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76)화 (17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76화

말벌 퇴치(3)

준호 형이 앞으로 나서며 김창수에게 소리쳤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뒷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엄연히 산의 주인이 있는데. 주인의 허락 없이 어딜 들어간다고 하는 건가.”

산의 주인.

이 지역의 많은 땅을 가지고 있는 김창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준호 형의 표정이 어이없다는 듯 살짝 일그러졌다.

“방금 이야기 못 들으셨습니까? 이분들은 마을의 문제를 해결해 주러 가시는 거라고요.”

“하지만 균열이나 괴수가 직접 나타난 건 아니지 않은가?”

“…….”

“그 존재가 명백히 확인된 경우에는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주인의 동의를 받아야지.”

보통 균열이 발생하면 땅 주인의 동의 없이 퇴치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긴급한 상황에 주인을 찾아가 동의를 받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애매했다. 균열의 발생은 이미 해결된 상태고, 괴수들이 날뛰는 상황도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평범한 말벌들.

물론 공격적으로 변한 말벌들이 괴수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확실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증명할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이없어하는 정태호, 윤세희와는 달리, 남진혁과 서예린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표정을 흐렸다.

“진혁아. 이거 좀 복잡해지는 것 같은데.”

“그러게. 상황이 애매하긴 하네.”

“정말로 허락이 없으면 우리는 못 들어가는 거야?”

내 물음에 남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확하게 법을 따지자면 그게 맞아. 균열이나 괴수의 발생을 정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하거나, 땅 주인이 먼저 신고한 게 아니라면 우리는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어. 절차가 확실하지 않다면 무단 침입과 다를 게 없으니까.”

“으음…….”

확실히 남진혁의 설명을 들으니 쉽게 이해가 갔다. 균열, 괴수를 핑계로 아무 데나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서예린은 김창수를 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막는 거야?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 주면 저 사람은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

“그게…….”

나는 마을 사람들과 김창수 그리고 공장 건설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일행들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나쁜 놈이잖아?!”

“정말 이기적이네요. 마을 분들이 그렇게 많은 손해를 입고 있다는데.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저렇게까지 행동하다니…….”

정태호는 씩씩거리며 화를 냈고, 윤세희는 차가운 눈동자로 김창수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쪽의 반응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산에 들어가고 싶다면 사냥 활동을 위한 장비들은 놓고 가야 할 거야. 대신에 버섯이나 산나물 채집 정도는 허락해 주지.”

“하하하!”

“하하하!”

김창수의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연스레 우리의 얼굴은 굳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에 가로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때.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모여 있어? 무슨 일이래?”

“어제 마을 회의 이야기 못 들었어요? 왜 시현이가 자기 길드 사람들을 데려오겠다고 했잖아요.”

“오오! 벌써 도착한 거야?”

마을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연락을 받았는지 마을 이장도 허겁지겁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지자, 시종일관 여유롭던 김창수가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행동이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아주 명확했다.

준호 형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주민분들!!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여기 말벌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들이 있는데, 글쎄 저 사람들이 앞길을 막으면서…….”

그는 분하고 억울한 감정을 적절히 담아 마을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상황을 전해 들은 주민들은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저분들을 응원해 주지는 못할망정 길을 막고 있다고? 저 양반이 벌써 치매가 왔나.”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모두가 반대하는 공장 건설도 그렇게 억지로 밀어붙이더니. 이제는 완전 자기 맘대로구먼.”

“이보쇼! 진짜 그러는 거 아닙니다. 이러다 어르신 중에 누구 돌아가시는 분이 나와야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주민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김창수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쌓인 감정이 많았는지 걸쭉한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적잖았다.

“크험…….”

점점 흉흉해지는 분위기에 김창수는 헛기침하며 먼 산을 바라봤다. 하지만 주민들의 심한 반발에도 그는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어차피 버티면 유리한 쪽은 자신이라고 생각한 듯 보였다.

고착상태가 풀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문제가 전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흐음…….

억지로 상대를 물러나게 할 수 없다면, 이쪽에서 적절한 미끼를 던지는 수밖에!

일행들 앞으로 나서 김창수 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앞으로 다가서자 그는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 턱을 까딱거렸다.

“그냥 비켜주실 생각은 없으신 것 같네요. 하지만 이대로 저희가 그냥 물러나면 그쪽도 곤란하지 않을까요?”

“…….”

그는 내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살짝 흔들림이 느껴졌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드릴까 하는데…… 들어보실래요?”

“흐음…… 한번 말해보게.”

“복잡하게 말하지 않을게요. 딱 하루만 저희에게 산의 출입을 허가해 주세요. 그러면 마을의 문제를 깔끔히 해결하고 올게요.”

“…….”

“만약에 하루 안에 문제 해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완전히 물러날게요. 더는 말벌 문제에 대해서 관여할 일은 없을 거예요.”

“…….”

“대신 성공한다면 그에 대한 보상을 내놓으셔야 할 거예요. 그쪽이 소유한 땅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 준 셈이 되는 거니까요. 제 제안이 어떤가요?”

내 제안을 들은 김창수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왜냐하면, 그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의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딱 하루.

일반적인 균열을 제거하는 일이라면 충분한 시간일 테지만, 이번에는 굉장히 특이한 상황이었다.

이미 괴수는 자연환경에 적응해 몸을 숨긴 상태였다. 이전에 의뢰를 받고 찾아왔던 각성자들도 그 흔적을 찾느라 며칠 동안 산속을 헤맸다고 들었다.

김창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아예 산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게 좋겠지만, 그도 마을 주민들의 반응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무작정 버티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양보를 해줘야 그에게도 명분이 생긴다.

그런데 내 쪽에서 먼저 하루라는 짧을 시간으로 조건을 내걸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이었다.

“형, 괜찮겠어?”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야?”

남진혁과 서예린이 걱정스럽다는 듯 내게 속삭였다. 이쪽의 불안한 반응을 눈치챘는지, 김창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오늘 하루면 충분하다는 뜻이겠지? 어차피 밤새 산속을 돌아다닐 생각은 아닐 테니. 지금부터 해가 질 때까지로 하면 어떤가?”

지금부터 해가 질 때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9시간 정도. 하루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의 무리한 요구에 준호 형이 발끈하며 입을 열려고 했지만, 내가 먼저 나서며 요구를 수락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지금부터 해가 질 때까지 문제를 해결하고 올게요.”

“형!”

“야!”

“시현아!”

남진혁, 서예린, 준호 형까지 불안함을 담아 나를 불렀다. 이런 반응이 더욱 마음에 들었는지 김창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대답이 시원시원해서 아주 좋아. 그럼 나는 물러나 보도록 하지. 나중에 좋은 소식을 전해줬으면 좋겠구먼.”

그는 자신과 함께 왔던 남자들을 이끌고 황급히 사라졌다.

“야! 하루 만에 어떻게 숨어 있는 괴수를 찾아내고 퇴치하려고 그래?”

“형, 이건 좀 무리일 것 같은데…….”

“시현아, 정말 괜찮겠냐?”

세 사람이 나의 결정을 못 믿겠다는 듯 반응하자, 오히려 정태호와 윤세희가 발끈하며 나를 옹호했다.

“뭐야? 모두 아저씨를 못 믿는 거야? 당연히 하루면 충분하지!”

“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무슨 생각이 있으셔서 그렇게 하신 걸 거에요. 아저씨! 제 말 맞죠?”

“…….”

“…….”

“…….”

둘에게 무조건 신뢰받는 나를 보며, 세 사람은 마치 사이비 교주를 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 민망함에 나는 애써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의지를 따르는 두 명의 독실한 신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 * *

원래 계획은 나와 가디언즈 길드 일행만 산에 오를 생각이었는데. 준호 형이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산길은 여기서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최대한 빠른 길로 안내해 줄게.”

“위험할지도 모르는 데 괜찮겠어?”

“걱정하지 마. 그 재수 없는 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꼴을 직접 봐야겠어.”

처음에는 거절하려 했으나. 어떻게든 김창수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며, 아주 강력하게 의지를 불태우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하게 됐다.

그래도 확실히 산길을 잘 아는 사람이 있으니, 일행은 빠르게 목표 지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우리의 첫 목표 지점은 마을 사람들이 자주 말벌에 쏘인다는 곳이었다.

원래는 산나물, 버섯을 캐던 곳인데, 요즘은 마을 사람들 모두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앞장서던 준호 형이 주변을 확인하며 일행에게 말했다.

“도착했어.”

“여기가 말벌한테 자주 습격을 당한다는 곳이야?”

“응. 저번에 왔던 각정자들도 여기를 중심으로 수색했다고 들었어.”

도착한 곳은 산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일행 모두가 특별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희미한 괴수의 기운이 느껴졌다. 어제 아버지의 산소에서 봤던 말벌과 아주 비슷한 기운이었다. 나는 곧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다.

“뭔가 접근하는 중이에요.”

일행은 전투를 준비하며 각자의 위치를 잡았다. 나는 준호 형과 함께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웅!

도시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크기의 말벌들.

녀석들은 마치 드론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날갯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접근했다.

그냥 말벌 한두 마리가 지나가는 수준이 아니라, 꽤 많은 놈이 우리를 노리고 사납게 접근해 왔다.

“내가 먼저 간다!”

서예린이 자신만만하게 나서며 말했다. 그녀의 몸 주변으로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말벌들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아주 강력한 충격파가 쏘아져 나갔다.

-쿠와아아앙!!

충격에 휘말린 말벌들은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허공에서 비틀거렸다.

“도와줘, 시옌!”

-휘이이잉!

윤세희는 정령의 힘으로 비틀거리던 말벌들을 순식간에 모두 잡아들였다.

“와아…… 이게 각성자의 힘이구나…….”

준호 형은 눈 깜짝할 새에 말벌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멍하게 중얼거렸다.

“세희야. 잠깐만 그 상태로 말벌들을 가둬주고 있을래?”

“알았어요, 아저씨!”

나는 투명한 바람 그물에 갇혀 버둥거리고 있는 말벌들에게 다가갔다. 찬찬히 녀석들을 살피며 교감 능력을 사용했다.

역시 아버지 산소에서 봤던 그 말벌과 비슷한 기운이야.

겉모습은 평범한 말벌이 분명했지만, 모두 다 희미한 괴수의 기운을 풍겼다.

말벌들을 하나하나 살피던 도중, 다른 말벌보다 괴수의 기운이 강력하게 느껴지는 말벌을 찾아냈다.

음? 이건……?!

강력한 괴수의 기운을 가진 말벌에게서 익숙한 붉은 기운이 느껴졌다.

바로 혼돈의 기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