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77화
말벌 퇴치(4)
말벌에게 느껴지는 혼돈의 기운을 침착하게 살폈다.
“흐음…….”
신기하게도 말벌의 붉은 기운은 다른 말벌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쉽게 비교하자면 이 녀석이 말벌 무리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말벌에게 심겨 있는 붉은 기운을 빼내려고 시도해 보았다. 그러자.
-부우우웅!!
-부우웅!!
말벌은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버둥거렸다. 지금 당장 이 말벌을 죽이고 싶지 않았기에, 붉은 기운을 빼내려는 시도를 황급히 멈췄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던 중.
나의 오른쪽 손목에서 붉은 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촤르르르륵.
붉은 사슬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혼돈의 기운을 가진 말벌을 천천히 감쌌다.
처음에 말벌은 사슬을 보고 심하게 몸을 버둥거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순응하는 것처럼 잠잠해졌다.
-우우웅!
붉은 사슬과 말벌의 붉은 기운이 비슷한 울림을 내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말벌을 장악하고 있던 혼돈의 기운은 점차 사슬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돈의 기운이 사라지고 생겨난 빈자리를 사슬이 메꿔나갔다.
혼돈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붉은 사슬도 동시에 모습을 감췄다.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금방 말벌에게 생겨난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세희야. 이제 괜찮아.”
“네?”
“가둬둔 말벌들을 풀어줘도 돼.”
“아저씨, 이대로 풀어주라고요?”
윤세희는 내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녀는 금방 의심을 접고 정령의 힘을 거둬들였다.
풀려난 말벌들은 자유를 만끽하듯 사방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앗!”
“뭐, 뭐 하는 짓이야?!”
일행들은 풀려난 말벌들을 보며 깜짝 놀라 소리쳤다.
“괜찮아.”
나는 일행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말벌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처음 만났을 때 보였던 말벌들의 적대적인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내 손짓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아주 순종적으로 변해 있었다.
“이것도 저번에 보여준 그 능력이랑 비슷한 거야?”
남진혁이 놀란 표정을 하며 물었다. 아마도 독개미와 랩터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아마도 조금은 다를걸?”
“……?”
나도 명확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지금과 그때 사용했던 방식은 확실히 차별점이 존재했다.
독개미와 랩터 때는 정신제어로 하나하나 내가 통제한 느낌이라면, 지금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통제권을 뺏어온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 말벌들을 통제하고 있는 존재가 마을의 문제를 일으킨 범인이겠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의지를 담아 말벌들에게 손짓해 보였다. 그러자 녀석들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서예린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내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리고 지금 저 말벌들은 어디로 가는 거고?”
“오늘 해가 질 때까지 우리가 직접 온 산을 뒤지고 다닐 순 없잖아? 마침 저 녀석들이 우리 일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부탁했을 뿐이야.”
“허어…… 참 나…….”
“와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헤헤.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마 아저씨뿐일 거야.”
내 대답에 서예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힘 빠지는 소리를 냈다. 반면 윤세희와 정태호는 신기한 능력에 눈을 반짝였다.
“와…… 이건 다시 봐도 신기하네. 각성자가 정말 대단하긴 대단해.”
감탄하는 준호 형에게 남진혁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준호 씨라고 하셨죠?”
“네?”
“이건 각성자라서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시현 형의 능력이 좀 많이 대단한 겁니다. 저런 식으로 능력을 쓰는 각성자는 세상에 거의 없을 거예요.”
“…….”
“솔직히 저희도 볼 때마다 놀라거든요.”
남진혁의 평가에 모두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산 곳곳으로 흩어졌던 말벌들은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하나둘씩 내게 돌아왔다. 우리는 그 정보를 토대로 산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안내 덕분에 다른 말벌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말벌을 만나면 순식간에 제압해서 내가 통제권을 빼앗고, 다시 그 녀석들을 산 수색에 투입했다.
덕분에 나를 따르는 말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 산의 수색은 빠르게 진행됐다.
하지만 산의 곳곳을 뒤지는데도 문제를 일으킨 괴수의 흔적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 보다 일이 쉽게 풀리지 않자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험한 산길을 헤쳐나가다 보니,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많이 소모됐다.
그나마 준호 형이 쉬운 길을 잘 안내해 줘서 체력을 조금이나마 아낄 수 있었다.
일행 모두가 조금씩 지쳐가던 그때.
수색을 보냈던 말벌 중 한 마리가 급하게 돌아오더니. 그토록 찾아 헤맸던 괴수의 흔적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나는 곧바로 일행을 이끌고 말벌이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산봉우리를 하나 넘고, 햇빛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산 깊은 곳으로 움직였다.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말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흉포한 괴수의 기운이 조금씩 진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번엔 제대로 찾아온 것 같은데?”
서예린의 중얼거림에 준호 형을 제외한 모두가 조용히 눈을 빛냈다.
“형은 제 옆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
“으…… 응! 알았어.”
준호 형에게 마지막으로 주의를 시킨 뒤, 우리는 최대한 기척을 숨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는 말벌과 비슷한 외형을 가진 괴수 말벌들을 발견했다. 외형은 비슷했지만, 크기는 보통의 말벌보다 몇 배는 더 컸다.
그리고 녀석들의 뒤에는 역시나 엄청난 크기의 괴수 말벌집이 지어져 있었다.
일반 벌집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라면, 괴수 말벌집은 커다란 나무를 감싸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아직 우리를 눈치 못 챈 것 같으니. 강력한 마법으로 먼저 공격해 피해를 줄게. 모두 바로 전투할 준비해.”
남진혁은 우리에게 간단히 계획을 설명하고, 그의 주특기인 다원소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그의 몸 주변으로 묵직한 마력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긴장한 얼굴로 곧 시작될 전투를 준비했다.
마력의 파동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괴수 말벌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진혁의 마법은 이미 시전을 마친 상태였다.
-화아아아악!!
-파지지직!!
불, 전기 그리고 바람의 속성이 담긴 남진혁의 마법이 괴수 말벌집을 향해 쏘아졌다. 곧이어 엄청난 폭발음이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콰아아아앙!!
-후드드득.
커다란 괴수 말벌집은 순식간에 절반 이상이 터져 나갔고, 그 파편과 시체들이 주변으로 떨어졌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웅!!
괴수 말벌들이 살벌한 날갯짓 소리를 내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남진혁이 큰 타격을 입혔음에도 살아남은 놈들이 꽤 많았다.
강력한 마법 사용의 후유증을 겪는 남진혁과 준호 형을 보호하며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했다.
“드디어 제대로 싸워볼 수 있겠네!”
지금까지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정태호가 기다렸다는 듯 검에서 불을 뿜어냈다.
“너무 흥분하지 마. 뒤에서 지원하기 힘드니까.”
“모두 자리를 지켜. 놈들에게 둘러싸이면 곤란해질 거야.”
윤세희는 흥분하는 정태호를 말리며 정령으로 지원할 준비를 했고, 서예린은 탈진한 남진혁을 대신해 일행을 지휘했다. 나도 검을 꺼내 들며 전투에 대비했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괴수 말벌들이 대형을 갖춰 사납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놈들이 접근하자마자 서예린은 강력한 충격파로 대응했다.
-쿠와아아앙!!
일반 말벌들이 충격파에 휘말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것과 달리, 괴수 말벌들은 잠시 주춤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정태호는 아주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간다앗!!”
-화르르륵!!
뜨겁게 타오르는 그의 검이 순식간에 적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엄청난 화력에 괴수 말벌들은 접근조차 힘들어했다.
거기에 윤세희의 적절한 지원까지 이어지자, 정태호는 날개를 단 호랑이처럼 전장을 날뛰었다.
신기한 건 저렇게 종횡무진으로 공격하면서도 정태호는 위험한 위치를 잡거나 무리하지 않았고, 약간 혼란스러운 전장 속에서도 윤세희는 적재적소에 지원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 모두 단점을 잘 보완해서 전투에 능숙해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개미굴에 갇혀서 애처럼 울던 모습이 엊그저께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성장하다니…… 두 사람의 성장에 절로 기분 좋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부우우웅!
-채애앵!!
앗차차!
나도 전투 중이었잖아, 이 멍청아!
갑자기 달려든 괴수 말벌을 처치하며 안일했던 자신을 꾸짖었다. 정태호와 윤세희의 구경을 멈추고 좀 더 전투에 집중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남진혁도 복귀하고.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괴수 말벌들을 제압해 나갔다.
약간 싱겁게 끝나는 것 같다고 느끼던 그 순간!
놈들의 뒤쪽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반쯤 부서져 내린 괴수 말벌집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다른 괴수 말벌보다 큰 몸집과 강력한 기운을 가진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그 녀석이 괴수 말벌들의 우두머리, 여왕 괴수 말벌임을 깨달았다.
-끼이이이잉!!
여왕 괴수 말벌은 귀를 찌르는 듯한 초음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귀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기분 나쁜 소리에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초음파 소리가 끝나고 난 뒤.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웅!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엄청난 숫자의 말벌들이 여왕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흐음! 방금 기분 나빴던 소리의 정체는 말벌들을 부르는 소리였던 건가?”
남진혁이 신기하다는 듯 모여든 말벌을 바라봤다.
“조금 귀찮아지겠는데.”
“하핫! 얼마든지 오라고 해!”
“…….”
평범한 말벌도 저 정도로 숫자가 많으면 전투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긴장한 기색의 일행들을 뒤로하며, 나는 여왕 괴수 말벌 앞으로 나섰다. 등 뒤에서 일행의 걱정과 기대가 담긴 눈빛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마 내 생각이 맞다면…….
나는 양팔을 여왕 귀수 말벌 쪽으로 내밀며 의식을 집중했다.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양쪽 손목에서 붉은 사슬이 튀어나왔다. 사슬은 엄청난 숫자의 말벌들을 마치 그물의 형태처럼 감쌌다. 갇힌 말벌들은 당연하게도 거칠게 날아다니며 발버둥 쳤다.
사슬은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기운을 내뿜었다. 그 기운에 영향을 받은 말벌들은 아까와 같이 함께 공명하기 시작하더니, 점차 움직임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말벌들의 변화에 당황했는지, 괴수 말벌들이 붉은 사슬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들의 공격에 사슬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말벌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혼돈의 기운을 순식간에 붉은 사슬이 흡수해버렸다.
-촤르르르륵!
나는 양팔을 내림과 동시에 붉은 사슬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외쳤다.
“이제 너희들이 당해봐!”
내 가벼운 손짓에 말벌들은 사납게 괴수 말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