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4화
초대장(1)
명예 결투가 끝나고, 농장은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평소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아직 왼쪽 어깨의 부상 때문에 완벽히 농장일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일 몇 가지만 제외하고, 나머지 농장일은 계속 내가 도맡아 해냈다.
예를 들면…….
아롱이, 다롱이의 꿍유를 챙겨주는 일.
-꿀꺽, 꿀꺽.
내 무릎 위에서 다롱이가 젖병의 꿍유를 받아 마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젖병 사용을 어색해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익숙해졌다.
명예 결투 때문에 한동안 아롱이와 다롱이를 챙기는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두 아기 모두 이상 없이 건강하게 자라는 중이었다.
작았던 몸집은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랐고, 뽀송뽀송한 털에는 윤기가 흘렀다. 머리에 흔적만 있던 뿔도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젖병을 빠는 힘만 느껴봐도 아기 야쿰들이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당연히 치명적인 귀여움도 나날이 커졌다.
-뽁!
“다 먹었어?”
-무우…….
다롱이는 작게 울음소리를 내고는 내 품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살짝 배 쪽을 만져보니 벌써 배가 빵빵해져 있었다.
-무우우.
동생의 식사가 끝나자 옆에서 조용한 기다리고 있던 아롱이가 옆으로 다가왔다.
“아롱이도 동생이랑 같이 잘래?”
-무우우!
아롱이를 들어 조심스럽게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동생에게 다가가 그 곁에 자리를 잡았다. 다롱이도 언니의 냄새를 맡고는 자연스럽게 딱 달라붙었다.
내 무릎 위에서 금방 잠이 들어버리는 아기 야쿰들.
으아아……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아프다.
사진기로 이 장면을 선명하게 남겼어야 했는데!!
나는 휴대폰을 꺼내 아기 야쿰의 잠자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아쉬움을 달랬다.
확실히 새로 태어난 아롱이, 다롱이 자매는 엄청 얌전했다. 먼저 태어난 삼 남매의 경우에는 식사 시간마다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식탐과 욕심이 많은 작은뿔은 항상 동생의 몫을 뺏어 먹으려고 달려들었고, 호기심 강한 아꿍이는 밥 먹는 시간에도 절대 가만히 있는 경우가 없었다.
그나마 얌전한 얌꿍이가 어느 정도 완충작용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분명 몇 번은 더 몸살로 쓰러졌을 거다.
반면에 아롱이, 달롱이 자매의 경우에는 정말 정말 차분했다. 둘 중 하나가 꿍유를 먹고 있으면, 나머지 하나는 곁에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조용히 지켜봤다.
식사 시간마다 따로 분리를 시키지 않으면 안 됐던 삼 남매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어깨 부상이 아직 완쾌되지 않았어도 아롱이, 다롱이 꿍유를 챙기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아마 삼 남매였으면 힘들었을지도…….”
야쿰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이제는 아기라고 부를 수 없는 야쿰 삼 남매가 축사로 쪼르르 함께 들어왔다.
가장 먼저 내 쪽으로 다가온 건 얌꿍이었다.
-무우우?
“쉬잇, 아기들 방금 잠들었어.”
-무우…….
얌꿍이는 금방 내 말을 알아듣고 울음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다가와 아롱이, 다롱이를 빤히 바라봤다.
엄마인 초롱이와 나를 제외하면 새로 태어난 아기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건 바로 얌꿍이었다.
성격이 안 맞는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조금 외로웠는지, 항상 아기들 곁을 맴돌았다.
항상 조용하던 얌꿍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았다. 특히 큰언니 역할을 자처하며 아기들을 보호하는 모습은 너무나 기특한 일이었다.
반면에 작은뿔과 아꿍이는 아기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작은뿔은 어린 동생들에게 장난을 치려다가 예쁜이에게 혼나고, 나에게 혼나고, 심지어 여동생인 얌꿍이에게도 혼나는…….
무려 3단 꾸중을 듣고 난 뒤에는 절대 어린 동생들에게 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때 시무룩한 작은뿔의 모습이 안쓰럽긴 했는데, 아직 보호가 필요한 아기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꿍이의 경우 근처를 맴돌긴 했지만, 아기들에게 크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갑자기 무서워진 누나 때문에 장난을 치지도 않았다.
단지 막내라는 포지션을 아기들에게 뺏겨서 조금 쓸쓸해 하는 느낌?
나도 새로 태어난 아기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주다 보니. 평소에 어리광을 많이 부리던 아꿍이 입장에서는 관심을 뺏겼다고 느낄만했다.
그래도 어린 동생들에게 그런지 심술을 부리거나, 억지로 떼를 쓰는 일은 없었다.
거기다 내가 어깨를 다쳐서 그런지, 작은뿔이나 아꿍이도 평소보다 장난스러운 모습이 많이 줄었다. 조금씩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니 찡한 마음이 들었다.
기특한 마음에 삼 남매를 한 번씩 쓰다듬어주었다. 녀석들도 오랜만에 내 손길이 좋았는지 주변으로 몰려와 자리를 잡아버렸다.
오랜만에 아기 야쿰들에게 느껴보는 행복감.
잠시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짓다가,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나가지? 조금 있으면 점심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그 상태로 한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이들에게 강제로 붙잡혀 있어야 했다.
* * *
오늘의 점심 메뉴는 오므라이스!
어깨 부상으로 인해 재료 준비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끝냈다.
준비된 재료와 고슬고슬한 밥을 잘 볶아주고, 오므라이스에 빠질 수 없는 달걀 지단을 준비했다.
골고루 잘 볶아진 밥 위에 달걀 지단을 잘 감싸고 소스를 듬뿍 올려주면 끝!
간단하게 만든 샐러드와 따뜻한 오므라이스를 리아네의 도움을 받아 식탁 위로 옮겼다. 침샘을 자극하는 달달한 소스의 냄새가 식당에 가득해졌다.
농장 식구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고.
얼마 전에 복귀한 카네프가 상석 자리에 앉아 식사의 시작을 알렸다.
“먹자.”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선배!”
옆자리의 은율이의 식사를 챙기면서 식구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살펴봤다.
내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건, 농장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나의 습관이었다.
리아네는 표정에 바로 드러나는 편이라 반응을 살피기 쉬웠다. 그녀는 오므라이스를 볼에 가득 넣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엘프리드.
식사 예절을 깐깐하게 지키는 편이라 표정의 변화가 많이 없어서 처음에는 반응을 살피기 힘들었는데.
요즘에는 데이터베이스를 많이 축적해놔서 그의 미세한 반응에 대한 확인이 가능했다. 다행히 오늘 점심은 꽤 마음에 드는 편인 것으로 보였다.
다음은 은율이.
사랑스러운 여우 소녀는 뭐…….
“은율아, 맛있어?”
“응!! 맛있어.”
당연히 프리패스!
다른 식구들도 맛있다는 반응을 보이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최고는 은율이의 반응이었다.
어머니에게 은율이에게 억지로라도 식사를 챙겨주려고 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은율이에게 시선을 돌려 카네프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카네프는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살짝 불안한 마음으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사장님? 혹시 요리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니! 오므라이스는 마음에 드는데…….”
“……?”
“도대체 저 영감탱이가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야? 그리고 식사는 왜 계속 챙겨주는데?”
“…….”
오늘 제르무어 부단장으로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안드라스의 자리에 앉아 있는 엘프리드와 비슷한 분위기의 어린 소년
소년은 오므라이스가 맛있었는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엘프리드처럼 식사 예절은 딱딱 지키면서도, 반응은 리아네 급으로 확연해서 나에게 새로운 뿌듯함을 주고 있었다.
“시현아, 이 오므라이스라는 것도 굉장히 맛있구나.”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어르신.”
겉모습과 괴리감이 느껴지던 말투도 이제는 꽤 적응해서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해졌다.
그 모습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바라보던 카네프가 불쑥 끼어들었다.
“영감탱이, 언제까지 여기 붙어 있을 생각이야? 이제 슬슬 돌아가는 게 어때?”
“내가 어디에 있든 네놈이 왜 신경 쓰느냐?”
“당연히 이곳의 책임자가 나니까 그렇지!”
카엘은 카네프를 바라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동안 여기서 지내며 지켜본 바로는 책임자가 아니라, 그냥 놀고먹는 식객으로 보이더구나.”
“…….”
“농장의 중요한 일은 시현이 다 도맡아서 하고. 다른 아이들도 각자 하는 일이 정해져 있는데, 너는 온종일 빈둥대는 게 전부이지 않으냐?”
“…….”
“차라리 내가 이 농장에 와서 한 일이 더 많아 보일 정도야.”
실제로 카엘은 자신의 위치에 걸맞지 않게 농장일을 꽤 부지런하게 도왔다.
엘프리드와 함께 마구간을 청소하거나, 리아네를 따라 집안일을 도왔고, 가끔은 은율이와 놀아주면서 공부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요즘은 어깨를 다친 나를 대신해서 엘프리드의 대련 상대까지 해주고 있으니, 정말 카네프보다 하는 일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말에 밀릴 정도였다면, 카네프의 악명이 그렇게까지 퍼져나갔겠는가?
“그래서 뭐? 내가 마음대로 놀고먹겠다는데.”
역시 사장님.
카네프는 오히려 뻔뻔한 얼굴로 대꾸했다.
하지만 카엘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가문으로 돌아가서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 여기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이참에 마왕님께 정식으로 제안을 보내봐야겠어.”
아예 농장에 눌러앉겠다는 말에 카네프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으득…… 정말 나랑 해보자는 거야?”
“그런 위협이 나한테 통할 것 같으냐? 그리고 너도 이제 좀 어른스럽게 행동하거라. 언제까지 그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행동할 거냐?”
“이 영감탱이가……!”
“어휴! 두 분 다 그만 하세요.”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지려는 걸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두 분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식사를 제대로 못 하잖아요. 그리고 은율이도 보고 있는데 안 부끄러우세요?”
“크흠…….”
“쳇…….”
은율이를 언급하자마자 두 사람은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기세를 낮췄다. 눈치를 보던 엘프리드와 리아네가 내 쪽으로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마계에서 두 사람의 지위가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지금 나로서는 식사 자리를 방해하는 사람으로밖에 안 보였다.
식당에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던 그때.
누군가 급하게 식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부단장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던 안드라스였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엄청 일찍 오셨네요? 오늘은 저녁쯤에나 돌아오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아…… 예. 오늘 아침에 제가 그랬었죠. 그런데 갑자기 전해야 할 소식이 생겨서 급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는 큰 걸음걸이로 카네프에게 곧장 다가섰다.
“뭐야?”
“카네프 님에게 온 편지입니다. 읽어보시죠.”
“나한테?”
카네프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뭔가를 확인하고 약간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동봉된 부분을 뜯어내고 안의 내용물을 꺼내 곧바로 읽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미사여구가 너무 많다며 투덜거리면서도 그는 멈추지 않고 편지를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옆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안드라스를 보아하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식구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긴장과 의문이 뒤섞인 표정으로 카네프 쪽을 바라봤다.
잠시 후.
편지를 모두 읽은 카네프의 표정에 귀찮음이 가득해졌다.
“아…… 귀찮게…… 이거 진짜야? 네가 쓴 거 아니지?”
“제, 제가요?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분을 사칭해서 편지를 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쩝…….”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 누구한테서 온 편지인데요?”
“이거? 나한테 귀찮은 일을 시킬 존재가 누구겠어?”
“……?”
“당연히 마왕님에게서 온 편지지.”
마왕이라는 존재가 언급되자마자, 나와 은율이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나마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던 카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왕님께서 뭐라고 편지에 적으셨느냐?”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쟤를 직접 보고 싶다는데.”
카네프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자연스레 다른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카네프에게 되물었다.
“사, 사장님? 저요?”
“응.”
“…….”
“마왕님이 너 직접 보고 싶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