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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78)화 (178/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78화

말벌 퇴치(5)

-부우우우웅!!

-키이이익!!

말벌들의 공격에 괴수 말벌은 당황한 듯 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상대적으로 큰 덩치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이자 괴수 말벌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머리, 다리, 날개.

가릴 것 없이 공격을 퍼부었고, 괴수 말벌들은 하나둘씩 땅바닥에 처박히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다급해진 여왕 괴수 말벌은 다시 한번 초음파 소리를 냈다. 말벌들의 통제권을 뺏어오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통제권은 완벽히 나에게 장악당한 상황이었다.

이 정도 숫자의 말벌들을 정신제어로 통제하려 했다면 아마도 매우 힘들었겠지만. 여왕 괴수 말벌이 구축해놓은 통제권을 날름 뺏어온 경우라 엄청 수월했다. 말벌들의 제어도 굉장히 쾌적했다.

이런 걸 속된말로 ‘날먹’이라고 하던가?

-끼이이이익!

다시 한번 여왕의 초음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감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억울함과 분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치 나에게 ‘나쁜 도둑놈아!’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쯧쯧.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산속 깊은 곳에 틀어박혀서 해충이나 잡아먹을 것이지, 왜 마을 어르신들을 공격해서…….

자업자득이다. 이 녀석아!

결국, 여왕 괴수 말벌은 몰려드는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힘없이 추락해 버렸다. 여왕이 쓰러지자 도망치려던 괴수 말벌들도 금방 하나도 남김없이 처리됐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웅!!

명령을 완벽히 수행해 낸 말벌들은 내 앞을 천천히 맴돌았다. 마치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 수고했어. 이제 괴수들은 없어졌으니까 얌전하게 지내야 해. 절대 마을 사람을 공격하면 안 돼! 꿀벌도 너무 많이 괴롭히지 말고! 해충 위주로 잡아. 알아들었지? 자, 이제 해산!”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해산이라는 말에 말벌들은 내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꿀벌처럼 앙증맞게 귀여운 느낌은 없지만, 꼬박꼬박 명령을 잘 따르는 모습이 아주 약간 귀엽게 느껴졌다.

마을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홀가분함을 느끼며 뒤돌아봤는데, 나를 바라보는 일행의 표정이 이상했다.

“왜,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형이 잘못한 건 없는데…….”

남진혁은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대신 옆에 있던 서예린이 질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왕이 불러온 말벌들을 역으로 이용해 적을 다 제압해 버린 건 대단하긴 한데……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런지 쟤들이 불쌍한 것처럼 느껴진다, 야.”

“지금껏 괴수들을 상대하면서 불쌍하다고 느낀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응…… 나도……”

뒤이어 정태호의 이야기에 윤세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믿음으로 가득했던 두 사람마저 이번만큼은 서예린, 남진혁과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나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준호 형을 바라봤다.

-움찔!

그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몸을 크게 떨며 눈을 돌렸다. 딱 봐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괴수 말벌과 싸웠던 현장을 바라봤다. 놈들의 시체는 성한 구석이 하나 없이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아까 말벌들이 공격하는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확실히 유쾌한 기분으로 지켜볼 만한 장면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기분이 들떴던 거지?

말벌 괴수들을 쓸어버릴 때, 이상하게 온몸이 높은 고양감으로 가득 찼었다. 단순히 전투로 인해 생겨난 기분은 아닌 것 같았다.

이유를 찾지 못해 혼란스럽던 와중.

무의식적으로 양쪽 팔목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사슬을 휘감고 있었던 팔목에 조금이나마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혹시 이것 때문인가?

방금 전투에서 자유자재로 붉은 사슬의 힘을 사용했지만, 아직 그 존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았다.

더구나 처음 사슬의 힘을 사용했을 때보다 지금은 몇 배나 더 그 힘이 강력해져 있었다.

문득 머릿속에 붉은 힘을 통제하지 못해 폭주했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크윽! 언제까지…… 억제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알잖아? 끄윽! 결국에는…… 막을 수 없다는 걸…….

리아네가 누님 모드로 폭주하면서 했던 말.

그 말이 마치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서늘해졌다. 어쩌면 리아네가 폭주할 때 내가 느꼈던 부담스러움과 거부감이 지금은 일행들이 느껴졌을지도…….

붉은 사슬 사용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한편으론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우리는 준호 형의 안내를 받으며 산에서 내려왔다.

마을과 산의 경계 부근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중 작은 그림자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뛰어왔다.

「시현이 왔다, 뾰!」

-무우우! 무우우!

“아빠∼!”

가까워지는 아이들을 보며 반가움보다는, 혹시 거친 시골길을 달리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내 앞까지 도착한 아이들은 무작정 내 품에 안겨들려 했다.

“자, 잠깐만. 나 산에 다녀오느라 옷이 흙먼지로 엉망이야. 지금 나한테 안기면 같이 더러워져서 안 돼.”

“히잉…….”

은율이는 바로 안아주지 않아 서운했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어 줄 뻔했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근질거리는 손을 참아냈다.

뒤이어 어머니와 사과 아저씨, 아주머니가 우리 쪽으로 다가와 걱정스럽게 물었다.

“시현아, 괜찮니? 어디 물리거나 다친 곳은 없고?”

“응, 괜찮아. 산을 돌아다니다 약간 쓸린 상처만 있을 뿐이야.”

“다른 분들은 괜찮으십니까? 혹시나 해서 집에 있는 구급상자 가져왔는데. 구급차를 불러야 할까요?”

“저희도 괜찮아요. 크게 다친 인원은 한 명도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휴우…… 다행입니다.”

서예린이 대표로 나서서 대답하자 아저씨는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기 아버님? 집안의 장남은 걱정 안 하셨습니까?”

“걱정은 무슨…… 다른 분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놈아! 네가 거길 왜 따라 올라가!”

“아니…… 산길은 복잡하니까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아저씨의 호통에 준호 형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며 변명했다. 충동적으로 우리를 따라나선 것이 내심 걱정되면서,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아저씨, 진정하세요. 준호 형 덕분에 그래도 산길을 헤매지 않고 쉽게 다녀왔어요.”

“맞습니다. 준호 씨가 아니었다면 산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 겁니다.”

나와 남진혁은 아저씨를 말리며 형이 많은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크흠, 큼! 그래도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우리의 설명에 아저씨는 화난 기색을 누그러뜨리며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준호 형은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다.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정리되어가던 그때.

아침에 봤던 김창수와 그를 따르는 남자들이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어이쿠! 이렇게 빨리 산에서 내려온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린 모양이구먼?”

그는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는지,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허허! 그러게 내 말대로 산나물이나 캐갈 것이지, 뭐하러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생고생을 하는 건지 원…….”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도시에서 유명한 길드 소속이라고 하던데. 허세만 가득했지 별거 없네.”

준호 형은 비아냥대는 김창수와 남자들 앞으로 큰 자루 하나를 휙! 하고 던졌다.

-털썩!

자루는 바닥에 부딪히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동시에 그 주변으로 작은 흙먼지를 일으켰다. 김창수는 피어오르는 흙먼지에 인상을 쓰며 물었다.

“이건 뭔가?”

“직접 확인해 보시든가.”

“…….”

김창수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눈짓하자, 그 사람은 앞으로 나서 땅바닥의 자루를 열고 내용물을 공개했다.

“허억?!”

“에구머니나!”

“…….”

자루 안에는 일반 말벌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여왕 괴수 말벌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김창수와 남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준호 형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히죽대며 웃었다.

“이 녀석이 산의 말벌을 사납게 만들었던 괴수들의 우두머리입니다. 물론 다른 괴수들도 여기 계신 분들이 깔끔하게 처리했고요. 이게 그 증거입니다.”

또 다른 자루가 털썩하고 김창수 앞에 떨어졌다. 그 안에는 괴수 말벌에게서 얻은 마석과 영혼석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김창수는 두 번째 자루는 확인하지 않았다. 분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아침에 시현이랑 약속한 거 잊지 않으셨겠죠? 오늘 하루가 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고 왔으니 그쪽에서 보상을 지급하는 겁니다?”

“……없다.”

“네?”

김창수는 눈앞의 자루를 발로 걷어차며 버럭 소리 질렀다.

-퍼억!

“무슨 문제를 해결했다는 거냐? 나는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시뻘게진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썼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준호 형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증거라고? 너희들이 산에 들어간 척하면서 다른 곳에서 가져왔을 수도 있지. 그리고 저 산에 괴수가 없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거냐? 누가 그걸 확인하느냐 말이야!”

억지스러운 주장에 모두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창수의 분노 가득한 눈빛이 이번에는 나에게로 향했다.

“집안이 망해서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놈이 뭘 얻어먹겠다고 돌아온 거냐?”

“…….”

“어허! 저 사람이 노망이 들었나! 그게 무슨 헛소리야!”

사과 아저씨가 나를 대신해 분노하며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의 막말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공장을 세우려는 곳이 너희 집안의 농장이 있던 곳이라 들었다. 그래서 나를 방해하는 거냐? 무능력해서 농장을 말아먹은 네놈 아버지를 탓해야지, 왜 엄한 사람 일을 훼방을 놔! 왜 훼방을 놓냔 말이야!”

김창수가 아버지와 농장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마음속에 무언가가 툭 하고 끊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잠시 억누르며 뒤쪽을 바라봤다.

규리와 아꿍이는 콧김을 거세게 내뿜으며 금방이라도 김창수에게 달려들 기세였고, 은율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어머니와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잘 감싸 안으며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다.

아이들이 괜찮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막고 있던 감정의 솟구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폭발하는 분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바로 붉은 사슬이었다.

-촤르르르륵!!

붉은 사슬에 대해 주의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게 불과 얼마 전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손목에서 뻗어 나온 사슬은 그대로 김창수의 온몸을 옭아맸다.

“뭐, 뭐야?”

그는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의 몸을 속박하자, 크게 당황하며 얼굴이 새하얘졌다. 아마도 붉은 사슬의 모습을 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김창수에게 다가서며 허공에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맹렬한 날갯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아직 내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은 말벌들이 맹렬한 기세로 날아왔다.

“허억?!”

“저, 저게 뭐야?!”

“말벌이다! 말벌이야!”

김창수의 주변에 있던 남자들은 날아오는 말벌을 확인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소리만 지를 뿐, 붉은 사슬에 묶인 것도 아닌데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공포에 짓눌린 듯, 온몸을 푸들푸들 떨 뿐이었다.

그 공포의 주체가 말벌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끄윽! 이게 뭐하는 짓이냐!”

“…….”

나는 조용히 김창수의 앞에 섰다. 그리고 도착한 말벌들은 그의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으으읍! 읍!?”

-스스슥! 스스스슥!

김창수의 억눌린 비명과 말벌의 사각대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주변에 퍼져 나갔다.

친절한 손길로 눈부분에 가득한 말벌들을 걷어냈다. 어렵게 뜨여진 눈동자에는 극심한 공포심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아버지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지 마.”

“으읍…….”

“한 번만 더 그 추잡한 입으로 내 가족을 언급한다면…… 그때는 저 자루 속 괴수 시체보다 못한 꼴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

아버지에 대한 모욕 때문일까?

평소의 나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과 말투. 의식의 한구석에서 지금의 모습을 굉장히 이질적이라 느끼고 있었다.

딱 하나 확실한 건.

붉은 사슬이 맹렬하게 기운을 내뿜을수록, 내 머릿속에는 기분 좋은 고양감이 가득 메워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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