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52화
그리핀과 후계자(1)
나는 하던 일을 빠르게 정리하고 안드라스와 함께 농장 건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식구들을 불러모았다.
상황상 은율이는 새끼 그리핀의 소식을 듣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리아네에게 잠시 은율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나와 안드라스, 엘프리드가 카네프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바르바토스에서 시현을 데려와 달라고 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낯짝도 두꺼운 놈들이네. 며칠 전에 우리의 의견은 싹 무시하고 새끼 그리핀을 마음대로 데려가더니, 아쉬우니까 가문으로 와달라고? 흥! 그냥 무시해!”
카네프는 콧방귀를 끼며 불편한 감정을 마구 드러냈다. 엘프리드도 그때의 감정을 되살리며 분한 표정을 지었다.
“카네프 님 말이 맞아요. 마음대로 새끼 그리핀들을 데려간 건 그쪽이잖아요. 우리가 그들의 요청에 응해줄 의리는 없는 것 같아요.”
카네프는 엘린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반응에 안드라스는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두 분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바르바토스 가문이 우리에게 했던 행동은 확실히 무례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들의 행동이 아닙니다. 지금 거기에 있는 그리와 피니가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을 느끼며 안드라스에게 급히 말을 건넸다.
“둘이 상황이 어떤데요? 혹시 어디가 아프데요?”
“저도 정확한 상황은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새끼 그리핀들에 관한 문제로 시현 님을 빨리 모셔와야 한다고 전해왔을 뿐입니다.”
겨우 며칠 지났을 뿐인데 큰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혹시 적응을 제대로 못 해서 힘들어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무슨 짓을……?
불길한 예감이 계속 떠오르며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부정적으로 반응하던 카네프와 엘프리드도 얼굴을 와락 구겼다.
모든 농장 식구가 그리, 피니를 귀여워했었다. 그들도 차마 새끼 그리핀들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말하지 못했다.
안드라스는 잠시 나머지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윽고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그들의 요청을 거절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새끼 그리핀을 데려간 순간부터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일이니까요.”
“잠깐만요, 안드라스 선배! 새끼 그리핀들의 상황이 안 좋다면, 그쪽에서 찾아오면 되잖아요? 굳이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그쪽의 요청을 들어줄 이유가 있을까요?”
“이건 제 추측입니다만…… 바르바토스 가문에 있는 새끼 그리핀들은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일 겁니다. 아마 가문 내부의 여려가지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안드라스의 설명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엘프리드는 뭔가 짐작 가는 부분이 있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카네프는 씁쓸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한탄했다.
“쯧쯧…… 결국,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그렇게 귀찮고 번거로운 자리가 뭐가 좋다고…….”
방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에게 결정을 맡기려는 듯 보였다.
확실히 새끼 그리핀들을 빼앗듯이 데려간 바르바토스 가문의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일로 인한 앙갚음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새끼 그리핀에 대한 걱정이 훨씬 더 컸다.
그리와 피니가 농장을 떠날 때, 불안해하며 애처롭게 울음소리를 내던 순간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정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들의 행동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리와 피니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외면할 수는 없어요.”
“에잉…… 내 저럴 줄 알았다. 물러터져가지고…….”
카네프는 내 결정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내 선택을 막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저 심통이 난 어린이처럼 투정을 부릴 뿐이었다.
“갈 거면 빨랑 나가. 나는 낮잠이나 잘 거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카네프의 반응에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나 그리고 안드라스와 엘프리드.
이렇게 세 사람은 바르바토스 가문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안드라스는 곧바로 차원 도약을 할 준비를 했다.
“안드라스 선배, 설마 바르바토스 가문으로 바로 차원 도약하는 거예요?”
“맞습니다. 그쪽에서 가문으로 바로 이동이 가능한 좌표를 알려줬습니다.”
“와…… 많이 급하긴 했나 보네요.”
내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바쁜 안드라스를 대신해서 엘프리드가 설명을 해줬다.
“가문 내부로 바로 이동 가능한 차원 도약 좌표는 원래 잘 알려주지 않아요. 외부의 침입 경로로 사용될 수 있어서 유출되면 위험한 거든요.”
“아…….”
“그런데 이렇게 선뜻 좌표를 알려줬다는 건, 그만큼 일이 급하다는 증거겠죠.”
그제야 나는 그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보통 가문의 중요한 거점일수록 차원 도약 좌표를 주기적으로 변경합니다. 아마 바르바토스 가문도 우리와 일이 끝나면 곧바로 좌표를 변경할 겁니다.”
역시 농장의 최고 설명꾼 안드라스.
차원 도약 마법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설명을 급하게 덧붙였다.
“준비 끝났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안드라스는 곧바로 차원 도약 마법을 발동시켰다.
우리 주변으로 진한 마력이 몰려들면서 강력한 흐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어지러운 감각을 느끼며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잠시 후.
주변의 인기척과 함께 안드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대로 도착한 것 같군요.”
“오오! 정말 와주셨군요.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잠시 흐릿했던 시야에 초점이 잡히고, 금방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소리가 익숙하다 했더니. 베베토 씨였군요.”
“그냥 베베토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다시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시현 님.”
베베토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뒤이어 안드라스와 엘프리드와도 짧게 인사를 나눴다.
“상황이 급하니 곧바로 가문 저택으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베베토는 우리를 이끌고 앞장섰다.
차원 도약 마법진이 있던 건물 내부를 빠져나가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잠시 우리의 앞길을 막았다.
베베토가 품에서 꺼낸 뭔가를 확인하더니 병사들은 곧바로 길을 내줬다.
삼엄한 분위기가 슈나르페 저택을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어진 길을 따라 걷자 멀리서 커다란 저택 일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드러나는 그 거대한 저택의 규모에 깜짝 놀랐다.
크다고 생각했던 슈나르페 가문의 저택과 비교도 되지 않을 규모였다.
“예전에 우리가 머물렀던 저택을 별로 크지 않다고 했던 말이 정말이었나 보네요. 규모가 엄청나게 으리으리하네요.”
“크흠, 시현 님이 방문했던 저택은 가문 본가의 저택이 아닙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슈나르페 본가로 모셔서 제대로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안드라스는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왠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우리는 화려한 저택의 입구로 들어섰다. 베베토는 빠른 걸음으로 저택의 통로를 걸어나갔다.
마왕성만큼은 아니지만, 혼자 떨어지면 금방 길을 잃을 것처럼 긴 복도가 계속 이어졌다.
“여기입니다.”
베베토는 어떤 방 앞에 멈춰 서더니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방 안에 있던 메이드 복장의 여자 사용인들이 깜짝 놀라며 자세를 취했다.
“베베토 님 오셨습니까?”
“그래. 중요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조용히 대기하도록.”
대충 인사를 받은 베베토는 우리를 방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아기들이 사용할 법한 고급스러운 요람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 안을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 새끼 그리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새끼 그리핀의 모습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든 생각은 반가움이나 기쁨 같은 게 아니었다.
당황, 분노, 슬픔, 의문…….
머리를 꽉 채우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아니…… 도대체…….”
“허어…… 이럴수가…….”
“…….”
나뿐만 아니라 안드라스와 엘프리드도 새끼 그리핀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우리들의 반응에 베베토는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양손을 모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삐이이…….
-삐이…… 삐이…….
그리와 피니는 내가 왔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는지, 힘겹게 고개를 들며 나를 찾았다. 힘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울음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 나 왔어……. 얘들아.”
-삐이이…….
-삐이이…….
북받치는 감정에 약간 잠긴 목소리로 그리와 피니를 불렀다. 내가 천천히 손을 뻗자, 녀석들을 필사적으로 다가와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양손으로 녀석들을 감싸 안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며칠 사이에 아이들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져 있었다.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농장을 떠나 힘겹게 지냈을 두 녀석을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먹먹하고 슬픈 감정 뒤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아주 당연하게도 격렬한 이 감정은 옆에 있던 베베토에게 향했다.
“베베토 씨…… 아니, 베베토!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제대로 설명해 주셔야 할거예요.”
최대한 자제했음에도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실려 있었다. 베베토는 화들짝 놀라며 허둥지둥 변명을 늘어놨다.
“저…… 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농장에서 새끼 그리핀들을 보고, 오늘 여기서 두 번째로 보는 겁니다. 저,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럼 도대체 누가…….?”
-벌컥!
마치 내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누군가 방문을 열고 병사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새끼 그리핀들을 직접 데려갔던 로에딘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며칠 전에 농장에서 인사를 드렸던 ‘로에딘 바르바토스’입니다.”
“…….”
“새끼 그리핀들을 직접 보셔서 아시겠지만, 최근에 건강 상태가 좀 안 좋아져서 시현 님을 이곳으로 모시게 됐습니다.”
“…….”
“괜찮으시다면 이곳에서 머무시면서 새끼 그리핀들을 돌봐주시겠습니까? 보상은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허헛…….”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뻔뻔한 로에딘의 태도에 화조차도 나지 않았다. 잠시 감정을 추스른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제가 챙겨준 꿍유를 제대로 먹이기는 한 건가요?”
“최대한 먹이려고 해봤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먹기를 거부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먹는 걸 거부했다고요? 정말인가요?”
“…….”
계속된 내 추궁에 로에딘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에게 향하는 내 눈빛에 더욱 강한 불신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토록 건강했던 아이들이 아무 이유 없이 식사를 거부했을 리 없었다. 분명히 무언가가 더 있었다.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나도 상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로에딘을 노려봤다. 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가문 내부의 일로 약간의 무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놈의 가문 내부의 일!! 바르바토스 가문은 원래 모든 일을 그렇게 처리하는 겁니까?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군요!”
“……말씀이 좀 지나치시군요.”
“제가 지나치다고요? 당신들이 이 아이들에게 저지른 일이 지나친 일이라고요!”
“…….”
감정이 격해져 목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품 안에 그리와 피니가 불안해졌는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마음 같아서는 쌍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혹시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이 아이들은 다시 농장으로 데려가겠습니다. 더는 이런 곳에 둘 수 없어요.”
“그렇게는 안 됩니다.”
“뭐요?”
“이곳에서 돌보거나, 아니면 새끼 그리핀들은 놓고 조용히 돌아가 주십시오.”
“……그렇게 할 수 없다면요?”
“이곳이 어디인지 잊지 않으셨길 바랍니다. 그래도 가문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분을 끝까지 손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로에딘의 정중한 말과는 다르게 함께 온 병사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방 안에 있던 사용인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슬금슬금 몸을 피했고, 베베토도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어찌할 줄 몰랐다.
안드라스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이렇게 무례하게 나오실 줄이야…… 굉장히 실망스럽습니다.”
“저희들의 요구만 들어주신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겁니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로에딘은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엘프리드는 말없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기세를 끌어올렸다. 방 안에는 엘프리드 한 명과 병사들의 기세가 첨예하게 부딪쳤다.
합의점을 찾지 못한 양쪽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품속의 새끼 그리핀들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그때…….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가문의 중요한 손님들에게 이리 무례한 행동이라뇨?!”
화가 잔뜩 난 여자의 외침에 팽팽했던 긴장감은 유리처럼 산산이 조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