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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5)화 (185/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5화

검은수리 단원(1)

“흐아아암∼! 예전에 내 밑에 있었던 놈들을 데려오고 싶다고?”

카네프는 아주 나른한 표정으로 물었다. 안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최근에 시현 님이 영지의 일까지 신경 쓰시느라 부담이 커지셨습니다. 농장 일은 저희가 어떻게든 도와드릴 수 있으니, 영지 업무 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 필요합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는데…….”

그는 말끝을 흐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차라리 마왕성 쪽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낫지 않아?”

“저도 그 생각을 먼저 하고 지원을 요청하긴 했는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그게…….”

안드라스는 내 눈치를 보면서 떠듬떠듬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새로 생겨난 영지인 데다가, 포함된 지역 대부분 개발이 더딘 곳이라…….”

카네프는 변명 같이 늘어놓는 말들을 중간에 끊으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간단히 말하면. 고생할 게 뻔하니 아무도 안 온다는 거네?”

“……네, 그렇습니다. 대신 마왕성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추가로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안드라스는 약간 씁쓸하게 대답했다.

하긴…….

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런 영지에 취직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영주부터 초보 영주인데다가, 영지 내에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여기에 취직하는 순간, 매우 강력한 노동 강도를 견뎌야 한다는 게 불 보듯 뻔했다.

안드라스는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듯, 일부러 목소리를 밝게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카네프 님이 단장 자리에 있으셨을 때, 뛰어난 능력을 가진 분들이 많이 따르셨지 않습니까?”

“그랬나? 너를 포함해서 전부 골칫덩어리들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무,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언제 골칫덩어리였다고…….”

“언제 골칫덩어리였냐고? 너 첫 전투 때…….”

“으아아악!! 그 이야기는 또 왜 꺼내십니까?”

“큭큭큭.”

‘첫 전투’라는 말에 안드라스는 괴성을 내며 이야기를 막았다. 카네프는 당황한 안드라스를 보며 키득거렸다.

뭔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숨겨진 것 같아 궁금했지만, 안드라스가 필사적으로 화제를 돌리는 바람에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카네프 님에게는 부족해 보였을지 몰라도, 당시에 검은수리 단원들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괜히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게 아니니까요.”

“흐음…….”

카네프의 눈동자에 잠깐 아련한 감정이 떠올랐다.

과거 검은수리 단원들과 함께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감정은 금방 나른하고 귀찮은 표정으로 뒤덮였다.

“그런데 걔들을 어떻게 불러올 건데?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난 다음에는 한 번도 소식을 들은 적이 없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른다고.”

“그건 괜찮습니다. 발레리안이 최근까지 연락을 유지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함께했던 단원들과 아직도 연락이 닿는다는 말에 카네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발레리안이 그런 일을 하고 있었어?”

“네. 대부분은 연락이 끊어졌지만, 몇몇 분들은 아직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카네프 님의 말씀 한마디면 금방 달려와 주실 겁니다.”

“흐음…….”

카네프는 잠시 생각에 잠겨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잠시 후.

초조하게 기다리던 우리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그 녀석들을 불러주면, 나한테는 뭘 해줄 건데?”

“네?”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는 법! 그냥 공짜로 불러 달라는 건 아니겠지?”

“…….”

안드라스는 카네프의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 내 차례라는 것을 깨닫고 당황한 안드라스의 앞으로 나섰다.

“사장님, 원하시는 게 있는 거죠? 복잡하게 돌아갈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 보세요.”

“하하하! 그런 태도 아주 좋아. 마음에 들어.”

카네프는 내 태도가 마음에 든다며 시원하게 한 번 웃어 보인 뒤, 자신의 요구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

“바로 벌꿀 맥주 양조장을 짓는 것!”

“…….”

“하아…… 아직도 그 소리세요?”

나와 안드라스는 한심한 표정으로 카네프를 바라봤다. 그는 몸을 들썩거릴 정도로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도라니! 벌꿀 맥주가 얼마나 중요한데. 너희들도 맛있게 먹었잖아!”

“벌꿀 맥주가 확실히 맛있긴 하죠.”

“그렇게 맛있는 맥주를 만들 수 있으면서 가만히 있다는 건 말도 안 돼.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하루 종일 빈둥대는 카네프에게 직무유기라는 말을 들으니 굉장히 언짢았지만, 지금은 내가 아쉬운 쪽이라 어쩔 수 없었다.

“양조장 건설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요.”

“그냥 생각하는 거로는 안 돼. 지금 당장 약속해.”

“약속할게요.”

“은율이를 걸고 약속할 수 있지?”

“은율이를 건다는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네요. 대신 은율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꼭 약속을 지킬게요.”

그제야 카네프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카디스 영주로서 노력을 다짐한 이후.

영지에 생겼던 문제를 내 나름대로 해결해 나가는 중이었다.

가장 먼저 셀베르크 가문에 피해를 본 두 마을에 지원을 빠르게 진행했다. 모자란 식량과 생필품을 제공하고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들도 함께 보내줬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마을 주민들의 불만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외지인의 유입으로 생겨난 엘든 마을의 치안 문제는 추가적인 자경단 선발과 용병 고용으로 일단 무마했다.

특히 외지인의 불법적인 행동과 노숙 행위를 막아, 마을 사람들의 불안함을 줄여나갔다.

식량 구매, 용병 고용, 자경단의 지원금 등등.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큰 비용이 소모됐고, 가지고 있던 여유 자금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비옥한 땅을 얻기 위한 숲 개간과 마을의 기본적인 시설 건설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

이러다 일 년도 안 돼서 파산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마왕성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해줘서 조금 숨통이 틔는 것 같았다.

“에휴…….”

“시현 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영지 걱정에 내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옆에서 서류를 확인하던 라구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표정에서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느껴져 나는 민망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아뇨. 그냥 쉽지 않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네요. 제가 잘하고 있는 건지 걱정스럽기도 하고요.”

“그렇습니까?”

라구스는 내 마음에 공감한다는 듯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 못지않게 그도 만만치 않게 고생하는 중이었다. 서로의 고생을 공감하고 있을 때, 옆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쯧쯧…… 젊은것들이 고생한다고 찡찡거리기는. 원래 젊었을 때는 고생도 사서 하는 거야.”

너구리 영감의 다분히 꼰대 같은 발언에 라구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너구리 영감님. 영주님도 계시는데 말씀을 좀…….”

“영주면 다야? 영주면 이렇게 늙은 사람을 끌고 와서 일 시켜도 되는 거야?”

그는 자신의 앞에 잔뜩 놓인 서류들을 내보이며 불평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너구리 영감을 달랬다.

“죄송해요. 마을에 글을 자유자재로 읽고, 계산에 능통하신 분이 없어서…… 일할 사람을 구할 때까지 조금만 더 도와주세요.”

“끄응…….”

내가 머리까지 숙이며 부탁하자. 너구리 영감은 더 불만을 늘어놓지 못하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일이 있을 때마다 끌려와 강제로 동원되고 있으니, 그로서는 당연히 짜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마을에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라구스와 너구리 영감밖에 없으니…….

-타타탓!

고양이 소녀가 경쾌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타이밍 좋게 모습을 드러냈다.

“영감님. 괜히 짜증 내지 마시고 이거 드세요. 영주님이 가져온 과자랑 시원한 마실 거예요.”

미루는 능숙하게 쟁반에 담아 온 과자와 시원한 음료수를 너구리 영감에게 건넸다.

“헤헤! 맛있게 드세요!”

“쩝. 고맙다.”

해맑은 미소에 너구리 영감은 더 짜증은 내지 못하고,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루는 곧바로 나와 라구스에게도 간식과 음료수를 가져다줬다.

“이거 드시고 하세요.”

“잘 먹을게.”

“고마워, 미루야.”

“헤헤!”

펜을 내려놓고 미루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고양이 소녀의 기분 좋은 미소에 나도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져다준 간식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도중, 미루는 내 곁으로 바짝 붙어서 테이블 위에 서류들을 구경했다.

꽤 진지하게 서류를 살피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미루야?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아저씨가 보는 이 종이. 영지를 다스리는 일에 필요한 것들이죠?”

“응, 맞아.”

“으으음…… 아직 이해하기 힘든 말이 많긴 하지만. 조금만 더 하면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미루가 엄청 열심히 공부했나 보네.”

나는 단순히 칭찬을 바라고 한 말인 줄 알고, 기특하다는 듯 칭찬을 해줬다.

평소 같았으면 엄청나게 기뻐했을 텐데, 미루는 진지한 표정을 풀지 않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직 멀었어요. 더 열심히 해야 해요.”

“응?”

예상과 다른 미루의 반응에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본 너구리 영감이 웃으며 말했다.

“큭큭! 저 녀석, 마을에 네 일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더니. 요즘 엄청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야. 매일 내 가게에 찾아와서 몇 시간씩 귀찮게 하거든.”

“미루야, 정말이니?”

내가 깜짝 놀라서 묻자, 미루는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네…… 아저씨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이제 겨우 글을 읽고 쓰는 정도에, 계산은 많이 서툴지만요…….”

나는 엄청 기쁜 마음에 미루를 번쩍 안아 들었다. 고양이 소녀는 내 품에 안기며 고롱고롱 소리를 냈다.

“아저씨 도와주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거야?”

-끄덕끄덕.

“하하! 정말 고마워, 미루야. 듣기만 해도 힘이 나는걸?”

미루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제가 글도 잘 쓰고, 계산도 잘하면 아저씨 도와줄 수 있게 해줄 거예요?”

“물론이지. 그때는 오히려 내가 먼저 도와달라고 부탁할게.”

“헤헤! 좋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꼭 그렇게 될게요.”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미루의 모습이 그렇게 기특하고 예쁠 수가 없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미루의 공부에 도움이 될만한 학용품을 사둬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벌컥!

“시현!”

누군가 급하게 집 문을 열며 내 이름을 불렀다.

“이놈아, 깜짝 놀랐잖아! 뭔데 그렇게 급하게 들어와?”

그는 너구리 영감의 투덜거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급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레빌 씨?”

“시현, 너를 찾아온 것 같은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있다.”

“예?”

“너랑 그…… 카네…… 프? 아무튼, 무슨 단장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아!”

레빌의 설명을 듣자마자, 카네프와 함께했던 검은수리 단원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딱 봐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던데. 혹시 아는 사람들이야?”

“제가 아는 사람은 아니고. 지인의 예전 동료예요.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죠? 지금 바로 가볼게요.”

“내가 안내해 줄게.”

나는 라구스와 너구리 영감에게 잠시 일을 맡기고, 레빌과 함께 마을 입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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