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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9)화 (13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9화

아라크단의 지배자(1)

농장 식구들을 태운 슈나르페 가문의 마차가 마왕성으로 향했다.

마차 안에서의 일행들은 모두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카네프는 특유의 나른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았고, 그 옆에 안드라스는 눈을 감고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리아네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창밖을 힐끔거렸다. 마왕성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 무릎 위에 앉은 은율이는 이렇게 모두 함께 외출하는 게 그저 행복한지, 싱글벙글 웃으며 나와 함께 창밖 풍경을 구경했다.

나는 긴장감과 기대감이 섞인 애매한 상태였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이 모든 상황이 꿈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평범한 내가 마계농장에서 식구들과 함께 하는 것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인데, 지금은 지구인 중에 누구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마왕님을 만나러 가다니…….

혹시 나를 놀려주려는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마차는 며칠 전에 방문했던 ‘필그람’을 통과해 대로로 쭉쭉 나아갔다. 마차의 창문 밖으로 거대한 설한의 웅장함이 점점 가까워졌다.

어느 순간.

창밖 풍경에는 도시의 건물들, 길거리의 마족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차는 적막하고 황량한 분위기의 길을 묵묵히 나아간 끝에 마왕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리듯 푸른빛을 내뿜는 마왕성은 고아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을 뿜어냈다. 장엄한 설산의 무게감 앞에서도 마왕성은 전혀 짓눌리지 않고, 그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이제 슬슬 도착할 때군.”

카네프의 중얼거림에 마차 안에는 왠지 모를 긴장감이 퍼져나갔다.

마차는 길게 이어진 다리를 통과해 커다란 마왕성의 성문 앞에 도착했다. 필그람의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성벽과 성문이었다.

“정지! 마차를 이끌고 온 자는 당장 신원을 밝히시오!”

“슈나르페 가문에서 출발한 마차입니다. 오늘 위대하신 수호자님의 알현을 허락받은 마왕성의 손님들입니다.”

마차 밖에서 경비병과 마부의 대화가 들려왔다. 잠시 후 옆으로 완전무장한 경비병 한 명이 옆으로 다가왔다.

투구 아래로 보이는 부리부리한 두 눈을 번쩍이며 마차 안을 살폈다. 그 서늘한 눈빛에 은율이가 움찔하며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오늘 아침에 마왕성에서 슈나르페 가문 저택에 도착한 서신입니다. 확인해 보시죠.”

안드라스는 품에서 편지를 꺼내 경비병에게 건넸다. 그는 편지 봉투에 찍혀 있는 인장을 확인하고 곧바로 그것을 되돌려줬다.

“서신의 인장을 확인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성문을 바로 열어드리겠습니다.”

경비병이 되돌아가자마자 마차 앞쪽에서 성문이 움직이는 육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그그그극…… 투웅!

커다란 성문이 완전히 열리고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말을 탄 병사들이 호위하듯 주위를 둘러쌌다.

마차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앞으로 향했다. 성문 안쪽에 여러 건물을 지나 가장 커다란 건물 앞에 마차가 멈춰 섰다.

“주인님,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지요.”

마차의 문이 열리고 안에 있던 일행이 차례로 내려섰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건물의 문이 열리고 여러 명의 마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평범한 드레스에 안경을 쓴 여성이 우리 쪽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야쿰 농장에서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저는 마왕성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마를렌’이라고 합니다.”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자신을 마를렌이라고 소개한 여성을 따라 뒤에 있던 마족들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인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 심드렁한 목소리가 우리 쪽에서 튀어나왔다.

“마귀할멈. 형식적인 인사는 그만두고. 빨리 안내나 해줘. 나는 이 쓸데없는 짓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버리고 돌아가고 싶으니까.”

“최소한의 예의와 절차조차 무시하려는 야만적인 모습은 여전하시군요, 카네프 님.”

그녀의 싸늘한 대꾸에도 카네프는 코웃음 치며 무시했다.

두 사람이 작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뒤에 있던 리아네가 앞으로 나섰다.

“마를렌 시녀장님,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리아네 양. 그동안 잘 지냈나요?”

“네!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요.”

“후후, 저도 가끔 리아네 양의 소식을 들으며 다시 만날 날은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리아네와 이야기하는 동안에 마를렌의 얼굴에 훈훈한 미소가 살짝 피어났다. 카네프와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리아네 양,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앗! 알겠습니다.”

리아네가 물러나고 마를렌의 시선이 나머지 일행 쪽으로 향했다.

시선이 나에게 닿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 짧은 순간 내 속마음까지 꿰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하지? 뭣 하러 남의 부하 직원을 그렇게 훑어봐?”

카네프의 볼멘 목소리에 마를렌의 시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대단한 소문의 주인공이셔서 주제넘은 관심을 보였나 봅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시현, 저 마귀할멈 조심해. 눈 깜짝하는 순간 너를 잡아먹어 버릴지도 몰라.”

무슨 유치원생 조카 겁주는 삼촌도 아니고…….

그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사장님, 그게 갑자기 무슨 이상한 소리예요.”

“진짠데. 겉모습은 저렇게 보일지 몰라도, 속은 완전…….”

“그럼 마왕님을 알현하러 가시기 전에, 편히 쉬실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시죠.”

우연인지 일부러인지 모르겠지만, 마를렌은 카네프의 말을 절묘하게 끊으며 안내를 시작했다.

카네프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가장 먼저 그녀를 따라 걸었다. 곧이어 나머지 일행도 뒤를 따랐다.

마계의 마왕이 지내는 곳답게 성의 내부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슈나르페 가문의 저택도 엄청나게 크다고 느꼈는데, 이곳은 그 규모를 쉽게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컸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복도와 뭐 하는 곳인지 짐작도 하기 힘든 문. 거기다 불규칙한 이어진 계단들까지…….

혹시 이 미로 같은 곳에서 은율이를 잃어버릴까 두려워, 잡은 손이 축축해질 정도로 긴장감을 유지했다.

마를렌은 커다란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그녀의 손짓에 맞춰 옆에 있던 사용인들의 재빨리 방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시간에 맞춰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옆에 있는 사용인들에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마를렌의 안내에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도착하셨군요.”

“라인 씨!”

사무실에서 보던 직장인 느낌이 아니라, 두 개의 뿔과 보랏빛으로 물든 마족 발레리안이 우리를 반겨줬다.

거기다 화려한 예복 차림까지 하고 있으니 온몸에서 귀티가 줄줄 흘러내렸다.

“너도 초대받은 거냐?”

“아닙니다, 카네프 님. 저는 따로 보고드릴 일이 있어서 이미 마왕님을 알현했습니다. 오늘 농장 식구들이 여기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발레리안은 농장 식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는 우리의 모습을 둘러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멋지게 차려입으셨네요. 아주 보기 좋습니다.”

“안드라스 씨한테 들었어요. ‘바람의 손길’ 가게에서 예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면서요?”

“가문에서 후원하는 곳이라 조금 손을 썼습니다.”

“저희 때문에 민폐를 끼친 게 아닌지…….”

“하하!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현 씨가 옷을 입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옷을 만들어 준 재단사로서는 충분히 남는 장사가 될 겁니다.”

발레리안 여유롭게 웃으며 나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게에서 만났던 여자 마족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가게에서 리안 씨의 누님 되시는 분을 만났었는데…….”

“셀린 누님을 만나셨단 말입니까?”

발레리안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예. 안드라스 씨를 알아보시고 먼저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내가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자. 발레리안은 굳은 표정으로 안드라스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한동안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시현 씨. 혹시 셀린 누님이 실례되는 행동을 하시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뇨. 실례될 만한 행동을 하시지는…….”

나는 셀린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매력적인 속삭임을 떠올리며 몸을 움찔 떨었다. 아직도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면 굉장히 이상했다.

발레리안은 내 반응에 뭔가를 눈치챘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시현 씨, 자세한 설명은 해드릴 수 없지만, 다음에 셀린 누님이 혹시나 제 이름을 대면서 접근해 온다면 단호하게 거절해 주시겠습니까?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으음…… 그렇게 할게요.”

진지한 그의 부탁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주변의 눈치를 살펴보니, 카네프나 안드라스는 셀린이라는 여자 마족에 대해서 뭔가를 아는 눈치였다.

누나랑 사이가 안 좋나? 아니면 그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이랑 뭔가 연관이 있는 건가?

나는 머릿속으로 짧게나마 여러 추측을 해보았지만, 무엇하나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셀린이라는 마족에 대한 궁금증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휴식을 취한지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마를렌이 기사들을 대동하고 다시 방으로 찾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왕님께서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드디어 실제로 마왕을 보는 건가?

나는 자연스럽게 은율이의 손을 잡고 나설 준비를 했다.

“시현 님. 죄송하지만 그 아이는 마왕님을 뵙는 자리에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

“허락이 떨어진 것은 발레리안 님을 제외한 네 분뿐입니다.”

은율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에 내 얼굴이 어두워졌다. 은율이도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발레리안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재빨리 나섰다.

“시현 씨, 은율이는 저에게 맡기고 다녀오시죠. 제가 잘 돌보고 있겠습니다.”

끄응…… 방법이 없는 건가?

웬만하면 익숙하지 않은 곳에 은율이를 두고 가기 싫지만, 여기서 억지를 부리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진다는 것을 잘 알았다.

나는 자세를 낮춰 불안해하는 은율이와 시선을 맞췄다.

“은율아, 아빠 금방 다녀올 테니까. 잠시만 리안 씨랑 같이 있으면 안 될까?”

“…….”

발레리안도 은율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말을 보탰다.

“잠시만 여기 있으면 금방 시현 씨가 데리러 올 거야. 그동안 아주 잠시만 아저씨랑 있으면 안 될까? 맛있는 과자도 먹을 수 있고, 신기한 장난감도 많이 있는데…….”

“……진짜?”

과자와 장난감 이야기에 은율이가 슬쩍 관심을 드러냈다.

“물론이지!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가져다주실 거야.”

-휙, 휙!

마를렌이 손짓을 하자 눈치 빠른 사용인들이 재빨리 방 밖으로 튀어 나갔다. 아마도 은율이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들을 찾으러 나갔으리라.

잠시 우물쭈물하던 은율이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여기서 아빠 기다리고 있을게.”

“정말 고마워, 은율아! 빨리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응…….”

나는 마지막으로 꼭 안아준 뒤에 발레리안에게 은율이를 맡겼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와 다른 식구들을 배웅했다.

“따라오시죠. 바로 마왕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마를렌이 가장 앞장을 서고, 나머지 기사들이 우리를 둘러싼 형태로 복도를 걸어나갔다.

지겹다는 표정의 카네프만 제외하면, 나머지 일행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왕성 내부에서 봤던 그 어떤 문보다 화려하게 장식된 문 앞에 멈춰 섰다. 문밖에 서 있는데도 벌써 안쪽에서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긴장하고 있던 나에게 리아네가 슬쩍 말을 걸었다.

“시현 님, 많이 긴장되세요?”

“후우…… 조금 긴장되네요. 혹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특별한 건 없어요. 형식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이라.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맞습니다. 옆에서 하는 행동을 적당히 따라 하시면 됩니다.”

“조심해! 까딱 잘못했다가는 바로 교수형 아니면 화형이니까.”

“…….”

마지막 누군가의 얄미운 말은 애써 무시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기사들이 나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알현실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양쪽에는 화려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주르륵 정렬해 있었고, 방의 가운데에는 붉은 카펫이 쭉 깔려 있었다.

“입장하시지요.”

마를렌의 말에 따라 우리는 알현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붉은 카펫의 끝에 화려한 왕좌와 그곳을 자치하고 있는 마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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