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25화
위기의 딸기밭(1)
농장의 간식 시간.
오늘 내가 준비한 간식은 감자전!
고향의 사과 아저씨가 집으로 감자를 몇 박스씩 보내서, 지금 감자가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았다.
옆집의 서예린에게 좀 나눠주고, 어머니가 필요한 만큼을 빼고는 전부 마계농장으로 가져왔다.
덕분에 농장의 간식과 반찬에 감자 재료 비율이 높아졌다.
그래도 사과 아저씨가 좋은 감자를 보내주셔서 그런지, 감자 요리에 대한 농장 식구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나는 접시 위에 감자전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감자전 안쪽에는 옥수수 콘과 치즈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안에는 포슬포슬한 감자와 찐득한 콘치즈가 조화를 이뤘다.
“은율아, 뜨거우니까 아빠가 식혀줄게.”
적당한 크기의 조각을 집어 입으로 후후 불었다. 적당히 뜨거운 김을 날려 보낸 뒤, 감자전을 여우 소녀의 입가로 가져갔다.
어미의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 새처럼.
은율이는 작은 입을 벌리고 감자전을 받아먹었다. 혹시 뜨겁지 않을까 싶어서 걱정스럽게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은율이는 통통하고 귀여운 볼을 열심히 움직이며 감자전을 맛봤다.
기대 반, 걱정 반이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은율아, 어때? 감자전 맛있어?”
“응! 맛있어.”
맛있다는 말에 입꼬리가 살짝 씰룩거렸다. 은율이의 이어진 말에 씰룩이던 입꼬리가 귀밑까지 쭉 올라갔다.
“아빠가 만든 요리는 전부 다 맛있어!”
“아이구, 고마워라! 우리 귀여운 은율이는 어쩜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할까?”
“꺄하하하!”
넘치는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은율이를 꽉 껴안았다. 아이는 품 안에서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은월족 사람들이 방문한 뒤, 은율이에 대한 나의 애정은 더욱 커졌다.
정말로 이 아이의 아빠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모든 게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감정의 조절장치가 고장 난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아닌 행동과 말 한마디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아빠한테 말해. 최고로 맛있게 만들어줄 테니까.”
“응!”
“자∼! 감자전 식기 전에 얼른 먹자.”
나는 다시 감자전을 먹기 좋게 잘라, 품 안에 있는 은율이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감정을 실제로 느끼며 싱글벙글 웃었다.
엘프리드가 약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은율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시현 선배는 예전보다 팔불출 느낌이 더욱 강해지셨네요.”
“그래?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확실히 달라지셨어요. 요즘에는 은율이랑 있으면 주변에 꽃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니까요.”
“하하, 그런가……. 은율아, 아∼! 아이구, 잘 먹는다.”
내가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은율이에게만 신경을 쓰자, 엘프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른 사람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안드라스 선배, 자식이 생기면 저렇게 행동하는 게 일반적인 걸까요?”
“왜 그러십니까? 저는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만?”
“저도 나쁘다는 건 아닌데. 제가 가문에서 보았던 거랑은 차이가 좀 있어서요.”
“규칙과 예절을 중요시하는 귀족 가문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뭐…… 제 어머니께서는 시현 님과 비슷한 느낌이시긴 하셨지만 말이죠.”
감자전을 맛있게 먹고 있던 리아네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우물우물…… 저희 부모님도 시현 님과 비슷하셨어요. 어렸을 때 엄청 많이 안아주시고 예뻐해 주셨거든요.”
“흐음…… 그렇군요.”
“그래도 최근에 시현 님의 애정표현이 많이 늘어나긴 했죠. 아마 카네프 님이 계셨으면 뭐라고 하셨을 텐데…….”
리아네가 카네프를 언급하자 모든 농장 식구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식탁에 비어 있는 한 자리.
항상 카네프가 앉았던 가장 상석인 자리였다.
나는 빈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장님은 지금쯤 도착하셨을까요?”
“어떻게든 빨리 일을 끝내고 돌아오고 싶다고 하셨으니까, 이르긴 해도 지금쯤이면 도착하셨을 겁니다.”
사장님이 농장을 떠난 지 며칠째. 예상한 대로 농장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애초에 대낮부터 뒹굴뒹굴하며 게으름 피우던 분이었기에 문제가 생길 리 없었다.
오히려 식사 준비나 청소 같은 부분에서 일이 더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첫 하루 이틀 정도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그의 세상 귀찮은 표정이 조금씩 그리워지는 것 같았다.
다른 농장 식구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지, 약간 그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장님, 식사는 잘 챙겨 드시고 있으려나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아무리 험난한 상황에서도 자기 몫은 잘 챙기시던 분이니까요. 오히려 시현 님의 음식에 익숙해져서, 다른 분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계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그러게요…….”
안드라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반찬 투정으로 억지를 부리고 있을 카네프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그렸다.
-툭. 툭.
은율이가 내 품에서 옷을 잡아당겼다.
“은율아, 왜?”
“아빠. 사장님은 언제 돌아와?”
“사장님? 으음……. 은율이가 열 밤 정도만 자고 나면 돌아오시지 않을까?”
내 대답을 들은 은율이가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열을 세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은율이는 빨리 사장님이 돌아왔으면 좋겠어?”
“응……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
첫 만남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카네프를 무서워했던 은율이. 지금은 그 공포심이 많이 사라져서, 다른 농장 식구들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
그 변화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식구들도 흐뭇하게 은율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살짝 시무룩한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기운을 북돋아줬다.
“사장님은 금방 돌아오실 거야. 그러니까 은율이도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자. 알았지?”
“응. 알았어.”
“정말 착하네! 우리 은율이. 감자전 더 만들어줄까?”
“더 먹을래!”
은율이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감자전을 만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안드라스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냈다.
“크흠, 시현 님. 은율 양 것을 만드시는 김에…….”
“저도 하나만 더…….”
“그럼 저도…….”
세 사람은 민망한 듯 빈 접시를 내보였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쌓여 있는 감자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 * *
간식 시간이 끝나고, 은율이는 포만감에 나른해진 표정으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리아네에게 낮잠 재우는 것을 맡기고. 안드라스, 엘프리드와 함께 딸기밭으로 향했다.
“시현 님 오셨습니까?”
“네, 안녕하세요. 포코 영감님.”
우리를 발견한 포코 영감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아직도 과하게 공손한 태도가 부담스러워서 어색한 모습으로 인사를 받았다.
내가 훨씬 나이가 적으니 조금 편하게 대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는 절대로 공손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 상인들이 방문하시는 것 때문에 오셨습니까?”
“네, 딸기 수확은 잘 마무리되고 있나요?”
“수확은 어제 다 마무리됐고. 상인들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마을로 옮길 예정입니다. 조금 있으면 마차에 옮길 생각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
“저희도 도와드릴게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일손은 충분하니 여기서 함께 오신 두 분과 이야기 나누고 계시지요.”
“아…… 예.”
포코 영감은 내가 돕겠다는 말을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칼같이 거절했다.
눈동자에서 매섭게 흘러나오는 압박감에 더는 돕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마차가 준비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포코 영감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마차에 딸기를 싣는 수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쩝……. 예전에는 친근하게 같이 어울리면서, 일도 도와주고 그랬는데. 제가 불편해진 걸까요?”
내 중얼거림을 들은 안드라스가 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저분도 저분 나름대로 시현 님을 배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저도 안드라스 선배 말에 동의해요. 무조건 친근하게 대한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저 포코 영감이라는 분도 그런 점에서 더 냉정하게 행동하는 것 같은데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니 포코 영감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그는 아마도 나의 친근한 행동이 수인들이 일하는 데 있어서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선배, 딸기밭도 정말 많이 커졌네요. 제가 처음 농장에 왔을 때는 지금 규모의 반도 안 됐던 것 같은데…….”
“엘린 군 말대로 저도 꽤 놀랐습니다. 짧은 기간에 이렇게까지 규모를 늘릴 수 있을 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게요. 거짓말 안 하고 처음 딸기밭과 비교해서 3배는 넘게 커진 것 같은데요?”
최근에 저장고의 딸기를 모두 잃어버리는 안 좋은 일을 겪기는 했지만, 그와 별개로 딸기밭 확장은 계속해서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었다.
가장 큰 역할을 해준 건 역시 규리와 요정 친구들. 그리고 수인 마을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딸기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안다고 할 수 있는 포코 영감의 지휘 아래, 거의 수인 마을의 모든 인원이 동원되어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일당을 넉넉히 챙겨준 것도 영향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수인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정말 열심히 딸기밭에서 구슬땀 흘리며 일했다.
대충 딸기밭의 모습만 살펴봐도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이곳에 노력을 쏟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수인 마을 아이들 대부분이 커서 딸기밭에서 일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딸기밭과 수인 마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확장했는데도 아직 에르긴, 알고트는 공급 물량이 부족하다고 징징거렸다.
마계에서 딸기가 생산되는 곳은 여기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안드라스, 엘프리드와 함께 딸기밭을 흐뭇하게 둘러보고 있을 때, 한 수인이 허겁지겁 딸기밭으로 올라왔다.
그 수인은 곧장 포코 영감에게 달려가더니. 숨돌릴 틈도 없이 급하게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새하얗게 질린 표정의 포코 영감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얼마나 다급한지 혹시 넘어질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시, 시현 님!”
“영감님, 무슨 일이세요?”
“그, 그게 큰일 났습니다. 지금 마을에 영주님의 아드님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영주님의 아드님?”
순간 내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안드라스가 나서서 말을 이어받았다.
“셀베르크 가문의 소영주가 방문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예전에 기억을 더듬으며 ‘셀베르크’라는 이름에 관한 정보를 떠올렸다.
“셀베르크 가문이면……. 이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의 가문이죠?”
“네, 맞습니다. 시현 님.”
“그런데 그 가문에서 갑자기 수인 마을에는 왜……. 지난번에 들어보니까 별로 관심도 없다고 하던데.”
“글쎄요. 예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
안드라스는 다시 포코 영감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지금 마을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셀베르크 공자님께서 기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마을의 모든 사람을 한곳에 끌어내는 중이랍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말끝을 흐렸다.
“네에? 갑자기 그게 무슨…….”
“소식을 전한 마을 주민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죄인을 찾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잡아낸다고 합니다.”
불안과 걱정이 가득한 포코 영감의 이야기에 우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