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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1)화 (18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1화

선생님이 필요해(3) 

레빌은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조금 전에 다른 마을에서 찾아온 사람들 봤지? 최근에 엘든 마을이 살기 좋다는 소문이 퍼져서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어. 대부분 집이나 일자리가 없어 떠도는 자들이지.”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나요?”

내 물음에 그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아. 체감상 몇 년에 걸쳐 찾아왔어야 할 사람들이 한 달 만에 전부 몰려온 것 같아.”

“…….”

“단순히 숫자가 많아서 문제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중에 질이 나쁜 놈들이 많다는 거야. 범죄가 일상인 도시의 뒷골목 출신들부터, 일할 생각은 전혀 없는 부랑자들까지…… 마을 사람들의 불안감이 하늘을 치솟는 중이야.”

레빌의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끝맺었다. 그 뒤를 이어 라구스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레빌과 자경단원들이 어떻게든 통제해 보려 하는 중이지만, 워낙 숫자가 많아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고 해도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겁니다.”

두 사람의 설명에 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엘든 마을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거기다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없어 보여 더욱 염려스러웠다.

테이블에 살짝 떨어진 곳, 의자에 앉아 있던 엘프리드가 불쑥 입을 열었다.

“마을에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질 동안, 왜 시현 선배에게 미리 문제를 알리지 않은 거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꽤 오래전부터 문제가 생겼던 것 같은데.”

그의 말투에는 책임을 묻는 듯한 의도가 강하게 느껴졌다. 레빌은 살짝 기분이 나빴는지 얼굴을 찡그렸고, 라구스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냉랭한 침묵이 테이블 주변을 맴돌았다. 자칫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눈치껏 내가 나서서 중재했다.

“엘린…… 지금은 누구를 탓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가 아니야. 일단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해.”

“……죄송해요, 선배.”

약간 탐탁지 않은 표정이긴 했지만, 엘프리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사과하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고 다시 라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라구스 씨, 마을의 문제들을 이렇게 늦게 알린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마을에 대해서는 라구스 씨에게 모든 걸 맡기고 있는 만큼, 힘들어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든 돕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일부러 문제를 키우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런 문제로 시현 님을 번거롭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해 봤습니다만…… 제 능력 밖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실망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시현 님…….”

“아니에요. 저는 라구스 씨가 분명 최선을 다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앞으로 이런 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빨리 알려주세요. 그래야 함께 의견을 공유하면서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예…… 앞으로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구스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내 위로에 금방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가 엘든 마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잘 알기에, 나도 가슴 한편이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딱히 시원한 해결책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일단은 내가 가진 여유 자금으로 상황이 악화하는 걸 막기로 했다. 카디스 영지에 속한 이웃 마을에 식량과 생필품을 지원하고, 치안 유지를 위해 자경단원을 추가로 선발하기로 했다.

대충 이야기가 정리되자마자 라구스는 곧바로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상인을 찾아 나섰고, 레빌은 자경단 일이 바쁘다며 짧은 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남은 세 사람은 일단 농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마을의 문제로 힘들어하던 라구스를 떠올리며 말했다.

“조금 의외였어요. 라구스 씨는 유능해서 마을에 관련된 문제는 척척 해결할 줄 알았거든요.”

“라구스 촌장이 마을을 잘 운영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인물은 아닙니다. 또 엘든 마을이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변했으니까요. 힘들어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안드라스는 냉정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조금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라구스 촌장이 고생하는 데에는 시현 님의 책임도 없지 않습니다. 지금 일어난 문제는 사실 촌장의 권한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영주가 나서야 할 문제지요.”

“…….”

“물론 라구스 촌장이 혼자서 해결하려 한 건 잘못된 행동이지만, 그동안 시현 님이 영지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으음…….”

냉철한 비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의 말대로 나는 정식으로 영주에 임명된 뒤에도 딱히 영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농장 일이 바빴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카디스 영지의 영주라는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잘못을 깨닫고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자, 안드라스는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현 님이 농장 일로 바쁘신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영주의 임무를 완전히 손에서 놓으시면 안 됩니다.”

“안드라스 씨의 말대로 제가 생각이 좀 짧았었네요. 조금 더 영지 일에 신경을 써야겠어요.”

“그 정도면 마음가짐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나는 안드라스와 함께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려냈다.

“그건 그렇고. 영주가 된다는 게 쉽지 않네요. 벌써 이렇게 문제가 생겨날 줄이야…….”

“하하!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물며 이렇게 많은 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라면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지요.”

“시현 선배, 힘내요. 저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열심히 도울게요.”

엘프리드는 눈을 반짝이면 의지를 불태웠다. 나를 도우려는 그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조금 다른 형태의 도움이었다.

“흐음…… 영지 운영에 관해서 자세히 알려줄 만한 사람이 없을까…….”

나의 고민이 담긴 중얼거림에 안드라스가 입을 가리고 웃음을 흘렸다.

“큭큭! 아무래도 그 친구의 예상이 또 정확했군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발레리안, 그 친구가 시현 님을 위해서 미리 준비해놓은 게 있거든요. 조만간 제 말뜻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

“……?”

나는 물론이고 엘프리드도 의아한 얼굴로 안드라스를 바라봤다. 그는 혼자만 계속 웃을 뿐, 끝내 우리에게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았다.

* * *

엘든 마을에 다녀오고 이틀이 지났다.

여유 자금을 푼 덕분에 엘든 마을의 문제는 잠시 조용해졌다. 힘겨워하던 라구스, 레빌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모아둔 돈이 꽤 많아서 큰 부담은 없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돈을 사용해 문제를 덮어둘 수는 없었다.

해결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그때. 농장에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카디스 영주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죠?”

차분한 인사 다음으로 굉장히 고양되어 있는 인사가 뒤따랐다.

“아…… 예, 저는 잘 지냈지요. 그런데 두 분이 갑자기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예고 없이 찾아온 아름다운 두 여인.

영주 취임식 때, 발레리안과 함께 참석했던 뮤레인과 수린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방문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수린은 살포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발레리안 님께서 취임식 때 부탁하셨던 일이 있거든요. 카디스 영주님께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꼭 한번은 도와드리기로요. 최근 영지에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아…… 맞습니다. 안 그래도 영지 운영에 도움을 주실 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모자란 실력이지만. 자세한 사정을 듣고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물론이죠. 조언을 해주신다면 꼭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안드라스 씨가 말했던 리안 씨의 준비가 이거였구나. 리안 씨는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니까.

나는 발레리안의 혜안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수린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뮤레인 님은…….”

“저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수린을 따라왔어요. 조용히 농장 구경만 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헤헤.”

뮤레인은 귀엽게 혀를 살짝 내밀며 웃어 보였다. 취임식 때도 두 사람의 친분이 두터워 보였는데, 그녀는 정말로 수린을 따라 이곳에 놀러 온 것 같았다.

“아…… 너무 놀라서 손님들을 계속 밖에 세워두고 있었네요. 따라오세요.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계속하죠.”

나는 두 사람을 이끌고 농장 건물로 향했다.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청소를 하던 리아네와 마주쳤다.

“시현 님 오셨…… 어머! 저분들은……?”

“취임식 때 보셨었죠? 이쪽은 수린 님이시고, 이쪽은 뮤레인 님이세요.”

리아네는 재빨리 청소 도구를 옆으로 치우며 정중하게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이곳에서 메이드 일을 맡은 리아네라고 합니다.”

두 손님과 리아네가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 사이, 2층에서 귀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다다닷!

-다다닷!

“아빠∼!”

-삐이익!

-삐이익!

은율이와 함께 새끼 그리핀들이 2층에서 뛰어 내려왔다.

처음에는 내 모습만 보고 신난 표정을 짓다가, 뒤늦게 낯선 존재를 발견하고 움찔 멈춰 섰다.

“앗?!”

-삐익?!

-삐이……?

그러고는 낯선 손님과 함께 있는 내 쪽으로는 오지 못하고, 대신 리아네의 등 뒤로 은율이가 쏙 숨어들었다. 새끼 그리핀들도 똑같이 움직였다.

아이들의 귀여운 행동에 수린과 뮤레인의 입꼬리가 위쪽으로 솟구쳤다. 특히 뮤레인은 눈을 반짝거리며 아이들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영주님! 영주님! 저 아이들은 누구에요. 방금 아빠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설마 영주님의 따님?”

“네, 맞아요. 제 딸 은율이라고 해요.”

“꺄아아! 수린아, 방금 저 아이 봤지? 정말 너무 귀엽지 않아?”

“뮤레인, 진정해.”

작은 여우 소녀의 귀여움에 반한 뮤레인이 흥분한 모습을 보이자, 수린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를 말렸다.

치명적인 귀여움에 흥분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저렇게 과한 행동을 보이면 낯을 많이 가리는 은율이는 절대 다가오지…… 으응?!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숨어 있던 은율이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율이가 먼저 다가온다고??

옛날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은율이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등 뒤로 숨어서 잘 나오지 않는 게 보통인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뮤레인과 수린이 있는 쪽으로 먼저 나서서 다가오고 있었다. 은율이의 평소 모습을 아는 나와 리아네는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살짝 떨리는 여우 귀와 아래로 말린 꼬리로 봐서는, 은율이는 많이 긴장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

뮤레인과 수린 앞에 은율이가 도착했다. 두 사람도 긴장한 표정으로 눈앞의 여우 소녀를 내려다봤다.

은율이는 뮤레인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었어.”

“으…… 응?”

“노래 들었어.”

“아∼! 내 노래 들어줬구나?”

-끄덕끄덕.

뮤레인은 살짝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헤헤. 고마워. 언니가 또 노래 불러줄까?”

그녀의 물음에 은율이는 뭔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도리도리.

“어, 언니 노래 듣기 싫어?”

“노래 안 불러줘도 돼.”

뮤레인은 크게 실망한 듯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은율이의 말에 다시 한번 표정이 크게 변했다.

“대신 가르쳐 줘.”

“으응?”

“나도 노래 부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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