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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21)화 (12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21화

은빛 방문자(4) 

나는 축사에서 새벽까지 초롱이와 아기들의 상태를 살폈다. 힘든 출산을 이겨낸 초롱이도, 세상과 첫 만남을 끝낸 아기들도 모두 건강한 모습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깨어 있으려 했던 은율이는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내 겉옷을 덮고 잠들었다. 은율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안아 들어 축사 밖으로 나섰다.

어슴푸레한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품 안의 은율이는 차가운 공기에 살짝 몸을 떨며, 나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빠…… 추워.”

웅얼웅얼 귀엽게 잠꼬대를 하는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수고했어, 은율아.

얼른 침대로 데려다줄게.

아직 잠들어 있는 야쿰들을 피해 농장 건물 쪽으로 향했다.

“이제 나오는 거야?”

“어? 사장님?”

카네프가 캠핑 의자에 앉아 나를 불렀다. 의자 주변에는 밤새워 마신 듯 맥주캔들이 그득 쌓여 있었다.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밤새 이렇게 많이 드신 거예요?”

“그러게. 출산이 무사히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마시다 보니 이렇게 마셔 버렸네.”

카네프는 빙글 웃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너무 당당한 그의 태도에 나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스러운 태도로 대답했지만.

그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일을 대비하기 위해, 이곳을 밤새워 지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 끝났으면 들어가자. 이제 늙어서 그런지 새벽에 이슬 맞으며 버티기도 쉽지 않네. 저기 저 녀석들도 깨우고.”

카네프가 가리킨 곳에는 리아네, 안드라스, 엘프리드가 잠들어 있었다. 가장 큰 안드라스 양쪽에 리아네와 엘프리드가 옹기종기 모여 담요를 덮고 있었다.

“안드라스 씨! 리아네 씨! 엘린! 여기서 자지 말고 이제 들어가서 주무시오.”

“으으음…… 시현 님? 으읏…… 이제 끝나신 겁니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안드라스가 반쯤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밤새 기다렸는지 초췌한 그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편하게 들어가서 주무시지, 왜 여기서 이러고 계셨어요?”

“시현 님은 밤새 고생하시는데. 저희는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여기서 계속 기다리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괜한 일을 한 것처럼 말하기는 했어도, 나를 생각하는 세 사람의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일어나세요. 이러다 세 분 다 감기 걸리겠어요.”

“알겠습니다. 끄응…… 오랜만에 노숙을 해서 그런지 온몸 구석구석이 찌뿌둥하네요.”

내 말에 안드라스가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엘프리드도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엘린, 너도 정신 차리고 일어나.”

“으음…… 잘 된 거야?”

“그래, 잘 됐으니까 들어가서 쉬어.”

엘프리드도 어렵지 않게 일어났지만, 아침잠이 많기로 유명한 리아네는 일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리아네 씨, 리아네 씨! 일어나세요. 이러다 정말로 감기 걸려요.”

“헤에…… 시현 니이임!”

결국, 안드라스와 엘프리드가 각각 한쪽 팔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야 했다. 그 모습이 정말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는 표현이 딱 맞아 보였다.

세 사람과 함께 농장 건물로 향하려는데, 카네프가 뒤에서 내 어깨를 붙잡았다.

“잠깐, 아직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더 있는데?”

“예? 아…….”

고개를 돌려보니 은월족 사람들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약간 초췌한 분위기를 보아, 그들도 밤새 이곳에서 기다린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아니스가 일행을 대표해 앞으로 나섰다.

“축하드려요. 일이 잘 풀리신 것 같네요.”

“아…… 예, 감사합니다.”

은율이를 내놓으라고 고집을 부릴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대뜸 축하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당황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아니스는 이런 내 반응을 보고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풋! 걱정하지 마세요. 조카를 억지로 데려갈 생각은 없으니까.”

“정말인가요?”

“네. 안드라스 님이었던가요? 그분이 하신 말씀이 맞아요. 미우의 행복보다는 어떻게든 부족으로 데려갈 생각만 했거든요. 지금은 솔직히 너무 부끄러워요. 조카에게도…… 또 돌아가신 언니에게도……”

그녀뿐만 아니라 나머지 두 사람도 면목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변명처럼 들리실지도 모르겠지만, 저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어요. 은월족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할 만큼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은월족과 은율이.

그사이에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 중요한 일이 엮여 있는 듯했다.

“그래서 미우를 빨리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저희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아니스 진심을 담아서 내게 고개 숙였다. 다우르와 나미라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저희는 지금 당장 부족으로 돌아가 미우가 안전히 지내고 있다고 알릴 생각이에요. 데려가지 못해서 부족의 어른들이 많이 혼내시긴 하겠지만, 어떻게든 잘 설득해야겠죠.”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은율이를 내려다보았다.

“물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조카를 만나러 올 거예요. 이번에는 별다른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했는데. 다음에는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지금 떠나시는 거예요?”

“네! 얼른 부족에 소식을 전해야 하기도 하고, 뒤에 계신 분이 빨리 떠나라고 눈치를 주시기도 해서요.”

뒤쪽을 바라보니 카네프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이쪽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얼른 가라고 해. 나도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으니까.”

사장님도 참 태도가 한결같은 분이야.

나는 자고 있는 은율이를 대신해서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첫 만남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꼭 농장에 찾아와 주세요. 은율이의 가족분이라면 저는 언제든지 환영할 테니까요.”

아니스는 내 작별 인사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얼굴에 매혹적인 미소를 그려냈다.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듯한 미소였다.

“당연히 찾아와야죠. 다시 소중한 조카를 봐야 하고, 무엇보다…….”

-스윽!

그녀는 순식간에 나와 위치를 좁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숨결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서 속삭였다.

“저는 시현 님에게도 정말 관심이 많이 생겼거든요. 헤어지기 너무 아쉬울 정도로요. 후훗!”

“…….”

은밀한 속삭임에 이번에는 내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더욱 진한 미소를 그려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아! 그리고 은율이라는 이름 정말 예쁜 것 같아요. 다음에는 저희도 은율이라고 부르도록 노력해 볼게요.”

아니스는 다른 일행과 함께 농장을 떠나갔다. 나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툭!

카네프가 나의 뒷머리를 살짝 치면서 옆으로 다가왔다.

“쯧쯧, 조심해라.”

“예?”

“은월족의 여우들은 사람을 홀려 영혼을 빼간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나는 멍하게 되물었다.

“……혹시 마계에 있는 여우도 간을 빼먹나요?”

그는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 *

-쭙, 쭙, 쭙!

갓 태어난 아기 야쿰이 꿍유가 담긴 젖병을 열심히 빨았다. 처음에는 젖병을 어색해했는데, 다행히 금방 적응해서 금방 배를 통통하게 했다.

한참 젖병을 빨던 아기 야쿰이 입을 떼고, 작게 울음소리를 냈다.

-므우우…….

“이제 배불러, 아롱아?”

새로운 식구가 된 두 아기 야쿰들에게 초롱이의 이름을 따와. 아롱이, 다롱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은율이는 이름이 너무 귀엽다고 하며 정말 마음에 들어 했다.

배를 가득 채운 아롱이는 뒤뚱뒤뚱 걸어가 자매인 다롱이 곁에 누웠다. 둘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

이 기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다.

뽀송뽀송한 아기 털, 아직 몸통에 비해 짧은 다리, 머리에 살짝 흔적만 튀어나와 있는 작은 뿔까지.

이미 아기 야쿰들을 돌본 경험이 있지만, 이 세상의 귀여움을 모두 다 가져다 놓은듯한 아기 야쿰의 모습은 정말 감탄을 터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참 아기 야쿰이 잠든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때. 옆으로 초롱이가 다가왔다.

-부우우우.

-무우우우.

“초롱이랑 얌꿍이 왔어?”

초롱이와 얌꿍이도 내 옆에서 잠든 아기 야쿰을 내려다봤다. 나도 이렇게 귀여워 죽겠는데, 부모인 초롱이는 오죽할까?

“그런데 초롱아.”

-부우우.

“너 너무 아기 젖 주는 일을 일찍 그만둔 거 아니야?”

초롱이는 아기들이 태어나고 3일 정도가 지나자마자, 나에게 아기 젖 먹이는 일을 맡겼다. 그리고 예쁜이가 그랬던 것처럼 젖 짜는 일도 곧바로 허락했다.

나로서는 소중한 꿍유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으니 당연히 좋은 일인데. 혹시 초롱이가 억지로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그건 나의 괜한 걱정이었나보다.

-부우우?

초롱이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얼굴을 나에게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대신 젖을 먹이는 게 더 편한 모양이었다.

“알았어. 앞으로도 내가 대신 젖 먹여줄 테니까. 그만 애교부려. 이 녀석들은 꼭 자기가 불리할 것 같으면 그렇게 애교를 부리더라.”

-부우우!

말로는 불평하면서도 내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내가 초롱이와 장난을 치는 사이.

얌꿍이는 잠든 아기 야쿰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빤히 내려다보다 보거나, 냄새를 맡으면서 새로 태어난 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얌꿍아, 동생들이 그렇게 좋아?”

-무우우!

평소에 조용조용하고 크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던 얌꿍이인데, 이번에 새로 태어난 동생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어제도 작은뿔이 새로 태어난 아기들에게 장난을 치려고 하자. 그 모습을 본 얌꿍이가 크게 화를 내며 아기들을 보호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동생의 화난 모습에 작은뿔은 기겁하며 축사에서 도망쳐 버렸다.

그 영향 때문인지 작은뿔은 물론이고, 아꿍이도 새로 태어난 아기들에게 잘 다가오지 않았다. 사고뭉치 오빠와 동생을 단숨에 제압한 얌꿍이가 놀랍기도 하면서 기특했다.

“아롱이, 다롱이는 좋겠네. 이렇게 좋은 언니가 있어서.”

-무우우!

대견한 얌꿍이를 칭찬하며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잠깐만 얌꿍아. 거기 그렇게 있어봐봐.”

-무우?

나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기능을 켰다. 화면에 아기 야쿰들과 얌꿍이의 모습이 비쳤다.

작고 귀여운 얌꿍이 앞에.

더 작고 귀여운 아롱이, 다롱이라니!

이건 도저히 사진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흥분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응?”

휴대폰 화면에는 용량이 부족해 사진을 저장할 수 없다는 알람이 떴다. 급히 사진첩을 확인해 지울 만한 사진을 확인했다.

으으으…….

지울 사진이 없잖아?!

휴대폰 사진첩에는 은율이와 귀여운 야쿰, 그리고 농장 식구들의 사진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잠깐 사진첩을 둘러봤을 뿐인데도 울컥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하나하나가 소중한 추억들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안 되겠어.

당장 사진기와 사진을 저장할 장비를 사야겠다. 이렇게 귀여운 아기들의 모습을 남기지 않는 건 범죄야!

나는 오늘 농장에 퇴근하면 곧바로 사진 장비들을 구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그 전에…….

안드라스 씨 죄송합니다. 장비 새로 사면 많이 찍어드릴게요.

어정쩡하게 나온 안드라스의 사진 하나를 삭제하고, 방금 찍은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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