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8)화 (138/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8화

초대장(5) 

슈나르페 가문의 저택에서 지낸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에 농장의 식구들을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맛있는 식사를 매끼 대접받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저택의 사용인들이 뭐든지 준비해 주었다.

저택이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곧바로 외출할 수 있도록 마차가 준비되어 마음껏 바깥 구경도 할 수 있었다.

계속 이렇게 편안한 생활을 계속하다가는 금방 몹쓸 인간이 돼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저택에서의 편안한 생활은 금방 그 끝이 찾아왔다.

“마왕성에 출입 허가가 나왔다고요?”

“네, 오늘 아침에 마왕성에서 직접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드라스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오늘 마왕성으로 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생각보다 엄청 촉박하게 알려주네요. 최소한 하루 전에는 알려주는 줄 알았는데…….”

“마왕님의 일정을 함부로 외부에 밝힐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굉장히 연락이 빨리 온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주일 넘게 마왕성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마왕님을 뵙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는 일입니다.”

“2주일이요?!”

“1주일 가까이 기다려서 어렵게 뵙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며칠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연락을 받았으니, 마왕님께서 이 만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방증이 아니겠습니까?”

며칠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존재라…….

살면서 이렇게 대단한 존재감의 인물을 직접 만나게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아직도 마왕성에 간다는 것이 약간은 꿈처럼 느껴졌다.

조용히 식사를 하던 카네프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녀석들 예복은 다 준비된 거야? 저번에 유명한 재단사에게 맡겼다고 하지 않았어?”

“다행히 오늘 새벽에 로웬 집사가 주문한 예복들을 가게에서 직접 받아왔습니다. 의상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벌써 주문한 옷들이 다 완성된 거예요?”

질문은 내가 했지만, 옆에 있던 은율이와 리아네도 대답에 관심을 보이며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유명 재단사가 직접 만들어준 예복을 굉장히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조금 촉박하기는 했는데. ‘바람의 손길’에 속한 재단사 모두가 총동원되어 예복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직접 옷들을 확인한 로웬이 감탄할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고 하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안드라스의 말에 은율이와 리아네가 기대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완성된 옷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 *

‘바람의 손길’ 가게에서 완성한 예복을 입고 나서 처음 느낀 감정은 약간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자주 입는 활동성 좋은 옷들과는 달리, 완성된 예복은 몸에 꽉 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옷을 입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답답하다는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곧이어 내 몸에 착 달라붙는 일체감이 안정적이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옷에서 처음 느껴보는 신비한 감각에 감탄이 흘러나왔다. 평범한 옷가게에서 살 수 있는 기성복과는 차원이 다른 감각이었다.

저택 사용인들이 가져온 커다란 거울 앞에서 서서 내 모습을 감상했다.

흰 셔츠에 짙은 푸른색 재킷과 바지.

그리고 약간 굽이 높은 구두까지.

진열되어 있던 예복들의 화려함이 부담스럽다고 말했었는데. 재단사가 다행히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반영했는지, 거추장스러운 무늬와 장식을 많이 줄이고 심플한 멋을 잘 살린 것 같았다.

가게에서 몸의 치수를 재는 일부터.

옷을 만드는 원단의 종류, 무늬, 색, 그리고 마감 방식까지…… 재단사의 수많은 질문 세례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생각했었는데.

완성된 결과물을 직접 보고 나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옷에 새겨진 장식부터 작은 단추 하나까지 재단사의 고심과 노력이 느껴졌다.

이렇게 입으니까 나도 꽤 괜찮게 생겼는데?

남자가 거울을 볼 때, 99%가 한다는 착각에 빠져들던 중, 커다란 덩치의 마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현 님, 옷은 괜찮으십니까? 오오! 정말 멋지십니다!”

“……안드라스 씨?”

“왜 그러십니까?”

나는 이상한 걸 봤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마족을 바라보았다.

항상 입고 다니던 어두운색의 로브와 복면이 아니라, 화려한 예복으로 갈아입은 안드라스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평소의 모습이 음모를 꾸밀 것 같은 음침한 마족이었다면, 지금은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이미지의 훈남 마족으로 변해 있었다.

너무 180도 변해서 약간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눈 밑의 다크서클만이 평소의 안드라스를 떠올리게 해주는 유일한 부분이었다.

“안드라스 씨, 이렇게 차려입으니까 못 알아볼 정도인데요? 너무 멋있어졌어요.”

“그렇습니까? 그래도 저는 평소의 모습이 더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

안드라스의 변신에 내가 감탄하고 있을 때, 작고 귀여운 발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아빠∼!”

은율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달려왔다.

하늘거리는 흰색 프릴, 꽃을 연상시키는 분홍색 장식, 드레스 허리에는 붉은 띠와 리본으로 포인트를 살렸다.

양발에는 앙증맞은 흰색 구두를 신었고 예쁘게 땋은 머리에는 반짝이는 머리 장식이 씌워져 있었다.

동화 속 작은 공주님이 현실에 나타났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급하게 달려오는 은율이를 혹시나 넘어질까 봐 재빨리 자세를 낮춰 안아 들었다. 작은 공주님의 입에서 꺄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꺄하하하!”

“어이쿠! 우리 예쁜 공주님, 넘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급하게 뛰어와.”

“드레스를 입혀준 언니들이 너무 예쁘대! 그래서 아빠한테 빨리 보여주려고 달려왔어.”

은율이는 ‘나 잘했지? 빨리 칭찬해 줘!’라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고 예뻐서 가슴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드레스 입은 은율이가 너무 예뻐서 하마터면 아빠가 못 알아볼 뻔했네.”

“저도 가문의 저택에 어떤 공주님이 찾아온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헤헤!”

이어지는 칭찬에 은율이는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나와 안드라스는 물론이고, 뒤에서 지켜보던 사용인들도 눈을 떼지 못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여기 계셨네요?”

또 한 명의 아름다운 여성이 방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드레스와 구두, 목에는 붉은 보석으로 장식된 익숙한 목걸이, 그리고 손목에는 고급스러운 팔찌.

드레스는 붉은색 머리칼과 흰 피부와 대비되어, 별다른 장식 없이 고혹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어, 어때요? 잘 안 어울리죠?”

리아네는 약간 쑥스럽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멍한 표정을 짓던 나는 안드라스가 옆구리를 찔러준 덕분에 황급히 정신을 되찾았다.

“아, 아뇨! 너무 잘 어울려요. 그러니까…… 너무 예뻐요.”

언어 기능이 마비된 듯, 횡설수설한 칭찬에도 그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스며들었다.

“정말이요?”

“네! 매번 메이드복만 입으시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고맙습니다. 시현 님도 오늘 굉장히 멋있으세요.”

“…….”

뒤늦게 찾아오는 간질간질한 느낌과 민망함에 살짝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저도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언니 너무 예뻐, 잘 어울려!”

“후훗. 고맙습니다, 안드라스 님. 은율이도 드레스 너무 예쁘네.”

마음을 진정시킨 나의 눈에 리아네의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목걸이의 모습에 계속 시선이 갔다.

“리아네 씨, 그 목걸이는…….”

“맞아요. 시현 님이 예전에 선물로 주신 거예요. 기억나세요?”

“당연히 기억나죠.”

에르긴을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줬던 선물. 그중의 하나가 리아네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였다.

“평소에는 아까워서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한 번 꺼내 봤어요.”

“잘하셨어요. 목걸이도 드레스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빠! 나도 이거!”

은율이는 고개를 살짝 숙여서 반짝이는 꽃 모양 머리 장식을 보여주었다. 자세히 보니 보석들이 아주 정교하게 세공된 진짜 장신구였다.

보통 장신구가 아닌 것 같은데…… 누가 준 거지?

나는 안드라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안드라스 씨가 준비해 주신 건가요?”

“아닙니다. 제가 준비한 게 아닙니다.”

궁금함에 대한 정답은 곧바로 은율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건 사장님이 준거야.”

“사장님이?”

“은율이 말이 맞아요. 이 팔찌도 사장님이 선물해 주셨어요.”

리아네도 자신의 팔목에 착용한 팔찌를 내보이며 말했다.

“흐아암! 준비가 뭐 이리 오래 걸려?”

때마침 카네프가 어슬렁어슬렁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특별한 무늬나 장식이 없는 단조로운 형태의 흰색 예복을 입고 있었다. 셔츠의 윗단추도 살짝 풀려있고, 머리도 평소에 부스스한 정도에서 약간만 정리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대충 준비한 모습인데도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인터넷에 떠도는 한 문장이 머릿속에 벼락처럼 내리쳤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대충 걸쳐 입고서도 압도적인 아우라를 뽐내는 카네프의 모습에 거울을 보며 들었던 착각이 잔인할 정도로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어슬렁어슬렁 다가온 카네프는 슬쩍 우리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나에게 안겨 있는 은율이의 머리에 잠시 시선이 멈췄다.

만족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다행이야. 생각했던 것보다 잘 어울려.”

“이거 사장님이 주신 거예요? 비싼 장신구 같은데…….”

“신경 쓸 필요 없어. 가문의 창고에 있던 것 중에 대충 몇 개 가져온 거니까. 그리고 이거 받아라.”

카네프는 나에게 뭔가를 불쑥 건넸다.

그가 내민 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화려하게 세공된 검집 무늬와 손잡이 장식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예? 이건…….”

“너 저번에 검 필요하다고 했잖아? 이것도 창고에 처박혀 있던 거 대충 가져온 거니까, 너 가져.”

“가, 갑자기요?”

“마왕성에 가면 검이 필요할 거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가져가.”

나는 황급히 은율이를 바닥에 내려준 뒤,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검을 받아들었다.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손잡이 부분을 매만졌다.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 들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 솟아올랐다.

“시현 님, 아마도 이게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로웬 집사가 이 상황을 예상한 듯, 준비한 가죽 허리띠를 꺼내 들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허리띠를 착용하고, 옆구리에 카네프에게 받은 검을 고정했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비쳤다. 예복에 검을 찬 모습이 생각보다 꽤 잘 어울렸다. 다른 식구들도 내 모습을 보며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네프의 선물들을 바라보던 안드라스가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그에게 슬쩍 다가섰다.

“카네프 님, 혹시 제 선물은……?”

“네 선물? 나보다 훨씬 잘 사는 놈한테 아깝게 선물은 무슨 선물이야!”

“…….”

핀잔 섞인 대답에 안드라스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카네프는 시선을 돌리고 중얼거리듯 말을 덧붙였다.

“뭐…… 아티팩트에 쓸 만한 금속 몇 덩이 챙겨왔는데. 필요하면 그거라도 가져가든가.”

시무룩했던 안드라스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카네프 님…….”

“감동한 표정 짓지 마. 창고에 굴러다니던 거 대충 가져온 거니까!”

괜히 화를 내는 카네프의 모습을 보며 식구들의 얼굴에 훈훈한 미소가 피어났다.

우리를 지켜보던 로웬 집사가 앞으로 나섰다.

“이제 준비는 다 끝나신 것 같으니, 바로 마왕성으로 출발하시지요. 밖에 마차를 대기시켜 뒀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