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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3)화 (18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3화

선생님이 필요해(5)

우리는 촌장의 뒤를 따라 움직였고, 다른 집들에 비해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 집에 도착했다. 바로 촌장의 가족이 머무는 집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집 안도 깔끔했다. 자리에 안내받자마자, 촌장 아들, 드랜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 마족이 나타났다.

“죄, 죄송합니다. 차린 게 별로 없어서요.”

그녀는 창백한 얼굴과 떨리는 손으로 시원한 마실 거리와 작은 과일들을 꺼내왔다. 아무래도 우리가 찾아왔다는 소식에 굉장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촌장도 우리의 눈치를 계속 살피며 뭔가를 계속 생각했다. 극도로 조심스러운 그들의 반응에 나는 일부러 편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촌장님도 일단 앉으세요.”

“저, 저는 이렇게 서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계시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잖아요. 저는 단순히 이 마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찾아온 거니까, 너무 그렇게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으으음…… 알겠습니다.”

촌장은 자신의 집임에도 몹시 어려운 태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드랜트와 그의 아내가 공손한 태도로 서 있었다.

“다시 한번 제 소개를 할게요. 저는 새롭게 생긴 카디스 영지를 다스리게 된, 임시현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영주님의 취임 소식은 이전에 들었습니다. 저희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굉장히 죄송스럽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영지에 속한 마을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어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촌장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으음…… 그게…….”

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심하게 눈치를 봤다. 진짜로 말해도 되는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때쯤, 옆에 있던 수린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마을의 규모로 짐작하기에는 최근에 생겨난 마을은 아닌 듯하고. 아직 빈집이 많지 않은 거로 봐서는 사정이 어려워진 건 꽤 최근인 것 같군요.”

그녀는 이곳으로 오는 길에 살핀 것만으로 아주 간단히 마을의 상황을 추측했다. 어렵지 않은 추측이었지만, 촌장과 아들 부부는 살짝 놀란듯한 반응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알아야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카디스 영주님은 정말로 여러분을 돕고 싶어서 찾아온 거니까 최대한 협조해 주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촌장은 눈치 보던 것을 그만두고, 천천히 마을에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분이 말씀하신 대로 마을이 갑자기 어려워진 것은 최근에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죠?”

“새로운 영주님의 소식이 들려오기 전에, 이곳을 다스리던 셀베르크 가문의 사람들이 마을에 찾아왔습니다.”

셀베르크 가문?

그들과 좋지 않은 인연을 떠올리며, 나와 안드라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세금을 걷을 시기도 아닌데. 지금껏 밀려왔던 세금을 받아야겠다며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잔뜩 이끌고 온 기사와 병사들은 마치 도적질하듯 마을의 식량과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허어…….”

찡그린 촌장의 얼굴에는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 참담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식량이 없어진 주민들은 도시에서 구걸하거나, 숲속을 뒤지며 버텼습니다. 만약에 추운 겨울이었다면 주민 대부분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촌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나는 안드라스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안드라스 씨. 셀베르크 가문이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이겠죠?”

“네. 아마도 시현 님에 대한 그들의 복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공식적으로 카디스 영지에 포함되기 전에 행패를 부린 거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한테…….”

“셀베르크 가문에 더는 실망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상상 이상이군요. 같은 귀족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치졸한 행동입니다.”

안드라스는 굉장히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셀베르크 가문을 비난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 욕설을 내뱉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휴우…… 일단 침착하자.

옆에 수린 씨도 있고, 지금은 그 셀베르크 놈들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격해지려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마음을 추슬렀다. 평정을 되찾고 불쑥 떠오른 감정은 마을 주민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었지만, 나와 연관되는 바람에 피해를 보았다는 건 사실이었다. 거기다 내가 영주 일에 소홀했던 탓에 더 힘들어한 것 같아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좀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촌장에게 물었다.

“지금 마을에 가장 필요한 건 뭔가요?”

“가장 필요한 건…… 역시 식량입니다.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전부 빼앗기는 바람에 당장 식량을 구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농기구도 필요합니다. 돈이 없어서 부서진 농기구도 수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농사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면 저희는 계속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촌장의 아들도 뒤에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한 번 말문이 열리니 마을에 필요한 것들을 술술 쏟아냈다.

나는 천천히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가장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며, 이른 시일 내에 지원해 줄 것을 약속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드랜트는 허리가 아파 보일 정도로 깊숙이 고개를 숙였고, 촌장은 드디어 희망을 얻었다는 듯 눈물을 글썽였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쯤.

뒤쪽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우우. 아우-!”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듯한 아기 마족이 아장아장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머나!”

드랜트의 아내는 크게 당황하며 아기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분명 방 안에서 재워놓았는데……. 말씀하시는 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죄송합니다.”

혹시 아기에게 화가 미칠까 봐, 촌장 가족은 모두 나에게 사죄하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이야기는 거의 다 끝났는데요 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제야 촌장 가족들은 한숨 돌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품 안에 안긴 아기는 긴장했던 어른들의 마음은 전혀 모른 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낯선 방문자들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귀여운 아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아기가 너무 귀엽네요.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

“넷?! 저…….”

아기를 안고 있던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가 내미는 아기를 안아 들었다.

작은 체구의 아기가 쏙하고 나에게 안겼다.

품에서 아기 특유의 은은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낯선 사람 품에 안겼는데도 전혀 불안해하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땡글땡글한 눈, 머리에 앙증맞게 솟아 있는 마족의 뿔, 꼬물거리는 손발까지. 온몸 구석구석 귀여움이 가득한 모습에 자꾸만 광대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아우- 아우우!”

아기는 옹알이하며 내 얼굴 쪽을 향해 팔을 쫙 뻗었다. 내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아기는 내 얼굴을 툭툭 만지더니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나도 능숙하게 아기를 돌보는 모습에. 촌장 가족들의 얼굴에서 불안함은 사라지고 신기한 것을 보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내가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가장 편안한 분위기가 방 안에 흘렀다.

수린도 이런 내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영주님은 아기를 정말 잘 돌보시는군요?”

“아마도 아기 마족들에게는 시현 님이 마왕님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안드라스의 과장이 섞인 말에 나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수린과 촌장 가족들은 반쯤 진짜로 믿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꺄르르르!”

한동안 촌장의 집에서는 아기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마을의 지원 품목에 아기들 간식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첫 번째 마을을 금방 둘러본 뒤, 곧바로 두 번째 마을을 방문했다. 두 번째 마을도 첫 번째 마을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두 번째 마을 역시 셀베르크 놈들에게 식량과 재산을 빼앗긴 상황이었다.

이놈들은 나쁜 짓을 부지런하게도 했네.

셀베르크의 지독한 치졸함에 완전히 질려 버려, 이번에는 화조차도 나지 않았다.

역시 두 번째 마을 촌장에게도 똑같이 지원을 약속했다. 우리는 주민의 환대를 받으며 다시 마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 마차 안에서 두 마을의 모습을 떠올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마을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맞은편에 앉은 수린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걱정되세요?”

“좀 걱정이 되긴 하네요. 단순히 지원을 해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 생각을 말씀드려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경청하겠습니다.”

그녀는 미소를 거두고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두 마을의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이에요. 이 문제는 엘든 마을도 똑같은 상황이죠.”

“엘든 마을도요? 거기는 이제 굶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단순히 식량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에요. 얼마나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냐의 문제에요.”

“…….”

“엘든 마을은 딸기 생산으로 얻은 이익으로 식량을 구매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상인에게 구매하는 식량을 제외하면, 엘든 마을의 식량 생산도 전혀 좋다고 할 수 없어요.”

논리정연한 그녀의 설명에 나는 물론이고, 옆에서 듣고 있던 안드라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자급자족은 불가능할지라도 어느 정도 식량 생산량을 확보하는 게 첫 번째예요. 식량은 영지를 운영하는 데에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니까요.”

“으음…… 마을에 농기구와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 주면 될까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돼요!”

수린은 아주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방금 마을을 둘러봤을 때,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땅도 살펴봤는데. 딱 봐도 토질이 비옥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오히려 척박한 쪽에 가까웠죠.”

“그럼…… 어떻게…….?”

“숲을 개간해야 해요. 그러면 손쉽게 비옥한 땅을 늘릴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숲을 개간할수록 마수들에 의해 피해가 생길 테니. 마수를 막아내기 위한 수비 병력 확보가 우선시 돼야겠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린은 마을의 식량 문제뿐만 아니라. 부실한 치안, 기초적인 시설 부족, 민감한 세금 문제와 지속해서 유입될 외부인들의 처리 문제까지.

그녀는 쉬지 않고 카디스 영지에 개선돼야 할 부분들을 지적했다. 중간중간에 문제 해결법에 대해서도 조금씩 언급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많은 할 일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다른 한편으로 수린의 유능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발레리안이 내게 추천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영지를 운영하는 데에 그녀의 도움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간절한 얼굴로 수린에게 말했다.

“수린 씨…… 아니, 수린 님! 영지를 운영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고 하셨죠? 혹시 카디스 영지에서 일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조건은 최대한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릴게요.”

그녀는 내 제안에 싱긋 웃었다. 마치 내가 이런 제안을 할 줄 알았다는 것처럼…….

“일단 보잘것없는 저에게 제안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곳이라, 꼭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대답은 잠시 보류해 둘게요.”

“아니…… 왜……?”

대답을 미루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이유를 물었다.

“카디스 영주님. 그러니까 시현 님은 저에게 영지 일을 모두 떠맡기고 다른 일에만 신경 쓰실 생각이시죠?”

-움찔!

어, 어떻게 알았지?

귀신같이 내 생각을 알아맞히는 수린을 보며 크게 몸을 떨었다.

그녀의 말대로 머리 아픈 영지 일은 모두 맡기고, 나는 농장 일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수린은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 이제 시현 님도 어엿한 귀족이시잖아요? 속마음을 숨기는 방법 정도는 꼭 터득하셔야 할거에요.”

“하하. 수린 양의 말대로 귀족에게는 필수적인 덕목이죠.”

안드라스도 그녀를 따라 작게 웃었다.

그렇게 티가 나나?

놀림을 당한 것 같은 기분에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웃음을 멈춘 수린은 총명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지를 운영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 그대로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무능한 영주 밑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아요.”

“…….”

“시간을 드릴게요. 그때까지 제가 말씀해드린 영지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세요. 다시 제가 카디스 영지를 찾아왔을 때, 영지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한 뒤에 보류했던 대답을 해드릴게요.”

“……숙제가 많이 어려운 것 같은데요?”

“저는 시현 님이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열심히 해주세요.”

수린은 믿는다는 표정과 함께 양손을 가슴께로 모아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꽤 귀여운 느낌의 응원에 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아…… 오랜만에 느끼는 이 기분.

학생 시절에 정말 하기 까다로운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마족 아기가 내 말을 잘 따른 것처럼, 수린도 순순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

옆에 있던 안드라스가 나를 불렀다.

“시현 님.”

“……?”

“설마 수린 양이 아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시죠?”

“…….”

숙제고 뭐고.

일단 표정 관리하는 방법부터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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