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71화
귀향(3)
아직도 듬직한 체구를 자랑하는 사과 아저씨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억센 손길로 등을 두드리는데 헛바람이 나올 정도였다.
“잘 왔다. 정말 잘 왔어!”
“죄송해요, 아저씨. 좀 더 일찍 찾아왔어야 했는데…….”
“괜찮아. 내가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다시 찾아와준 것만 해도 고마워.”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슴속에 뒤엉켜, 약간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차의 뒷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형수님! 멀리까지 오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준호 아버지. 별일 없으셨죠?”
“하하! 저야 뭐 늘 한결같은 게 유일한 장점인 사람 아니겠습니까.”
사과 아저씨는 어머니와 짧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선을 아래쪽으로 옮겼다.
“이 녀석들이 저번에 네가 말한 아이들이냐?”
“네, 맞아요.”
고향으로 내려오기 전, 사과 아저씨에게는 아이들에 관해 미리 이야기해두었다. 그 덕분에 아저씨는 엄청나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표정에서 약간 어색한 느낌이 전해졌다.
아무리 각성 현상과 다른 차원의 신비한 존재들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많은 사람이 실제로 그런 현상을 마주하면 굉장히 두려워하거나,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혹시나 사과 아저씨도 그렇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건 나의 지나친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아이고∼! 아이들이 너무 귀엽네. 어떻게 이리 작고 사랑스러울까?”
아저씨는 입을 헤벌쭉 벌리며 자세를 낮췄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너희들 이름이 뭐니?”
은율이는 낯선 아저씨의 인사가 부담스러웠는지 어머니의 다리 뒤에 얼굴을 숨겼다. 규리와 아꿍이는 아저씨에게 관심을 드러내며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너는 누구야, 뾰?」
-무우우?
규리는 아저씨의 주변을 휙휙 날아다니며 살폈고, 아꿍이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냄새를 맡거나 약하게 박치기를 했다.
“엄마 뒤에 숨은 아이는 ‘은율’이고요. 이 귀여운 털북숭이는 ‘아꿍이’, 날아다니는 친구는 ‘규리’예요.”
“은율아. 아저씨한테 제대로 인사해야지.”
어머니가 살짝 등을 떠밀자 은율이는 주춤주춤 앞으로 나섰다. 많이 긴장했는지 여우 꼬리와 귀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안녕…… 하세요. 은율이에요.”
인사를 끝마치자마자 이번에는 내 뒤로 뽀르르 숨어버렸다.
나는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은율이를 양팔로 안아 들었다. 자연스럽게 내 품 안으로 파고들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과 아저씨는 살짝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에잉…… 아저씨가 무서운 모양이네.”
“죄송해요. 원래 낯선 사람은 낯을 좀 많이 가려서.”
“네가 죄송하긴…… 내가 아이들에게 무서운 얼굴인데 잘못이지.”
갑자기 얼굴을 탓하는 아저씨의 모습에 어머니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으셨다.
“먼 길 운전하느라 피곤하겠다. 얼른 가자. 새로 이사한 집은 처음이지?”
“잠시만요. 차에서 선물 좀 꺼내올게요.”
안고 있던 은율이를 잠시 어머니에게 맡기고, 차의 트렁크에서 준비해온 선물들을 꺼냈다.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많긴 뭐가 많아요? 저번에 준호 형이 딸기를 얼마나 많이 보내줬는데. 그거에 비교하면 별거 아니에요.”
“그거랑 비교가 되나. 딸기는 남아 넘치니까 보내준 거고…… 이건 또 뭐냐? 약 같아 보이는데.”
“영양제 괜찮은 거로 몇 개 사 왔어요. 아주머니 것도 같이 챙겨서 양이 많아요.”
준비한 게 좀 많았던 터라 아저씨의 손도 빌려야 했다. 양손에 선물을 가득 들고 아저씨의 집으로 향했다.
* * *
-냠! 우물우물…….
“은율아, 맛있어?”
-끄덕끄덕.
은율이는 입에 떡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는 아꿍이와 규리도 정신없이 떡을 맛보고 있었다.
“어머나. 아이들이 떡을 너무 잘 먹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떡을 더해올 걸 그랬네.”
아주머니는 맛있게 떡을 먹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언니. 무슨 선물을 저렇게 많이 사서 오셨어요?”
“다른 사람 집에 손님이 어떻게 빈손으로 와요.”
“우리 사이에 섭섭하게 그러실 거에요?”
“그러니까 더 선물을 챙겨야죠. 동생이랑 준호 아버지한테 얼마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맞아요, 아주머니.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시고 꼭 받아주세요. 영양제 같은 건 엄마도 챙겨 드시는 거랑 똑같은 걸 사 왔으니까, 매일 꼭 챙겨 드세요.”
아주머니는 살짝 부담스러운 얼굴을 하셨지만, 준비해 온 선물들이 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영양제 같은 거 필요한가? 그냥 밥 잘 챙겨 먹고, 일 열심히 하면 되는데.”
“아저씨도 이제 열심히 관리하셔야죠.”
“시현이 말이 맞아요. 건강할 때 더 준비해야 하는 법이에요.”
“당신은 너무 본인 건강을 과신해서 문제예요. 매번 아파도 괜찮다며 병원에도 안 가고 끙끙대기만 하잖아요.”
“끄응…….”
아저씨는 괜히 말을 꺼냈다가 차례로 잔소리를 들었다. 특히 아주머니는 평소에 쌓인 게 좀 있었는지 감정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래도 찔리는 부분이 있었는지, 아저씨는 헛기침하며 억지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크흠…… 그건 그렇고. 형님 계신 곳에는 언제 올라가 볼 거냐?”
“저는 아저씨, 아주머니한테 인사드리고 바로 올라갈 생각이었어요.”
“조금만 기다렸다가 올라가는 게 어떠냐? 아마도 준호 녀석 오전 예약이 금방 끝날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준호 형은 지금 어딨어요?”
“딸기밭에서 체험 농장 손님들을 받고 있을걸? 궁금하면 같이 보러 가볼까?”
“그럴까요.”
나는 사과 아저씨를 따라 일어섰다.
어머니는 아주머니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남기로 했다. 은율이와 규리도 차에 오랫동안 있어서 피곤했는지 여기에 남겠다고 했다.
-무우우!
아직 힘이 넘치는 아꿍이만 나와 아저씨의 뒤에 따라붙었다.
“하하! 아꿍이는 힘이 넘치는구먼.”
아저씨는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아꿍이를 한차례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우리는 집을 나와 준호 형의 딸기밭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예전과 그다지 변한 게 없는 시골길을 오랜만에 걸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은 어떠냐?”
“마음이 싱숭생숭하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홀가분한 기분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랐거든요.”
만약에 마계 농장에 취직하지 못했더라면 지금도 어렵게 빚을 갚아나가고 있었을 거다.
아저씨도 내 말뜻을 이해하고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와 아저씨가 조금 무거운 분위기의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아꿍이는 새로운 장소에 호기심을 폭발시키며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풀숲에 들어가 냄새를 맡거나, 개울물 근처로 내려가 발을 담그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 주인 모를 텃밭으로 뛰어들어가려는 걸 겨우 막아냈다.
“거긴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야.”
-무우?
아꿍이는 순진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봤다. 자신을 왜 막았는지 전혀 모르는 모습이었다. 주변에 피해 주는 걸 막기 위해 아꿍이를 안고 걷기 시작했다.
아저씨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멀리서 꽤 큰 규모의 비닐하우스 단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눈에 띄는 노란색 유치원 옷을 입은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 특유의 높은 톤 목소리와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열심히 딸기를 나르던 사과 아저씨를 쏙 빼닮은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어……? 시현이? 너 임시현 맞지?”
“오랜만이야. 준호 형.”
“이 자식…….”
그는 쏜살같이 달려와 내 머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서운하게 연락도 잘 안 하고 말이야. 이거 도시에 올라가더니 완전히 뺀질뺀질해졌나 보네.”
“미안해 형.”
“뭘 잘못했는지 알긴 아나 보네.”
그제야 준호 형은 거칠게 흔들던 손을 놓아주었다. 살짝 까무잡잡한 그의 얼굴에 시원한 미소가 걸렸다.
“잘 왔어. 이게 몇 년 만이냐.”
“한…… 십 년 정도 됐으려나.”
“이 녀석 옛날에는 좀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데. 이제 완전히 징글징글한 아저씨 다됐네.”
“하하, 진짜 아저씨 같은 게 누구인데.”
어렸을 적부터 형제처럼 같이 자랐던 준호 형. 거의 10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전혀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나러 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만이 아주 약간 나를 서글프게 했다.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준호 형이 뛰어왔던 비닐하우스 쪽에서 소란스러움이 일어났다.
우리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란이 일어난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귀여운 아기 야쿰이 유치원생들에게 애교를 떨며 딸기를 받아먹고 있었다.
“딸기 좋아해?”
-무우우!
“자! 이거 먹어. 내가 직접 딴 거야.”
아꿍이는 유치원생이 주는 딸기를 넙죽 받아먹었다.
“엄청 귀여운 강아지다.”
“아니야! 뿔 달린 강아지가 어디 있어.”
“그럼 얘는 뭔데?”
“으으응…… 그럼 송아지 아닐까? 소는 뿔이 달려 있잖아.”
“그런가?”
아이들은 아꿍이에게 딸기를 먹여주며, 그 정체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눴다.
점점 아꿍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아이들이 몰려들자, 우리는 물론이고 유치원 인솔교사도 그곳에 모여들었다.
“선생님! 얘는 강아지예요?”
“아니야. 송아지라니까!”
“으음…… 글쎄요.”
여자 교사는 아꿍이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곤 준호 형을 향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기…… 이 딸기밭에서 키우는 동물인가요?”
“아뇨. 여기서 키우는 동물은 아닌데…….”
“위험하진 않은 거죠?”
딸기밭에서 키우는 동물이 아니라는 소리에 그녀의 얼굴이 더욱 흐려졌다. 나는 준호 형 대신 나서며 설명했다.
“괜찮습니다. 착한 녀석이라 아이들이랑도 잘 놀거든요. 똑똑해서 말도 잘 알아들어요. 그치, 아꿍아?”
-무우우!
아꿍이는 내 말에 믿음직스럽게 대답하더니, 불안해하는 여자 교사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앞에서 몸을 발라당 뒤집거나, 다리에 몸을 비비적거렸다.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듯, 순진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의 귀여움을 어필했다.
너무 어리광을 잘 부려서 내는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들 정도였지만, 여자 교사에게는 아주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어머…….”
그녀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불안함이 사라지고, 어느새 자세를 낮춰 아꿍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선생님, 나도 쓰다듬을래요.”
“나도! 나도!”
말 그대로 인기 대폭발!
아이들은 순식간에 아꿍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여자 교사는 혼란스러운 아이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준호 형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많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나는 재빨리 아꿍이를 품에 안아 들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 여기 이 귀여운 친구랑 놀고 싶은 사람!”
“저요!”
“저요!”
“여기 이 친구의 이름은 ‘아꿍이’야. 근데 아꿍이가 딸기를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여기 계신 선생님이랑 딸기밭 아저씨 말 잘 듣고, 딸기를 많이 따서 오는 거야. 그럼 아꿍이랑 놀게 해줄게.”
“정말요?”
“나도 아꿍이랑 놀고 싶어요.”
“선생님! 빨리 딸기 따러 가요.”
내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들은 다시 딸기 따는 일에 관심을 돌렸다. 여자 교사와 준호 형은 그런 아이들을 잘 인솔해 비닐하우스로 데리고 들어갔다.
“허허, 시현아. 너 아이들을 엄청 잘 다루는구나. 누가 보면 유치원 선생님인 줄 알겠다.”
“하하. 요즘 이상하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네요.”
아저씨의 감탄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내가 한 말 때문인지 정말 열심히 딸기를 따왔고. 나는 약속대로 아꿍이와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주었다. 아꿍이도 배불리 딸기를 받아먹고 행복한 울음소리를 냈다.
마지막으로 아꿍이와 일 대 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아이들은 무사히 딸기 체험 농장을 마무리했다. 여자 교사도 살짝 부끄러워하며 아꿍이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꿍이를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준호 형은 내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현아. 너 나랑 사업 같이하자. 아꿍이만 있으면 체험 농장 완전 대박 나겠어.”
“하하하하!”
“웃지 말고 이 자식아. 나 진지하다니까.”
재촉하는 준호 형에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