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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6)화 (13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6화

초대장(3) 

마계농장에 어느 때보다 부산스러운 아침이 찾아왔다.

마왕님께서 농장의 모든 식구를 불러들인 탓에. 내가 농장에서 일하게 된 이후로 가장 많은 인원이 농장에서 자리를 비우게 됐다.

그래서 모두 여행 준비와 동시에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비해서 각자의 업무를 점검하느라 바빴다. 물론 가장 바쁜 것은 농장에서 많은 일을 맡은 나였다.

물통, 먹이통을 최대한 깨끗하게 청소하고. 떠나기 전에 아롱이, 다롱이의 건강 상태도 확인했다.

일부러 축사는 가장 마지막에 청소해서 최대한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뒀다.

리아네도 농장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혹시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나 유심히 살폈다.

농장 일을 대충 끝내고 간단한 아침 식사까지 끝낸 뒤.

드디어 농장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농장 일을 마무리하는 동안 안드라스가 차원도약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끝내두었다.

“아빠! 빨리, 빨리!”

벌써 신이 난 은율이가 자신의 짐이 담긴 가방을 메고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리아네가 그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나 대신 은율이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안드라스, 준비는 다 끝난 거지?”

“네, 곧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 해뒀습니다.”

“흐아암…… 빨리 가자. 얼른 도착해서 좀 쉬어야겠어. 아침부터 너희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잠이 부족한 것 같아.”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혼자 빈둥거린 카네프가 양심 없는 발언을 했지만. 모두 기분 좋은 설렘에 취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시현 님, 준비 다 끝나셨습니까?”

“잠시만요.”

나는 안드라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우리를 배웅하러 나온 카엘과 엘프리드에게 다가갔다.

떠나는 우리를 대신해서 두 사람이 농장에 남기로 했다. 이곳을 아예 비워둘 수는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기서 일하시는 것도 아닌데 번거로운 일을 떠맡겨서 죄송합니다, 어르신.”

“애초에 내가 먼저 농장을 대신 돌봐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엘린도 미안해.”

“괜찮아요, 선배. 조금 아쉽긴 하지만 농장 식구 중에 누군가 남아야 한다면 제가 남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저보다 훨씬 오래 농장에서 일하셨잖아요.”

억지로 아쉬운 감정을 감추는 엘프리드.

그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청소는 제가 전부 다 깔끔하게 해뒀으니, 당분간은 먹이통이랑 물통만 매일 채워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아기 야쿰들이 있는 축사 근처에는 가지 말아주세요. 야쿰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하도록 하마.”

“간식거리도 최대한 많이 사뒀으니까 마음껏 드세요. 엘린에게 물어보면 알아서 꺼내드릴 거에요. 그리고…….”

나는 카엘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며 속삭였다.

“맥주는 원래 사장님 몫으로 사둔 건데. 그것도 마음대로 꺼내 드세요. 나중에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맥주 이야기에 카엘은 말없이 방긋 웃어 보였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시현 님!”

“아빠!”

“알았어요. 금방 갈게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농장 잘 부탁드릴게요.”

“다녀오세요, 선배!”

“잘 다녀오거라. 좋은 소식 기대하고 있으마.”

카엘과 엘프리드를 뒤로하고 안드라스가 준비한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출발하겠습니다.”

-우우우웅!

안드라스의 말과 함께 마법진 주변으로 강력한 마력이 모여들었다. 손을 흔들고 있던 엘프리드의 모습이 새하얀 빛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약간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첫 번째로 눈앞에 보인 건 잘 관리 된 정원이었다.

“안드라스 씨 여기는?”

“마왕성과 멀지 않은 곳에 슈나르페 가문이 소유한 저택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택 앞마당에 있는 정원이죠. 따라오십시오. 제가 저택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앞장서는 안드라스를 따라 우리는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정원도 얼마나 큰지 한참을 걸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원을 빠져나오자마자 안드라스가 말한 저택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아빠, 선생님 집 엄청나게 크다.”

“그러게…… 대단하다.”

영화나 동화책에서나 볼법한 커다란 귀족 저택을 마주하고, 나와 은율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감탄이 튀어나왔다.

우리의 반응에 안드라스는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대단할 것 까지야…… 다른 귀족 가문에 비하면 그렇게 큰 규모의 저택도 아닙니다.”

그는 겸손의 의미로 말한 거겠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겸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큰 규모가 아니면 도대체 다른 귀족 저택은 어느 정도라는 거야?

나와 은율이는 눈을 반짝이며, 목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열심히 주변을 둘러봤다.

저택 근처에 다가가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후다닥 우리에게 달려왔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먼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손님들과 함께 입구로 모시겠습니다.”

그들은 절도있게 경례를 하며 우리를 입구로 안내했다. 저택의 커다란 현관문이 열리자 화려한 내부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슈나르페 가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백발의 노인 집사가 우리를 맞이했다. 뒤에 정렬해있던 저택의 사용인들도 노인 집사를 따라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조금 늦었습니다, 로웬.”

“손님들 모시고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인님.”

카네프는 이곳을 방문하는 게 처음이 아닌지, 노인 집사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아직도 여기서 집사 일을 하는 거야? 이제 은퇴할 때도 되지 않았어?”

“허허허, 카네프 님을 맞이하는 영광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습니다. 욕심 많은 늙은이를 용서해주시지요.”

“마음에 없는 소리를 매끄럽게 잘 내뱉는 건 여전하네.”

“그럴 리가요. 이번에도 자주 사용하시던 방을 미리 정리해 뒀습니다.”

“흐흐, 역시 로웬이 일 처리 하나는 똑 부러진단 말이야. 기대하고 있을게.”

카네프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오다니…….

아무래도 저 로웬이라는 집사의 접객 내공이 보통이 아닌 듯했다.

로웬 집사는 카네프에게 잠시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리아네 쪽을 바라봤다. 그녀도 집사와 친분이 있는지 따뜻한 미소와 함께 서로 눈인사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로웬 집사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나와 은율이가 있었다. 그는 우리 쪽으로 성큼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임시현 님이십니까?”

“네, 맞습니다.”

“오오! 드디어 소문의 귀한 분을 직접 맞이하게 되는군요. 만나 뵙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저는 슈나르페 가문의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 ‘로웬’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로웬이라고 불러주시면 영광일 것 같습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나의 어색한 인사에도 로웬 집사는 정말 기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이 시현 님께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신세까지야…… 저도 안드라스 씨한테 도움을 많이 받고있는데요 뭘.”

“그렇습니까? 최근 주인님께서 농장에 다녀오실 때마다 표정이 많이 밝아 보여서, 이 늙은 집사가 굉장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크흠, 로웬! 부끄럽게 그런 이야기는 왜……”

“어이쿠! 늙은이가 주책을 부렸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안드라스는 평소답지 않게 많이 부끄러워했다. 얼굴을 붉히며 괜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모습을 본 리아네는 입을 가리고 소리죽여 웃었고, 카네프는 대놓고 빈정거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현 님, 옆에 계시는 귀여운 아가씨는?”

“제 딸, 은율이입니다.”

“따님이 이셨군요!”

로웬 집사는 자세를 낮춰 은율이와 시선을 맞췄다.

“은율 아가씨, 안녕하십니까?”

“…….”

은율이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부끄러워하며 내 다리 뒤쪽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 반응에 로웬 집사는 살짝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은율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그렇군요. 그럼 은율 아가씨와 인사는 천천히 나누는 거로 하겠습니다.”

로웬 집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발짝 물러섰다.

“반가운 분들이 찾아오셔서 제가 너무 흥분했나 봅니다. 준비된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들이 스윽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중 남자 사용인 한 명이 아주 정중한 태도로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시면 짐을 대신 옮겨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예. 감사합니다.”

그의 눈빛에서 진심으로 짐을 넘겨받고 싶어 하는 감정이 느껴져서,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들고 있던 짐을 넘겨줬다.

은율이에게는 여자 사용인 한 명이 다가섰다.

아마 등에 메고 있던 어린이 가방을 받아 들려는 모양이었는데, 은율이가 낯선 이의 접근에 화들짝 놀라며 내 뒤쪽으로 숨어버렸다. 동시에 그 여자 사용인도 깜짝 놀라며 어찌할 줄 몰라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놀란 은율이를 달래주면서 동시에 여자 사용인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보냈다.

짐을 넘겨받은 사용인들은 한 명씩 손님들을 이끌고 안내를 시작했다. 나와 은율이는 2층 방으로 안내됐다.

저택 복도에는 고급스러운 카펫이 쭉 깔려있었고, 벽에는 비싸 보이는 장식품이나 미술품이 걸려 있었다. 순간적으로 미술관에 온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곳입니다.”

내 짐을 든 남자 사용인이 공손하게 커다란 방문을 열어주었다. 나와 은율이는 두근두근한 표정으로 천천히 방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안을 둘러보면서 처음 느낀 감정은 ‘크다!’였다.

가장 먼저 보인 건 5, 6명은 충분히 모일 수 있는 커다란 거실, 그리고 안쪽에는 고급스러운 침실과 화장실이 이어졌다.

거기다 햇빛은 어찌나 잘 들어오는지, 낮에는 조명이 전혀 필요가 없어 보였다. 실제로 예전에 어머니와 내가 살던 낡은 집보다 훨씬 크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안내를 마친 남자 사용인은 방 안쪽에 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문 앞에 섰다.

“필요하신 일이 있으면 여기 단추를 눌러주시면 됩니다. 그럼 대기하고 있는 사용인이 금방 찾아올 겁니다.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남자 사용인은 마지막까지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조용히 방을 나섰다.

방 안에는 나와 은율이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마치 탐험가가 된 기분으로 방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괜히 화장실의 물도 틀어보고, 푹신하고 커다란 침대에 몸을 던져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저택 내부의 멋진 풍경이 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아빠, 나도! 나도 볼래!”

“알았어 잠시만…… 읏차!”

“와아!”

가슴에 안아 들어 창문으로 펼쳐진 풍경을 보여주자 은율이의 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창문 아래에는 저택의 잘 가꿔진 정원의 꽃들이 눈을 즐겁게 했고, 저택 너머 멀리서는 눈 덮인 산맥이 웅장한 기운을 자랑했다.

그리고 산맥 밑에 커다란 구조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웅장한 산맥의 아래에서도 기운에 밀리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저게 마왕성인가?

나는 한동안 멍하니 산맥 아래의 마왕성을 응시했다.

-똑똑똑.

-시현 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밖에서 안드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대답과 동시에 안드라스가 약간 급한 모습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쉬고계시는 데 죄송합니다만, 지금 바로 외출을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외출이요?”

“마왕님을 그냥 뵈러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재단사에게 미리 요청해놓았습니다. 당장 함께 가시죠.”

재단사라면…….

지금 옷을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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