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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8)화 (168/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68화

뒷이야기(2) 

“은율아! 그리랑 피니 잘 돌보고 있었어?”

“응! 아빠가 알려준 대로 같이 놀아줬어.”

“역시 우리 딸 기특하네.”

“헤헤.”

힘차게 대답하는 은율이를 쓰다듬으며 듬뿍 칭찬해 줬다. 은율이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방긋 미소 지었다.

새끼 그리핀이 잠든 바구니를 받아 확인해 보니, 그리와 피니는 주변의 소란스러움에도 아주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마도 아이들과 함께 진이 다 빠지도록 신나게 뛰어놀았나 보다.

뒤따라온 바르바토스 쌍둥이들은 은율이의 양쪽에 섰다. 그리고 빤히 올려다보며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나는 금방 그 눈빛의 의미를 깨닫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들도 은율이랑 같이 새끼 그리핀들 돌봐준 거야?”

“응…… 누나랑 같이 놀아줬어.”

“언니가 말한 대로…… 가만히 지켜봤어.”

“그러니까…… 구리랑 삐니가 막 돌아다녔어.”

“잠들기 전에…… 같이 쓰다듬어줬어.”

레이와 샤샤는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새끼 그리핀과 놀았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조금 횡설수설하긴 해도 발음은 또렷한 편이라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쌍둥이들은 평소의 덤덤한 모습 같아 보였지만, 나는 아주 미세한 변화를 금방 알아챘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반쯤 감은 듯한 나른한 눈동자는 평소보다 훨씬 반짝거렸다.

쌍둥이는 무덤덤한 표정에서 감정이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게 놀았나 보다.

나는 은율이에게 했던 것처럼, 레이와 샤샤도 차례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너희들도 기특하네. 정말 잘했어.”

“응…… 잘했어.”

“…….”

내 칭찬에 샤샤는 의기양양한 포즈를 취했고, 레이는 부끄러운지 볼을 살짝 상기시키며 눈을 끔벅거렸다. 그래도 내 손길을 피하지는 않는 걸 보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나 보다.

“리아네 선배, 저 쌍둥이가 바르바토스 가문에서 온 아이들이죠?”

“네. 다이애나 대부인과 함께 오신 분의 아드님과 따님이세요. 엄청 귀엽죠?”

“그렇네요. 안녕? 너희들 바르바토스에서 왔니?”

엘프리드는 귀여운 쌍둥이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손을 뻗었다.

-휙!

쌍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던 손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허공을 휘저었다. 간단히 손길을 피한 쌍둥이는 뚱한 표정으로 엘프리드를 바라봤다.

마치 ‘네가 왜 우리를 쓰다듬어?’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굉장히 냉정한 반응에 엘프리드는 당황한 듯 몸을 떨었다.

“시, 시현 선배, 제가 혹시 아이들한테 뭘 잘못한 건가요?”

“딱히……? 그냥 이 아이들이 낯을 심하게 가린다고 하더라고.”

“선배도 처음 봤을 때 이런 반응이었어요?”

“아니. 나는 처음부터 잘 따르던데?”

“……??”

엘프리드를 바라보던 쌍둥이들은 아예 내 뒤로 쪼르르 숨어버렸다. 그는 살짝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끄으응. 도대체 시현 선배는 어떻게 아이들이랑 그렇게 쉽게 친해지는 거예요?”

“글쎄…… 은율이를 키우다 보니 부성애가 많이 늘었나?”

“엘린 군. 사실 시현 님의 가문은 대대로 마수와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아아! 그거 발레리안 선배가 벌써 저한테 써먹은 장난이라고요!”

안드라스가 장난을 시도했으나, 안타깝게도 발레리안이 먼저 한발 빨랐다.

그는 장난에 실패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식구들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키득거렸다.

그때 우리가 앉아있는 곳으로 에르마가 빠르게 걸어왔다.

“아…… 역시!”

쌍둥이의 엄마인 에르마가 살짝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나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레이와 샤샤를 바라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아이들이랑 놀아주다가 힘들어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그새를 못 참고 시현 님에게 와 있네요. 얘들은 평생을 나랑 같이 있었으면서, 어떻게 두 번밖에 안 만난 시현 님을 더 좋아하는 것 같죠?”

그녀는 가벼운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말투에서 숨길 수 없는 약간의 서운함이 느껴졌다. 괜히 민망해진 나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적거렸다.

“에휴…… 어차피 시현 님한테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네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여기서 잠시 쉬어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나는 곧바로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에르마를 소개했다. 그녀는 카엘과 카네프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곧바로 두 사람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나머지 식구들과도 짧게 소개를 끝냈다.

에르마에게 먼저 의자를 꺼내주고, 내 옆자리에 은율이를 앉혔다. 그리고 내가 자리에 앉으려는데…….

-스윽.

레이와 샤샤가 내 옆으로 와서 두 팔을 번쩍 들어 보였다. 지구와 마계의 구분 없는 전형적인 ‘안아주세요!’ 자세였다.

옆에 친어머니가 있는데도 나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쌍둥이. 누가 보면 내가 애들 아빠라고 생각하겠네…….

슬쩍 에르마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이미 체념한 모습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신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쌍둥이들을 양팔에 안아 올리며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더니,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내게 꼭 안겨들었다.

“허허, 아이를 안은 모습이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저 녀석은 이상한 데서 신기한 능력을 발휘한다니까.”

“아으…… 너무 귀여워요. 저도 안아보고 싶어요.”

카엘과 농장 식구들은 나와 쌍둥이의 모습에 감탄을 터뜨렸다. 에르마도 쌍둥이를 안은 내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으윽! 제가 아이들의 친엄마지만, 정말 화가 날 정도로 잘 어울리긴 하네요.”

그리고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 돌보미로 데려왔어야 했는데……’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진심이 잔뜩 묻어나온 것 같아 살짝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제 곧 엄청난 무대가 시작될 예정이거든요.”

엄청난 무대?

발레리안의 말에 나와 몇몇 사람들은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시현 씨는 아까 만나보셨죠? 조금 있으면 뮤레인이 무대에 올라올 겁니다.”

에르마는 깜짝 놀라며 급하게 물었다.

“설마 제가 아는 그 유명한 ‘뮤레인’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마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유명하죠.”

“용케도 그분을 여기 데려오셨군요? 제가 알기로는 쉽게 이런 자리에 부를 수 없다고 들었거든요.”

“하하, 약간의 인연이 있어서요. 중요한 시현 씨의 취임식이고 하니, 조금 무리해서 데려왔습니다.”

발레리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대에서 아까 봤던 뮤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한 화장에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입은 그녀는 등장만으로 사방에 그 존재감을 뿌렸다.

모든 사람이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천천히 무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만났을 때 보여줬던 가벼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모든 사람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냈다.

-휘익!

연주자들은 그녀의 손짓에 맞춰 곡을 연주했다. 서정적인 선율의 음악이 포근한 봄바람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뮤레인은 그 포근한 바람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한없이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다른 모든 소리를 밀어내며 귓가에 맴돌았다.

분명 사방이 탁 트인 공간인데도. 뮤레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극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뮤레인은 가냘프고 연약한 목소리로 마음을 잔잔하게 울리다가도, 갑자기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로 가슴을 뒤흔들기도 했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요동치는 기분. 아마도 신화 속 세이렌의 노래에 유혹당하는 선원의 기분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나는 잠시 눈을 돌려 다른 농장 식구들의 반응을 살폈다.

모두 한결같이 그녀의 목소리에 푹 빠져서 넋이 나간 듯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네프가 마시던 맥주를 가만히 놓고 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그 노래가 몰입감 있었는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중 은율이는 정말 뮤레인의 노래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들었다.

평소에도 노래 듣는 걸 좋아했지만, 오늘은 더욱 집중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잠시 후.

뮤레인의 노래가 끝나고.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져나왔다.

북받쳐오는 감정을 참지 못한 몇몇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열정적으로 환호를 보냈다.

그제야 진지함을 유지하던 뮤레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생겨났다.

충격적인 무대로 넘실대던 감동의 여운이 미처 다 가라앉기도 전에 뮤레인은 다시 한번 연주자들을 향해 손짓을 보냈다.

-휘익!

그러자 이번에는 아까와 정반대의 빠르고, 신나는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뮤레인도 그 리듬에 맞춰 몸을 살짝살짝 흔들기 시작했다.

물에 밝은색 물감을 확 풀어버린 것처럼 주변은 금방 경쾌한 분위기로 물들어갔다.

그녀는 조금 전의 뮤레인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또 다른 음색을 보여주며 경쾌한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흥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품에 안긴 쌍둥이들도 박자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렸다.

뮤레인의 노래가 점점 절정에 다다를수록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 중에서는 발레리안, 엘프리드, 리아네 그리고 에르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리듬에 몸을 맡겼다.

끝에는 연주자들의 화려한 기교와 뮤레인의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환상적인 마무리를 성공시켰다.

다시 한번 엄청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확실히 괜히 마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단 두 곡의 노래만 했을 뿐인데도 그녀의 매력에 벌써 매료된 것 같았다.

리아네는 아직도 흥이 가시지 않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안드라스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다른 농장 식구들도 비슷한 감상인 것 같았다.

한편, 이 자리에 뮤레인을 데려온 발레리안은 성공적인 무대에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거칠어진 호흡과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뮤레인은 무대를 바라보고 있던 나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꼬리가 길게 휘어지더니 나를 향해 한쪽 눈을 깜빡이며 윙크를 보냈다.

나는 멍하게 뮤레인을 바라보던 중,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아빠.”

“응? 은율아, 왜?”

은율이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내게 말했다.

“……하고 싶어.”

“응……?”

“나도 노래하고 싶어.”

“노래?”

“응!”

나는 기대감 가득한 은율이의 얼굴을 잠시 멍하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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