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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3)화 (14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3화

사장님이 뿔났다(2) 

사장님 기분 풀어주기 위한 논의는 오후 일정으로 급히 종료됐다. 오후에는 엘든 마을에서 상인들과 만나기로 계획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셀베르크 가문이 명예 결투를 걸어오는 바람에 진행되지 못했던 딸기잼에 관한 계약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안드라스, 엘프리드와 함께 엘든 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향하던 도중, 안드라스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엘든 마을이 시현 님의 영지에 포함된다더군요.”

“예?”

“원래는 셀베르크 가문 영지에 애매하게 포함되던 곳이었는데, 이번에 영지의 경계를 확정하는 절차에서 엘든 마을 주변은 시현 님의 영지로 인정하기로 조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간단합니다. 시현 님이 엘든 마을에 새로운 영주님이 되는 거죠.”

내가 엘든 마을의 영주가 된다고?

안드라스는 내 어색한 표정을 살피더니 웃으며 물었다.

“엘든 마을의 영주가 되는 게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제가 영주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런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제가 지금껏 시현 님을 지켜본 바로는 충분히 잘해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저도 안드라스 선배랑 같은 생각이에요. 그 재수 없는 셀베르크 소영주에 비하면 훨씬 좋은 영주가 될걸요?”

두 사람은 내가 잘해낼 거라며 격려해 줬지만, 나의 부담스러운 표정은 쉽게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굳이 제가 엘든 마을의 영주가 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셀베르크 가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해두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어떤 선택을 하던 그건 시현 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일단 영지에 관한 이야기는 엘든 마을에서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굳이 마을 사람들을 더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지난번에 에스테르라는 사실을 밝힌 것 때문에 이미 엘든 마을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예전처럼 편안한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었기에 내가 영주가 됐다는 소식은 일단 당분간 알리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생각했던 계획은 순식간에 어그러졌다.

“황금시계 상회의 에르긴이 카디스 영주님을 뵙습니다.”

“오르펭 상회의 알고트가 카디스 영주님을 뵙습니다.”

“…….”

두 명의 상인은 나를 만나자마자 ‘카디스 영주’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아주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상인의 공손한 태도와 ‘영주’라는 호칭에 마을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당황한 나는 안드라스와 엘프리드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아직 확정도 아닌데 이분들이 제가 영지를 하사받았다는 걸 어떻게 아는 거죠?”

안드라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시현 님에 대한 소식이 워낙 주목을 많이 받다 보니, 생각보다 정보가 훨씬 빨리 풀린 것 같습니다.”

“시현 선배, 원래 상인들이 이런 소식은 귀신같이 빨리 구해요. 정보가 빠를수록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으니까요.”

“허어…….”

상인들의 행동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두 상인은 나의 허탈한 표정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이 준비해 온 것들을 신나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하하! 저는 영주님이 이렇게 대단한 분이 되실 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마왕님께 직접 귀족의 지위를 내려받다니! 축하의 의미로 오늘, 황금시계 상회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로 진귀한 것들로 선물을 준비해 왔습니다.”

“다시 한번 영주님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오르펭 상회의 회주가 직접 작성한 편지와 축하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한번 구경해 보시죠.”

그들은 내가 대꾸도 하기 전에 준비해 온 선물을 잔뜩 꺼내놓았다. 선물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 마을의 커다란 공터가 두 상인이 준비한 선물들로 가득 채워질 정도였다.

향신료같이 귀한 요리 재료부터, 화려한 예복, 보석, 장신구, 거기다 살아 있는 애완동물까지…….

용병 길드에서 처음 에르긴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부담스러운 선물을 준비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물론 선물의 규모는 지금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선물들을 둘러보던 나의 눈에 특이한 게 눈에 들어왔다.

“이건……?”

“동쪽 지방에서 가져온 ‘베즈’라는 열매입니다. 영주님이 만들어내시는 딸기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꽤 인기가 있는 상품입니다.”

에르긴이 설명한 ‘베즈’는 일반적인 포도보다 약간 큰 크기에 푸른색을 껍질에 둘러싸여 있었다. 호기심에 열매 한 알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씹자마자 껍질 안에 과즙이 쭉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레몬을 떠올릴 만큼 시큼한 맛에 인상이 찡그려졌는데, 시간이 지나자 시큼한 맛은 누그러지고 은은하게 단맛이 느껴졌다.

식감이 굉장히 신기했는데, 껍질 안쪽의 과육이 껌처럼 쫄깃쫄깃해서 독특한 느낌을 줬다.

“이거 꽤 맛있네요. 안드라스 씨도 드셔보세요. 엘린도 하나 받아.”

나는 방금 맛본 베즈를 두 사람에게 나눠줬다. 그들도 베즈가 마음에 들었는지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에르긴의 표정에 미소가 진해졌다.

한창 베즈를 맛보고 있을 때,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바로 처음 보는 과일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마을 아이들이었다. 그중에는 레빌 옆에 있는 미루도 보였다.

나는 베즈를 하나 꺼내 들고 미루를 향해 가까이 오라는 손짓했다. 원래 같았으면 해맑게 웃으며 바로 달려왔을 텐데, 미루는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내가 영주님이 되었다는 소식에 조심스러워진 것 같았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고양이 소녀의 행동에 아쉬움과 섭섭함이 느껴졌다.

그때, 미루 옆에 있던 레빌이 미루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미루가 깜짝 놀라며 되돌아보자, 레빌은 괜찮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덕분에 용기를 얻은 미루가 조금씩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가까이 다가온 고양이 소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와, 와앗!”

작게 비명을 터뜨리는 미루를 안아 들며 웃었다.

“미루야, 오랜만이네.”

“예…….”

“그사이에 내 얼굴을 잊어버린 거야?”

내 물음에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왜 이렇게 부끄럼이 많아졌어? 평소 같았으면 금방 뛰어왔을 텐데.”

“아저씨가 영주님이 됐다고 그래서…….”

“뭐야? 그럼 앞으로 아저씨를 모른 척하려고 그런 거야?”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예전처럼 행동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랬어요.”

나는 피식 웃으며 기가 죽어 있는 미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예전처럼 행동해도 괜찮아, 미루야. 나는 오히려 그게 더 좋으니까.”

“……정말이요?”

“물론이지. 내가 미루한테 거짓말한 적 있어?”

내 물음에 다시 한번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표정이 약간 밝아진 미루에게 손에 들고 있던 열매를 건넸다.

미루는 열매가 먹고 싶었는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조심스럽게 입가로 가져가 한입 베어 물었다.

-부르르르.

시큼한 맛 때문에 미루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뒤에 느껴지는 단맛과 쫄깃한 식감을 맛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저씨, 아저씨! 열매가 엄청 쫄깃쫄깃해요!”

“신기하지?”

“네! 이런 열매는 처음 먹어봐요.”

“하나 더 먹어볼래?”

미루는 베즈 열매가 마음에 들었는지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한 것과 달리 고양이 소녀는 금방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았다.

입을 오물거리며 열매를 먹는 미루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직 에르긴이 가져온 베즈 열매가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다른 마을 아이들에게 눈을 돌리고 다시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 * *

“캐시야, 맛있어?”

“웅, 맛있어. 더 줘!”

“우리 예쁜 캐시 너무 잘 먹네! 잠깐만∼ 내가 금방 먹기 좋게 잘라 줄게.”

나는 베즈 열매를 손으로 먹기 좋게 잘라 아기 토끼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아기 토끼는 내가 건네주는 열매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내 옆에서는 엘프리드가 마을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나눠줬다.

처음에는 베즈 열매만 나눠주다가, 양이 모자라서 다른 간식거리도 아이들에게 건네줬다.

두 상인은 내게 선물하려 했던 것들이 마을 아이들의 입속으로 사라지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선물 받은 내가 나눠주고 싶다는데.

“잘 먹겠습니다, 딸기 공자님.”

“바보야! 이제 공자님이 아니라 영주님이라고 불러야 해!”

“공자님. 정말로 우리 마을의 영주님이 되시는 거예요?”

“헤헤, 공자님이 우리 영주님이 되면 정말 좋겠다.”

조심스러워하는 어른들 때문에 어색해하는 것도 잠시.

그동안 과자를 나눠주며 쌓아온 친밀함이 적지 않았는지, 아이들은 내가 영주가 됐다는 소식에도 평소처럼 곁으로 다가와 떠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아이들의 행동을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나에 대한 친밀함보다 영주라는 존재가 가지는 두려움이 아직 더 큰 것 같았다.

내 무릎 위에서 열매를 먹던 캐시가 작은 손으로 내 옷을 잡아당겼다.

“꽁자님!”

“캐시야, 왜?”

“이제 영쭈님이야?”

“글세……. 캐시는 내가 영주님이 됐으면 좋겠어?”

내 물음에 아기 토끼는 잠시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더니, 축 처진 토끼 귀를 살짝 들썩이며 대답했다.

“꽁자님이 우리 영쭈님이 되면 좋을 것 가타.”

그리고 양팔을 벌려 내 품에 쏙 안겨 왔다. 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몽글몽글한 기분에 미소가 사르르 번져 나갔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원한다면 영주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물스물 피어났다.

“여전히 아이들한테는 인기 좋네.”

“레빌 씨!”

“캐시야. 그렇게 시현이 좋아?”

“응. 엄마 다음으로 제일 조아! 헤헤!”

캐시는 레빌의 물음에 대답하며 방긋 웃었다. 내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캐시야, 미안한데 시현이랑 이야기를 좀 하려는데. 엄마한테 좀 가 있으면 안 될까?”

“우우웅…….”

아기 토끼는 아직 나랑 헤어지기 싫은지 작은 손으로 내 옷을 꽉 붙잡았다. 나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레빌을 위해 캐시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나중에 또 놀아줄 테니까. 잠깐만 엄마한테 갈까?”

“으응…… 아라써.”

“착하다 착해. 여기 캐시가 좋아하는 베즈 열매 더 줄 테니까 엄마랑 나눠 먹어.”

나는 근처에 있던 엄마에게 캐시와 베즈 열매 몇 개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내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캐시는 엄마의 어깨 위로 얼굴을 쏙 내밀고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시현, 아니, 이제 영주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평소처럼 하세요, 레빌 씨. 저는 그게 더 편해요.”

“나중에 귀족 모욕죄라면서 감옥에 처넣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푸핫! 절대 안 그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레빌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아직도 안 믿기네. 설마 네가 이 마을의 영주님이 될 줄이야.”

“아직 확정된 건 아니에요.”

“글쎄? 황금시계 상회, 오르펭 상회 둘 다 저렇게 움직이는 걸 보면 사실상 확정이나 다름없는 것 같은데?”

“…….”

나는 말 없이 에르긴과 알고트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딸기잼 공방과 관련해서 연기됐던 계획을 다시 조정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레빌은 내 눈치를 살짝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우리가 영지민인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영주로서 이 많은 사람을 책임질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요.”

“푸하하하!”

내 대답에 레빌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미안, 미안! 내가 생각한 거랑 전혀 달라서 말이야.”

“……?”

“네가 우리의 영주님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와 라구스는 굉장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어. 이 보잘것없는 마을이 너의 영지가 되면 오히려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

“아까 책임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지? 그런데 그거 알아? 너는 이미 우리 마을에 많은 것을 해준 은인이야. 네가 영주님이 된다고 해서 너에게 책임을 요구할 사람은 한 명도 없어. 오히려 우리가 은혜를 갚기 위해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지.”

“그런…… 가요?”

“물론! 지금은 네가 영주님이 됐다는 소식에 어려워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마을 사람 모두 기뻐하고 있을 거야.”

레빌의 말에 살짝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이 마을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 나름대로 많은 애착이 생겨났다. 모두가 나를 반긴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쁜 마음이 생겨났다.

“고마워요, 레빌 씨.”

“고맙긴.”

나와 레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상인들과 이야기를 끝마친 안드라스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벌써 이야기 끝나셨어요?”

“네. 이전에 합의됐던 내용에 날짜만 연기해서 그대로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저쪽에서 손해를 보면서도 많이 양보해 준 덕분에 이야기가 금방 끝났습니다.”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벌꿀 맥주에 대한 것도 물어보았는데. 역시나 두 상인도 아는 바가 없더군요.”

“쩝…….”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영향력이 큰 두 상인이 아예 모를 정도면 정말로 구하기 힘든 물건인 것 같았다.

“으음? 벌꿀 맥주가 필요해?”

옆에서 듣고 있던 레빌이 불쑥 끼어들었다.

“레빌 씨, 벌꿀 맥주에 대해서 아세요?”

“알지. 예전에 먹어본 적도 있으니까.”

“정말요?”

“정말이십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시 실마리를 발견하자, 나와 안드라스는 흥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확실한 건 아닌데. 의심이 가는 사람은 한 명 알고 있지.”

“……?”

“……?”

레빌은 빙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너에게 축하 선물을 제대로 줄 수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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