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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1)화 (16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1화

카디스 영주(1) 

“얘들아! 어서 따라와!”

-무우우! 무우우!

-삐익! 삐이익!

-삐이익!

은율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뛰어나가자, 아꿍이와 새끼 그리핀들이 그 뒤를 졸졸 쫓기 시작했다.

아직 솜털이 가득한 그리와 피니는 제법 걸음걸이가 그럴듯해졌다.

재빠르게 도망치던 은율이는 금방 흉포한 마수들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잔디밭 위에 쓰러진 여우 소녀에게 귀여운 마수들이 달려들었다.

-무우우! 무우우!

-삐이익! 삐익!

“꺄하하하하! 간지러워 얘들아!”

은율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농장 주변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번져나갔다.

“선배, 도대체 아이들은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활력이 뿜어져 나오는 걸까요?”

“글쎄다. 원래 아이들의 체력은 무한이라고 하잖아. 저렇게 뛰어놀다가 밥 먹고 낮잠 한숨 자면 금방 체력을 충전해 버릴걸?”

“저도 체력은 어디서 꿇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아이들의 무한한 체력에는 못 버틸 것 같네요.”

엘프리드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반응에 동의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고생을 여러 번 해본 나로서는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은율이가 많이 기뻐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요. 새끼 그리핀들을 못 데리고 왔으면 어쩔뻔하셨어요?”

“그리, 피니 쉽게 데려온 줄 알아? 하마터면 바르바토스 가문 병사들에게 침입자로 붙잡힐뻔했다고.”

“큭큭, 안드라스 선배한테 들었어요. 이번에도 시현 선배가 시현 선배가 대책 없이 오지랖 부리셔서 큰일 날 뻔하신 거죠?”

“크흠, 큼! 대책이 없는 것까지는 아니고…….”

나는 민망한 표정을 숨기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긴 했다. 때맞춰 가주를 깨워내지 못했다면 바르바투스 가문의 지하 감옥을 구경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려운 선택에서 성공한 덕분에 최고의 결과를 얻어냈잖아? 바르바투스 가주도 치료했고, 귀여운 새끼 그리핀들도 다시 농장으로 데려올 수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네요. 생각해 보면 선배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존재라니까요. 이번에는 바르바투스 가문의 비밀스러운 저주를 뚝딱 해결하고 오신 거잖아요?”

“그건 나도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괜히 나중에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와 안드라스가 바르바투스 가문을 떠날 때.

다이애나 대부인은 직접 우리의 손을 잡고 며칠만 더 머물러 달라고 간청했었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거절하고 농장으로 되돌아왔다.

농장의 일이 걱정되기도 하고 은율이가 빨리 보고 싶어서 거절한 것도 이유였지만, 혹시나 귀찮은 일에 더 휘말릴까 봐 걱정됐던 게 더 컸다.

바르바투스 가주가 말했던 대로 나는 그들의 약점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으음…….

설마 진짜로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아빠∼!”

-무우!

-삐이익!

-삐이익!

가까이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바르바투스 가문에 관한 생각에서 깨어났다.

한 명의 여우 소녀와 아기 야쿰 그리고 새끼 그리핀들이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와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봤다.

얼마나 신나게 바닥을 굴렀는지, 온몸에 흙먼지와 풀, 작은 나뭇가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적당히 털어낼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이 대책 없이 귀여운 아이들을 하나하나 씻길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모두 표정은 또 어찌나 순진무구한지…….

내가 언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오면 칭찬을 해줬었나? 순간 의심이 들 정도로 아이들의 표정은 해맑았다.

이렇게 아이들이 행복해하는데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체념의 한숨을 작게 내쉬고, 이내 방긋 웃어 보였다.

“재미있게 놀았어?”

“응!”

-무우!

-삐익!

-삐익!

“재미있게 놀았다니 참 다행이네. 그럼 우리 간식 먹기 전에 몸부터 깨끗하게 씻을까?”

“응, 씻을래. 할머니가 먹기 전에는 항상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했어!”

“은율이는 착한 아이네. 할머니 말씀도 잘 기억하고.”

“에헤헤.”

내가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은율이는 여우 귀를 쫑긋거리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무우우. 무우우.

-삐이. 삐이!

-삐이…….

은율이만 칭찬해 줘서 질투가 났는지, 다른 세 마리의 마수들도 울음소리를 내며 관심을 끌었다. 나는 웃으며 하나씩 차례로 쓰다듬어줬다.

“알았어. 너희들도 착한 마수가 되고 싶으면 깨끗하게 씻는 거야. 알았지?”

-무우!

-삐익!

-삐익!

착한 마수가 되려는 아꿍이, 그리, 피니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이 아이들을 전부 씻기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혼자서 씻고 말리는 것까지 다 하려면 최소 1시간 반은 걸리겠는데? 아이들의 목욕 시간을 체크하던 도중 옆쪽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가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허! 동작 그만!”

“으윽?!”

“선배 몰래 어딜 그렇게 조용히 가시나?”

“하. 하! 오늘 딸기밭에 도와줄 일이 있었는데, 깜빡하고 있었네요. 금방 다녀올…….”

“그거 벌써 오전에 다 끝냈잖아.”

“…….”

“잔말 말고 아이들 목욕시키는 거나 도와줘. 둘이서 하면 그나마 빨리 끝낼 수 있을 거야.”

엘프리드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일은 곧잘 도와주면서. 목욕시키는 일은 왜 이렇게 꺼리는 거야?”

“그렇지만 무섭잖아요. 혹시 제가 목욕시키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잘못되긴 뭘 잘못돼? 평소에 네가 씻는 것처럼 하면 돼. 물 온도만 잘 맞춰주고, 감기 걸리지 않도록 털을 잘 말려주는 것만 기억해.”

나는 엘프리드와 아이들을 이끌고 농장 건물로 향했다.

* * *

“손님, 바람이 뜨겁지는 않으세요?”

드라이기로 아꿍이의 털을 말리면서 미용실 원장이 된 것처럼 물었다.

-무우우…….

아꿍이는 뜨뜻한 바람에 기분이 좋은지 몽롱한 울음소리를 냈다.

빽빽한 털의 구석구석까지 잘 말려주자 주변에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왔다. 새로 구매한 자극이 적은 반려동물 샴푸를 이용했는데, 생각보다 성능이 괜찮은 것 같았다.

“자! 끝났다.”

-무우우. 무우우.

“깨끗하게 씻으니까 개운하고 기분 좋지?”

아꿍이의 털을 쓰다듬자 손끝에 기분 좋은 부들부들함이 느껴졌다.

“그럼 이제 다 같이 간식 먹으러 가볼까?”

“와아! 간식!”

-무우우!

-삐익!

-삐익!

먼저 목욕을 끝내고 기다리던 은율이가 기뻐하며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아꿍이와 새끼 그리핀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아이들이 동시에 나서자 기분 좋은 향기만 잠시 방 안에 일렁였다.

“하아…….”

“고생했어, 엘린.”

진이 빠진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엘프리드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그의 도움 덕분에 생각보다 아이들의 목욕을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으어어! 너무 힘들었어요.”

“엄살은…… 은율이를 씻기는 일은 리아네 씨가 대신 해줬고, 너는 몸집이 작은 그리와 피니만 씻겨줬을 뿐이잖아.”

“작아서 더 신경 쓰인다고요! 혹시 잘못 힘주면 다치지 않을까…… 아파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섬세한 걱정을 하는 엘프리드.

나는 그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잘했어. 앓는 소리는 그 정도만 하고, 우리도 간식이나 먹으러 가자.”

“네…….”

먼저 일어서 앉아 있던 엘프리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를 일으켜 세워주고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 앞 복도에서부터 북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 안으로 들어서자 생각지도 못한 손님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시현 님, 엘린 님 오셨군요. 어서 와서 간식 드세요. 금방 따뜻한 차를 준비해 드릴게요.”

“어어. 왔냐?”

리아네와 카네프가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들 옆에는 발레리안과 안드라스, 그리고 바르바토스 가문의 베베토까지 와있었다.

“안드라스 씨, 리안 씨 언제 오셨어요?”

안드라스는 오늘 오전에 마왕성에 일이 있다며 일찍 나갔었다. 발레리안은 평소 사무실에서 보던 정장 모습이 아니라 뿔을 드러낸 마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왕성에서 일을 끝내고 방금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저도 마왕성에 있다가 안드라스, 이 친구와 함께 왔습니다. 시현 씨에게 전해야 할 소식도 있어서요.”

나한테 전해야 할 소식?

발레리안이 말하는 소식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던 베베토에게 시선을 돌렸다.

“베베토 씨는…….”

“그냥 베베토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시현 님.”

“으음…… 베베토는 이곳에 무슨 일로……?”

“바르바토스 가주님의 명으로 시현 님께 전해야 할 소식이 있어서 찾아뵙게 됐습니다.”

오늘 무슨 날인가? 갑자기 나한테 무슨 소식들이 이렇게 동시에 오는 거지? 분위기를 살펴보니 그렇게 나쁜 소식인 것 같지는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오늘 간식은 내가 가져온 한과 세트였다.

이미 농장 식구들뿐만 아니라, 은율이와 다른 마수들도 입에 한과를 하나씩 물고 있었다.

금방 리아네가 따뜻한 차와 간식을 나와 엘프리드 앞에 내어놓았다. 한과 하나를 집어 먹으며 발레리안에게 물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모여서 좋긴 한데.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마왕성에 다녀오셨다고요?”

“네. 중요하게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직접 마왕성에 다녀왔습니다. 시현 씨에게 전해드릴 소식도 그것과 연관되었거든요.”

“……?”

“드디어 시현 씨의 영지, 카디스 영지가 완전히 확정됐습니다!”

“네?”

나는 발레리안이 말하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카디스 영지에 대한 건 내가 마왕성에 갔을 때 정해진 거 아니었나?

이런 내 의문을 짐작한 듯 안드라스가 부가적인 설명을 이어나갔다.

“시현 님이 마왕님께 귀족의 지위와 영주의 권한을 인정받으셨지만, 아직 영지에 대한 자세한 사항들을 확정 지은 건 아니었습니다. 특히 시현 님에 경우에는 마왕님께서 독단적으로 결정하신 경향이 있으셔서 시간이 좀 더 걸린 편입니다.”

“그렇군요.”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소식이긴 했어도 내가 영주가 되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제 정식으로 카디스 영지를 증명하는 증서가 마왕성으로부터 도착할 겁니다. 그에 맞춰서 우리도 슬슬 준비를 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준비요?”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안드라스도 발레리안도 아닌, 여유롭게 한과를 맛보고 있던 카네프에게서 흘러나왔다.

“쩝, 뭐긴 뭐야? 당연히 네 ‘영주 취임식’이지.”

“영주 취임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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