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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59)화 (15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59화

그리핀과 후계자(8) 

“그…… 그게 정말인가요?”

슬픔으로 주름졌던 다이애나 대부인의 얼굴에 한 줄기 희망이 떠올랐다. 안드라스도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시현 님, 정말로 방법을 찾으신 겁니까?”

“확실한 건 아니에요. 그저 단순하게 머릿속에 떠오른 추측일뿐이에요.”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저도 몰라요. 일단 시도해 봐야 알 것 같아요.”

“으음…….”

애매한 대답에 안드라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녹록지 않은 현재 상황을 정리하려는 모습이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시현 님. 지금 빠져나가지 못하면 상황이 굉장히 곤란해집니다. 이곳은 바르바토스 가주님의 거처입니다. 심지어 의식을 잃으신 상태고요. 상황만 보면 우리는 이곳을 무단으로 침입한 상황입니다.”

“…….”

안드라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을 늘어놨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곳에서 붙잡히면 다이애나 대부인께서 우리를 안내해 줬다는 변명 따위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새끼 그리핀들을 데려나가는 건 고사하고, 우리의 안위도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

“신중히 선택하셔야 합니다.”

안드라스의 말이 옳았다.

손님 대접을 받고 있다지만 명백한 외부인.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도 문제인데, 쓰러진 가주의 방에서 발견이 된다면……?

우리를 별로 탐탁지 않아 하던 그 ‘예이거’라는 마족이 절대 우리를 곱게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나의 시선이 침대에 누워 있는 바르바토스 가주에게로 향했다. 그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을 빼면 굉장히 편안한 모습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새끼 그리핀들을 데리고 당장 떠나는 게 맞았다.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그리와 피니를 무사히 데려나갈 방법을 계속 고민하지 않았던가?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다이애나 대부인과 쓰러진 가주에게 도움을 줘야 할 의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일까?

머리는 계속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야 한다고 소리치는데, 마음속에서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내 생각을 혼란스럽게 했다.

안드라스의 경고가 무섭지 않아서도 아니었고, 마지막 기적을 바라고 있는 다이애나 대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도, 쓰러진 바르바토스 가주가 불쌍해서도 아니었다.

뭐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그래!

이건 농장에 와서 처음 야쿰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그 만남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건이 아닌, 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필연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았다.

그리고 이 알 수 없는 감정은 쓰러진 가주와 새끼 그리핀들을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리와 피니를 바라봤다.

-삐이?

-삐익?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 바라보는 두 녀석. 긴박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생겨났다. 이내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안드라스를 불렀다.

“안드라스 씨.”

“하아아…… 역시 그렇게 결정하신 겁니까?”

그는 내 표정을 보자마자 생각을 읽어내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조금은 민망한 기분이 들어 볼을 긁적거렸다.

“죄송해요. 제멋대로 결정해서…….”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시현 님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말한 건 저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 이렇게 될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티가 났나요?”

“티가 났다기보단…… 시현 님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한결같으신 분이니까요.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다른 농장 식구들도 시현 님을 신뢰하는 거고요.”

“안드라스 씨…….”

그의 진심이 담긴 말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가슴 속에 남아 있던 약간의 불안함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결정하셨다면 되도록 빠르게 진행해 주시겠습니까? 생각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 알겠어요.”

나는 마지막으로 다이애나 대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르바토스 가주의 치료를 시도해 볼 생각이에요. 성공한다고 장담을 드릴 순 없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아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요. 이제 믿을 수 있는 건 시현 님뿐이에요. 제발…… 제발 아들을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녀는 내 손을 양손으로 꼭 잡으며 애원했다. 치료를 허락한 이유는 나에 대한 신뢰라기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함이 더 큰 것 같았다.

아마 이렇게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섣불리 치료를 맡기지 않았을지도…….

나는 다이애나 대부인의 손을 한 번 강하게 잡아준 뒤, 바르바토스 가주가 누워 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직 침대 위에 있던 그리와 피니에게 손을 뻗었다.

-삐이? 삐이익!

-삐이익!

처음에 녀석들은 내가 손장난을 치는 줄 알고 활발히 부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손장난이 아님을 깨닫고 얌전히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새끼 그리핀들의 날개가 달린 등 쪽에 손을 올리고 의식을 집중했다.

교감 능력이 발동되자마자 머릿속에 알림음이 빠르게 울렸다.

[마수와 교감을 시도합니다.]

[대상은 당신에게 ‘친밀’한 감정을 가집니다.]

[대상은 당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새끼 그리핀들이 나를 믿고 있는 만큼 교감 능력은 정말 쉽게 이루어졌다.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는 말에 잠시 기분이 좋아졌지만, 금방 그 생각을 의식에서 멀리 밀어냈다.

지금 중요한 건 바르바토스 가주의 치료!

다이애나 대부인은 분명 ‘그리핀의 인정’만이 저주를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건 단순히 그리핀과 친해지는 걸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게 단순한 방법이었다면 바르바토스 가문이 이렇게 고생하지도 않았을 거다. 더 깊은 곳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새끼 그리핀들에게 더욱 의식을 집중했다. 양손을 통해 녀석들의 작은 움직임과 감정, 그리고 생명의 파동까지 세세하게 느껴졌다.

“…….”

-…….

-…….

시간의 흐름을 잊을 정도로 집중하던 중.

아이들의 몸속에서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너무 작고 희미해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방 놓쳐버릴 것 같았다. 천천히 그 기운을 향해 의식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작은 기운은 마치 반가워하는 것처럼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손과 팔을 타고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바람 영혼의 파편’을 얻었습니다.]

[‘대지 영혼의 파편’이 조금 더 완전해집니다.]

[일부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바람 영혼은 아주 미약하지만 내 몸속을 돌아다니며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을 들게 해줬다. 그 모습이 마치 정원을 열심히 뛰어다니던 새끼 그리핀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 바람 영혼이 바르바토스 가문의 저주를 벗어나게 해줄 열쇠인 게 틀림없어.

그런데 어떻게 이걸 바르바토스 가주에게 전하지…….?

바람 영혼을 전할 방법을 고민하던 그 순간!

-가주님이 계시는 곳에 침입자가 숨어들었다!

-당장 문을 열어라!

-쾅! 쾅! 쾅!!!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기사들이 문이 열리지 않도록 몸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당장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뚫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시현 님!”

안드라스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바깥의 상황은 신경 쓰지 마시고 치료를 계속해 주세요. 어떻게든 제가 시간을 벌어보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안드라스의 소매에서 아티팩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굳은 표정에서 전투를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은 미안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안드라스가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 그사이에 어떻게든 치료를 끝마쳐야 했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어떻게 새끼 그리핀들의 바람의 영혼을 가주에게 전할지…… 생각해!!

문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소란스러움을 넘어 점점 격렬해졌지만, 양손으로 귀를 막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오로지 방법을 찾는 데만 집중해 머리를 쥐어짰다.

끄으응…… 아? 맞다?!

서예린 그리고 뽀삐!!

예전에 소환술을 배우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나는 붉은 사슬에 고립되어있던 뽀삐의 영혼을 해방하고 서예린에게 그 영혼을 이어줬다.

세부적인 상황은 달랐지만, 새끼 그리핀들의 바람 영혼을 가주에게 전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같았다.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됐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이제 고막이 떨릴 정도로 커다란 폭음이 문 쪽에서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초조해지며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망설일 시간은 없다. 무조건 해야만 해!

제발 이 방법이 정답이길…….

나는 누워 있는 바르바토스 가주의 명치 부근에 손을 가져갔다. 손끝을 통해 느껴지는 냉기에 잠시 몸을 움찔거렸다.

나머지 손은 그리와 피니에게 향했다. 다행히 녀석들은 얌전히 내 손길에 몸을 맡겼다.

서예린, 뽀삐와 함께 했던 그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억지로 끌어당기려 하지 말고…….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양팔에서 붉은 사슬이 생겨났다. 그중 하나는 천천히 바르바토스 가주의 명치로 스며들었다. 나머지 한쪽 붉은 사슬은 새끼 그리핀들의 주변을 감싸듯 구 모양을 만들었다.

-삐이익?

-삐익! 삐익!

새끼 그리핀들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붉은 사슬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나는 내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은 까맣게 모른 채, 오로지 가주를 치료하는 데에만 모든 힘을 다했다.

* * *

-콰아아앙!!!

“크윽…….”

안드라스의 신음과 동시에 아티팩트가 전개한 보호막이 깨어져 나갔다.

예이거와 그를 따르는 병력은 커다란 문을 부숴 버리다시피 하며 길을 뚫었다.

예이거가 손바닥에 남은 마법의 불길을 털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슈나르페 가문은 확실히 대단해. 아티팩트 만으로 내 마법의 위력을 이렇게까지 버텨낼 줄이야.”

“칭찬…… 고맙습니다.”

“하지만 유감이군. 실력을 발휘해야 할 곳을 잘못 정했다. 지금 네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하하…… 글쎄요? 저보다는 가주가 머무는 곳에 무지막지한 마법을 쏟아내신 분이 더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안드라스의 빈정거리는 태도에 예이거의 볼이 푸르르 떨렸다. 그는 들끓는 감정을 겨우 억누르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가주가 머무는 곳에 숨어든 침입자들과 그에 동조한 가문의 배신자들을 잡아들여라. 모두 지하 감옥에 가둬두었다가, 곧 있을 가문 회의에서 심각한 죄에 걸맞은 처벌을 논하겠다.”

“예!”

예이거의 부하들이 방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다이애나 대부인이 그들의 앞으로 나섰다.

“모두 멈추세요!”

-우뚝!

어두워서 얼굴은 흐릿해도 모두가 금방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순간 몸을 움찔 떨면서 방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춰 섰다.

예이거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이애나 대부인을 바라봤다.

“어머니…… 어째서 가문의 침입자들과 함께하시는 겁니까?”

“몇 번을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모셔온 중요한 손님들이라고!”

“아무리 가문의 손님이라고 해도 가주의 방에 몰래 숨어드는 짓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분들은 내가 직접 이곳으로 데려왔다. 네가 그분들을 이곳으로 데려오지 못하게 하려는 걸 모를 줄 알았느냐?”

“…….”

다이애나 대부인의 외침에 예이거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 그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어머니께서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니. 얼른 방으로 모셔드려라.”

예이거의 부하들은 주춤주춤 다이애나 대부인에게 다가섰다.

“대부인 마님…… 쉬실 수 있게 금방 방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다이애나 대부인은 가문에서 가장 큰 어른이었다. 예이거의 명을 따르는 기사들도 차마 그녀의 몸에 손은 대지 못하고, 거듭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권했다.

“…….”

하지만 그녀는 입구를 막아선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쩔 줄 모르는 기사들의 뒤쪽에서 예이거의 싸늘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뭣들 하느냐?! 얼른 어머니를 모시지 않고!!”

기사들은 체념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섰다.

“대부인 마님…….”

“…….”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이 다이애나 대부인의 몸에 손을 대려는 순간!

“모두…… 멈춰라!”

“……?!”

“……?!”

방 안쪽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두가 얼어붙었다. 주변은 삽시간에 조용해져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저벅……. 저벅…….

느릿느릿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모두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아…… 정말로…… 기적이…….”

“말도…… 안 돼…… 어떻게…….”

다이애나 대부인과 예이거는 다가오는 발걸음의 주인공을 보며, 격렬한 감정에 숨이 벅찬 듯 말을 떠듬떠듬 내뱉었다.

-우뚝!

모두의 앞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어깨를 활짝 펴고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위태로워 보였지만, 기세와 무게감은 이미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남자의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냐…….”

“…….”

“…….”

“감히 가주가 머무르는 곳에서 소란을 피우고…… 가문의 가장 큰 어른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놈들은…… 누구냐?”

갈라지고 힘없는 목소리가 모든 사람에게 귓가에 똑똑히 전해졌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천둥소리를 들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다이애나 대부인에게 손을 대려 했던 기사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다. 그들은 황급히 남자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가, 가주님을 뵙습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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