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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5)화 (135/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5화

초대장(2) 

마계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

소설이나 동화책 같은 창작물에서는 항상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그분!

그리고 어찌 보면 농장의 실질적인 소유주이면서 동시에 나의 고용주라고 할 수 있는 분…….

그런 마왕님께서 날 부르시다니…….

뭔가 굉장히 설레면서 한편으론 두렵게 느껴졌다.

마왕이 날 부른다는 소식에 카엘이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구나.”

“좋은…… 일인 건가요?”

“물론이지. 마왕님께서 직접 부르시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야. 마족에게 있어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지.”

그의 설명을 들으니 벌써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으음…… 그러니까 저는 마왕님이 계시는 마왕성으로 가는 거죠? 설마 저 혼자 가나요?”

“아니. 편지에 너만 따로 언급되어있을 뿐이고, 농장의 다른 사람들도 전부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어.”

“그, 그럼 저희도 마왕님을 뵈러 가는 건가요?”

리아네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카네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되겠지.”

“와아…… 내가 마왕님의 부름을 받다니…….”

리아네는 물론이고 엘프리드도 살짝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카네프는 정말 귀찮다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그 재수 없는 전령이나 보낼 것이지…… 뭐하러 귀찮게 마왕성으로 부르는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카네프 님. 그만큼 농장에서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는 증거니까요.”

“성과는 저 녀석이 다 냈는데. 나는 왜 부르냐고? 이제 겨우 농장으로 돌아와 빈둥거리려고 했더니…….”

안드라스가 좋은 말로 카네프를 달래려 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카엘은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혀를 찼다.

“아빠, 마왕님한테 가는 거야?”

옆에 있던 은율이가 내 옷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응.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은율이도?”

은율이가 기대감을 가득 담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봤다. 초롱초롱 눈빛 공격에 못 이겨 급하게 카네프 쪽을 바라봤다.

“사장님, 은율이도 데려가도 될까요?”

“상관없어. 어차피 거기에 꽤 오래 머물 거니까 데려가는 게 좋을 거야.”

예상외로 생각보다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와아아!”

은율이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를 질렀다. 아마도 마왕을 만나는 것보다는 나와 함께 어디로 떠나는 것에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너도 어머니께 한동안 집에 못 돌아간다고 미리 말씀드려야 할 거야. 최소한 5일에서 7일 정도 걸릴 거니까.”

“엑? 마왕성까지 가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요?”

“가는 데는 얼마 안 걸려. 대신에 근처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좀 걸릴 거야.”

“……?”

“마왕의 초대를 받았다고 해도, 마왕성은 그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출입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려야 해.”

초대해놓고 기다리게 만든다는 번거로운 절차를 들으니 묘하게 더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럼 저희는 언제 출발하죠?”

“언제긴 언제야. 당장 내일 출발해야지.”

“……?”

* * *

농장에서 퇴근해 인페리스 사무소로 돌아왔다. 발레리안이 평소보다 훨씬 더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돌아오셨군요. 소식은 전해 들으셨죠?”

“네. 마왕님께 초대를 받은 일이라면 전해 들었습니다. 당장 내일 출발해야 한다고 하니 조금 당황스럽네요.”

“아무래도 그러시겠죠. 그래도 일단 축하드리겠습니다. 마왕님께 이렇게 초대를 받는 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그는 자기 일인 양 기뻐하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아는 내용이 더 있긴 하지만, 나중의 재미를 위해서 함구하고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에는 저도 시현 씨와 함께 마왕성으로 가게 됐습니다.”

“리안 씨도 마왕님의 부름을 받으셨군요?”

“시현 씨 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여기서 꽤 열심히 일했으니까요. 물론 시현 씨를 마계로 데려온 일이 가장 큰 가산점을 받았겠지만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하하하! 당연하죠.”

나와 발레리안은 웃으며 이번 일을 함께 축하했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에 잠시 끊어졌다.

“크흠…….”

“어엇?! 이기석 본부장님? 언제부터 거기 계셨어요?”

사무실 구석에 앉아있는 이기석 본부장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바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시현 씨가 마왕성의 일로 장기간 마계에서 체류할 것 같아 간단히 연락만 드린 건데 몇 시간 전에 찾아오셔서…….”

또 몇 시간을 기다렸다고?

할 말이 있으면 전화로 하면 되는데. 왜 맨날 부담스럽게 몇 시간씩 기다리시지? 바쁘신 분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이기석 본부장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일부러 시현 씨에게 부담을 드리려고 몇 시간씩 기다린 게 아닙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발레리안 씨와도 미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일찍 찾아온 겁니다.”

“아…… 예.”

나는 표정을 관리하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그의 모습이 살짝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본부장님이 찾아오실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요? 마계에서는 당연히 특별한 일이겠지만, 여기에서까지 그렇게 주목받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시현 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당연히 중요한 일이죠. 무려 마왕님을 만나러 마왕성으로 가시는 겁니다.”

이기석 본부장은 흥분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계에 방문한 사람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마왕님을 직접 만나는 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마왕성 근처에 가본 사람도 지금껏 한 명도 없었습니다.”

“어…… 그게 정말인가요?”

약간 충격받은 표정으로 발레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번 일이 차질없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시현 씨가 마왕님을 뵙게 되는 최초의 지구인이 되시는 겁니다.”

“…….”

지구인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으니 뭔가 엄청나게 거창한 느낌이 들었다.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사이 흥분을 좀 가라앉힌 이기석 본부장이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미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천족과 마족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마족과의 거래가 국가적인 사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긴…….

내가 얻은 ‘혹한의 쐐기마석’만 보아도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마법과 관련된 지식도 마계에서는 하찮은 것이 이곳에서는 엄청나게 귀해질 수도 있었다.

“그런 마족들을 이끄는 존재를 직접 만나러 가시는 겁니다. 이 소식이 언론에 알려진다면, 아마 모든 나라의 신문 첫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소식일 겁니다.”

“으음…… 이제는 다른 의미로 부담스러워졌네요.”

“흠흠. 제가 좀 흥분해서 설명이 길었지만, 전혀 부담스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도 단순히 축하를 드리려고 찾아왔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이미 제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업적을 쌓고 계십니다. 평소에 하시던 대로 하시면 이번에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정말로 이기석 본부장은 축하와 응원의 말만 전하고, 다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대신에 마왕을 만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중에 전해달라는 부탁을 아주 조심스럽게 해왔다. 그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서 쉽게 부탁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간단한 축하 인사를 받고 난 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당장 내일부터 마계에서 지내야 하니, 일찍 집에 가서 미리 준비할 생각이었다.

“내일부터 한동안 마계에서 지낼 것 같다고?”

“응. 갑작스럽긴 한데 중요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을 것 같아.”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을 먹으며 마계에서 좀 오랫동안 머물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있는데?”

“한 일주일? 일이 빨리 끝나면 조금 더 일찍 돌아올 수도 있어.”

어머니는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더니,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혹시…… 위험한 일을 하러 가는 건 아니지?”

“아냐.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진짜 위험한 일 아니니까.”

쩝…….

어깨를 다친 것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셨나 보네.

어깨 부상에 대해서는 결투가 아니라 농장일을 하다가 생긴 거라도 둘러대긴 했는데. 아무래도 어머니는 겉으로만 고개를 끄덕이고 속으로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엄마, 리안 씨 연락처 가지고 있지?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꼭 리안 씨에게 연락해. 그쪽 일은 어떻게든 빨리 정리하고 금방 돌아올 테니까.”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아들이 고생한 덕분에 집에서 편하게 쉬는데 무슨 일이 있겠니?”

“아잇!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꼭 연락해야 해? 리안 씨에게는 미리 내가 부탁해놓을 테니까.”

“알았어,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얘는 농장에서 일한 뒤로 왜 이렇게 잔소리가 심해졌니?”

어머니에게 확답을 받고 나서야 다시 수저를 들고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들어가 커다란 여행 가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계에서 지내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먼저 아주 기본적인 갈아입을 옷과 속옷, 양말 등을 챙겼다.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한 옷을 챙기다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마왕님을 만날 때는 무슨 옷차림을 해야 하는 거지? 너무 편하게 입으면 당연히 안 될 거고. 그냥 일반적인 정장? 아니면 약간 무난한 느낌으로?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일단 다 챙겨보기로 했다. 시간이 조금만 더 넉넉했다면 쇼핑이라도 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잠시.

여행 가방을 하나씩 채워나갈수록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마계에 꽤 오랫동안 들락날락했지만, 대부분이 농장과 그 근처에서 보낸 시간이 전부였다.

그나마 멀리 나간 게, 엘든 마을의 용병을 구하러 간 도시 칼디니움 정도?

어찌 보면 이번이 본격적으로 마계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방문해 본 적 없는 마왕성을 방문할 수 있으니 대단한 여행이라 할 수 있었다.

카메라는 꼭 챙겨가야지. 여행에서 남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사진 속에 담긴 추억이니까. 이번 기회에 다른 농장 식구들 사진도 잔뜩 찍어줘야겠다. 은율이도 많이 좋아하겠지?

짐 정리를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소풍 전날 설레는 초등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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