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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29)화 (12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29화

명예 결투(2) 

“그럼 준비하거라.”

“자, 잠시…….”

내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카엘의 모습이 눈앞에서 스르륵 사라졌다.

머리로 이상함을 느끼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올려 방어태세를 취했다.

-까아앙!!

곧이어 검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충격!

상대의 무기가 나무 막대기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었다.

끙끙대며 일격을 막아낸 나와 달리, 카엘은 정말 가벼운 표정과 함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호오? 생각보다 감이 나쁘지 않구나. 그래도 손자가 허투루 가르치지는 않은 모양이야.”

“으윽…….”

“조금 더 강하게 몰아붙여도 될 것 같구나.”

그 말을 끝으로 정말 지옥 같은 공격이 나를 향해 연속으로 쏟아졌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온 힘을 다해 공격을 막아냈지만, 갈수록 놓치는 공격이 많아지면서 나무 막대기가 내 몸 곳곳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엘프리드와 수련을 하면서도 이렇게 일방적인 공격을 당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카엘의 공격과 엘프리드의 공격은 본질적인 부분에서 느낌이 달랐다.

엘프리드의 공격이 아무리 매서워도 막아내다 보면 조금씩 그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상대방 특유의 호흡과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맞춰나가다 보면, 그 흐름에 맞춰 어느 정도 상대의 공격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카엘의 공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 번, 한 번의 공격이 전혀 다른 호흡. 전혀 다른 움직임으로 이뤄졌다. 마치 갑자기 나타난 귀신이 공격하는 것처럼 흐름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이래서 ‘죽음을 피하는 법’인 건가?

기술과 경험을 기르는 검술 수련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무 막대기가 온몸을 두드릴 때마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머리카락이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어떻게든 공격을 피해내고자 감각과 신경이 최대로 날카로워졌다.

귀신의 장난처럼 느껴지던 공격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금방 내 변화를 눈치챈 카엘이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 감각이야.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아직…….”

나무 막대기가 잠시 흐릿해지더니 순간 옆구리를 노리고 깊숙하게 찔러 들어왔다. 뒤늦게 눈치챈 공격에서 내가 손쓸 수 있는 틈은 없었다.

“커헉!”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동시에 온몸에서 억누르고 있던 통증이 밀려왔다.

-털썩.

나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끙끙대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카엘이 느긋하게 말을 걸었다.

“생각보다는 잘 버텨줬구나. 하지만 방금 느꼈던 그 감각을 빨리 끌어내지 못한다면 절대 결투에서 이길 수 없어.”

“허억…… 헉…… 그렇…… 습니까?”

“그래, 지금은 그 감각을 끌어내는 데에만 집중하거라.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

잠시 나를 내려다보던 카엘은 나무 막대기로 다리를 부분을 툭툭 건드렸다.

“언제까지 누워서 이 늙은이를 기다리게 할 셈이냐. 얼른 다시 일어나거라.”

“예? 방금 쉬기 시작했는데…….”

“네가 원래 사는 세상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마계에서는 힘들다고 해서 죽음이 기다려주지 않는단다.”

다시 나무 막대기가 흐릿해졌다. 순간 몸을 비틀며 반대 방향으로 굴렀다.

-퍼억!!

나무 막대기는 그대로 내가 있던 자리에 내려꽂히며 살벌한 소리를 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정말로 죽음을 경험할 뻔했다.

나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쥐었다. 내 앞으로 카엘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자세를 취해 보였다.

“자…… 이제 감을 좀 잡았을 테니. 아까보다 조금 더 강도를 올려야겠구나. 정말 죽을힘을 다해 막아 보거라.”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흐릿해지는 카엘의 모습을 무섭게 바라봤다.

더는 그의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나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려는 작은 사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 * *

카엘에게 ‘죽음을 피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지 3일째. 여전히 그와의 수련은 고통스럽게 힘들었다.

그나마 변한 점이라고 한다면, 흐릿하게 느껴졌던 그의 움직임이 조금씩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선명하게 본다고 해서 공격을 막아내는 건 아니었지만…….

“크흑!”

이번에는 허벅지 쪽에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다리 쪽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에 온몸이 후들거렸지만, 정신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아프다고 긴장감을 놓는 순간, 더 큰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이미 몸으로 충분히 체득한 상황이었다.

으윽…… 저 나무 막대기는 부러지지도 않나?!

분명 평범한 나무 막대기일 텐데, 휘두를 때마다 벼락을 치는 듯한 엄청난 소리와 함께 주변을 박살 내버렸다.

또 나무 막대기에 맞을 때마다 어찌나 아픈지…… 베르딕 가문에서는 상대를 아프게 때리는 비법이 따로 전수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정신없는 공격과 끔찍한 고통 때문에 오직 수비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죽을 것 같은 고통에도 익숙해진 탓인지 조금씩 오기가 생겨났다.

3일 내내 나무 막대기에 맞으면서, 오기가 생기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한 거겠지…….

날카로워진 감각만큼 예리해진 시선으로 카엘의 움직임을 살폈다.

여전히 움직임의 흐름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정말 아주 짧은 순간 그의 움직임을 예상해 보려 시도했다.

귀신같은 카엘의 공격이 이어지고.

고통으로 인해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눈은 절대 카엘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

……지금!!

3일 동안 방어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카엘의 움직임에 맞춰 공격을 시도했다. 반쯤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내지른 공격이 정확히 카엘의 움직임을 뒤따랐다.

-쑤우욱!!

이거 정말 공격에 성공하는 거 아니야?!

……라고 잠시 설레던 그 순간. 카엘의 모습이 흐릿해지는 것을 넘어 살짝 일그러지더니 완벽하게 내 공격을 회피했다.

귓가에 카엘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막무가내로 내지르는 공격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암요, 어르신…….

수비를 생각하지 않은 무리한 공격의 결과는 엘프리드에게 항상 몸으로 배워왔었다.

카엘의 속삭임이 끝나자마자 옆구리에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크흑!!”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자세를 무너뜨리며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나는 마지막 공격에 실패한 것에 대한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십니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안드라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반쯤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허억…… 헉…… 이게 지금 괜찮아 보이세요?”

내 대답에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요. 시원한 물이라도 조금 드시겠습니까?”

3일 동안 엄청나게 맞기는 했어도.

뼈가 부러진다든가, 움직임에 지장을 줄 정도로 크게 다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이 수련이 더 무섭기도 했다.

“할아버님, 수건이랑 물 가져왔습니다.”

“에구구, 고맙구나.”

카엘은 엘프리드에게서 시원한 물을 받아들며 근처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 공격은 조금 무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3일 동안 열심히 한 보람이 이제야 조금 나타나는 모양이구나.”

“감사합니다…… 어르신.”

처음 들어보는 카엘의 칭찬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슬쩍 미소를 지었다.

“시현 님, 이것 좀 드셔보시겠습니까?”

“응? 이건?”

안드라스 손에는 우윳빛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마왕성에서 보내온 포션입니다. 피로 회복과 활력 보충에 효과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가 유리병의 뚜껑을 열자 향긋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음? 이 냄새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며 유리병의 포션을 반쯤 들이켰다.

포션이 뱃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신 것처럼 뜨끈한 기운이 안쪽에서 끓어올랐다. 그 기운은 순식간에 온몸을 휘저으며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오오…… 이거 효과가 엄청난데요?”

“뭔가 익숙한 점, 못 느끼셨습니까?”

“……?”

“우리 농장에서 생산한 꿍유로 만든 포션입니다.”

“와! 진짜요?”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했더니. 꿍유로 포션을 만들었을 줄이야.

확실히 반병만 마셨을 뿐인데도 피로가 사라지고 온몸에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다.

“허허, 잘 됐구나. 그렇게 효과가 좋은 포션이라면 더 빨리 수련을 시작할 수 있겠어.”

“…….”

“힘내십시오. 시현 님. 계속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이걸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왕성에서 보내준 포션 덕분에 금방 다시 수련이 재개됐다.

카엘의 공격을 버티다 쓰러지면, 다시 포션을 마셔서 회복하고.

버티다 쓰러지면, 포션으로 회복하고…….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은 상황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으어억!”

나는 마지막으로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정말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후들거렸다.

완전히 탈진해 버린 나에게 카엘이 다가왔다. 하루 종일 나를 상대했음에도 그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고했다.”

“어르신도…… 고생하셨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따라와 줬구나. 이 정도라면 오늘 당장 두 번째 수련을 시작해도 되겠어.”

“……예?”

두 번째 수련?

내가 너무 피곤해서 잘 못 들었나?

카엘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내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품에서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달칵!

상자를 열자 안에는 검푸른 구슬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카엘은 그중에 하나를 집어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시현, 입을 벌려 보거라.”

“예? 도대체 뭘 하시려고…….”

“3일 동안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렸으니, 이제 당연히 실전을 경험해야 하지 않겠느냐?”

“……???”

어르신…….

3일 동안 나무 막대기로 맞으면서 땅바닥을 구른 건 실전이 아닌 건가요?

이런 나의 어이없는 마음을 모르는 건지, 카엘은 검푸른 구슬을 억지로 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으억…… 어, 어르신?! 컥!”

“걱정하지 말아라.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금방 끝나 있을 테니…….”

카엘의 작지만 억센 손길에 검푸른 구슬은 강제로 내 입안에 들어왔다.

그런데 굉장히 신기하게도 구슬은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마치 솜사탕처럼 그 형체를 잃어버렸다. 혀끝에 아주 잠시 닿았던 느낌만 제외하면, 그 어떤 맛이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뭐지?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의문을 가지려는 순간.

마취를 당한 것처럼, 순식간에 의식이 아득해졌다. 눈앞에 보이는 카엘의 미소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의식이 끊어져 버렸다.

* * *

“뭐야? 왜 마족이 아니라 인간이 찾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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