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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9)화 (14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9화

부화(1) 

뭐랄까?

평소에는 이렇게 손을 가져다 대면 춥다던가, 안아달라던가, 활기차게 자신의 의지를 밖으로 표현했었는데, 지금은 잠을 자는 것처럼 잠잠했다.

처음에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불쑥 생겨났다.

그런데 조금 더 의식을 집중해서 살펴보니 평소보다 잠잠할 뿐, 안쪽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파동은 그대로였다.

아프거나,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다 머릿속에 번뜩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껏 잘 지내던 알들이 갑작스럽게 변화를 맞이하는 일이라면?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가져온 그리핀에 관한 자료 중 몇 가지 글귀가 생각났다.

-그리핀의 알은 40일에서 50일 사이에 부화를 시작한다.

-알의 부화 기간은 온도, 습도와 각각의 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알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동안 그리핀 새끼는 많은 힘을 소모해 취약한 상태에 놓이며, 적절한 보살핌이 없으면 높은 확률로 생명을 잃게 된다.

그리핀 부모가 언제 알을 낳았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농장에 있었던 기간을 생각해 보면 부화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만약에 그 시기가 정말로 다가온 거라면.

지금 이 녀석들은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시작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알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 나의 심장이 기대감과 설렘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 *

그리핀의 알이 곧 부화한다.

나로부터 시작된 이 소식은 실시간으로 농장 식구들에게 전해졌다.

부화 소식을 들은 카네프는 특유의 나른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났었나?”

“부화에 걸리는 시간이 40일에서 50일이라고 하니, 확실히 지금쯤이면 알을 깨고 나올 시기죠.”

“새끼 그리핀을 보게 될 줄이야…… 벌써 기대가 돼요.”

리아네는 기대가 된다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선배도 드디어 저 알들에서 해방되시겠네요. 그동안 알들을 업고 다니시느라 엄청나게 고생하셨잖아요.”

엘프리드의 말에 나는 애매하게 웃어 보였다.

확실히 두 개의 알을 업고 다니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순히 무거워서 힘든 건 둘째 치고, 언제나 신경 써서 조심조심해야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아주 힘들었다.

그래도 막상 알들이 부화하고 업고 다니는 일에서 해방된다고 하니, 이상하게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업고 다니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애정을 많이 쏟았나 보다.

물론 부화 소식을 듣고 가장 신난 사람은 다름 아닌 은율이었다. 이 여우 소녀는 알들을 업고 다닌 나 못지않게 옆에서 보살핀 존재였다.

자주 알을 쓰다듬거나 꼭 껴안고 자기도 했고, 알 옆에서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식사 시간인 지금도 빨리 알을 지켜보고 싶어서 평소보다 빠르게 음식을 집어삼켰다.

“은율아, 천천히 먹어.”

“그러다 알이 부화를 시작해 버리면 어떻게 해?”

“괜찮아.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그러니까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자. 알았지?”

“응…….”

혹시 급하게 음식을 삼키다 탈이 나지 않도록 은율이를 진정시켰다.

조금 전처럼 음식을 마구 집어 먹지는 않았지만, 빨리 알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아침 식사가 끝난 뒤에 다시 알을 살펴봤다. 역시나 두 녀석 모두 별다른 반응 없이 잠잠했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부화를 시작할 때까지 이 상태가 유지될 것 같았다.

각자 해야 하는 일과가 있어 계속 알을 살펴볼 수 없으니, 시간을 나눠 알을 지켜보는 당번을 정했다.

제르무어 마법사단의 일로 바쁜 안드라스를 제외하고. 나와 엘프리드, 리아네 그리고 의외로 자진해서 카네프까지.

이렇게 4명이 돌아가며 알을 지켜보기로 했다.

당연히 은율이는 당번과 상관없이 계속 알의 곁을 지켰다.

일단은 알의 부화와 상관없이 각자의 일과가 진행됐다. 나는 평소처럼 야쿰의 젖을 짜고, 아기 야쿰들을 돌보고, 오랜만에 쌓여 있는 벌꿀을 채집하기도 했다.

일에 집중하다가도 가끔 농장 건물의 2층 쪽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마치 택배가 어디쯤 왔을까 하며 계속 배송 정보를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이제 곧 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니까 더욱 초조하고 안달이 나는 기분이었다.

리아네와 엘프리드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일하는 중간중간에 그리핀의 알이 있는 방을 찾아가 동태를 살폈다.

얼마나 두 사람이 자주 찾아왔던지 지키고 있던 카네프가.

“이럴 거면 오늘 일은 그만두고 여기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어!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라며 짜증을 냈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들 속에서 시간이 흘러 늦은 오후가 되었다.

모든 농장 식구들의 기대감을 외면하듯, 그리핀의 알은 아직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일과를 끝낸 농장 식구들이 하나둘 내 방으로 찾아오더니. 마법사단의 일을 끝낸 안드라스까지 모두가 한 곳에 모여들었다.

과하게 높아진 인구 밀도로 그렇게 크지 않은 방이 더욱 좁게 느껴졌다.

살짝 기다리다 지쳤는지 카네프가 늘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슬슬 저녁 준비 시작해야 하는 거 아냐? 조금 있으면 해가 완전히 지겠어.”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긴 한데…….”

매일 칼같이 식사 시간에 맞춰 준비를 끝내던 나였지만, 오늘은 저녁 준비를 위한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왠지 내가 자리를 비우면 그사이에 알들이 부화를 시작할 것만 같았다.

알들을 업어가며 고생한 게 얼마인데…….

나도 이 아이들이 부화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눈치 빠른 안드라스가 내 기분을 알아채고 저녁 식사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오늘 저녁은 간단하게 먹는 게 어떻겠습니까? 간단하게 시현 님이 가져온 컵라면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럼 그렇게 할까요?”

“쩝…… 나는 컵라면 별로인데…….”

카네프의 백수처럼 빈둥거리는 모습을 보면 아무거나 잘 먹을 것 같지만, 은근히 식사에 까다로웠다. 식사가 잘 차려지지 않으면 아예 손도 안 대는 스타일이었다.

“오늘만 참아주세요. 내일은 맛있는 거 많이 해드릴 테니까요.”

내가 내일을 기약하며 달래자 카네프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주방에 내려가서 간단히 먹을 걸 챙겨 올게요.”

“저도 같이 가요, 리아네 선배.”

“그래 주실래요?”

리아네와 엘프리드가 밑에서 먹을 걸 챙겨오기로 했다. 어떤 것들을 챙겨올지 잠시 의견을 나누던 그때!

침대에 딱 달라붙어서 알을 살피던 은율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 아빠! 알이 방금 움직였어!”

“진짜?”

“응! 분명히 오른쪽에 있던 알이 약간 움직였어.”

저녁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모든 농장 식구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그리핀의 알을 향해 몰려들었다.

모두 다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침대 위의 알을 응시했다.

-움찔!

-움찔!

은율이가 말한 대로 두 개의 알이 거의 동시에 살짝 움직임을 보였다.

“오오!”

“진짜 부화하려나 봐요!”

식구들은 아주 작은 알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했다. 배고픔이나 저녁 식사에 대한 건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움찔…… 움찔…… 흔들!

알의 움직임이 조금씩 커지더니 금방 눈에 띌 정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화가 진행될수록 처음에 느껴졌던 신비함과 흥분은 조금씩 불안과 걱정으로 변해갔다.

-흔들…… 쩌적!

먼저 움직였던 오른쪽 알에 균열이 생겨났다. 정말로 눈앞으로 다가온 부화의 순간.

지켜보는 모두가 혹시 부화에 방해될까 봐 사소한 움직임도 조심조심했다. 방 안에는 작은 숨소리조차 사라져 알이 깨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쩌적! 쩍!

오른쪽 알에 이어서 왼쪽 알에도 균열이 생겨났다. 점점 알에 생겨난 균열은 켜졌지만, 야속하게도 알껍데기는 쉽게 깨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을 작은 생명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단단해 보이는 알껍데기가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리아네가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못 나오는 거죠?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니겠죠?”

“저희에게는 그저 알을 깨는 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 그리핀 새끼들에게는 목숨을 건 탈출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 알에서 태어나는 많은 마수의 새끼는 부화 과정에서 죽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어머…….”

안드라스는 무의식중에 평소처럼 설명을 풀어놨다.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은 설명에 리아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표정이 굳어졌다.

“너는 왜 재수 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 이걸 확 그냥!”

“그, 그런 의도는 아니고…… 죄송합니다.”

카네프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안드라스도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안드라스의 설명을 부정이라도 하듯.

깊어지던 껍질의 균열 사이로 작은 부리가 쑥 튀어나왔다. 처음 바깥으로 새끼 그리핀이 모습을 보이자 모두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작은 틈을 만들어낸 새끼 그리핀은 작은 부리로 열심히 틈을 넓혀나갔다. 어느새 작은 틈은 구멍으로 변해 새끼 그리핀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삐익∼! 삐익∼!

새끼 그리핀의 힘찬 울음소리.

모두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힘내, 아기야! 조금만 더 하면 돼!”

은율이의 응원을 알아들은 것일까.

두 번째 알에서도 새끼 그리핀이 구멍을 만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정말 마지막 고비!

모두가 간절한 표정으로 새끼 그리핀들의 마지막을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쩌적! 쩌억!

너무나도 단단해 보였던 껍질이 완전히 갈라지고, 오른쪽 알에 있던 새끼 그리핀이 그 모습을 온전히 세상에 드러냈다.

-삐이익! 삐이익!

새끼 그리핀은 온몸을 파르르 떨면서 세상을 향해 자신의 탄생을 알렸다.

나는 재빨리 부드러운 수건으로 새끼 그리핀의 몸을 감싸주었다.

갓 태어난 새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이물질을 떼어내고, 몸을 말려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저기 깨끗한 곳에 뜨거운 물 좀 받아주실래요?”

“아, 알았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리아네와 엘프리드가 내 부탁을 듣고 쏜살같이 방을 빠져나갔다. 안드라스는 지난번에 만들어뒀던 열을 내는 아티팩트를 사용해 그리핀 새끼의 체온을 유지하도록 해줬다.

두 사람이 뜨거운 물을 가져왔을 때쯤, 두 번째 알에서도 새끼 그리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카네프가 부드러운 수건으로 새끼 그리핀을 감싸들었다.

뜨거운 물을 손수건에 적셔 꼼꼼하게 이물질을 닦아주고,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몸에서 완전히 물기를 제거해 줬다.

잠시 후, 두 마리의 새끼 그리핀은 새하얗고 뽀송뽀송한 솜털로 뒤덮인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시간에 새로운 세상에 적응했는지 더는 몸을 떨지 않았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두 녀석은 한동안 힘차게 울어대다가, 힘을 다했는지 포근한 수건에 둘러싸여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모두가 잠든 새끼 그리핀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나! 잠든 모습이 너무 귀여워요. 그리고 저 뽀송뽀송한 솜털 좀 보세요!”

“이렇게 작은 녀석들이 그 대단한 그리핀이 된다니…… 벌써 어떻게 자라날지 기대가 돼요.”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이 소식을 들으면 엄청나게 기뻐하겠군요. 아마 시현 님을 가문의 은인으로 생각할 겁니다.”

“근데 얘들 이름은 뭐로 정하지?”

“아빠, 아빠! 나도 안아보고 싶어!”

새로운 만남으로 인한 설렘에 농장 식구들은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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