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7)화 (14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7화

바르바토스의 의뢰(2)

“그리핀의 알이요?”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에 사자의 몸을 가진 마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커다란 알과 베베토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는 이런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연히 버려진 알들을 어떤 사냥꾼들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주변에 그리핀의 깃털이 잔뜩 있어서 그리핀의 알이라는 걸 바로 눈치채고 바라바토스 가문으로 가져왔다더군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안드라스가 타이밍 좋게 설명을 덧붙였다.

“바르바토스 가문의 상징이 바로 그리핀입니다. 과거에는 그리핀을 직접 길들이고 번식시켜, 말처럼 타고 다니거나 전투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오오! 그건 굉장히 멋있었겠는데요?”

그리핀을 타고 전장을 휘젓는 모습을 상상하며 감탄을 터뜨렸다. 베베토는 내 말에 동조하듯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문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그리핀과 함께 전투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바르바토스 가문에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가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큰 공을 세운 기사에게 그리핀을 상으로 내려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과거의 이야기가 돼버렸지만요.”

그의 마지막 말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마무리됐다.

“과거의 이야기가 돼버렸다는 말은…… 지금은 그리핀이 없나요?”

“맞습니다. 아주 오래전, 알 수 없는 전염병 때문에 가문에서 기르던 그리핀 대부분이 죽어버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염병에서 겨우 살아남은 몇 마리로 명맥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결국에는 번식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으음……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렇게 사냥꾼이 알을 발견한 걸 보면, 야생에는 아직 그리핀이 있다는 거 아닌가요? 야생의 그리핀을 다시 길들이면 될 것 같은데.”

“말씀하신 대로 야생의 그리핀을 길들이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만, 결국에는 모두 실패로 끝나 버렸습니다. 야생에서 자란 성체는 마족의 손길을 거부했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개체는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해 금방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야기가 이쯤 진행되니 베베토가 그리핀의 알을 가져온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했다.

“혹시 저 그리핀의 알들을 저에게 맡기시려는 겁니까?”

“벌써 눈치채셨군요. 방금 말씀해 주신 대로 저는 이 그리핀의 알들을 시현 님께 부탁을 드리기 위해 가져왔습니다.”

“흠…….”

“시현 님이 이 농장에서 야쿰을 길들였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바르바토스 가문에서는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요정, 꿀벌들까지 길들이셨다고…….”

“쩝, 길들였다는 표현은 좀 애매하네요. 딱히 그들과 상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베베토는 내가 불쾌해했다고 생각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헉! 혹시 제 표현 때문에 불쾌하셨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아뇨, 그렇게까지 고개 숙이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좀 특이할 뿐이지 보통의 마족 분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큼!”

그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그리핀의 알이라…….

나는 다시 한번 상자 안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알을 바라보았다.

바르바토스 가문이 나에게 이 알을 맡기려는 이유는 알겠지만, 머릿속에서는 제안을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컸다.

최근에 아롱이, 다롱이가 태어나면서 다시 느낀 것이 있다.

어린 생명을 온전히 세상 밖으로 태어나게 하고, 또 돌보는 일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다 그리핀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는 내가 이 알들을 보호한다는 건 사실 도박에 가깝다고 생각됐다.

“죄송하지만 제가 그리핀의 알을 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어렵게 이 알들을 구해온 것 같은데, 그리핀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는 저로서는 자신이 없네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가 제안을 거절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베베토는 황급히 말을 쏟아냈다.

“제안에 대해서 너무 부담가지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여러 번의 실패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현 님께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으음…….”

“그리고 시현 님께서 이 알들을 맡아주지 않는다면, 이 녀석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야생의 그리핀들은 마족의 손길을 탄 이 알들을 절대 거두지 않을 겁이고, 저희는 이 알을 거둬드릴 능력이 없습니다.”

내가 돕지 않으면 알 속에 들어있는 녀석들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말에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러게 아무 잘못도 없는 그리핀의 알은 왜 가져왔어요!’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탓해서 무얼 하겠는가.

-툭, 툭!

옷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옆을 돌아보니, 은율이가 커다란 눈동자에 걱정을 한가득 담고 물었다.

“아빠…… 저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없는 거야?”

“으으음…… 그런가 봐.”

“너무 불쌍해…….”

부모님과 이별한 경험이 있는 은율이에게는 저 알들의 처지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것 같았다.

“아빠가 저 아이들을 돌봐주면 안 돼?”

“…….”

“나도 열심히 도와줄 테니까, 응?”

은율이가 눈가를 촉촉하게 하며 부탁을 해왔다. 수락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기세였다.

난감해하는 내 모습에 베베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

“시현 님께서 이 알들을 맡아주시는 대가로 시설 건설에 어느 정도 지원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리핀이 부화하고 성장시키는 데 성공하신다면, 앞으로 농장의 필요한 모든 시설을 무료로 지어드리겠습니다.”

“오오! 그게 정말이야? 그럼 맥주 양조장도?”

“물론입니다. 원하신다면 맥주에 전문 지식이 있는 장인을 초청해서라도 완벽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베베토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카네프는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엘프리드와 리아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남은 건 나의 선택뿐.

말도 못 하는 작은 생명체들을 가지고 거래를 하는 것 같아 약간의 꺼림칙함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리핀의 알을 그냥 돌려보내자니 그것도 찝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고집을 잘 부리지 않는 은율이도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는데, 도저히 내가 버텨낼 도리가 없었다.

“쩝…… 알겠습니다. 제가 해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없지만, 일단 그리핀의 알들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제안을 받아주시는 겁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그리핀의 알을 맡는 것과는 별개로 시설을 건설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해주셔야 할 겁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마왕성과 바르바토스 가문의 지원이 가능한 만큼 최대한 튼튼하고 편안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베베토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였다.

은율이는 그리핀의 알을 맡게 되어서 기뻐했고, 다른 농장 식구들도 긍정적인 표정이었다.

딱 한 명.

안드라스만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는 듯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드라스 씨?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제안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이 제안을 하러 오신 분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군요.”

“……?”

안드라스의 진중한 시선이 베베토에게 향했다. 당연히 베베토는 바짝 긴장한 자세로 그 시선을 받아냈다.

“제가 알기로 그리핀에 대한 일은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일인 거로 아는데. 어째서 직계 가문의 사람이 오지 않고 방계의 사람을 보낸 겁니까?”

“그건…….”

베베토는 안드라스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거기다 농장의 모든 시설을 무료로 지어준다는 약속은 가문의 방계가 쉽게 할 수 없는 약속인 것 같은데…….”

“뭐야? 그럼 그 약속은 아무렇게나 거짓말로 떠든 거란 말이야?”

카네프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노려봤다. 베베토는 온몸이 크게 흔들릴 정도로 양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오, 오해이십니다. 제가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에게 거짓으로 제안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억울한 부분을 설명했다.

“물론 안드라스 님의 말대로 방계인 저의 권한은 약하지만, 이번 제안에 한해서는 일시적으로 바르바토스 가주님께 권한을 인정받았습니다. 당장 내일까지 말씀드린 제안을 문서로 만들어 가문의 인장을 찍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필사적인 편명에 찌푸렸던 카네프의 얼굴이 약간 풀어졌다. 하지만 안드라스의 무거운 시선은 아직도 베베토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본가의 인물이 아니라 방계인 제가 제안을 하게 된 이유는 안타깝게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가문 내의 중요한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에, 저는 입을 열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그렇군요. 가문 내의 일이라면 어쩔 수 없죠.”

“죄송합니다.”

결국, 베베토가 방계의 신분으로 그리핀의 알을 맡기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안드라스의 말대로 남의 집안 사정을 억지로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때의 나와 농장 식구들은 ‘그 사정’이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 *

농장 시설 건설과 그리핀의 알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고. 베베토는 곧바로 농장 주변의 땅과 원래 있던 시설들의 상태를 살폈다.

축사의 증축을 위해 축사를 둘러보았는데.

베베토가 안에서 쉬고 있던 초롱이와 아롱이, 다롱이를 너무 무서워해서 조금 애를 먹었다.

“시, 시현 님. 괘, 괜찮은 거죠? 갑자기 달려들거나 그러지는 않겠죠?”

“괜찮다니까요. 착한 애들이라 절대 안 그래요. 아니! 눈을 감고 계시면 내부 구조를 어떻게 둘러봐요.”

마치 유령의 집을 통과하는 것처럼 베베토는 내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벌벌 떨었다.

겨우 내부 구조를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그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쩝, 이렇게까지 무서워할 줄은 몰랐네.

초롱이랑 아기들을 밖으로 보내놓을 걸 그랬어.

그래도 베베토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와중에도 직업 정신을 발휘해 주변의 지형 확인과 토지 측량을 끝까지 해냈다.

“일단 필요한 사전 조사는 다 끝냈습니다. 구체적인 건설 계획이 완성되면 다시 방문해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리핀의 알들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베베토는 마지막으로 알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일행들과 함께 농장을 떠나갔다.

그들의 배웅을 끝내고 나는 농장 건물로 돌아가 2층의 내 방으로 향했다.

“아빠!”

은율이는 방 안 침대 위에서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베개와 천으로 둘러싸인 두 개의 커다란 알이 놓여 있었다.

“아빠, 이것 봐. 알이 엄청 맨들맨들해.”

은율이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알들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신난 은율이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억지로 웃음을 지었지만, 침대 위의 알들을 보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 알들을 부화시키지……? 이 녀석들의 부모가 있었다면 아마도 계속 품고 있었겠지?

병아리 부화기 같은 기계라도 하나 사야 하나? 으음, 이 녀석들은 너무 커서 안 들어갈 것 같은데.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알의 표면을 쓰다듬는데…….

-추…… 워…….

“응?”

-추워…….

누군가 작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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