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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72)화 (17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72화

귀향(4)

어머니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가 모셔져 있는 마을 뒷산에 올랐다. 사과 아저씨네 가족도 우리와 함께했다.

아이들은 소풍을 나온 것처럼 즐거운 분위기로 산길을 따라 걸었지만, 나와 어머니의 표정은 조금씩 서글퍼졌다.

약간 험한 산길에 어머니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엄마, 괜찮아?”

“으응.”

“형수님, 힘드시면 저기 그늘에서 조금만 쉬었다 갈까요?”

“괜찮아요. 준호 아버지.”

은율이와 아이들도 어머니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할머니 힘들어? 내가 밀어줄까?”

-무우?

「힘들면 쉬어야 한다, 뾰!」

어머니는 잔잔하게 웃으시며 아이들을 말없이 쓰다듬어줬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오르실 수 있도록, 나는 어머니의 한 손을 잡고 이끌 듯 앞으로 나섰다.

어느새 등 뒤로 보이는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작아졌다. 꽤 힘들었던 산행 끝에 모두 무사히 아버지의 산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오는 아버지의 산소는 아주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줬다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도움을 준 사람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사과 아저씨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고맙긴 뭘…… 그냥 우리 산소 벌초할 때, 조금씩 짬을 내서 들른 것뿐이야.”

아저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최근 몇 년간 거의 연락이 끊어져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기 어려울 정도였다.

“왜 아버지가 생색을 내시고 그래요? 매번 여기 관리는 저한테 다 떠맡겼으면서!”

“이, 이놈아! 그동안 나도 다른 산소에서 일하고 있었잖아.”

“매번 나랑 조카 동생들에게 다 맡기고, 작은아버지랑 얼른 내려가서 막걸리 마셨으면서…….”

“크흠, 큼!”

아저씨는 머쓱한 표정으로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덕분에 나머지 사람들은 작게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형도 고마워.”

“됐다. 너도 나 같은 상황이었으면 똑같이 했을 거잖아?”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고마우면 아까 내가 말한 사업이나 진지하게 생각해 보든가.”

“하하하!”

준호 형의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사업 이야기에 나는 적당히 웃어넘겼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미리 준비해 온 것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과일들과 술잔을 꺼내놓자 아버지의 산소 앞에는 금방 간단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아빠.”

“응?”

“여기에 할아버지가 있는 거야?”

“……그래.”

은율이는 투명한 눈동자로 아버지의 산소를 바라봤다. 이미 친부모의 죽음을 겪어봐서 그런 것일까? 왠지 모르게 은율이의 태도가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아저씨는 술병의 입구를 열면서 내게 술잔을 건넸다.

“시현아. 네가 먼저 형님께 술 한잔 따라드려라.”

“네…….”

나는 아저씨의 도움으로 술잔을 채워 잔대에 올리고, 그 앞에서 절을 올렸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첫 번째와는 달리 두 번째로 몸을 숙일 때는 이유 모를 서글픔이 몰려와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 왔어.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엄마랑 나 원망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뒤이어 아저씨와 준호 형도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술잔의 술을 조금씩 흩뿌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오랜만에 형수님이랑 시현이 얼굴 봐서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혹시 저나 마을 분들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있으시더라도 이제 다 풀어놓고 편히 쉬십시오.”

아저씨는 그 말을 끝으로 아주머니와 준호 형을 데리고 자리를 비켜줬다.

우리 가족끼리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배려를 해주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산소 앞에는 나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만 남게 됐다.

어머니는 조용히 다가서서는 아주 천천히 무덤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애잔한 뒷모습에 다시 한번 서글픈 감정이 해일처럼 몰려와 온몸을 뒤덮었다.

아이들도 그 감정을 느꼈는지. 하나같이 울상을 지으며 나에게 달라붙었다.

“아빠…….”

「힝…… 할머니 너무 슬퍼 보인다, 뾰!」

-무우우…….

“괜찮아. 괜찮아…….”

나는 아이들을 보듬으며 괜찮다고 달래줬다.

한동안 계속 무덤을 쓰다듬던 어머니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뒤돌아선 어머니의 눈은 알게 모르게 붉어져 있었다.

“너희들도 할아버지한테 인사할래?”

내 물음에 은율이가 고개를 끄덕이곤, 쭈뼛쭈뼛 아버지의 산소 앞으로 걸어갔다.

슬쩍 나와 어머니의 눈치를 보더니 엉성한 자세로 절을 올렸다. 규리와 아꿍이도 그 옆으로 가서 절하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규리는 날개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일어날 때마다 몸을 휘청거렸고, 아꿍이는 두 앞발을 쭉 내밀고 그사이에 얼굴을 묻으며 꽤 비슷한 모양새를 만들었다.

모두 엉성하긴 해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절을 올리는 모습이 굉장히 기특하고 또 귀엽게 느껴졌다.

절을 끝낸 아이들에게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 잘했어.”

“정말?”

「진짜야, 뾰?」

-무우우! 무우우!

“그래. 할아버지도 기뻐하셨을 거야.”

할아버지가 기뻐하셨을 거란 말에 아이들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 * *

아버지의 산소 근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사과 아저씨 가족과 함께 산에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시현아. 아주머니랑 애들 잘 챙겨. 내려갈 때는 미끄러우니까.”

“알았어, 형.”

준호 형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굉장히 편하게 산길을 내려왔다.

날아다니는 규리는 애초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아꿍이에게 이 정도 험한 산길은 전혀 문제없었다. 은율이도 겉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날렵한 편이었기에 굉장히 여유가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넘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며 산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그때.

내 감각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익숙하지만 이곳에서는 느껴지면 안 되는 기척…….

바로 마수의 기척이었다.

-부우우우웅!

그리고 동시에 커다란 말벌의 날갯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위협적인 소리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놀라며 몸을 떨었다.

“시현아! 형수님이랑 애들 안 물리게 조심해라!”

아저씨는 준호 형과 함께 아이들과 어머니들을 보호하듯 막아섰다. 그리고 최대한 말벌을 자극하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갈 것을 지시했다.

“시현아? 뭐 해?”

일행의 뒤에 남아 있던 준호 형이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말벌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마수의 기척.

그건 분명히 지금 근처에서 움직이는 말벌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교감 능력을 사용했다.

-우우우웅…….

내 주변으로 그물이 펼쳐지듯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준호 형도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움찔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잠시 후, 주변을 날아다니던 말벌이 내 교감 범위에 걸려들었다. 나는 곧바로 정신 제어 능력으로 말벌의 움직임을 통제했다.

-부우웅…….

힘차게 날갯소리를 내던 말벌은 갑자기 힘을 잃어버린 듯 비실비실하더니, 내가 손을 내밀자 알아서 그 위에 내려앉았다.

“시현아…… 너……?!”

준호 형은 신기한 마술을 본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나는 검지를 올려 보이며 잠시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했다.

“잠깐만 형.”

“…….”

그는 굉장히 복잡한 눈빛을 내비치면서도 일단 입을 꾹 다물었다. 그사이에 나는 다시 손바닥 위의 말벌에 집중했다.

분명 지구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말벌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마수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내 교감 능력에 걸려들었다는 게 그 증거였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어떤 이유에서 이런 녀석이 생겨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꺼림칙한 마음은 일단 접어둔 채, 정신 제어로 말벌을 멀리 날려 버렸다.

-부우우우웅!

말벌이 산의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자, 준호 형은 참았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야! 방금 그건 뭐야? 어떻게 말벌을 조종한 거야? 이것도 그 각성자인가 뭔가 하는 능력인 거야?”

“맞아. 내 각성 능력이랑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면 돼.”

“최면술 같은 건가? 아무 동물이나 막 조종할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닌데…… 설명이 좀 복잡해.”

“와…… 네가 각성했다는 이야기는 최근에 들었지만, 이렇게 금방 그 능력을 보게 될 줄이야.”

준호 형은 한동안 내 능력에 대한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는 먼저 앞으로 간 일행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준호 형에게 방금 느낀 이상한 점에 관해 물었다.

“그런데 형. 방금 만난 말벌 조금 이상한 것 같던데. 혹시 뭔가 아는 거 있어?”

“어? 어떻게 알았냐?”

내 물음에 준호형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역시 뭔가 있는 거야?”

“하아…… 말도 마라. 그것 때문에 요즘 마을이 아주 난리니까.”

“……?”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도 정확히 위치는 모르는데. 마을 뒷산 깊은 곳에 그…… 균열이 생겨났었는데. 거기서 말벌이랑 비슷한 괴수들이 쏟아져 나온 거야.”

“으음. 그래서?”

“당연히 균열은 확인되자마자 각성자들이 와서 제거했지. 그래서 마을 사람들 모두 일이 마무리된 줄 알았거든? 근데 그 괴수들이 다 제거된 게 아닌 모양이더라고. 아오! 일 좀 제대로 해줄 것이지…….”

준호형은 작게 분통을 터뜨렸다.

“남은 괴수가 있으면 당연히 각성자들이 정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일이 좀 복잡해져 버렸어.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그 괴수들이 원래 여기에 있던 말벌들을 점령하기 시작한 거야.”

“말벌을 점령해 버렸다고?”

“그래. 그 괴수들의 영향 때문인지 안 그래도 사납던 말벌들이 더 미쳐 날뛰기 시작했어. 마을 근처에서 공격을 받아 응급실에 실려 간 어르신도 계시고. 예전에 양봉하던 강씨 할아버지 기억나? 지금은 둘째 아들이 그 사업을 이어서 하고 있는데. 그 말벌들이 미친 듯이 꿀벌을 공격해서 양봉 사업이 망할 정도라더라.”

설명을 들어보니 상황이 꽤 심각해 보였다. 나는 굳은 얼굴로 질문했다.

“군청이나 다른 곳에 연락 안 해봤어?”

“당연히 했지. 마을 이장님이랑 어른들이 직접 찾아갔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어. 자기네들은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그럼 아예 손 놓고 있는 거야?”

“마을 근처에 자주 말벌이 나타나거나, 말법 집이 발견되면 최대한 빨리 신고해서 없애고는 있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니까. 그리고…… 하아. 아니다.”

“……?”

준호 형은 마지막에 뭔가를 말하려다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더 있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먼저 산길을 내려갔던 아저씨의 외침이 들려왔다.

“둘 다 괜찮아? 말벌한테 물린 건 아니지?”

“우리는 괜찮아요, 아버지! 얼른 가자.”

“으응…….”

준호 형은 나를 재촉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의 뒤를 따르기 전에 잠시 멈춰서서 아까 말벌이 사라졌던 곳을 바라봤다.

아까 말벌에게서 느껴졌던 불길한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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