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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5)화 (165/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5화

카디스 영주(5)

취임식이 시작되기 전.

조금씩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야외에 준비된 식장의 자리가 거의 남지 않게 됐다.

바르바토스 가문의 지원으로 준비된 자리긴 해도, 너무 빈자리가 많이 남아 쓸데없는 돈 낭비를 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내 걱정과는 다르게 자리는 가득 채워졌다.

“어머! 시현이가 그런 일을 했었나요?”

“네, 아마 시현 님이 없었다면 제 둘째 아들은 아직도 일어나지 못했을지 몰라요.”

“그런 큰일이 있었군요. 제 아들은 집에 오면 이런 이야기를 잘 안 해주거든요.”

“그런가요? 시현 님이 마계에서 한 일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일들이라 귀족가에서는 최근 소문이 뜨거워요. 특히 시현 님의 혼처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소문에 귀족 가문의 아가씨와 귀부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답니다.”

“호호호! 아들이 마계에서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이야.”

“괜찮으시다면 가문에 괜찮은 여자아이를 소개해 드릴까요? 시현 님의 짝으로 딱 어울리는 아이가 있거든요.”

어머니와 다이애나 대부인은 서로 소개를 받고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발레리안이 건네준 통역반지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어머니 특유의 친화력이 대단한 건지…….

다이애나 대부인과 어머니를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나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지구나 마계나 자식을 둔 어머니들의 관심사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 만나서 금방 친해진 분들이 또 있었다.

“그리, 피니! 이리와!”

-삐이익!

-삐이익!

은율이가 이름을 부르자 새끼 그리핀들은 목소리의 주인에게 곧바로 달려갔다.

“와아……!”

“와아……!”

그 모습을 지켜본 쌍둥이는 특유의 느긋한 목소리로 탄성을 터뜨렸다. 정말 놀랐는지 항상 반쯤 감겨 있던 눈동자가 조금은 더 크게 떠진 상태였다.

-쪼르르르.

-덥석!

레이와 샤샤는 은율이에게 달려가더니 양쪽으로 착! 달라붙었다.

품에 안긴 새끼 그리핀들을 힐끔힐끔 구경하다가 반짝이는 눈으로 은율이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는거야……?”

“나도…… 나도……!”

“잠깐만! 아빠가 어린 마수랑 친해질 때는 너무 급하면 다가가면 안 된다고 했어. 조금 멀리 떨어져 천천히 기다리면서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면 된대.”

마음이 급한 레이와 샤샤를 은율이가 차분하게 타일렀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쌍둥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나도 기다릴게.”

은율이는 방긋 웃으며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둘 다 착하다, 착해!”

마치 내가 칭찬할 때 평소 했던 행동처럼, 은율이는 레이와 샤샤를 함께 칭찬해 줬다.

쌍둥이들은 기분이 좋은지 얌전히 손길을 받아들이며 두 눈을 깜박거렸다.

아직 어리게만 생각했던 은율이가 이렇게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자. 뭔가 어색하면서도 굉장히 대견하게 느껴졌다.

쌍둥이가 은율이를 쪼르르 뒤따르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취임식이고 뭐고 아이들과 느긋하게 지내고 싶단 생각이 불쑥 치솟았지만, 엄청난 자제력으로 꾸욱 참아냈다.

셋이서 꼭 달라붙어 재밌게 지내는 모습에 나는 안심하고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리아네와 에르마에게 맡기고 다시 손님들을 맞이했다.

“시현 님, 이분은 제르무어 마법사단의 단장직을 맡고 계신 ‘아그룬 로브레아’ 단장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앞으로 카디스 영지를 맡게 될 임시현이라고 합니다.”

“제르무어 마법사단을 이끄는 ‘아그룬’이라고 합니다. 꼭 한번 임시현 님을 꼭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아그룬은 새하얗게 샌 백발에 주름진 얼굴, 꼿꼿하게 핀 허리에 커다란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흔히 게임이나 영화에 등장할 법한 나이 많은 할아버지 마법사 느낌이었다.

그는 차분한 눈동자로 잠시 나를 살펴봤다. 그의 눈빛에서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깊은 현기가 느껴졌다.

“시현 님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시면서, 속으로는 이 늙은이도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비범함을 숨기고 계시는군요?”

“으음. 칭찬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더 이상 새로움을 찾지 못하는 늙은이를 놀라게 하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지요. 허허.”

그의 인자한 미소에 나도 자연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바쁘신 와중에 취임식에 참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법사단은 일 때문에 항상 바쁘다고 들었거든요.”

“마계에 많은 인재가 모여 있는 곳이라 항상 일이 끊이지 않지요. 최근에는 새로 들어오는 단원들의 뛰어난 재능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많은 선배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도 이제 물러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그룬은 은근해진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힘에 부치는 늙은이의 어려움을 누군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슬슬 단장직을 다음 인물에게…….”

“무, 무슨 말씀입니까? 아그룬 단장님의 빈자리는 지금 아무도 메울 수 없을 겁니다.”

“원래 빈자리는 쉽게 메울 수 없는 법이라네. 누군가 그 빈자리를 억지로 채우려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자리가 되는 법이지.”

안절부절못하는 안드라스를 아그룬이 지긋하게 바라봤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동자를 보는듯했다.

“크흠! 두, 두 분이서 잠시 이야기 나누고 계시죠. 저는 저쪽에서 마실 것을 좀 가져오겠습니다.”

안드라스는 결국 무언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재빨리 이곳을 벗어났다. 마치 결혼 이야기에서 도망치는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아그룬은 털털한 웃음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허허. 아직 안드라스 부단장은 마법사단보다 이곳이 더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안드라스 씨를 단장으로 임명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단장에 어울리는 마족은 그리 쉽게 찾을 수 없어서 말이지요. 부단장이 성격은 게을러도 책임감은 강한 편이라, 이렇게 주기적으로 압박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쉽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테니까요.”

“…….”

“나중에 어쩔 도리 없이 단장직을 받아드는 모습이 기대되는군요. 허허허!”

제르무어 마법사단…….

생각보다 굉장히 무서운 곳이었네…….

이미 덫에 걸려든 것 같은 안드라스가 살짝 불쌍하게 느껴졌다.

* * *

황금시계 상회, 오르펭 상회의 상인들과 인사를 끝마치고. 이번에는 발레리안이 자신이 데려온 손님들을 만났다.

그의 양옆에는 아주 매력적인 여자 마족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한 명은 아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나머지는 셔츠와 자켓, 바지로 이루어진 수수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시현 님, 이분은 마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유명한 ‘뮤레인’ 님. 그리고 이쪽은 푸른수정 상회의 ‘수린’ 님이십니다.”

“뮤레인이라고 해요, 카디스 영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푸른수정 상회의 수린입니다.”

두 여인의 첫 인상은.

뮤레인은 화려하고 정열적인 붉은 장미를, 수린은 단아하고 신비한 수련꽃을 연상케 했다.

간단한 인사를 끝내자마자 뮤레인은 불쑥 내 쪽으로 다가왔다. 숨결이 닿을 것 같은 거리감에 움찔 한 발짝 물러섰다.

“제가 시현 님이 만드신 딸기잼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이번에 취임식을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꼭 만나 뵙고 싶어서 발레리안 님을 따라가겠다고 졸랐어요.”

“그,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무대 준비를 해야해서…… 나중에 공연이 끝나면 따로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그녀는 아이같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부탁했다.

“그렇게 할게요.”

“꺄아아! 고마워요, 시현 님! 그럼 공연을 준비하러 먼저 가볼게요. 열심히 할 테니 꼭 지켜봐 주세요. 수린도 나중에 봐!”

-쪽!

뮤레인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키스를 날렸다. 그리고 바쁜 걸음으로 연주자들이 준비 중인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멍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뮤레인이 너무 정신없이 굴었죠? 워낙 감정 표현이 풍부한 친구라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더 저렇게 정신없이 행동하는 것 같아요. 혹시 기분이 나쁘셨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아닙니다. 조금 당황했을 뿐이지, 기분이 나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수린의 눈꼬리가 살포시 휘어졌다. 아까 뮤레인과는 다르게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미소였다.

“저도 시현 님이 만드신 딸기잼을 먹어봤어요. 특히 ‘카디스’라는 이름이 붙은 딸기잼은 정말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어요.”

“맛있게 먹어주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혹시 생산량을 더 늘리실 예정이신가요? 딸기잼의 인기가 너무 좋아서 구하기가 힘들거든요.”

“죄송합니다. 워낙 수요가 많아서…….”

딸기잼 공방의 일꾼들이 작업에 익숙해지면서 생산량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폭발적인 수요에 비교하면 아직 택도 없는 수준이었다.

벌써 새로운 딸기잼 공방 건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혹시 나중에 뮤레인과 만나실 때, 저도 함께해도 괜찮을까요?”

“어…….”

아까와는 다르게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녀가 상회에 소속됐다는 걸 들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경계심이 생겨났다.

찰나의 변화를 눈치챈 수린이 한 박자 빠르게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숙하진 않거든요. 그저 딸기와 딸기잼에 대해 시현 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아…… 죄송합니다.”

괜한 오해를 한 것 같아 정중히 사과했다. 그녀는 다시 차분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조금 있으면 취임식을 시작할 것 같으니, 인사는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겠네요. 미리 시현 님의 영주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수린은 간결한 축하 인사를 남기고 뮤레인이 향했던 무대 뒤편으로 걸어갔다.

“어떻습니까? 시현 씨.”

“아주 아름다운 분들이네요.”

“물론이죠. 지금 사교계의 젊은 남성들에게 뜨거운 구애를 받는 두 분이니까요. 시현 씨를 위해 정말 어렵게 모셔온 겁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살짝 생색을 내보였다. 확실히 두 사람 모두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확실해 보였다. 발레리안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따로 조용히 자리를 만들어드릴까요? 어느 쪽인지 말씀만 해주세요.”

“저는 됐어요. 오히려 리안 씨에게 더 어울리는 분들인 것 같은데요?”

나도 장난스럽게 반응하자 발레리안은 싱긋 웃어 보였다.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미리 인연을 만들어두는 게 좋을 겁니다. 특히 수린 씨 쪽이요.”

“그게…… 무슨 뜻이죠?”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이제 슬슬 준비하시죠. 진짜로 영주님이 되실 시간입니다.”

마지막에 생겨났던 의문은 얼마 남지 않은 취임식에 밀려 머릿속에 지워졌다.

무대에 연주자들은 각자의 악기를 마지막으로 점검했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손님들도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갔다.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점차 기대감과 설렘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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