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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2)화 (18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2화

선생님이 필요해(4) 

거실의 넓은 자리에 농장 식구들과 두 손님이 모였다.

서로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났을 때쯤, 리아네가 금방 시원한 마실 거리와 간식을 테이블 위에 준비해 줬다.

평소처럼 가장 상석 자리에 앉아 있던 카네프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시현.”

“네? 사장님.”

“저거 어떻게 된 거냐?”

“뭐가요?”

“왜 은율이가 처음 본 여자에게 저렇게 딱 붙어 있냐고.”

“아…….”

카네프가 가리킨 곳에는 뮤레인 무릎 위에 앉아 간식을 받아먹는 은율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카네프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은율이가 저분에게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뮤레인 님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고요.”

“크흠…….”

내 설명에도 카네프의 못마땅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뮤레인은 은율이를 품에 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유! 은율이 너무 잘 먹네. 이거 하나 더 먹을까?”

“응.”

은율이가 간식을 받아먹을 때마다, 뮤레인의 입꼬리는 찢어질 듯이 크게 벌어졌다. 그 옆에서는 수린이 새끼 그리핀들을 품에 안고 작은 과일 조각을 나눠주고 있었다.

-삐이익!

-삐이익!

“그래, 그래. 너희들도 배고프구나.”

이미 두 손님은 새끼 그리핀과 여우 소녀의 귀여움에 완전히 푹 빠져버린 상태였다.

가끔 아이들의 매력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저 치명적인 귀여움이 나쁘게 사용된다면 세상에 큰 혼란이 오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흠…… 수린 님. 이야기를 시작해도 될까요?”

“아앗! 죄송해요.”

내 물음에 수린은 화들짝 놀라며 새끼 그리핀에게서 눈을 뗐다. 귀여움에 정신이 팔린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양쪽 볼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최근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엘든 마을과 다른 마을의 문제 때문이죠?”

“맞습니다.”

“그냥 이야기만 나눠봐서는 힘들 것 같은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직접 마을을 둘러보지 않으시겠어요?”

“지금 바로요?”

“네! 이야기로 듣는 것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하니까요.”

직접 마을을 방문한다라……

아직 엘든 마을을 제외한 다른 마을은 직접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괜히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시죠.”

“좋아요.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 * *

나와 수린, 그리고 안드라스가 영지의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마차를 타고 떠났다.

엘프리드도 따라오고 싶다고 했지지만, 농장에 끝내지 못한 일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뮤레인은 원래 수린을 따라올 예정이었는데, 예기치 못하게 귀여운 제자가 생겨서 농장에 남기로 했다.

“카디스 영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갈고 닦은 기술을 하나도 빠짐없이 은율이에게 전할게요.”

뮤레인은 비장한 표정까지 지어 보이며 가르침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나는 큰 성과는 없더라도.

은율이가 처음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작한 일인 만큼, 짧은 시간 동안에라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했다.

농장을 떠난 우리는 엘든 마을에 들려 근처의 길을 잘 아는 마부를 한 명 구했다.

고용된 마부는 곧바로 마부석에 올라 능숙하게 말을 몰기 시작했다. 마차는 순식간에 엘든 마을을 빠져나가 카디스 영지의 또 다른 마을로 향했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 안에는 말발굽 소리와 가끔 덜컹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느껴지려 할 때쯤, 안드라스가 적절한 순간에 입을 열었다.

“수린 님은 푸른수정 상회 소속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두 분 모두 저보다 훨씬 높은 지위를 가지고 계시니까요.”

“흠흠……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수린 양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저는 수린 씨라고 부를게요. 괜찮으시죠?”

그녀는 대답 대신 작게 웃어 보였다.

“푸른수정 상회는 황금시계 상회 그리고 오르펭 상회와 비교될 정도로 영향력이 큰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교하기 좋아하시는 분들이 자주 푸른수정 상회를 그쪽과 함께 언급하곤 하시죠.”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런 상회에 소속된 수린 양이 왜 발레리안의 부탁을 들어줬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상회에 소속된 자가 영지 운영에 관심을 보이는 게 이상하셨나 보군요?”

수린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되묻자, 안드라스는 약간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이상하다기보다는…… 수린 양이 푸른수정 상회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는 분 같아서 물어봤을 뿐입니다.”

“저는 딱히 상회에서 높은 위치에 있지 않아요. 대신 저와 가까운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을 뿐이에요. 푸른수정 상회의 주인이 제 아버님이거든요.”

“오오…… 수린 양이 소문의 주인공이었군요.”

안드라스는 감탄을 터뜨리며 크게 반응을 보였다. 나는 슬쩍 그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속삭였다.

“수린 씨가 유명한 사람인가요?”

“푸른수정 상회 주인이 막내딸을 너무 아껴 꼭꼭 숨겨놨다는 소문은 사교계에 굉장히 유명한 소문입니다.”

수린은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딱히 아버지가 저를 숨겨두신 건 아니에요. 제가 사교계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거든요.”

“뛰어난 재능과 미모를 모두 인정받아, 많은 귀족 남성들의 관심을 받고 계시는 분입니다.”

“과장된 소문일 뿐이에요.”

그녀는 안드라스의 설명을 과장된 소문이라 말하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아까 왜 발레리안 님의 부탁을 받아들였는지 물으셨죠? 개인적으로 발레리안 님께 신세를 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가 영지를 운영하는 일에 관심이 많거든요. 하지만 상인 집안 출신이면서, 여자이다 보니 지금껏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마계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나누는 문화가 존재했다. 특히 귀족 가문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했다.

“그런데 우연히 발레리안 님을 통해서 카디스 영지를 알게 됐어요. 이계에서 오신 분이 영주가 된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영지 자체도 굉장히 특이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런가요?”

“네. 그래서 발레리안 님이 카디스 영지에 관해 부탁하셨을 때, 큰 고민 없이 받아들인 거예요. 쉽게 오지 않는 기회이기도 했고 관심이 가기도 했으니까요.”

수린의 설명에 나와 안드라스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취임식 때, 그녀와 인연을 만들어 두면 좋을 거라던 발레리안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마부석 쪽에서 크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 조금 있으면 마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힘차게 내달리던 마차는 조금씩 속력을 줄여 나갔다. 완전히 마차가 멈추고, 잽싸게 땅에 내려선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영주님. 내리시지요.”

우리는 공손한 마부의 인사를 받으며 마차에서 내려섰다.

“여기가…….”

“으음…….”

“…….”

영지의 또 다른 마을을 본 첫 감상은 ‘처참하다’였다.

건물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부실하고, 허름해 보였고. 거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와 오물들로 가득했다.

엘든 마을을 처음에 방문했을 때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해 보였다.

안드라스와 수린은 굳은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눈빛에서 나와 비슷한 씁쓸한 감정이 느껴졌다.

말없이 마을을 둘러보고 있던 그때.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꾀죄죄한 중년 마족이 주춤주춤 우리에게 다가왔다.

“누구슈? 어디서 온 분들인데 마을을 두리번거리고 계슈?”

그 남자의 물음에 마부가 튀어나오듯 앞으로 나와 호통을 쳤다.

“아니! 이분이 누구인 줄 알고 함부로 말하는 건가?”

허허허……

내가 저 틀에 박힌 클리셰 대사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마부의 호통에 내가 기묘한 기분을 느끼던 와중에, 꾀죄죄한 중년 마족은 두려움에 덜덜 떨며 되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이번에 새로이 영주님으로 취임하신 카디스 영주님과 그 일행분들이시네.”

“어익쿠! 제가 어리석어 몰라뵀습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자비를…….”

중년 마족은 곧바로 땅바닥에 엎드리며 내게 애원했다. 얼마나 그 소리가 컸던지, 절박한 목소리가 거리를 따라 마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저 사람들은……?”

소란스러움에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더 큰 오해가 생기기 전에 엎드린 마족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저기 잘못하신 거 없으니까 일단 일어나세요.”

“제발 자비를…… 자비를…….”

그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뒤, 조금 더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서해 드릴 테니까 일단 일어나세요. 계속 그렇게 있으시면 정말 곤란해집니다.”

-후다닥!

내 말에 담겨있던 감정을 느꼈는지. 남자는 빛과 같은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시선은 끝까지 맞추지 않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마을의 대표가 있나요? 있으면 만나보고 싶은데.”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중년 마족은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얼마나 급했으면 중간에 철퍼덕 넘어졌는데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을 사람들과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 부축을 받으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내 앞에 엎드리려 몸을 숙였다. 이번에는 내가 빠르게 움직여 그를 제지했다.

“몸이 불편하신 것 같은데. 굳이 엎드리지 않으셔도 돼요.”

“괘, 괜찮습니다. 당연히 예를 표해야…….”

“그냥 인사만 나누는 거로 하죠.”

똑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계속 엎드리려는 노인을 말릴 수 있었다.

“저는 이 마을의 촌장, ‘코네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옆에는 제 아들놈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드랜트’입니다.”

“이번에 영주로 취임하게 된 임시현입니다. 이쪽은 안드라스 씨구요, 이쪽은 수린 씨입니다.”

내가 일행을 소개하자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따라오시지요. 영주님이 쉴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코네일 촌장은 아들 드랜트의 부축을 받으며 안내를 자처했다.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마을의 안쪽으로 향했다.

촌장을 따라 걸으며 천천히 마을을 둘러봤다. 자세히 살펴보면 볼수록 마을의 심각한 상황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나와 일행을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에게서 희망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무기력함과 허무한 감정만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아직 순수한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것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괜히 농장에 있을 은율이가 떠오르면서 마음이 너무나도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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