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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6)화 (14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6화

바르바토스의 의뢰(1)

“끄으응…….”

“괜찮아? 많이 힘들면 오늘 청소는 내가 대신해 줄까?”

“괜찮아요. 쉬어야 할 정도로 힘든 건 아니에요.”

“쯧쯧, 마지막에 급하게 마시는 것 같더니…….”

나는 숙취로 핼쑥해진 엘프리드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어제 벌꿀 맥주가 너무 맛있었던 탓에 결국 자신의 한계 주량을 넘어버린 모양이었다.

“저도 야유회 때 같은 일이 안 일어나도록 많이 자제했는데. 벌꿀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마지막에 조금 무리했나 봐요.”

“하긴…… 벌꿀 맥주가 너무 맛있긴 했지.”

“치킨도 엄청 좋았어요. 치맥이라고 부른다고 하셨죠? 저쪽 세계의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엘프리드는 어제의 치맥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숙취에 고생하는 와중에도 저렇게 눈을 빛내는 걸 보면 정말로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어제 내가 준비한 저녁 식사는 아주 대성공이었다.

벌꿀 맥주가 들어 있던 나무통은 금방 바닥을 보였고, 굉장히 넉넉하게 준비했던 치킨도 모두 뼈만 남게 됐다.

아쉬웠던 점은 벌꿀 맥주가 조금 모자랐다는 것 정도? 맥주가 너무 맛있었던 탓에 모두가 금방금방 잔을 비우다 보니, 약간 아쉬운 타이밍에 벌꿀 맥주가 소진돼 버렸다.

그 뒤에는 어쩔 수 없이 내가 구매해 온 일반 캔맥주로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갔지만,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카네프는 비어버린 벌꿀 맥주 통을 몇 번이고 바라볼 정도로 안타까워했다.

“선배. 이번 기회에 우리도 벌꿀 맥주를 만들어보는 게 어때요?”

“우리가?”

“네! 재료 중에 가장 구하기 힘든 벌꿀은 선배가 계속 구할 수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근처 숲에서 사는 꿀벌들과 인연을 맺은 덕에 아직도 꾸준히 벌꿀을 공급받고 있었다.

“벌꿀 맥주를 만들었다는 수인한테 만드는 법을 배워서…… 아니, 그냥 그 수인을 고용해서 대량으로 만드는 거예요. 선배 생각은 어때요?”

“흐음…….”

너구리 영감을 고용해서 벌꿀 맥주를 대량으로 생산해 낸다라…….

얼핏 들었을 때는 나쁘지 않은 계획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계획을 실행시키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일단 벌꿀을 얻어먹는 처지라 그렇게 많이 구할 수는 없고, 거기다 하나를 정성 들여 만드는 것과 대량생산은 또 전혀 다른 문제였다.

거기다 우리는 딸기잼 공방을 만드는 일도 진행 중이었다. 이미 두 상단과 계약을 맺어놓았기 때문에 딸기잼 쪽이 더 시급했다.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아. 그 계획은 나중에 좀 더 생각해 보자. 나도 벌꿀 맥주는 마음에 들었으니, 너구리 영감님한테 계속 만들어 줄 수 없냐고 부탁해 볼게.”

“으음. 알겠어요.”

내가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엘프리드는 아쉬움을 드러내며 다시 얼굴이 핼쑥해졌다. 잠시나마 숙취를 이겨낼 정도로 벌꿀 맥주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숙취로 고생하는 엘프리드가 안쓰러워서, 내 일을 빠르게 끝내고 그의 청소를 도와줬다.

둘이서 함께 일한 덕분에 엘프리드의 얼굴색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청소를 끝마칠 수 있었다.

엘프리드를 고생했다며 다독이며 농장 건물로 돌아가던 중, 이제는 익숙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안드라스가 차원도약 마법을 사용할 때 느껴지는 그것이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파동이 조금 강렬한 것 같은데?

잠시 후.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안드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처음 보는 마족들이 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 * *

농장 건물의 거실 겸, 접객실로 쓰이는 곳에 농장 식구들과 낯선 마족 한 명이 모였다.

조금 전 안드라스와 함께 차원도약 마법으로 도착한 마족 중 한 명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바르바토스 가문의 베베토라고 합니다.”

짙은 갈색 머리칼의 중년 마족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농장의 백과사전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안드라스가 슬쩍 내게 속삭였다.

“바르바토스 가문도 5대 귀족 가문 중 하나입니다. 건축과 원소 마법에 조예가 깊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베베토는 안드라스의 말을 들었는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뒤에 설명을 덧붙였다.

“저도 바르바토스라는 성은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방계의 자손 중 하나일 뿐입니다. 가문의 직계 혈통이신 슈나르페 공자님, 베르딕 공자님과는 차이가 크게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방계라는 사실을 밝히며 안드라스와 엘프리드와는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직계, 방계라는 이야기가 민감한 이야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런 대화가 익숙한지 별다른 반응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조용히 넘어갔다.

대충 인사를 마친 베베토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저는 마왕성에서 의뢰를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농장에 새로운 시설 건축과 기존에 있던 시설의 증축이 필요하시다고요?”

“아! 맞습니다. 지금 농장 시설에 조금 불편한 점들이 많아서 전문적인 분들이 도움이 필요했거든요.”

“시설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는 마왕성에서 최대한 지원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농장에 계신 분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토지 측량과 대략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바르바토스 가문의 건축 실력은 정말 대단하거든요. 아주 오래전 마왕성과 필그람 관문을 건설한 것도 바르바토스 가문의 인물들입니다.”

“흠흠. 마왕성과 필그람 관문은 바르바토스 가문 마족들의 자랑거리지요.”

안드라스의 칭찬에 베베토는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전달받은 바로는 축사와 딸기밭 시설 증축, 그리고 딸기잼 공방을 새로 건설하실 예정이라 들었습니다. 혹시 이것 외에도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베베토는 품에서 작은 수첩과 필기구를 꺼내 들며 물었다.

농장 식구들은 그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희망 사항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티팩트 제작이 가능한 작업실을 새로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부의 소음과 안전을 생각해서 농장 건물과 출사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가 좋겠군요.”

“수련장! 수련장이 필요해요. 지금은 너무 개방적인 환경이라 집중하기 힘들거든요. 조금 더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농장 건물의 주방을 좀 넓혔으면 좋겠어요. 이전에 농장에 머무르는 사람이 적었을 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식구들이 늘어서 주방이 조금 좁은 것 같아요.”

“우우웅…… 아빠, 나는 농장에 할머니 집에서 봤던 놀이터가 있었으면 좋겠어. 아기 야쿰들이랑 놀이터에서 같이 놀고 싶어.”

순식간에 의견이 쏟아지자 베베토는 쉴 새 없이 수첩에 받아적었다. 그리고 겨우겨우 의견을 다 받아적은 그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 마왕성에서 지원해 준다고는 했습니다만, 아마 예산은 한정되어 있을 겁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 일단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베베토의 권유에 다시 한번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작업실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작업실을 먼저 만들어놓으면 농장에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도구나 아티팩트를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안드라스 선배! 그건 제르무어 마법사단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잖아요. 거기다 작업실은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으니까,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수련장을 먼저 만드는 게…….”

“엘린 님, 검술 수련은 수련장 없이도 잘하고 계시잖아요. 주방은 지금 당장 불편한 게 너무 많아요.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모두에게도 중요한 일이니까 당연히 높은 우선순위여야 해요.”

“으으응. 아빠…… 나…… 놀이터…….”

은율이는 세 사람의 논쟁에는 끼어들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며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점점 눈동자가 촉촉해지는 은율이를 달래고 있을 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카네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모두 조용히 해!”

“…….”

“…….”

“…….”

“이런 문제로 싸워서 되겠어?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농장에서 뭐가 중요한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거 아냐?”

오오오! 사장님!

어쩐 일로 이렇게 책임감 넘치고 모범적인 모습을? 어제 벌꿀 맥주를 드시고 엄청나게 만족하시더니,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생기셨나?

정말 오랜만에 보여주는 카네프의 책임자다운 모습에 나는 감탄과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논쟁을 벌이던 세 사람도 반박할 수 없는 꾸지람에 금방 조용해졌다.

단번에 분위기를 장악한 카네프는 주변을 한번 슥 둘러본 뒤에 다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농장에서 가장 중요한 거라면 정해져 있는 것 아니겠어?”

사장님, 뭐죠?

농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제일 먼저 맥주 양조장을 지어야 해.”

“……??”

“……??”

“……??”

“그리고 벌꿀 맥주를 쉴 새 없이 생산해내는 거야. 그렇게 만들어진 벌꿀 맥주로 매일 치맥파티를 벌이면…… 츄릅!”

이런 미친…….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험한 말을 겨우 목구멍 뒤로 집어삼켰다.

당당하게 맥주 양조장 건설을 주장하는 카네프의 눈동자에서는 살짝 광기까지 엿보였다.

“카네프 님! 맥주 양조장은 무슨 소리십니까? 당연히 작업실을…….”

“수련장! 수련장!”

“주방이 제일 먼저…….”

“시끄러, 이것들아! 맥주 양조장이 제일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이곳은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잠시 균형의 수호자인 줄 알았던 카네프가 혼돈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격이었다.

이 난장판을 보다 못한 나는 은율이의 양쪽 귀를 살포시 막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그만 좀 하세요. 중요한 손님을 모셔두고 이게 무슨 꼴이에요. 은율이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요?”

내가 진지하게 화를 내자 세 사람은 몸을 움찔 떨었다. 조금 전 자신들의 모습에 창피함을 느꼈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반면 카네프는 ‘내가 뭘?’이라는 듯, 뻔뻔한 표정을 하고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철없는 농장 식구들의 행동을 제지한 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베베토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베베토 님은 어떻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가요?”

“그냥 베베토라고 불려주시면 됩니다. 일단 시설 종류에 따라 위치확인과 토지 측량이 필요하겠지만, 대략적으로나마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베베토는 수첩에 정리한 것들을 확인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가장 쉬워 보이는 일은 축사 확장과 수련장 건설입니다. 딱히 대단한 기술력이나 특별한 건설 재료가 필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수련장 건설이 쉽다는 이야기에 엘프리드의 얼굴이 환해졌다.

“가장 힘들어 보이는 것은 딸기잼 공방과 맥주 양조장입니다. 전문적인 생산 시설을 만드는 일은 경험이 많은 건설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건설 비용은 올라갈 수밖에 없지요.”

“흐음…….”

아무래도 마왕성의 지원만으로는 원하는 모든 시설을 만들기 힘든 모양이었다.

농장 식구들은 애타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모두 우선순위에 대한 결정권을 나에게 넘기려는 듯했다.

끄으응…… 어쩌지?

웬만하면 농장 식구들이 원하는 시설을 다 만들어주고 싶은데…….

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던 그때.

베베토가 슬쩍 말을 건넸다.

“시현 님. 시설 건설과 관련해서 바르바토스 가문의 제안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제안이요?”

“제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시설 건설에 관한 것도 있겠지만, 사실은 시현 님께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농장 식구들의 표정을 살피니, 그들도 뭔가 짚이는 게 없는 듯 보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베베토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농장 건물 밖으로 나선 그는 잠시 후, 커다란 나무 상자를 든 두 마족과 함께 돌아왔다.

그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나무 상자를 우리 앞에 내려놨다. 농장 식구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무 상자 쪽으로 향했다.

“이 안에 시현 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상자를 열어보겠습니다.”

베베토는 상자의 잠금장치를 열고 나무 상자를 열어 보였다.

-끼이이익!

그 안에는 푹신해 보이는 베개와 부드러운 천으로 둘러싸인 두 개의 알이 있었다.

두 알은 흰색 배경에 검은색과 황금색 줄무늬가 있었고, 커다랗기로 유명한 타조의 알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이건 무슨 알이지?

그리고 이 알들을 왜 나한테……?

베베토는 의문이 가득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곧바로 알에 대한 정체를 설명했다.

“이건 ‘그리핀의 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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