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23화
농장에서 취미생활(2)
한차례 사진 찍기 열풍이 끝나고.
다시 꺼내놨던 장비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안드라스가 슬쩍 내 곁으로 다가와 가져온 물건들을 살펴봤다.
“시현 님, 사진을 찍는 장비들 말고도 다른 것들을 많이 가져오셨군요?”
“아…… 이건 인터넷에서 사진 장비들을 구매하는 김에 같이 주문한 것들이에요.”
장비 정리를 대충 끝내놓고, 아직 꺼내놓지 않았던 물건들을 탁자 위에 올려뒀다.
색칠 놀이를 위한 색연필, 또 공부에 필요한 필기구와 노트, 그리고 책 몇 권. 은율이는 벌써 탁자 위에 색연필을 꺼내놓고 색칠 놀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안드라스는 내가 올려놓은 책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시현 님, 이 책들은 어떤 내용의 책입니까?”
“그건 사진 찍는 방법에 관해서 알려주는 책이에요. 취미생활로 조금씩 배워보려고요.”
“선배, 그냥 저 사진기를 찍고 싶은 곳에 대고 작동만 시키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게 사진을 촬영해도 되긴 하는데. 조금 더 멋있고 느낌 있는 사진을 찍으려면 공부해야 할 게 많아. 대상과 상황에 맞춰서 구도와 노출도 신경 써야 하고, 카메라의 기능적인 부분도 적절히 사용해야 하거든.”
어려워지는 이야기에 엘프리드는 금방 관심을 잃어버렸지만, 안드라스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카메라와 책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다른 분들은 취미 같은 것 없으세요? 마족에게도 취미라는 게 있죠?”
내 질문에 색칠 놀이를 하던 은율이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취미? 아빠, 취미가 뭐야?”
“음…… 직업으로 해야 하는 일 말고, 정말 재미있어서 하고 싶은 일?”
설명이 조금 어려웠는지 은율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해를 도우려고 약간 설명을 덧붙였다.
“은율이는 요즘에 아빠가 사준 오디오로 ‘윤지운’ 노래를 자주 듣잖아? 그럼 은율이한테는 노래 감상이 바로 취미인 거야.”
설명을 들은 은율이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나는 아빠랑 놀거나 야쿰들이랑 노는 것도 취미로 할래!”
일반적인 취미의 의미와 약간 다르게 돼버렸지만, 억지로 틀린 부분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항상 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 아이들에게는 모든 게 취미라고 할 수도 있었으니까.
“나도 은율이랑 같이 노는 게 취미야.”
“헤헤!”
은율이는 기분 좋게 웃으며 내 품에 안겼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장 먼저 엘프리드가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는 딱히 취미는 없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시간이 남으면 계속 검 수련만 했었거든요.”
“취미로 한번 해보고 싶은 일도 없었어?”
“으음……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수련이 끝난 뒤에 검을 정비하는 것 정도?”
엘프리드는 검에 대한 일이라면 무조건 진심인듯했다. 확실히 처음 농장에 왔을 때 아주 독하게 수련하던 모습을 보면 취미생활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카네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
“네, 사장님은 취미 같은 건 없으세요?”
“나는 뭐…… 그냥 집에서 맥주 마시고 낮잠 자는 거?”
“…….”
그걸 취미라고 할 수가 있나?
은율이보다 훨씬, 그것도 안 좋은 방향으로, 뒤틀린듯한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정녕 마족 중에는 정상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이 없단 말인가? 나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안드라스 쪽을 바라보았다.
“안드라스 씨는요?”
“저도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지난번 야유회 때처럼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직접 구상해 제작하는 걸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시현 님이 가져다주시는 물건들을 연구하며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오!”
처음으로 나온 그럴듯한 느낌의 취미활동에 살짝 감탄을 터뜨렸다.
“아! 그리고 시현 님과 은율 양의 수업을 진행하는 일도 굉장히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취미라고 할 수 있겠군요.”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맥주 마시고 낮잠을 잔다는 것보다는 수백 배 바람직한 취미생활…….
“그러고 보니 요즘 시현 님의 마계어 공부가 좀 지지부진한 것 같습니다만?”
“…….”
“시현 님이 바쁘신 건 알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시현 님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따로 정리해 왔으니, 나중에 함께 살펴보도록 하죠.”
…….
그냥 맥주 마시고 낮잠을 자는 게 더 바람직할지도?
나는 애써 안드라스의 눈빛을 피하며 마지막 리아네에게 시선을 향했다.
“리아네 씨는 취미 같은 거 없으세요.”
“저는…… 그러니까…….”
그녀는 민망해하는 표정으로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모두 궁금한 표정으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요리…… 하는 게…… 재미있어요.”
리아네의 입에서 요리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마자 안드라스와 카네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아직 상황을 모르는 엘프리드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도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요리가 좋다고 말할 뿐인데, 저렇게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 굉장히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는 준비했던 책 중에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기가 죽어버린 리아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리아네 씨. 저번에 제가 약속했었죠?”
“네? 무슨 약속을…….”
“휴가를 나가기 전에 다녀오면 함께 요리 연습하는 거 도와드리겠다고 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가지고 있던 책을 들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한글로 된 제목을 읽을 순 없었겠지만, 표지만으로도 요리에 관련된 책이라는 걸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아…….”
“허업?!”
“시현 너 설마?!”
안드라스와 카네프가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놀란 표정을 짓는 리아네에게 계속 말을 건넸다.
“어때요? 오늘 점심식사도 준비할 겸, 같이 요리 연습해 보실래요?”
“또 민폐만 끼칠 것 같은데…….”
“조금 못하면 뭐 어때요. 배우면서 늘면 되는 거죠.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셨잖아요. 리아네 씨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다른 분들도 응원해 주실 거예요.”
“시현 님…….”
리아네는 그동안 요리 때문에 속상했던 감정이 복받치는지 금방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해보실 거죠?”
“네…… 시현 님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볼게요.”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드러냈다.
* * *
나와 리아네는 각자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입성했다. 그녀의 눈에는 강한 의지와 도전 욕구가 강하게 피어올랐다.
다른 농장 식구들도 모두 따라왔다.
각자 따라온 이유가 달랐는데.
지금의 상황을 잘 모르는 둘.
은율이는 그냥 내가 가니까, 엘프리드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이곳에 따라왔다.
한편 리아네의 요리를 직접 경험해 본 둘은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위급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따라왔다.
솔직히 나도 자신 있게 요리를 권유했지만, 그녀의 요리를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내심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간절한 그녀 앞에서 티를 낼 순 없었으니 최대한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리아네 씨. 준비되셨죠?”
“네!”
리아네는 요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아주 밝은 표정으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저희가 오늘 도전해 볼 요리는 바로 ‘계란말이’입니다.”
계란말이.
사실 계란말이에 도전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조금 민망한 부분이 있었다. 재료도 단순하고 요리방법도 단순했으니까.
하지만 요리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리아네를 생각한다면 딱 적당한 요리 선정이라고 생각했다.
또 은율이가 좋아하는 반찬이라는 것도 살짝 플러스 요인!
개인적으로 당근과 파를 이용해 색감과 식감을 살리는 걸 좋아하는데. 오늘은 최대한 단순하게 계란과 소금만 이용해서 계란말이를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리아네 씨, 계란말이가 어떤 요리인지는 아시죠?”
“네, 시현 님이 만드시는 것도 몇 번 가까이서 봤어요.”
“요리방법도 굉장히 쉬워요. 기름을 두르고 달군 팬에 계란물을 붓고, 적당히 익으면 조심히 말아주기만 하면 돼요. 쉽죠?”
진짜 너무나도 쉬운 요리방법!
그런데도 리아네는 굉장히 신중하게 내 말을 경청했다.
“바로 시작해 보죠. 저는 옆에서 지켜봐 드릴게요.”
“네, 그럼…….”
그녀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불 위에 기름을 두른 팬을 올리고, 동시에 계란을 깨고 계란물을 준비했다. 소금도 적당히 넣고 잘 휘저어줬다.
여기까지만 보면 숙련된 요리사 같아 보일 정도로 과정이 아주 깔끔했다.
“지금 부으시면 될 것 같아요.”
내 신호에 맞춰 리아네는 적당히 달궈진 팬 위에 계란물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치이이익!
살짝 기름이 튀는 소리와 함께 계란이 노릇노릇 익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뭔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타탁! 타타탓!
갑자기 잘 익고 있던 계란이 작은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어…… 어어?”
혹시나 화력 조절을 잘못했나 싶어 불의 세기도 확인해 봤지만, 그쪽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일단 최대한 화력을 낮춘 상태로 계속 진행했다.
어느 정도 계란이 익고 난 후, 리아네는 뒤집개를 이용해 계란 끄트머리부터 말아나갔다. 중간중간에 계란물을 채워나가며 생각보다 그럴듯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럴듯한 겉모습과는 달리, 이미 냄새부터 정상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풍겨왔다. 리아네도 이미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표정이 시무룩 해졌다.
“계란말이! 계란말이!”
은율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가 완성된 것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음식을 만든 리아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도저히 이 요리를 은율이에게 먹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안드라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금방 내 의도를 파악한 그는 슬쩍 은율이에게 말을 걸었다.
“은율 양, 선생님이랑 같이 잠시 위층에 다녀오겠습니까? 특별히 보여주고 싶은 장난감이 있는데…….”
“장난감? 으음…… 그럼 계란말이는?”
“지금 카네프 님이 계란말이를 엄청나게 먹고 싶어 하시는데, 이번 계란말이는 양보해드리고 나중에 먹으러 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은율이는 살짝 고민이 되는 표정으로 카네프를 바라봤다.
“사장님…… 계란말이 먹고 싶어?”
“으, 응? 어…… 먹고 싶지. 엄청 먹고 싶어!”
카네프도 차마 은율이가 이 계란말이를 먹게 둘 수는 없었는지, 어색한 거짓말을 하며 연기를 했다.
“우웅…… 알았어. 그럼 사장님한테 양보할게.”
“그래. 고마워 은율아.”
“아이고! 우리 딸 너무 착하네. 위에서 선생님이랑 조금만 놀다 오면 금방 맛있는 계란말이 많이 만들어줄게.”
은율이는 나의 칭찬을 듣고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별다른 투정 없이 안드라스를 따라 부엌을 떠나갔다.
다행히 잘 둘러대서 은율이를 내보내고.
리아네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일단 시식을 해볼까요?”
“겉모습은 괜찮은 것 같은데.”
“하아…… 내가 이 요리를 또 먹을 줄이야.”
나, 엘프리드, 카네프가 순서대로 계란말이 한 조각씩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입안에 계란말이를 넣자마자 곧바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으윽?!!”
“이, 이거 맛이 왜 이렇죠? 식감은 또 왜 이렇고?”
“…….”
그나마 리아네의 요리에 가장 익숙한 카네프만이 묵묵히 계란말이를 씹어 넘겼다.
분명 계란과 소금만 넣었을 터인데…… 거기다 조리 과정도 정확하게 이루어졌는데…….
계란말이 곳곳에서 여러 가지 괴상한 맛이 느껴졌다. 탄 맛 같기도 하고, 약간 썩은 맛 같기도 했다.
심지어 식감도 계란말이 특유의 부드러움보다는, 기분이 나쁜 물컹함 쪽에 가까웠다.
이런 걸 명불허전이라고 해야 하나?
쉬운 요리를 옆에서 도와주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
리아네는 다시 자신감을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가 괜히 또 마음의 상처를 준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끄응…….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