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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7)화 (13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7화

초대장(4) 

-다그닥. 다그닥.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고급스러운 마차.

뒤쪽에는 슈나르페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이 눈에 띄었다.

마차 안에는 안드라스의 손에 이끌려 나온 나와 은율이 그리고 리아네가 자리했다.

말들을 이끄는 마부의 실력이 좋아서 그런지, 농장에서 사용하는 짐 마차와는 승차감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은율이는 마차의 창문에 딱 달라붙어 바깥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리아네는 그런 은율이를 품에 안아서 흔들리지 않도록 해줬다.

마차의 내부와 풍경을 구경하는 일이 시들해질 때쯤, 반대편에 앉아 있던 안드라스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재단사를 만나러 간다고 하셨죠? 그 옷을 만들어 주는…….”

“네, 맞습니다. 귀족들 사이에서도 실력 좋기로 유명한 재단사입니다. 원래라면 급하게 예약 잡기 쉽지 않은데, 리안이 힘을 써둔 덕분에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리안 씨가요?”

“그 재단사가 일하는 가게가 오래전부터 리안의 가문에서 후원하는 곳이라 그렇습니다.”

“아∼ 그렇군요.”

귀족 가문에서 후원하는 재단사라…….

평생 기성복만 입었던 내가 마계에서 처음으로 맞춤제작 옷을 입게 될 줄이야…….

“그러고 보니 사장님은 같이 안 가시나요? 사장님은 따로 옷을 챙기시는 것 같지도 않던데.”

“카네프 님은 예전에 입으시던 예복이 저택에 남아 있어서 괜찮습니다. 이미 로웬이 깔끔하게 세탁해서 준비해뒀다고 합니다.”

“그 로웬이라는 집사분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저희 가문에 없어서는 안 될 분이시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차는 어느새 커다란 성벽 앞에 다가섰다. 주변에는 입구를 통과하려는 수많은 마족과 그들이 몰고 온 마차, 수레들로 북적거렸다.

“이제 슬슬 ‘필그람’에 도착하겠군요.”

“필그람이라는 곳에 마왕성이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마왕성은 필그람을 지나 더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지금은 필그람이 도시의 형태로 변했지만, 원래는 왕좌의 침입자를 막기 위한 관문의 역할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성벽에 가까워질수록 과거에 관문 역할을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이 났다.

칼디니움 도시에서도 성벽을 본 적이 있지만, 이곳의 거대한 규모와 비교하면 아담한 수준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가 탄 마차가 입구에 다가서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나르페 가문의 깃발이다! 모두 길을 열어라!”

말을 타고 있던 선임 병사 한 명이 마차 옆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창문을 통해 안드라스의 얼굴을 확인하고 경례와 함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충! 안드라스 부단장님이셨습니까? 평소와 다르게 가문의 마차를 타고 오셔서 다른 분이 오신 줄 알았습니다.”

“오늘은 모셔야 할 손님이 있어서 오랜만에 마차를 타고 방문하게 됐습니다. 혹시 따로 검문이 필요하십니까?”

“그런 농담은 심장에 안 좋으니 하지 마십시오. 부단장님과 세 분의 손님이 방문했다고 기록해 놓을 테니, 바로 지나가시면 됩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뭣들 하느냐? 빨리 길을 열어라.”

선임 병사의 지시에 병사들은 마차가 곧바로 지나갈 수 있게 분주히 길을 열었다. 마차는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 옆을 유유히 지나서 성벽 입구를 통과했다.

주변 사람들의 마차를 우러러보는 듯한 눈빛에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안드라스 씨는 정말 귀족이셨네요.”

“크흠, 뜬금없이 무슨 말씀입니까?”

“커다란 저택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저렇게 떠받들어주는 모습을 보니까. 평소에 농장에서 보던 느낌과 거리감이 느껴져서요.”

“하하하! 저택은 어차피 가문의 소유일 뿐이고, 사람들에게 유명한 거로 따지면 시현 님도 만만치 않으실 겁니다.”

“제가요?”

“어쩌면 조만간에 저보다 더 유명해지실지도…….”

안드라스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 *

필그람은 정말 엄청나게 큰 도시였다. 성벽을 통과하고 나서도 마차는 재단사가 있는 가게에 금방 도착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세련된 건물들과 각양각색의 필그람 주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가면 갈수록 구경의 재미보다는 마차의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은율이도 이제 창밖 구경에 흥미를 잃었는지, 리아네의 품에 기대서 눈을 감고 있었다.

자동차가 있어서 신나게 달렸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어쨌든 마차는 계속 길을 따라 나아갔다.

주변에 보이는 주민들이 점차 뜸해지고, 주변에서 보이는 가게들이 점점 고급스러워졌다.

약간 부자 동네? 같은 느낌의 지역에 들어오고 얼마가 지난 뒤. 드디어 쉴 새 없이 움직였던 마차가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모두 내리시죠.”

재빨리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안드라스를 따라 마차에서 내려 뒤에 나오는 리아네와 은율이의 손을 차례로 잡아주었다.

4층으로 된 커다란 건물에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부족한 마계어 실력으로 간판의 글을 읽어나갔다.

바람…… 손길…… 바람의 손길?

시적인 느낌의 간판을 잠시 감상했다. 그리고 뒤늦게 일행을 따라 가게의 입구로 들어섰다.

가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다양한 종류의 옷들을 입은 마네킹들이었다. 굉장히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예복들이 주로 전시돼있었다.

“어, 어서 오세요. ‘바람의 손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점원으로 보이는 여자 마족이 가게 안쪽에서 뛰어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점원은 우리를 보고 굉장히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슈나르페 가문의 안드라스라고 합니다. 아마 제 이름으로 예약이 돼 있을 겁니다.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예, 예약은 이미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저…….”

이상한 점원의 태도에 안드라스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혹시 예약이 취소된 겁니까?”

“취소된 건 아닙니다. 다른 게 아니라 갑자기 릴리스 아가씨께서 찾아오시는 바람에…….”

“예약된 손님이란 게 안드라스였구나?”

2층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

화려한 옷차림을 한 목소리의 반가운 표정을 하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뒤에는 건장한 호위기사들이 뒤따랐다.

안 그래도 살짝 굳어져 있던 그의 표정이 더욱 경직됐다.

“오랜만입니다. 펠린츠 공녀님.”

“예전처럼 편하게 부르는 게 어때? 아니면 굳이 어려운 호칭을 불러야 할 정도로 어색해진 거야?”

“……아닙니다, 셀린 누님.”

체념한 안드라스가 편한 호칭으로 부르자, 그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매번 로브만 뒤집어쓰고 있던 녀석이 뒤늦게 꾸밀 생각이라도 든 거야?”

안드라스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제가 아니라 중요한 손님이 예복이 필요하셔서 제가 이곳으로 모시게 됐습니다.”

“중요한 손님?”

그녀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일행의 면면을 살피는 보라색 눈동자에는 진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흐응? 용마족에다가 은월족 꼬마애까지. 굉장히 특이한 조합이네? 마지막은 마족의 뿔도 없고, 수인도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여자 마족은 커다란 덩치의 안드라스를 밀어내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 아찔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혹시 우리 리안이 데려왔다는 인간 아니신가요? 야쿰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딸기라는 엄청난 과일을 만들어 낸다는 인간!”

뭐야, 갑자기?!

내 정체는 어떻게 안 거야. 그리고 우리 리안? 발레리안을 말하는 건가?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다행히 밀려났던 안드라스가 재빨리 다시 끼어들었다.

“누님, 제가 모셔온 손님입니다. 예의를 지켜주시죠.”

“미안. 너무 반가운 마음에 내가 조금 흥분을 해버렸나 보네. 그건 그렇고 저 남자가 소문의 이계에서 온 인간이지?”

“끄응…… 맞습니다.”

안드라스의 대답에 다시 한번 그녀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매력적인 보라색 눈동자로 다시 나를 향했다.

“반가워요. 저는 펠린츠 가문의 장녀 셀린이라고 합니다. 요즘에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계신 분을 직접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이에요.”

“음…… 저는 임시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어색하게나마 셀린의 인사를 받았다. 아직 정확히 그녀의 정체를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옆에서 안드라스가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펠린츠 가문은 리안이 태어난 곳입니다. 저분은 리안의 누님이시고요.”

“아…….”

어쩐지…….

안드라스의 말을 듣고 나니 매력적인 보라색 눈동자와 머리칼이 발레리안과 닮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남매 모두 아주 매력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안드라스 네가 했다는 예약도 발레리안이 도와준 거겠구나? 이 시기에는 점장이 너무 바빠서 가문의 사람이 아니면 예약할 수 없으니까.”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 바쁜 시기에 ‘바람의 손길’ 예약을 잡으면서 옷을 맞추는 걸 보니, 시현 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나 봐요. 그렇죠?”

그녀는 기습적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화의 흐름에 이끌리듯, 나도 모르게 마왕성에 초대를 받은 내용을 말할 뻔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안드라스가 적절하게 끼어들었다.

“셀린 누님, 아까 제 손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 너무 과민반응하는 거 아니니?”

“더 이상의 무례는 참지 않겠습니다.”

갑자기 두 사람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뒤에 있던 호위기사들도 험악한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안드라스, 정말 많이 변했구나?”

“…….”

셀린은 자신의 호위 기사들에게 가볍게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순식간에 기세를 거두고, 원래의 존재감 없는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아쉽네. 새로운 옷을 맞출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귀여운 동생의 체면을 구길 순 없으니. 오늘은 내가 물러나도록 할게.”

그녀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가게를 가로질러 안드라스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날 때 몸을 살짝 기울여 작게 속삭였다.

“시현 님, 또 만나요. 다음에 만날 때는 이렇게 쉽게 놓아드리지 않을 거랍니다. 후훗!”

“…….”

귓가에 맴도는 매력적인 목소리에 가슴이 크게 울렁거렸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리아네와 안드라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셀린은 그 두 사람에게도 미소를 보이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안드라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 시현 님,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노파심에 드리는 말이지만, 셀린 누님을 상대할 때는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안드라스의 진지한 경고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왜, 왜요?”

“펠린츠 가문의 마족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악의적으로 능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방비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가슴의 울렁임을 떠올리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조종당할 수도 있다니…….

한편으로는 안드라스가 셀린에 대해서 조금 적대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드라스와 발레리안이 친한 친구 사이라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이상한 태도였다.

“저…… 손님? 점장님께 안내해 드릴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 가시죠.”

조금 늦었지만, 우리는 점원의 안내를 받으며 가게 2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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