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3화
카디스 영주(3)
영주 취임식에 대한 소식은 수인들이 사는 엘든 마을에도 전해졌다. 그 소식으로 인해 마을에는 알게 모르게 들뜬 분위기로 가득했다.
“사탕 아저씨, 사탕 아저씨! 취임식이 끝나면 정말 영주님이 되시는 거예요?”
고양이 소녀 미루가 나의 한쪽 팔을 잡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응,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네.”
“와아아…….”
미루는 입을 벌리고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내가 영주가 되는 상상을 나름대로 해보는 모양이었다.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왜? 미루는 내가 영주님이 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아, 아니요?! 저어어얼대 그런 생각한 적 없어요!”
내 질문에 미루는 펄쩍 뛰며 부정했다. 얼마나 필사적이었던지, 잡고 있던 내 팔이 땅겨지며 상체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저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 아저씨가 영주님이 되셔서 기뻐하고 있을걸요? 레빌 아저씨도 취임식 소식을 듣자마자 엄청나게 좋아하셨데요.”
미루는 옆에 있던 레빌까지 끌어들이며 자신의 진심을 표현했다. 레빌은 갑자기 자신이 언급되자 민망했는지, 짐짓 아닌 척하며 발을 빼려 했다.
“크흠…… 그렇게까지 기뻐하지는…….”
“다른 아저씨들 말로는 술에 약간 취하셔서 계속 자랑하셨다던데요? 사탕 아저씨를 이 마을에서 가장 먼저 안내했던 사람이 자기라고.”
“나도 직접 봤었지. 아마 새벽까지 수십 번은 더 자랑했을 거야. 큭큭.”
“라, 라구스?!”
“하하하하하!”
미루에 이어 라구스까지 증언을 하고 나서자, 레빌은 굉장히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라구스와 미루는 나를 따라 함께 웃었고, 레빌은 아예 등을 돌려 버렸다.
나의 웃음이 진정될 때쯤.
이번에는 라구스가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시현 님, 취임식 준비는 잘 돼 가고 계십니까?”
“음……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제 취임식이긴 한데, 준비는 다른 분들이 거의 도맡다시피 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나는 이런 쪽에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안드라스와 발레리안이 취임식에 준비를 주도했다.
베베토는 바르바투스 가문의 지원에 힘입어 두 사람의 지시를 착실하게 수행 중이었다.
내가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는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은 막바지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혹시 일손이 필요하시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더군요.”
“괜찮아요. 지금도 충분히 도와주시고 있으니까요.”
취임식 준비에 필요한 일꾼은 모두 베베토가 직접 데려왔다. 농장에 그 일꾼들을 모두 지내게 할 수 없었기에, 엘든 마을의 도움을 받아 임시로 지낼 곳을 마련했다.
거기다 마을 사람들은 베베토와 일꾼들이 중요한 일을 한다며 자발적으로 음식과 술을 대접했다.
처음에 수인 마을에 지내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던 일꾼들도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진심 어린 대접에 지금은 모두 만족한 모습이었다.
외부인의 방문을 극도로 경계하던 마을의 모습이 엊그저께 같은데, 이제는 마을 거리에 마족이 지나다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마을의 외적인 모습도 정말 많이 변했지만, 나에게는 내적인 변화가 더 크게 느껴졌다.
잠시 엘든 마을의 많은 변화를 느끼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내 팔을 잡고 있던 미루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사탕 아저씨.”
“응? 왜 그러니?”
“조금 있으면 그 취임식이라는 걸 하잖아요. 많이 멋있겠죠? 취임식이라는 거…….”
“내 취임식이라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아마도 굉장히 멋있지 않을까? 많은 분이 정말 열심히 준비해 주고 있으니까.”
대답하면서 나도 모르게 취임식에 대한 기대감이 슬쩍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너무 거창하게 준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버리고 나니 이제는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으으음…… 그럼 저도 아저씨 취임식을 구경하러 가도 돼요? 아저씨한테 방해 안 되도록 정말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게요.”
미루는 기대감과 불안함이 섞인 눈빛으로 내게 부탁했다. 긴장을 많이 했는지 내 팔을 잡은 고양이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취임식 보러오고 싶다고? 당연히 보러 와도 되지.”
“저, 정말요?”
“그럼. 그리고 왜 불편하게 멀리서 구경을 해. 손님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까 편하게 와서 구경해.”
“와아아아!”
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취임식에 초대했다. 미루는 크게 기뻐하며 내 주변을 방방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잠시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보다, 라구스와 레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분도 제 취임식에 오실 거죠?”
“저, 저희도 말입니까?”
라구스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 당연하죠. 혹시 바쁜 일 있으세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
“취임식 같은 중요한 자리에 수인들이 초대되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요. 혹시 시현 님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네요.”
“아…….”
라구스의 말을 이해하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수인들이 취임식에 참석하면 내가 이상한 취급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잠깐 생각을 정리한 나는 좀 더 확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라구스 씨가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겠어요. 그래도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 취임식인데 제가 부르고 싶은 분들을 부르는 게 맞잖아요?”
내 말을 들은 레빌이 소리 죽여 웃었다.
“크큭! 시현 말이 맞아. 주인이 초대하겠다는데 다른 놈들의 시선은 무슨 상관이야? 나는 꼭 참가할 테니까 좋은 자리로 부탁해.”
“좋은 자리로 마련해 둘 테니까 꼭 오세요.”
“하아…… 시현 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취임식에 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취임식에 참석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 사람들도 몇몇 더 취임식에 부르기로 했다. 너무 많이 초대할 수는 없으니, 라구스가 마을을 대표할 참가 인원을 추려냈다.
주로 나와 친분이 있고, 도움을 많이 준 사람들 위주로 선정했는데. 딸기밭에 많은 도움을 준 포코 영감이 가장 먼저 뽑혔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나 감동을 하여 한참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그리고 헤론과 그렉은 마을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초대 소식을 자랑하고 다녀 부러움과 질시의 눈길을 받았다고…….
* * *
드디어 영주 취임식이 열리는 날!
아직 이른 아침, 취임식에 참석하는 첫 손님이 농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할머니∼!”
은율이가 여우 꼬리를 살랑 흔들며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오랜만에 할머니 품에 안긴 은율이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예쁜 손녀, 그 동안 잘 지냈어?”
“응! 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 할머니도 계속 보고 싶었단다.”
“헤헷!”
한참을 꼭 붙어있는 어머니와 은율이를 보며 나와 발레리안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 카네프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여전히 멋있으시네요.”
“부인도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호호호!”
카네프는 평소에는 절대 구경할 수 없는 예의 바른 모습으로 어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첫 만남 때 보여준 모습 때문에 오늘도 계속 저렇게 행동할 모양이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어머니. 저 기억하시죠?”
“물론이지 리아네. 안드라스 씨도 잘 지내셨죠?”
어머니는 두 사람과도 즐거운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반가운 인사가 오고 가는 중, 긴장한 표정으로 기회를 보던 엘프리드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시현 선배의 후배로 일하고 있는 ‘엘프리드 리온 베르딕’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부인.”
“아! 엘프리드 씨, 반가워요. 평소에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우리 시현이를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제가 뭘…… 그리고 편하게 ‘엘린’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럼 그렇게 할까요?”
처음 만난 엘린까지 어머니와 인사를 무사히 끝마쳤다.
“조금 있으면 손님들이 도착할 것 같으니.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를 계속하시죠.”
발레리안의 말대로 우리는 함께 농장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농장으로 가는 짧은 순간에도 어머니와 농장 식구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취임식에 어머니를 초대하자고 먼저 제안한 건 발레리안 쪽이었다. 그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가족이 꼭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마계의 일에 어머니를 부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된다는 소식에 무척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생각을 바꿔 발레리안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내가 마계에서 영주 취임식을 하고, 그 자리에 어머니까지 모시게 될 줄이야…… 굉장히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농장 건물에 도착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1층 거실로 향했다.
리아네는 곧바로 차를 준비하러 주방으로 향했고, 안드라스는 손님들이 사용할 차원 도약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섰다.
“할머니, 할머니! 새로운 친구들 소개시켜 줄게.”
“새로운 친구들?”
“응, 잠시만 기다려.”
은율이는 2층으로 쪼르르 올라가더니, 금방 새끼 그리핀들이 담겨 있는 바구니를 가져왔다.
“어머, 얘들은 누구니?”
“그리핀이야. 얘는 그리, 얘는 피니!”
-삐이익?
-삐익? 삐익!
새끼 그리핀들은 처음 보는 어머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핀? 아직 이렇게 솜털이 많은 걸 보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네. 시현아, 저번에 오랫동안 여기 머물렀던 게 이 아이들 때문이니?”
“응, 맞아. 그때 이 아이들이 몸이 많이 안 좋았거든.”
“에구, 불쌍해라…… 지금은 괜찮은 거지?”
“이제는 건강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어머니는 안쓰럽게 쳐다보며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그리와 피니는 낯선 손길에 약간 경계를 하는가 싶더니, 금방 적응하고 자연스럽게 손길을 받아들였다.
경계심 없는 아이들의 모습에 엘프리드는 내심 놀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저 아이들이 왜 저렇게 경계심이 없죠?”
“모르고 계셨군요? 시현 씨가 태어난 가문은 대대로 마수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힘을 타고난다는 걸.”
“헉! 정말인가요?”
발레리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상한 소리를 늘어놨다. 하지만 엘프리드는 그 말에 홀딱 넘어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카네프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어라? 그때 너 없었나? 저번에 오셨을 때는 큰뿔이를 완전히 꽉 잡아 놓으셨는데. 새끼 그리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크, 큰뿔이를요? 어어…… 선배의 어머님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군요.”
아니, 우리 엄마가 언제 큰뿔이를 꽉 잡아놨다고……. 보다 못한 내가 더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짜!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엘린, 너도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 믿지 말고 다 흘려 버려.”
“에엣? 거짓말이었어요?”
“당연히 거짓말이지.”
“큭큭큭…….”
“하하하!”
멍한 표정을 짓는 엘프리드를 보며 카네프는 키득거렸고, 발레리안은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순진한 엘프리드를 놀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도중, 건물 밖에서 강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대규모의 인원이 차원 도약을 할 때 생기는 현상이었다.
발레리안은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하신 분들이 있나 보군요. 시현 씨, 함께 손님을 맞이하러 나가보시겠습니까?”
“그러죠.”
“저, 저도 같이 가요!”
나와 발레리안 그리고 엘프리드까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네프에게 잠시 어머니와 은율이를 부탁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이미 차원 도약에 성공해 많은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 중 앞쪽에 있던 한 사람이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왔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아…… 네, 반갑습니다.”
자애로운 미소가 잘 어울리는 귀부인.
바르바토스 가문의 다이애나 대부인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잠시 시선을 뺏긴 사이. 다리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시선을 내려보니 두 아이가 다리에 하나씩 달라붙어 있었다.
“안녕…….”
“안녕…….”
“너희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