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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2)화 (16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2화

카디스 영주(2) 

영주 취임식?

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자 카네프는 오히려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당연한 거 아냐? 정식으로 영주가 됐으니 당연히 취임식을 해야지.”

“아니…… 뭐…… 그게 틀린 말은 아닌데. 거창하게 취임식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대충 넘어가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곳저곳에서 반발이 튀어나왔다.

“절대 안 됩니다!”

“시현 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선배, 그건 좀…….”

발레리안, 안드라스, 엘프리드까지 차례로 말을 쏟아냈다.

너무나도 완강한 반대에 살짝 움츠러들어 리아네와 카네프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도 앞의 세 사람과 비슷한 의견인 듯했다.

“끄으응. 꼭 해야 하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취임식은 단순한 형식적인 절차가 아닙니다. 공식적으로 새로운 영지의 탄생을 알림과 동시에 영주의 역량을 평가받는 자리입니다.”

“으음…….”

“그런 중요한 행사를 그냥 넘겨 버린다면 주변 영주들에게 괄시받을 게 분명합니다. 시현 님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번에는 그 뜻을 존중해 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안드라스는 보기 드물게 내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아직 귀족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셔서 취임식의 중요성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만큼은 저 친구의 말대로 저희에게 맡기시지요.”

발레리안마저도 안드라스의 의견에 동의하며 강하게 나를 압박해 왔다. 두 사람의 매서운 눈길에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이, 일단 취임식이 중요하다는 건 알겠어요. 그러면 제가 뭘 준비해야 하는 거죠?”

내가 태도를 바꾸자 그제야 발레리안과 안드라스의 매서운 눈길이 약간 수그러들었다. 물론 무겁고 진지한 표정은 아직 그대로였지만…….

“흐음. 취임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참석한 손님, 둘째는 겉으로 보이는 행사의 규모.”

“참석한 손님…… 행사의 규모…….”

“손님은 새로운 영주가 가진 영향력을, 행사의 규모는 영주가 가진 부와 권력을 간접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발레리안의 설명을 간단히 하면. 인맥과 개인 능력을 재주껏 자랑하는 게 중요해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썩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었다.

“손님은 당연히 아무나 초대하는 게 아니겠죠?”

“많은 손님을 모으는 것도 좋지만, 숫자는 많지 않더라도 초대된 손님이 영향력 있는 존재일수록 좋겠죠.”

영향력 있는 존재?

나는 잠시 초대할 만한 인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봤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으으음! 저는 딱히 초대할 만한 분들이 없는 것 같은데요?”

“푸하하핫! 네가 초대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내 말에 카네프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녀석들만 해도 5대 가문 출신이 4명이나 된다. 그런데 초대할 만한 사람이 없어?”

“아……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베베토…… 를 제외하면 모두 농장 식구라고 생각해서 손님으로 초대할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내 대답을 들은 농장 식구들은 얼굴에 훈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네프는 훈훈한 분위기가 낯간지러운 듯, 무심한 표정으로 툭툭 말을 내뱉었다.

“저 녀석들에게 맡겨놓으면 손님은 알아서 채워올 거야. 명색이 5대 가문의 직계들인데, 설마 어중이떠중이를 데려오기야 하겠어?”

“…….”

“…….”

“…….”

카네프가 툭 던진 말에 세 사람 움찔 몸을 떨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어떻게든 취임식의 손님을 데려와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너무 부담 안 느껴도 돼요. 저는 여러분만 손님으로 와도 만족…….”

“부, 부담이라뇨?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현 님의 취임식을 제대로 빛낼 수 있는 분으로 모셔오겠습니다.”

“크흠, 시현 씨! 이래 봬도 사교계에서 발레리안이라고 하면 꽤 알아줍니다. 손님을 모셔오는 건 제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저도 어떻게든 선배의 취임식에 어울리는 분을 모셔오도록 해볼게요.”

“…….”

부담을 주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는데. 내 말에 세 사람은 오히려 발끈하며 어떻게든 대단한 손님을 데려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큭큭큭!”

카네프는 생각에 잠긴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며 소리 죽여 웃었다.

뭐…… 어찌 됐든 취임식의 초대할 손님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손님은 됐고.

다음은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건가? 취임식은 어떤 식으로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거지? 돌잔치나 환갑잔치 행사 대행처럼, 마계에는 행사를 대신 준비해 주는 곳이 없으려나?

취임식 행사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던 베베토가 슬쩍 입을 열었다.

“저…… 취임식 행사에 대해서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베베토? 네, 해보세요.”

“크흠, 저희 가주님께서는 시현 님에게 아직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현 님이 취임식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크게 기뻐하시며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아니…….

내가 취임식을 하는데 왜 바르바토스 가주가 기뻐해?

“저희 가주님께서는 시현 님의 취임식에 필요한 모든 금전적 비용과 인력을 지원하고, 행사 계획을 수립하는 일도 모두 저희에게 맡겨달라고 하셨습니다.”

“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농장 식구들도 놀란 표정으로 베베토를 바라봤다.

“시현 님만 허락해 주신다면 바르바토스 가문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최고로 성대한 취임식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

“오! 그거 좋은 소식인데? 바르바토스 가주가 뭘 좀 아는구먼. 통이 커!”

“흠, 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카네프 님.”

베베토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표정으로 여유롭게 대답했다.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행사를 계획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당장 계획을 세워보도록 하죠!”

“안드라스 선배, 일단 어디서 취임식을 진행할지부터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흐음, 일단 농장 건물은 취임식을 진행하기에는 너무 비좁을 것 같습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야외에서 진행해야 하겠습니다. 대신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으면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봐, 베베토라고 했나? 모든 걸 지원해 주는 거면 당연히 좋은 술도 구해오는 거겠지?”

“…….”

나는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농장 식구들은 베베토와 함께 영주 취임식의 계획을 착착 구상해나갔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점 커지는 규모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현 님, 어디 불편하세요?”

“아, 아뇨. 리아네 씨. 그냥 이야기가 갑자기 진행되는 것 같아서 머리가 좀 어지럽네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시현 님의 영주 취임식이라니! 벌써부터 기대가 돼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아요.”

리아네는 몸을 들썩거리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작 취임식의 주인공인 나만 빼고 모두 설레하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툭. 툭.

내 옆에서 조용히 간식을 맛보던 은율이가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빠, 치임식이 뭐야?”

“치임식이 아니라, 취임식!”

“치임식…… 츄임식…… 취임식!”

은율이는 발음이 약간 어려웠는지, 몇 번을 혼자 중얼거리며 발음을 고쳐나갔다. 금방 ‘취임식’ 발음에 성공하고 잠시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취임식! 취임식이 뭐야?”

“음…… 그러니까 누군가 중요한 일을 맡게 됐을 때, 모두 모여서 축하해주는 일이야.”

“그럼 아빠가 중요한 일을 하는 거야?”

“응. 영주님이 되는 거야.”

“와아아!”

은율이는 양팔을 벌리며 크게 감탄을 터뜨리더니,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내 품에 안겨 왔다. 아마도 영주가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내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듯했다.

크게 기뻐하는 은율이의 모습에도 나는 아직 부담감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얼굴 좀 펴지그래? 은율이도 저렇게 좋아하잖아?”

카네프가 내게 슬쩍 말을 걸어왔다.

“그게 잘 안 되네요. 아직도 제가 영주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고…….”

“해보지도 않고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 네가 어떻게 알아?”

“…….”

“애초에 자격도 없는 놈이었다면 마왕이 너에게 권한을 주지도 않았을 거야. 저기 열심히 떠들고 있는 녀석들도 그만큼 너를 인정한다는 거고. 영주님이 됐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

카네프 답지 않은 따뜻한 위로에 마음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압박감이 조금 덜해진 느낌이랄까?

“으응…… 그런데 아빠.”

“응?”

“영주님이랑 사장님 중에 누가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거야?”

“그건…….”

내가 대답을 잠시 망설이는 사이, 카네프가 은율이의 질문에 귀신같이 빠르게 대답했다.

“당연히 사장님이 더 중요하지. 사장님에 비교한다면 영주님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와아아…… 사장님 정말 대단해!”

은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하자. 카네프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났다. 나는 그 모습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봤다.

“사장님……?”

“으…… 응?”

“조금 전에 뭐, 영주님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아니……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카네프의 행동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시나마 마음속의 압박감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었다. 역시 카네프는 따뜻한 위로보다는 이쪽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 * *

나의 영주 취임식 날짜가 결정됐다.

그에 따라 농장 식구들은 영주 취임식을 바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초대할 손님들에게 보낼 초대장을 만들고, 베베토와 의논하여 어떤 방식으로 식을 진행할지 계획하고, 식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점검해 나갔다.

반면에 나는 아기 야쿰들과 그리핀들을 돌보며 평범한 농장의 일상을 계속해 나갔다. 열심히 농장일에 집중하는 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준비를 돕는 일이었으니까.

바르바토스 가문은 베베토가 약속했던 대로 정말 최선을 다해 취임식의 준비를 도왔다. 능숙한 실력의 건축가를 통해 야외에 행사 무대와 귀빈석을 만들어줬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져 꽤 그럴듯했다.

거기다 취임식 당일에는 일꾼들과 요리사까지 보내주기로 했다.

비용적인 측면을 대충 따져봐도 바르바토스 가문의 지원은 엄청났다. 괜히 카네프가 통이 크다고 칭찬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노력과 관심 속에 나의 영주 취임식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됐고, 어느새 모두가 기다리던 그 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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