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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7)화 (16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7화

뒷이야기(1)

취임식이 끝나고 야쿰과 요정들로 인해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야쿰들은 금방 조용해졌고, 신나게 주변을 날아다니던 요정들도 금방 제풀에 지쳐 사라졌다.

아직 몇몇 손님들은 예상치 못한 존재의 등장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연주자들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름다운 선율이 이 주변을 휘감았다.

부드럽고 잔잔한 음악 덕분에 혼란스러워하던 사람들도 금방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어찌어찌 취임식을 무사히 끝낸 내 앞에 수많은 마족이 몰려 너 나 할 것 없이 축하 인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카디스 영주님.”

“너무 멋있었어요, 영주님.”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나이가 지긋한 노귀족, 야망이 가득 차서 눈을 반짝이는 젊은 귀족, 마치 스타를 만난 소녀팬 같은 반응의 귀족 영애까지…….

모르는 사람과 이렇게 인사를 많이 나눠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인파에 인상이 살짝 찡그려지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슬쩍 옆으로 다가온 발레리안이 속삭였다.

“시현 씨, 표정을 흐트러뜨리시면 안 됩니다. 항상 웃어야 해요.”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이제 시현 씨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카디스 영지의 평가로 이어질 겁니다. 많은 귀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영주의 임무 중 하나입니다.”

“으으으…….”

“시현 씨. 귀족의 사교계를 만만하게 보시면 안 됩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실수 하나하나가 이곳에서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니까요.”

사교계의 무서움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나는 자연스레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하,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제가 쭉 옆에서 도와드릴 거니까요. 시현 씨는 표정을 관리하는 것만 신경 써주세요.”

발레리안의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안심시켰다. 조금이나마 긴장을 푼 나는 다시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발레리안은 그 많은 손님의 이름과 출신 가문, 거기다 간단한 신상정보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대화가 약간 막히려고 할 때쯤이면, 발레리안이 적당한 주제를 꺼내며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환기했다. 옆에서 지켜보는데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런 건 어떻게 다 아시는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교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편이었다고요. 이 정도는 당연히 기본입니다.”

그의 도움으로 몰려드는 손님들을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표정 관리를 원래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금방 내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피곤함과 거부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발레리안은 그런 내 모습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내 주변에 몰려들었던 손님들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여러분! 새로운 영주님께서 취임식 준비로 피로가 남아 있으신 것 같군요. 기다리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카디스 영주님은 잠시 휴식을 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군요. 아쉽습니다.”

사람들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에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모두 다 억지로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 않고, 순순히 물러나 다른 대화상대를 찾아 나섰다.

“오오…… 생각보다 모두 순순히 물러나네요?”

“적당히 끊을 줄 아는 것도 중요한 예절 중 하나니까요.”

나는 발레리안과 함께 농장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축하해요, 시현 님!”

“축하드립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표정을 환하게 밝히며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중에는 카엘도 함께였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카엘 어르신.”

“이렇게 빠르게 귀족의 자리에 오른 경우는 살면서 처음 보는구나. 아마 마계의 역사를 뒤져도 없을지도…….”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던 카엘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만큼 네가 뛰어난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겠지만, 언제나 뛰어난 능력에는 시기와 질투가 따르는 법. 앞으로 더욱 자신의 말과 행동에 조심해야 할 거야.”

어린아이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조언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조언 감사 드립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카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너도 앉아서 좀 쉬어. 조금 전까지 귀찮은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죽을 것 같은 표정이던데.”

“죽을 것 같지는 않았어요…….”

“큭큭큭. 이제야 내가 왜 이런 자리를 싫어하는지 알겠어?”

“…….”

나는 침묵으로 카네프의 물음에 대답했다. 확실히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몇 시간 동안 계속 야쿰들 빗질해 주는 게 더 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발레리안은 살짝 안쓰럽다는 듯 바라봤다.

“손님을 상대하는 일이 힘드시더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이번 시현 씨의 취임식은 하루 일정이지만, 규모가 훨씬 큰 곳에서는 나흘 정도 연달아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흘 동안이요?!”

“예. 실제로 체력이 좋은 분들은 나흘 내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손님을 맞이하시기도 합니다.”

“허어…….”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흘 동안이나 이런 일을 계속한다니……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시현 님, 마실 것 좀 가져왔어요.”

리아네가 음료가 담긴 유리잔을 건네자 긴장감에 잊고 있던 갈증이 뒤늦게 몰려왔다.

“아! 고마워요, 리아네 씨.”

“별말씀을요.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그녀의 상냥한 배려에 남아 있던 긴장감이 사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약간 여유가 생긴 덕분에 천천히 음료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봤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눈길이 갔다. 왜 저렇게 모여 있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의 중심에는 정말 놀랍게도 나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의 옆에는 다이애나 대부인이 있었고. 그 두 사람을 중심으로 귀족 부인들과 어린 여자 귀족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딱 봐도 어머니와 다이애나 대부인, 두 명이 대화를 주도하는 모양새였다.

어머니가 원래 수다 떠는 일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마계에서까지 그것이 이어질 줄이야…….

그 모습을 보고 감탄을 터뜨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호오…… 이런 쪽으로는 시현 씨보다 어머니께서 더 능숙하신 모양이군요. 물론 다이애나 대부인께서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계시겠지만, 처음부터 저렇게 분위기를 주도하기 쉽지 않거든요.”

발레리안이 감탄 섞인 반응을 보이자 다른 식구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앞으로 이런 자리가 있으면 모셔와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다시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둘러봤다.

유명하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려 있었다.

일단 다이애나 대부인도 그러했고, 제르무어 단장 아그룬이나, 푸른수정 상회 소속 수린의 주변에도 많은 사람이 몰렸다.

으음?

그런데 왜 이곳은 이렇게 조용하지?

나는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 자리에는 엄청난 명성을 가진 카엘도 있었고, 5대 가문 출신의 중요 인물이 3명이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잠깐잠깐 이곳에 눈빛만 보낼 뿐, 쉽사리 접근하거나 말을 걸려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을 찾지 못해 옆에 있던 발레리안에게 슬쩍 물었다.

“리안 씨. 그런데 우리 주변은 왜 이렇게 잠잠한 거예요? 카엘 어르신이나 다른 분들도 꽤 영향력이 있으신 걸로 아는데.”

“아…… 그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네프에게로 향했다. 그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맥주를 홀짝였다. 발레리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교계에는 한가지 절대적인 불문율이 있습니다.”

“불문율?”

“아주 간단합니다. 카네프 님에게는 절대로 다가가지 않는다.”

“……??”

발레리안에게 불문율을 듣자마자.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가도, 뭔가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떠오르며 이해가 되는듯한…… 아주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카엘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쯧쯧…… 얼마나 행패를 부리고 다녔으면…….”

“해, 행패는 무슨 행패야! 그, 그냥 귀찮게 하는 녀석들을 잘 타일렀을 뿐이야.”

‘잘 타일렀다’라…….

왠지 모르게 카네프가 잘 타일렀을 상대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아마도 사교계의 예절과는 거리가 먼 형태였으리라.

여러 가지 생각이 담긴 우리들의 눈빛에 카네프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애초에 영감탱이도 귀찮은 일 피하려고 지금 내 옆에 있는 거잖아? 누가 그 얄팍한 수법을 모를 줄 알고?”

“크흠……”

카엘은 카네프의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어라? 생각해 보니 그러네.

사장님 옆에만 있으면 귀찮은 일들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 사장님에게 이렇게 좋은 기능이?

하지만 내 생각은 금방 발레리안에게 간파당했다.

“시현 씨. 그런 식으로 피하실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으윽…… 티가 났나요?”

“그리고 너무 카네프 님과 붙어 있으면 평판이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전에 저도 카네프 님을 따라다녔다가 좋지 않은 소문에 휘말렸던 기억이…….”

발레리안의 충고에 이어 안드라스의 생생한 증언까지 이어졌다.

“아…….”

나는 외마디 탄식을 내뱉으며 카네프를 바라봤다. 결국, 참다못한 카네프가 잔뜩 심술이 난 표정으로 외쳤다.

“야! 다 꺼져! 나는 혼자서 술 마실 테니까,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살아라!”

‘아차’하는 표정을 지은 안드라스와 발레리안이 차례로 카네프를 달래기 시작했다.

“또 왜 그러십니까?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안드라스 말이 맞습니다. 카네프 님의 진정한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의 편견일 뿐이죠.”

“…….”

카네프는 제대로 심술이 났는지 듣는 척도 하지 않으며 맥주만 계속 들이켰다. 하지만 카네프의 심술은 다행히도 불문율 따위는 모르는 귀여운 손님 덕분에 오래가지 못했다.

“아빠!”

은율이의 새끼 그리핀들이 잠든 전용 바구니를 껴안고 있었고, 그 뒤에는 바르바토스 쌍둥이들이 졸졸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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