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4화
선생님이 필요해(6)
마을을 둘러본 나와 안드라스 그리고 수린은 해가 떨어질 무렵에 농장으로 돌아왔다.
농장으로 돌아오자마자 우리를 반긴 건.
아주 뜻밖에도 수린과 함께 농장을 방문한 뮤레인이었다. 그녀는 굉장히 흥분한 모습으로 나의 귀가를 반겼다.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시현 님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고요. 빨리, 빨리 들어오세요.”
그녀는 다짜고짜 나의 손을 휙 잡아채더니, 다짜고짜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엇? 어억?! 뮤레인 씨?”
“빨리 뒤에 분들도 오세요. 완전 대박이라니까요!”
안드라스와 수린도 어떻게 된 일이지 전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일단 두 사람도 뮤레인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처음에 다 함께 모였었던 거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농장 식구들이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은율아!”
은율이가 방긋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려는데, 성질 급한 뮤레인이 거칠게 잡아끄는 바람에 손을 들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거의 나를 구겨 넣듯이 빈자리로 밀어 넣었다. 한발 늦게 도착한 안드라스와 수린도 뮤레인에 의해 금방 자리에 앉게 됐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옆자리에 있던 리아네에게 말을 꺼냈다.
“리아네 씨! 이게 어떻게 된…….”
“쉿!”
그녀는 쫙 뻗은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계세요, 시현 님. 조금만 기다리시면 왜 그런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농장으로 돌아온 나와 안드라스, 수린을 제외하고는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실없는 소리를 한 번 할법한 카네프마저도 아주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 자리에 앉히는 데 성공한 뮤레인은 금방 은율이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품에서 나무로 만든 것 같은 작은 무언가를 하나 꺼냈다.
저런 걸 그…… 맞다! 오카리나!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우리 쪽 세계에서는 ‘오카리나’라고 부르는 악기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자!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노래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마지막 노래는 저의 자작곡! ‘숲속에 잠든 요정’입니다.”
뮤레인은 손에 든 악기를 입으로 가져가 숨을 불어넣었다. 곧이어 그녀의 악기에서 맑고 청아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너무 가볍지 않고,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음색은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악기의 청아한 음색을 배경으로, 또 하나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등장해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눈을 꼭 감고, 뮤레인의 악기 연주에 집중한 듯한 작은 여우 소녀, 바로 은율이었다.
“아…….”
나도 모르게 입이 점점 벌어지고,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진짜 입이 딱 벌어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정말 놀라운 노래 실력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눈앞에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우 소녀가 내 딸 은율이가 맞나? 하고 다시 확인하게 될 정도였다.
수린과 안드라스도 나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은율이를 바라봤다.
다른 농장 식구들은 이미 은율이의 뛰어난 노래 실력을 경험했는지, 크게 놀라는 모습 없이 조용히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노래는 점차 절정으로 향해가고.
은율이의 노래 실력도 그에 맞춰 더욱 폭발하기 시작했다.
평생 좋아하게 될 가수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가슴이 뛰는 듯한 느낌.
그런 강렬한 느낌이 은율이의 노래에서 느껴졌다.
두 가지가 너무 놀라웠다.
하나는 은율이의 음색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깨끗하게 느껴져서 놀라웠고.
또 하나는 커다란 방을 가득 채우고 남을 만큼 힘 있는 성량이 놀라웠다. 도저히 저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아직 관객들을 흥분시킬 현란한 기교는 없어도, 순수하고 깨끗한 음색만으로도 마음을 짜르르 울렸다.
노래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늘 받았던 스트레스가 맑은 물에 씻겨 내려가듯 사라져갔다.
노래는 절정을 지나 천천히 끝을 향해 나아갔다.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노랫말이 끝나고. 노래가 끝났다는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음속에는 벅차오르는 감정들로 금방 뿌듯해졌다.
-짝! 짝! 짝! 짝!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힘차게 손뼉을 쳤다. 다른 사람들도 홀린 듯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 양손을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던 은율이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나는 그런 은율이를 와락! 안아 들었다.
“아빠, 노래 어땠어?”
“너무 잘 불러서. 진짜 깜짝 놀랐어. 진짜…… 너무 잘 불렀어.”
방금 내가 느낀 감정을 뭔가 수려한 표현으로 멋있게 전해주고 싶었는데, 고장 나버린 기계처럼 단순하고 뻔한 말들만 계속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은율이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발그레해진 얼굴을 내 품에 묻고 비비적거렸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딸이라니!!
팔불출이라고 욕먹어도 상관없다. 지금 당장에라도 밖으로 뛰쳐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품 안에 있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딸이라고!
나는 한동안 은율이를 꼭 껴안고, 가슴 가득히 벅차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허우적거려야 했다.
* * *
“은율아. 절대로 노래를 너무 많이 부르면 안 돼! 막 신나서 불러댔다가 고생할 수도 있으니까.”
“응, 알았어.”
“다른 분들도 은율이 노래 듣고 싶다고 막 시키시면 안 돼요!”
뮤레인의 엄중한 경고에 농장 식구들은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모두가 은율이에게 노래를 부탁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여러 가지 당부 사항을 말하던 뮤레인은 정말로 속상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히이잉…… 빡빡한 일정만 아니면 여기서 은율이한테 노래 가르쳐 주고 싶은데. 이런 엄청난 재능을 놔두고 떠나야 한다니!”
그녀는 속상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려는 듯 은율이를 꽉 껴안았다.
“은율아∼ 나 잊어버리면 안 돼? 내가 오늘 가르쳐 준 것도 잊으면 안 되고. 알았지?”
“응. 알았어. 꼭 기억하고 있을게.”
“정해진 일정만 전부 끝내면 바로 찾아올게.”
뮤레인은 아쉬운 마음을 다잡으며 은율이를 품에서 놓아줬다. 은율이는 그런 뮤레인을 바라보며 대뜸 말했다.
“뮤레인 선생님은 윤지운만큼 좋아.”
“히잉! 나도 은율이가 너무 좋아.”
이제는 은율이의 애정도 측정기가 돼버린 ‘윤지운’. 측정 결과 뮤레인은 윤지운과 동점을 기록하게 됐다.
윤지운이 뭘 뜻하는지 모르는 뮤레인은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었지만, 농장 식구들은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뮤레인. 이제 정말 가야 해. 너는 내일 공연 준비도 해야 하잖아. 너를 늦게 데려가면 나도 혼나는 거 알고 있지?”
“으으…… 알았어. 이제 진짜 갈게.”
뮤레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떠날 준비를 했다. 수린은 뮤레인과 떠나기 전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 주 정도 지난 다음에 다시 찾아올게요. 그때까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 주 뒤에 숙제를 검사하러 오겠다는 말에 나는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힘내세요.’라는 응원의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뮤레인과 함께 걸어갔다.
그렇게 나와 은율이의 일일 선생님이 돼줬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농장을 떠나갔다.
* * *
-…….
-…….
“…….”
-무…… 무우…….
-무우…….
“으…… 으음?”
귓가에 울리는 울음소리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허벅지 위에 올라와 있는 아롱이와 다롱이였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에 두 아기 야쿰의 눈부신 성장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무우?
언니인 아롱이가 나를 걱정하듯 올려다봤다. 작은 녀석들에게 걱정을 시켰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괜찮아, 아롱아. 조금 피곤해서 잠들었을 뿐이야. 그래도 고마워. 걱정해줘서.”
-무우우…….
기특함과 고마운 마음을 담아 아롱이를 쓰다듬어줬다. 금세 걱정스러운 눈빛은 지워 버리고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무우우! 무우!
언니만 쓰다듬어주자 살짝 심술이 난 다롱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하하! 알았어. 너도 쓰다듬어줄게.”
나는 아롱이와 다롱이를 기분 좋게 쓰다듬어주며, 어깨와 목 부분을 움직이며 상체의 뻐근함 풀어냈다.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니 다행히 그렇게 오래 잠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농장일을 하는 중간에 낮잠을 자는 경우는 가끔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평소의 낮잠이랑은 느낌이 좀 달랐다.
잠시 여유롭게 즐기는 낮잠이 아니라, 도저히 버티지 못해 기절하는 느낌이랄까?
수린과 함께 영지의 마을을 둘러보고. 영주의 일에 조금 더 신경을 쓰겠다고 결심한 지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농장일과 영주의 일을 함께해 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일이 난이도를 떠나서 일단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더 심각한 건, 그 많은 일을 맡길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마을의 인구 조사를 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사는 곳과 나이, 이름, 하는 일 정도만 파악하면 되는데. 문제는 글을 자유자재로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엘든 마을에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라구스와 몇 명밖에 없다. 이미 라구스는 여유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맡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사용하는 능력에 계산 능력까지 포함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엘든 마을에는 라구스와 너구리 영감 정도밖에 쓸 사람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농장 식구들에게 조금씩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도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리아네는 집안일로 바빴고, 안드라스도 제르무어 부단장 일 때문에 여유롭진 않았다.
그나마 엘프리드가 많이 도와주곤 있는데. 최근에 검술 수련을 같이 안 해준다고 많이 삐져 있는 상태였다.
카네프는…….
그래도 내가 요즘 바쁜 건 알고 있어서 그런지 자기 몫의 보고서는 제때제때 써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고맙게 생각하는 중이었다.
하아…….
역사에 기록된 군주들이 왜 그렇게 인재를 욕심부리는지 최근에 알게 된 것 같았다.
단순히 유능한 인재를 원한 게 아니라, 유능한 인재가 없으면 자기가 일에 치여 죽는다는 걸 알았던 게 분명했다.
다른 나라 속담에 너무 바빠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고 했던가? 나는 가능하면 야쿰들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얘들아, 너희들이 나 좀 도와줄래?”
-무우? 무우우!
-무우우!
아롱이와 다롱이는 내 물음에 힘찬 울음소리로 대답했다. 마음만이라도 약간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고양이 보다는 역시 아기 야쿰이 더 귀엽지. 아암!
아롱이와 다롱이의 귀여움에 취해있는 사이, 커다란 그림자가 내 발 쪽에 드리워졌다.
“음? 안드라스 씨?”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
“엘린 군이 선배가 일을 시켜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면서 투덜거리고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찾으러 나왔습니다.”
“아…….”
낮잠을 자기 전에 엘프리드에게 일을 시켰다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냈다.
“끄응…… 제가 낮잠 잤다는 걸 알면 엘린 완전히 삐지겠는데요?”
“큭큭. 거짓말을 하실 생각이시라면 제가 적당히 맞춰드리겠습니다.”
“쩝.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야 줘 뭐. 거짓말을 하는 건 더 나쁘잖아요.”
안드라스는 희미하게 웃으며 내게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큰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축사를 향해 달려가는 아롱이와 다롱이를 보며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네. 일은 많은데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미치겠네요. 혹시 안드라스 씨가 아는 분 중에 도움을 요청하실 분 없나요?”
“그렇게 인맥이 넓진 않아서…… 딱히 기억나는 분은 없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까지야…….”
아쉬워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안드라스는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안드라스 씨?”
“으음…… 제가 아는 분 중에 유능한 인재를 많이 거느렸던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 많은 인재가 그분의 명령이라면 죽음이라도 불사할 정도였죠.”
“오오! 그런 분이 있나요? 누구죠?”
내 질문에 안드라스는 오묘한 미소를 띠면서 농장 건물을 바라봤다.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뒤늦게 그가 언급하는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
“설마?”
안드라스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카네프 단장님이라면 추천할 만한 인재를 알고 계실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