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22)화 (12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22화

농장에서 취미생활(1) 

처음에는 아이들과 농장 식구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휴대폰 카메라의 기능도 나쁘지 않았지만.

사진을 저장할 용량도 부족했고, 조금 더 생생한 모습을 담고 싶은 마음에 욕심이 생겨났다.

농장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휴대폰 때문에 카메라가 워낙 대중화되다 보니,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았다.

그냥 평범하게 사진을 취미생활을 즐기시는 분들도 계셨고, 나처럼 가족들의 일상을 남기려고 사진을 배우시는 분들도 계셨다.

와…… 그런데.

장비 가격이 좀 비싸네?

지금까지 살면서 사진 장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장비들의 가격이 속된말로 정말 후덜덜했다.

가장 기본적인 카메라 가격은 말할 것도 없고.

렌즈, 메모리, 스탠드, 클리닝 용품, 전용 장비 가방 등등.

수십에서 수백만 원까지 아주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특히 카메라 렌즈는 이 가격이 맞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비싼 제품이 많았다.

자금 사정이 어려웠던 옛날 같았으면 당연히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비싼 장비가 예뻐 보이고 더 좋아 보였다.

취미생활을 즐길 때 장비 욕심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정말 틀린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아직은 시작이니까 너무 욕심부리지는 말자.

쓸데없는 장비 욕심을 억누르며. 인터넷 사이트 이곳저곳에서 추천을 받아 적절한 가격의 장비들을 하나씩 구매했다.

* * *

“시현 님, 이게 다 뭐예요?”

“처음 보는 물건들이군요. 이것도 늘 가지고 다니시는 휴대폰이라는 물건과 비슷한 것들입니까?”

리아네와 안드라스가 처음 보는 물건들을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며칠 전에 주문해 드디어 도착한 카메라와 노트북, 그리고 다른 장비들이었다.

“농장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조금 본격적으로 장비를 구매해 봤어요.”

“휴대폰으로도 사진이라는 것을 찍을 수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이것들은 휴대폰보다 더 크고 무거워서 불편해 보입니다만.”

“대신 더 선명하고 생생한 사진을 찍을 수 있거든요. 저장 공간도 많아서 훨씬 많은 사진을 저장할 수도 있고요. 특히 이 노트북을 이용하면 후보정이나 사진 정리도 쉽게 할 수 있어서 편해요.”

물론 아직 후보정이나 사진 편집 같은 건 할 줄 모른다. 나중에 조금 더 관심이 생기면 공부를 해볼 생각이었다.

나는 노트북 전원을 켜서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가장 먼저 보인 사진은 아기 야쿰 삼 남매가 태어난 다음 날에 찍은 사진이었다.

안드라스가 사진을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이건 처음 아기 야쿰이 태어났을 때군요.”

“저도 기억나요. 출산에 어려움을 겪는 야쿰을 도와주겠다고 시현 님이 축사로 막 달려가셨잖아요. 그때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다고요.”

“저도 들었습니다. 시현 님이 흥분한 야쿰 무리로 혼자 달려가셨다고…….”

“하하, 그랬었죠.”

예쁜이가 어렵게 출산하던 때를 떠올리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나도 그때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빨리 가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달려갔던 것 같았다.

위험한 행동이긴 했어도 그 덕분에 귀여운 아꿍이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으니,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여기 계셨네요?”

“아빠, 뭐해?”

엘프리드와 은율이가 사진을 구경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롱이랑 다롱이다. 어……? 한 마리가 더 있네?”

“은율아, 이건 아롱이, 다롱이가 아니라. 작은뿔, 얌꿍이, 아꿍이가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이야.”

“와아! 정말?”

은율이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사진 속 아기 야쿰 삼 남매를 들여다봤다. 생각해 보니 은율이가 농장에 왔을 때는 삼 남매가 좀 자란 뒤였기 때문에 아기 때 모습은 처음 보는 거였다.

“하하, 그 장난꾸러기 녀석들도 이렇게 작았던 시절이 있었군요.”

엘프리드도 관심을 가지고 노트북의 화면을 바라봤다.

지금껏 농장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한 장씩 넘기며 같이 감상했다. 야쿰뿐만 아니라 다른 농장 식구들의 모습도 많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작은 은색 여우가 사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우의 정체를 모르는 엘프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여우는?”

“은율이가 처음 농장에 왔을 때야.”

“그래요? 선배가 은율이를 데려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처음에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네요.”

“이때 시현 님이 참 고생을 많이 하셨죠.”

리아네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전에는 곁을 내주지 않아 도망만 다니던 때였다. 식사를 챙겨주려고 해도 한참을 찾아다니고 그랬으니까.

-툭! 툭!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은율이가 옷을 잡아당겼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온 사진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은율아, 부끄러워? 사진 정말 귀엽게 나왔는데.”

“으으응. 으응!”

은율이는 빨리 사진을 넘기라고 앙탈을 부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살짝 심술을 부려보고 싶을 정도였다.

다른 농장 식구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지, 흐뭇한 표정으로 은율이를 바라봤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다른 사진 볼게.”

더 사진을 봤다가는 정말로 삐질 것 같아서 황급히 화면의 사진을 넘겼다. 이제는 화면에 아기 여우가 아니라, 소녀의 모습인 사진이 나왔다.

예전에 은율이는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구나…….

사진 속 얼굴에서 어두운 감정의 그늘이 느껴졌다. 지금의 밝아진 모습과 비교해 보면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됐다.

사진을 차례대로 하나씩 넘기다 처음으로 엘프리드의 사진이 나왔다. 그런데 그의 첫 번째 사진은 바로…….

“으악! 이게 갑자기 왜?”

야유회 때 술 마시고 뻗어 있는 사진이었다. 엘프리드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이런 건 왜 남겨놓는 거예요?!”

“왜 남겨놓긴. 이것도 다 즐거운 추억이니까 남겨놓는 거지. 그렇죠?”

리아네와 안드라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도 술에 취한 엘프리드의 사진이 계속 이어졌다. 완전히 풀어진 그의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로 웃음이 터져 나오게 했다.

더 보여줬다가는 정말로 칼이라도 꺼내 들 것 같아서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에 태어난 아롱이, 다롱이 사진을 끝으로, 꽤 길었던 사진 감상이 끝났다. 모두 여운이 살짝 남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사진이라는 건 참 좋네요. 이렇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정말입니다. 마계에도 영상을 기록하는 아티팩트가 있기는 하지만, 많은 장면을 쉽게 남길 수 있는 사진이 과거를 추억하기에는 훨씬 좋아 보이는군요.”

“다 좋긴 한데. 저는 대부분 이상한 사진이 많아서 좀…….”

확실히 엘프리드는 술주정 부릴 때 찍었던 사진이 반이 넘었다. 애초에 농장에서 함께한 시간이 제일 적기도 했고.

아쉬워하는 엘프리드를 위해 새로 산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럼 카메라 새로 산 기념으로 한 장 멋있게 찍어줄게.”

“으음……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얼른 저쪽에 서봐봐.”

나는 가방에서 새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간단한 조작법 정도는 이미 설명서를 통해 익혀놓았다.

“그, 그냥 이렇게 서 있으면 돼요?”

“응. 잠시만……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카메라 특유의 소리와 함께 사진 촬영이 완료됐다. 나는 곧바로 카메라 화면을 통해 방금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엘프리드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내 근처에 몰려들어 사진을 구경했다.

“정말 신기하네요, 선배.”

“더 신기한 거 보여줄까?”

“……?”

가져온 장비 중에 가장 묵직한 물건을 꺼내 들었다. 바로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포토 프린터였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사진을 인화하는 게 더 편하다고 하는데. 마계에서 찍은 사진들을 그런 곳에 맡길 수 없으니, 이번 기회에 포토 프린터도 하나 장만했다.

방금 찍은 사진을 포토 프리터를 이용해 사진 용지에 출력했다. 선명하게 출력된 사진의 모습에 모두가 감탄을 터뜨렸다.

엘프리드도 자신의 사진이 썩 마음에 드는지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의 사진을 부럽게 바라보는 두 명의 어른과 한 명의 아이. 그리고 그 부러움은 곧장 나를 향한 무언의 압박으로 변해갔다.

“알았어요. 다른 분들도 사진 찍어드릴게요.”

“크흠, 그럼 저부터…….”

“아빠! 나도 사진!”

“아! 어쩌지? 오늘 조금 더 예쁜 옷으로 입고 나올걸…….”

메이드 복만 입는 리아네의 예쁜 옷에 대한 궁금증은 뒤로하고, 차례로 농장 식구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엘프리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워낙 외모가 뛰어나서 사진이 아주 잘 나왔다. 물론 그중에서 제일 귀엽고 예쁜 건 말할 것도 없이 은율이였다.

“흐아아암! 뭐가 이렇게 소란스러워?”

늦잠을 잔 카네프가 머리에 캐릭터 수면 안대를 하고 수면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나타났다.

“사장님, 이것 좀 보세요. 시현 님이 사진을 찍어서 이렇게 만들어주셨어요!”

살짝 흥분한 리아네가 자신이 나온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잠시 관심을 보이던 카네프는 다시 심드렁한 표정으로 돌아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사장님도 한 장 찍어드릴까요?”

“흐암…… 뭐 그러던가.”

그의 성의 없는 대답에 살짝 심술이 났다. 최대한 이상한 사진이 나오도록 일부러 대충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이게 말이 돼?

정말 대충 찍었는데. 정작 사진은 전문 사진사가 찍은 것처럼 느낌 충만한 사진이 나왔다. 잠이 덜 깬 그의 표정이 사진 속에는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와…… 이게 타고난다는 건가?

만약에 카네프가 저쪽 세상에 태어났으면 사진 모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뭐해? 나는 그 사진인가 뭔가 안 만들어줘?”

“……만들어드릴게요.”

약간 억울한 감정을 느끼며 카네프에게 사진을 뽑아줬다. 사진을 받아든 그는 역시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사진을 옆으로 치워 버렸다.

저장된 사진 중에서 더 인쇄할 사진이 없나 찾던 도중, 농장 식구들이 모두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기 여러분? 우리 단체로 사진을 한 장 찍을까요?”

“할머니랑 찍었던 가족사진?”

“응, 맞아.”

“가족사진 찍을래!”

은율이가 환하게 웃으며 단체 사진을 반겼고, 다른 농장 식구들도 기대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네프만 귀찮다는 표정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아아. 귀찮게 무슨 단체 사진이야?”

“사장님은 그냥 거기에 계속 앉아계시면 돼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의자에 앉아있는 카네프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가장 덩치가 큰 안드라스가 뒤에, 의자 양옆으로 엘프리드와 리아네가 자리했다.

“자, 은율이는 사장님 무릎 위에 앉자.”

“어, 어어? 은율이는 왜 내 무릎 위에 올려?”

“원래 가족사진에 아이는 가장 어른 무릎 위에 앉는 거예요.”

카네프는 자신의 무릎 위에 자리 잡은 은율이를 어쩌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그의 재밌는 반응에 웃음을 꾹 참고 카메라 쪽으로 향했다.

삼각대를 이용해 카메라의 위치를 조절하고 초점을 맞췄다. 조정이 끝난 뒤 마지막으로 타이머를 설정하고 후다닥 내 위치로 달려갔다.

“5초 뒤에 찍을 거예요. 모두 자연스럽게 웃어요.”

……찰칵!

사진 촬영이 끝나자마자 카메라로 가서 사진을 확인했다. 결과물을 확인하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명 자연스럽게 웃으라고 했는데 모두 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특히 긴장한 카네프의 모습이 가장 어색해 보였다.

그래도 처음으로 모두 함께 찍은 사진이라는 점에서 살짝 뭉클한 기분이었다.

조금 어색해도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곧바로 사진을 인쇄해 농장 식구들에게 한 장씩 나눠줬다. 모두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사진을 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카네프에게 사진을 건네며 물었다.

“어때요, 사장님?”

한참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던 카네프는 아주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뭐…… 나쁘지 않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소중히 사진을 챙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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