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56화
그리핀과 후계자(5)
연분홍색 머리카락 사이로 자라난 앙증맞은 두 개의 뿔. 오동통한 볼살에 반쯤 감긴 눈동자가 졸린 것처럼 보였다.
두 명의 외모가 전체적으로 비슷했는데.
한 명은 셔츠와 바지를 입은 남자아이, 나머지 한 명은 원피스 차림에 리본으로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여자아이였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낯선 이의 방문에 새끼 그리핀들이 경계를 하며 내 쪽으로 되돌아왔다. 그리와 피니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다시 아늑한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쌍둥이인가?
그런데 엄청 귀엽네. 마족의 아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일지도?
독특한 분위기의 아기 마족들에게 눈길을 뺏긴 사이, 정원의 입구 쪽에서 메이드 차림의 사용인 몇 명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하아…… 하아…….”
“도련님? 아가씨?”
아무래도 이 아기 마족들을 데리러 온 듯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작은 아기 마족들은 찾아온 사용인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나만 계속해서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꽤 신분이 높은 아이들인 것 같았다. 아직도 살짝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들에게 바닥에 있던 공을 주워 건네줬다.
“이거 너희들 거니? 자! 가져갈래?”
“…….”
“…….”
바지를 입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공을 가져갔다. 아이는 받아든 공을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다시 내 쪽으로 공을 내밀었다.
“응? 나 주는거야?”
“응…….”
“어…… 고마워.”
나는 어정쩡한 인사를 하며 공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남자아이는 뒤돌아서서 정원 한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어느 정도 떨어져 멈춰선 아이는 양팔을 느릿느릿 움직이며 신호를 보냈다.
아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와 공놀이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조금은 뜬금없는 상황에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안드라스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살피고 있었고. 바르바토스 사람들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굉장히 놀란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원피스를 입은 아기 마족은 아직도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기…… 여기…….”
기다리다 못한 남자아이가 느릿느릿한 말투로 다시 신호를 보냈다. 딱히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도 없어서 손에 든 공을 조심스럽게 굴려주었다.
-데구르르.
덥석!
아이는 굴러오는 공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공을 머리 위로 높게 들어 올렸다.
“…….”
공을 든 아이의 반쯤 감긴 눈이 나를 향했다. 그 멍한 눈빛 속에는 정말 알아보기 힘든 미세한 신호가 담겨 있었다.
꽤 오랫동안 은율이를 돌봐오면서 많이 겪어본 저 눈빛…… 그래! 저건 바로 칭찬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은율이를 통해 단련된 부성애가 발동된 것일까?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아이의 눈빛에 반응했다.
-짝! 짝! 짝!
“와아! 대단해! 공을 엄청 잘 잡네?”
약간 과장된 내 감정 표현에 옆에 있던 안드라스와 지켜보던 사용인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공을 들고 있던 아이의 반응.
“응…… 열씨미…… 해써.”
다행히도 나의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반쯤 감긴 눈동자에 초롱초롱한 기운이 맴돌았다.
칭찬에 힘입어 아이는 공을 내 쪽으로 보내려 양팔을 휘둘렀다. 그런데 의욕이 너무 과했던 탓인지 공을 던짐과 동시에 상체가 기우뚱 기울어졌다.
-털썩.
결국, 균형을 잡지 못한 아기 마족이 잔디 위에 쓰러졌다. 아이가 쓰러짐과 동시에 사방에서 뾰족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앗?!”
“도, 도련님?!”
나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황급히 아이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괜찮아?”
“우우…….”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다친 곳이 없나 빠르게 살폈다. 오동통한 오른쪽 볼이 약간 빨개진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 주며 다시 물었다.
“아픈 곳은 없어?”
“…….”
아이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빨개진 오른쪽 볼을 조심스럽게 매만져주자, 반쯤 간긴 아이의 눈에 조금씩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보통의 아이와 다르게 엉엉 울지 않는 모습이 굉장히 기묘하게 느껴졌다.
특이한 반응에 당황하고 있을 때, 어느새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넘어졌던 남자아이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넘어져써……?”
“으응…….”
“마니 아파……? 울 거야……?”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어 보인 남자아이는 눈을 꼭 감았다. 아무래도 눈물을 참으려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착하다…… 착하다…….”
작은 손길로 열심히 달래주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푸근해졌다. 남자아이는 아직 눈가에 눈물이 남아 있었지만, 여자아이 덕분에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너무나 귀여운 두 아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둘을 팔로 감싸 안았다. 혹시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두 아기 모두 내게 착 달라붙으며 안겨 왔다.
“둘 다 너무 착하고 어른스럽네! 아저씨랑 같이 간식 먹으러 갈까?”
“응…….”
“응…….”
나는 양팔에 아기들을 안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안드라스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마수뿐만 아니라 어린 마족들도 잘 다루시는 겁니까?”
“안드라스 씨도 나중에 자식 키워보세요. 어쩔 수 없이 전문가가 되실 겁니다.”
“그런 겁니까? 하하하!”
내 대답에 안드라스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은 아이를 기른다는 일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여운 딸이 생길지 전혀 몰랐으니까.
웃고 있는 안드라스에게서 시선을 돌려 품에 안긴 아기들을 내려다봤다. 인형처럼 품에 쏙 들어와 있는 모습이 인형처럼 귀여웠다.
흐뭇하게 웃으며 테이블 위를 살폈다. 아기들에게 줄 간식을 찾고 있던 도중, 아기들을 뒤따라왔던 메이드 중 한 명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 저기…….”
“네?”
“여기…… 도련님이랑 아가씨가 좋아하는 간식들이에요. 필요하실 것 같아서…….”
“아! 감사합니다.”
메이드는 따로 챙겨온 간식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아기들의 반쯤 감긴 눈이 반짝이는 걸 보니, 확실히 좋아하는 간식인 것 같았다.
내려놓은 간식 중에 사탕을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종이 포장지를 까서 아기들 입에 하나씩 넣어주었다. 둘 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탕을 받아먹었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입안에서 사탕이 움직일 때마다 통통한 볼이 깜찍하게 움직였다. 정말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삐이?
-삐이익!
바구니 안에 있던 그리와 피니가 고개를 내밀고 아기들을 바라봤다. 경계심과 호기심이 반반 섞여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탕을 맛보던 아기들도 새끼 그리핀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의 아기들이라며 관심을 가진 대상을 만지려 들거나, 어떤 반응을 보이기 마련인데. 품 안에 두 아기 마족들은 굉장히 침착했다.
“…….”
“…….”
그저 가만히 바구니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얌전한 모습 때문인지 새끼 그리핀들도 점점 경계심을 낮추기 시작했다.
“얘들아, 가까이서 볼래?”
-끄덕끄덕.
-끄덕끄덕.
나는 안드라스의 도움을 받아 바구니를 조금 끌어당겼다. 그리와 피니가 너무 불안해하지 않을 거리를 적절히 유지했다.
서로를 관찰하는 4명의 아기.
-꾸욱! 꾸욱!
품에 안겨 있던 여자 아기가 내 옷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이건…… 뭐야?”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그리핀이야.”
“구리핑?”
“구르핀?”
“그리핀!”
두 아기는 ‘그리핀’이라는 발음이 어려웠는지, 한동안 제대로 단어를 말하지 못했다.
“그리핀!”
“그리핀!”
“맞아, 그리핀이야. 잘했어.”
내 칭찬에 아기들은 의기양양해진 표정으로 그리핀이라는 단어를 계속 중얼거렸다. 그렇게 아기들과 시간을 보내던 도중 정원 입구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머머? 우리 아기들이 여기 있었구나?”
아기들과 닮은 연분홍색 머리칼에 귀족 가문의 아가씨를 연상케 하는 여자 마족이 우리 쪽으로 접근했다.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주변의 메이드, 호위병들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나와 안드라스도 일어서려고 하자, 그녀는 느긋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우리의 행동을 막았다.
“그냥 앉아 있어요. 보는 눈도 없는데 굳이 번거롭게 예의 차릴 필요 없잖아요?”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안드라스 쪽을 슬쩍 바라봤다. 그도 어깨를 살짝 으쓱해 보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테이블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남아 있는 자리에 살포시 앉았다. 귀족답지 않은 굉장히 자유로운 행동이었다.
“여기 앉아도 되죠? 혹시 불편하신가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아이들의 보호자 되세요?”
“네. 제가 그 귀여운 쌍둥이들을 낳은 엄마랍니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 질문에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보호자 분에게 허락도 맡지 않고 데리고 있었습니다.”
“괜찮아요. 우리 아이들과 잘 놀아주신 것 같아 제가 고마워해야죠.”
다행히 그녀는 내가 아기들과 함께 있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관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네요.”
“……?”
“제가 낳은 아이들이지만 성격이 굉장히 독특하거든요. 거기다 낯가림이 엄청 심해서. 가족들과 태어날 때부터 보살핀 유모를 제외하면 무조건 손길을 거부하거든요.”
“그런가요?”
“정말이에요. 안 그래도 유모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메이드들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낯선 사람이 주는 먹을 건 절대 입에도 안 댄다니까요.”
약간 푸념 섞인 그녀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기들을 뒤따르던 메이드들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던 게 아무래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품 안의 아기들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둘은 아까 내가 준 사탕을 아직도 오물거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그냥 이렇게만 보면 엄청 얌전하고 착한 아이들인 것 같은데…….
그래도 보호자가 왔는데 내가 계속 데리고 있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품에 있던 두 아기를 맞은 편의 여자 마족에게 넘겨주려 했다.
그러자 아기들은 내 옷을 꽉 붙잡으며 처음으로 직접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시러…….”
“여기 있을래…….”
“어엇?”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 마족은 더욱 눈을 반짝였다.
“어머머! 정말 신기하네요. 시현 님이 마수를 다루는 능력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혹시 아기들을 다루는 능력도 갖추고 계신 건가요?”
“아뇨……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만…….”
당황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이내 이상한 점을 느꼈다.
아직 소개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은 나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여자 마족은 미세한 내 반응을 눈치챘는지 곧바로 말을 이었다.
“혹시 제가 시현 님을 알아봐서 놀라셨나요? 하지만 바르바토스 가문의 사람이라면 못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한 일일걸요? 이곳에서 새끼 그리핀을 데리고 다닐 수 있는 분은 딱 한 분뿐이니까요.”
확실히 그녀의 말이 맞았다. 아까 안드라스가 말했던 대로 이곳 가문의 사람이라면 나에 대한 소문을 모를 수가 없을 테니…….
“그럼 조금 늦었지만 제 소개를 해볼까요? 저는 ‘에르마 티벨 바르바투스’라고 해요.”
“…….”
“아! 이렇게 설명하는 게 시현 님에게는 더 쉬우려나?”
생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다이애나 대부인이 제 어머니 되세요.”
그녀는 후계자 쟁탈에 깊이 연관된 세 명의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