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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4)화 (144/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4화

사장님이 뿔났다(3) 

아직도 아이들을 상대하고 있는 엘프리드를 놔두고. 나와 안드라스는 레빌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빌 씨, 그런데 진짜 그 벌꿀 맥주를 마셔보신 거예요?”

“말하기 조금 창피하지만, 어렸을 때 라구스랑 같이 몰래 훔쳐서 마신 기억이 있어. 훔칠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엄청나게 혼나면서 벌꿀 맥주라는 걸 알았지.”

레빌은 어렸을 때의 창피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민망한 듯 볼을 긁적거렸다. 확실히 그는 벌꿀 맥주를 마셔본 것 같았다.

우리는 마을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로 들어섰다. 꽤 익숙한 거리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레빌 씨,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설마……?”

“맞아. 아마 네가 생각하고 있는 데가 맞을 거야.”

잠시 후.

익숙한 가게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게 밖에 걸려 있는 말린 약초와 재료들. 이제는 익숙한 약재 냄새가 가게에 들어서기 전부터 우리를 반겼다.

레빌은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주인을 찾았다.

“영감님 계십니까?”

“뭐야?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야. 그 녀석 마중 나간…… 읏?!”

너구리 영감은 레빌 뒤에 있던 나를 발견하고 움찔 몸을 떨었다. 살짝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도 내가 영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영감님.”

“크흠…….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어쩐 일로…….”

평소의 심술 맞은 모습 싹 사라지고, 무척이나 공손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 모습을 본 레빌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크큽…… 푸하하하하!”

“이, 이놈이 왜 웃고 난리야!”

“끅, 안 어울리게 그게 뭡니까, 영감님.”

민망해진 너구리 영감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중간에 내가 나서며 말을 걸었다.

“예전처럼 편하게 대하셔도 돼요. 레빌 씨한테도 그렇게 말해놨어요.”

“크흠, 큼! 뭐 그렇다면야…….”

그제야 너구리 영감은 금방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아직도 웃느라 정신을 못 차린 레빌을 대신 내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영감님, 저희가 벌꿀 맥주를 찾고 있는데. 혹시 알고 계시는 게 좀 있으실까요?”

너구리 영감은 벌꿀 맥주라는 단어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의 얼굴에서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 그건 왜 찾는데?”

“벌꿀 맥주를 좋아하시는 분이 있는데, 제가 그분에게 실수를 좀 해서 어떻게든 선물로 준비하고 싶어서요.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을까요?”

“으음…….”

너구리 영감은 고민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웃음을 진정시킨 레빌이 불쑥 끼어들었다.

“영감님. 그냥 속 시원히 말하세요.”

“뭘? 뭘 시원히 말하라는 거야?”

“가지고 계신 거죠? 그 벌꿀 맥주!”

“무, 무, 무슨 소리야? 누가 그래?”

레빌의 물음에 너구리 영감의 목소리가 크게 떨렸다.

“영감님. 몇 주 전에 라구스를 통해서 시현의 벌꿀을 얻어 간 적 있죠?”

“맞아. 하지만 그 벌꿀은 약의 재료로 사용하려고 얻어 온 거야! 벌꿀 맥주를 만들려고 한 게…….”

“거짓말하지 마세요. 예전에 포코 영감님한테 들었거든요. 너구리 영감님은 벌꿀이 있으면 무조건 벌꿀 맥주를 만든다고요.”

“…….”

“최근 몇 년 동안 벌꿀 구경도 못 하다가, 최근에 시현 덕분에 겨우 얻은 벌꿀을 약의 재료로 사용했다고요? 제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으으으…….”

확신에 가득 찬 레빌의 말에 너구리 영감은 아무런 반박을 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영감님, 벌꿀 맥주를 가지고 계신다면 조금만 나눠 받을 수 없을까요?”

“으아악! 그건 안 돼! 나도 아직 맛을 못 봤단 말이야!”

너구리 영감은 절규하듯 외쳤다.

벌꿀 맥주가 정말로 있긴 한 모양이었다.

참다못한 레빌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쩨쩨하게 왜 그러세요? 영감님은 또 만들어 드시면 되잖아요.”

“이 망할 놈아! 내가 이거 만든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몇 년 만에 만드는 벌꿀 맥주라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단 말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현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지금까지 시현이 마을에 해준 일을 생각해 보세요.”

“누, 누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그리고 도움은 마을 사람 모두가 받았는데,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다음에 만드실 때는 제가 무조건 도와드릴게요. 이제 시현이 벌꿀도 가져다줄 수 있으니까 이렇게 몰래 만들 필요도 없잖아요.”

“끄으응…….”

우리가 너무 무리하게 부탁하는 게 아닌가 고민이 들 때쯤, 너구리 영감은 체념했다는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원망과 슬픔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냥은 안 넘겨줄 거야. 무조건 비싸게 받을 거니까 각오해.”

“가격은 최대한 만족하실 수 있도록 지급해 드릴게요.”

“다음에 만들 벌꿀 맥주를 위해 벌꿀도 준비해 줘야 할 거야.”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너구리 영감은 미련이 많이 남은 표정으로 나에게 몇 번이고 약속을 받아냈다. 옆에서 레빌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현이 미래의 영주님의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공짜로 주지…….”

“저, 저놈을 그냥! 내 맥주를 훔쳐먹고 잘못했다고 빌었을 때 확실히 버르장머리를 제대로 고쳐놨어야 했는데!”

“크흠! 왜 기억도 안 나는 옛날이야기를 하고 그러세요.”

“시끄러! 이 맥주 도둑놈아.”

너구리 영감은 괜히 레빌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마음을 가라앉힌 너구리 영감은 우리를 데리고 가게 안쪽으로 향했다. 방 중앙에 있던 탁자와 그 밑에 가죽 깔개를 치워내니,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안드라스는 그 비밀 공간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철컥, 철컥!

-끼이이익!

잠금장치를 열고 문이 열리자. 이어진 사다리와 어두컴컴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려올 때 조심해. 다치면 비싸게 받고 치료할 거야.”

먼저 너구리 영감이 내려가고 뒤따라서 한 명씩 지하로 내려갔다. 입구가 조금 좁아서 덩치가 큰 안드라스는 끙끙대며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내려선 지하실은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들었다. 너구리 영감은 익숙하게 불을 켜서 천장에 달린 등을 밝혔다.

천장의 등을 중심으로 어둠에 감싸져 있던 지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제로 된 장식장에 여러 가지 약재와 약액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따라와.”

너구리 영감을 따라 지하실 안쪽으로 움직이자 조금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한쪽 탁자 위에 흔히 오크통이라 부르는 나무로 만든 통이 놓여 있었다.

“영감님…… 이게……?”

“맞아. 내가 몇 주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만든 벌꿀 맥주다. 마침 알맞게 딱 숙성이 마친 시점이야.”

너구리 영감은 설명 마지막에 ‘운도 지지리 없지……’라는 말을 작게 덧붙였다. 그에게는 불행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굉장한 행운이었다.

너구리 영감은 오크통에 맥주를 꺼낼 수 있는 부분의 마개를 열었다. 순간 쿰쿰한 냄새가 살짝 빠져나왔다.

그는 근처에 있던 나무 잔을 하나 가져와 꼭지 부분을 개방하자 맥주가 푸슈슉 쏟아져 나왔다. 나무 잔에는 순식간에 거품과 함께 맥주가 가득 담겼다.

“자!”

“저요?”

맥주가 가득 담긴 나무 잔을 보며 되물었다.

“원래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을 첫 잔이지만, 특별히 양보하는 거야. 빨리 가져가라.”

“으음…… 감사합니다.”

나는 공손히 너구리 영감이 건네는 맥주를 받아 들었다. 나무 잔에서 나무, 꽃, 그리고 달콤한 냄새가 기분 좋게 솔솔 올라왔다.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천천히 나무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꿀꺽…… 꿀꺽…… 꿀꺽…….

맥주가 입안에 들어오자 코 깊은 곳까지 기분 좋은 향기가 가득해졌다. 맛이 굉장히 달콤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단맛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엄청 시원한 맥주의 탄산이 팍팍 터지는 맛은 없었지만, 은은하고 묵직한 맥주의 맛과 탄산의 조화가 엄청났다.

거기다 미끄러지듯 쭈욱 넘어가는 목 넘김, 그리고 깔끔한 뒷맛과 입안에 맴도는 향기로운 여운까지.

한마디로 너무 너무 맛있었다.

내가 맥주가 아니라 도수가 낮은 양주를 먹었나? 착각이 들 정도로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순식간에 한 잔을 다 비워내고 빈 나무 잔을 아쉽다는 듯 바라봤다. 너구리 영감이 슬며시 웃으며 물었다.

“어때?”

“정말…… 너무 맛있는데요? 벌꿀이 들어가서 엄청 달콤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달지는 않고. 은은한 향이랑 깔끔한 맛이 너무 좋아요.”

“원래 발효하는 과정에서 단맛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든. 제조 방법에 따라서 달콤한 맛을 늘리는 것도 가능해.”

벌꿀 맥주에 대한 나의 극찬이 이어지자 너구리 영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저…… 시현 님?”

“으으…….”

옆을 돌아보니 안드라스와 레빌이 굉장히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어 너구리 영감 쪽을 바라봤다.

“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이 벌꿀 맥주 전부를 너에게 넘긴 거니까.”

“감사합니다, 영감님.”

나는 차례로 안드라스와 레빌에게 벌꿀 맥주 한 잔씩을 따라줬다. 그들도 나와 똑같이 순식간에 잔을 비워내고 감탄을 터뜨렸다.

“오오! 이런 벌꿀 맥주가 이런 맛이었군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분명 카네프 님도 만족하실 것 같습니다.”

“캬아! 어렸을 때 라구스랑 같이 먹었을 때는 이렇게 맛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술맛도 모르는 어린놈들이 그 귀한 걸 홀랑 처먹었으니, 내가 화를 안 낼 수가 있나!”

맥주를 맛본 세 사람은 비어 있는 잔과 맥주통을 번갈아 바라봤다. 차라리 맛보지 않았으면 괜찮았을 것을……. 딱 한 잔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으으으…… 안 돼!

사장님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참자. 참아!

그래도 나는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벌꿀 맥주의 유혹을 떨쳐냈다. 나와 안드라스는 레빌의 도움을 받아 맥주 통을 가지고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 * *

“두 분 어디 갔다 오셨어요? 한참 찾았잖아요. 어? 그 커다란 통은 뭐에요?”

“엘린, 나중에 설명해 줄게. 일단 빨리 농장으로 돌아가자.”

상황을 몰라 어리둥절한 엘프리드를 이끌고 빨리 농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시현 님. 바로 카네프 님에게 가져다드릴 생각입니까?”

“아뇨, 그러면 너무 아쉽잖아요. 제대로 준비를 해야죠.”

“어떤 준비를……?”

“맛있는 술에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 없죠.”

카네프의 화를 풀기 위한 벌꿀 맥주지만, 그와 별개로 맥주 자체가 너무 맛있어서 제대로 준비해 보고 싶었다.

맥주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들…….

당장 그것들을 준비하려면 고생을 좀 많이 하겠지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모두와 함께하는 자리를 화려하게 만들 생각에 벌써 가슴이 설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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