건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도 초롱이의 출산이 시작하기 전에, 빨리 다른 농장일을 먼저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농장 건물로 향했다.

그때.

-부우우우우!!!

큰뿔이의 경계심 가득한 울음소리가 농장 주변에 울려 퍼졌다. 그 울음소리에 다른 야쿰은 물론이고, 작은뿔과 아꿍이도 긴장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농장 건물 현관문 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안드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현 님, 농장의 결계가 공격받았습니다.”

“네?!”

“누군가 무단으로 농장의 영역으로 침입했습니다. 아마 이곳을 향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은율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장 먼저 은율이를 찾았다.

“시현 선배, 제가 건물을 나오기 전에 리아네 선배와 함께 있는 걸 봤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뒤이어 밖으로 나온 엘프리드가 은율이의 위치를 알려줬다. 나는 안심한 표정으로 안드라스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흐아아암! 도대체 뭐야? 맛있게 낮잠 자고 있었는데…….”

가장 늦게 카네프는 나른함과 짜증이 뒤섞인 표정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수면 슬리퍼와 목베개, 수면용 안대까지 이마에 쓴 상태였다.

위급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카네프의 모습을 보니. 약간 한심하게 보이면서 또 아이러니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기,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안드라스가 가리킨 방향에서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들의 행동에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농장의 울타리 쪽에 가깝게 도착한 세 사람.

한 명은 여우의 모습을 한 여우 수인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은빛 털과 눈동자, 머리에 난 뾰족한 여우 귀와 살랑거리는 꼬리. 누가 봐도 은율이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 게 분명했다.

특히 여자 은월족 쪽은 얼굴에서 은율이와 닮은 부분을 대번에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은월(銀月)족이군요.”

안드라스의 중얼거림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앞으로 있을 일을 예상하는 듯했다.

그들은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멈춰 섰다. 여자 은월족이 한발 앞으로 나서며 대화를 시도했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저는 은월족의 ‘아니스’라고 합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아니스’라 소개하며 생긋 웃어 보였다. 그 미소에서 은율이의 얼굴이 떠올라 더욱 마음이 심란해졌다.

카네프는 벅벅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세차게 긁더니, 터벅터벅 앞으로 나섰다.

“죄송한 줄 알면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는 건 어때? 지금 당장 방으로 들어가면 다시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거든.”

“당신이 농장의 주인입니까?”

“어. 내가 사장이야.”

사장이라는 생소한 표현에 은월족 여자는 잠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대충 그 뜻을 이해했는지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약간의 도움만 주신다면 귀찮게 해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에휴…… 너희가 원하는 게 뭔데?”

“저희는 부족의 품에서 떠나간 은월족 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꽤 오랫동안 찾아 헤맨 끝에 겨우 흔적을 발견해 냈습니다.”

“…….”

“이곳에 혹시 은월족 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말은 의문문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확신에 가득 차 이야기하고 있었다.

“없어.”

“…… 예?”

“은월족인지 금월족인지 없다고. 그러니까 빨리 꺼져.”

방문자들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인상을 찌푸렸다. 농장 식구들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은월족 여자보다 연배가 높아 보이는 남자가 불쾌한 표정으로 처음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우리가 분명 흔적을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소? 이미 다 알고 찾아온 것인데, 어찌하여 그런 무례한 태도로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그럼 왜 물어보는 거야? 내 말은 믿지도 않을 거면서.”

“…….”

“그리고 죄송한 척 인사하면, 무단으로 침입한 네놈들을 극진히 대접이라도 할 줄 알았어? 빨리 농장에서 꺼져!”

“이…… 이익!”

은월족 남자는 카네프의 태도에 화를 참지 못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주변으로 적대적인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숙부!”

“가만히 있거라. 저놈의 입에서 똑바른 말이 나오도록 만들어야겠으니.”

아니스의 만류에도 은월족 남자는 계속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 모습을 본 카네프의 얼굴에 오히려 미소가 드리워졌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일단 카네프에게 적대적인 기세를 끌어올린 것도 굉장히 무모한 짓이었지만, 농장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카네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주 민감한 시기라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녀석이 하나 더…….

-부우우우우우!!!

분노에 찬 큰뿔이가 모든 것을 부숴버릴 기세로 달려 나왔다.

“저, 저건 설마?!”

“야쿰이 이곳에 왜??”

은월족 방문자들은 갑작스러운 큰뿔이의 등장에 혼비백산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최대한 빨리 뛰쳐나가며 큰뿔이에게 소리쳤다.

“큰뿔아! 멈춰! 스토오옵!!”

-두두두……. 뚝!

큰뿔이는 앞으로 튀어나오는 나를 발견하고 우뚝 멈춰 섰다. 조금만 늦었으면 앞에 설치된 울타리들이 다 뭉개질 뻔했다.

“잠깐만 큰뿔아. 왜 이렇게 흥분했어? 응?”

-부우우우! 부우우!

흥분한 큰뿔이가 콧김을 세게 내뿜으며 은월족 방문자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시선에 몸을 움찔 떨었다.

“아냐, 공격하러 온 적이 아니라. 여기 손님으로 찾아온 거야.”

-부우우…….

“진짜라니까.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일단 흥분 좀 가라앉혀봐. 너 때문에 초롱이가 더 불안해하겠다.”

-부우우. 부우우!

큰뿔이는 불만 가득한 울음소리를 냈다. 잘못은 저놈들이 했는데 왜 나에게 뭐라 하느냐며 억울해했다.

“알지, 알지!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거야. 우리 조금만 참자, 알았지?”

나는 큰뿔이의 거친 숨결이 잠잠해질 때까지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다행히 평소의 숨소리로 돌아오면서 흥분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정말 착하다, 우리 큰뿔이! 축사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도 나중에 초롱이 살피러 갈 테니까.”

옆구리를 툭툭 쳐주자 큰뿔이는 고개를 돌려 다시 축사 쪽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멈춰서서 은월족이 있는 쪽을 노려보긴 했지만, 다시 흥분해서 날뛰는 일은 없었다.

“휴우우…… 큰일 날 뻔했네.”

겨우 큰뿔이의 폭주를 막아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장 은월족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 죄송한데. 지금 야쿰 무리 중에 출산을 앞둔 친구가 있거든요? 굉장히 민감하니까 함부로 기세를 끌어올리지 마세요. 다음번에는 저도 못 막을지도 모르니까.”

“아…… 예. 그…… 감사합니다.”

여자는 약간 얼빠진 것 같은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했고, 남자와 여우 수인도 얼떨결에 같이 고개를 숙였다.

“와…… 폭주할 뻔한 야쿰을 막아낼 수 있다니…….”

“고생하셨습니다, 시현 님.”

엘프리드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엄지를 들어 보였고, 안드라스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어색하게 웃어주고는, 곧장 키득거리고 있는 카네프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왜 또 일을 크게 만드시는 거예요?”

“네가 뭘? 잘못은 저놈들이 먼저 했는데.”

“지금 야쿰들이 민감한 시기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쯧, 큰뿔이가 저놈들을 완전히 밟아버렸어야 했는데.”

“사장님!!”

“알았어, 알았어! 이제 안 할게.”

카네프에게 잔소리를 끝내고 다시 은월족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단 들어오세요. 계속 밖에 있으면 야쿰들이 더 흥분할지도 몰라요.”

“뭐? 저놈들을 왜 집 안으로 들여?”

“그럼 어떻게 해요? 은율이의 진짜 가족들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말하면서도 약간 기분이 우울해졌다.

만약에 저들이 진짜 가족이라면…… 나는 은율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살짝 시무룩해진 내 모습에 카네프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신경질을 냈다.

“아, 몰라! 네가 알아서 해!”

그는 거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남아 있는 안드라스와 엘프리드를 바라봤다.

“시현 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선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두 사람은 나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둘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은월족 사람들을 바라봤다.

“들어오세요. 그 은월족 아이…… 만나게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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