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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7)화 (18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87화

검은수리 단원(3)

“용혈족?”

엘프리드는 크록이 본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바로 뭔가를 눈치챈 듯했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엘린, 용혈족이 뭔데?”

“저도 정확히 아는 건 아닌데. 용혈족(龍血族)이라는 말 그대로 용의 피를 이었다는 종족이에요.”

“그럼 수인이랑 비슷한 건가?”

“둘 다 뭘 그렇게 속닥거려? 어차피 같이 일하게 될 사이인데 그냥 편하게 물어봐.”

카네프는 이어서 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내놓았다.

“수인이랑 비슷하냐고? 정확히는 다른 존재야. 아주 오래된 기록에 따르면, 이 세상에 마신이 나타나기 전에도 용혈족은 존재했다고 전해지거든. 반면에 수인은 마신이 등장한 이후에 나타난 존재야.”

“그렇게만 들으니 뭔가 감이 잘 안 잡히는 것 같은데요?”

“그냥 엄청 희귀한 종족이라고만 생각하면 돼. 굳이 비슷한 경우를 찾자면 요정이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

나는 머릿속으로 귀여운 요정 규리를 떠올리며 눈앞에 크록을 바라봤다.

으으음…….

뭐든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솔직히 크록은 요정을 처음 만났을 때와는 첫인상이 매우 달랐다.

요정이 신비함과 깜찍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느낌이었다면, 용혈족은 존재만으로도 주변에 위압감과 카리스마가 풀풀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마치 야생의 맹수를 직접 본 느낌이랄까?

“…….”

크록은 나와 엘프리드의 반응을 슬쩍 살피더니, 조금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벗었던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아앗, 크록 씨! 두 분은 그냥 용혈족을 처음 봐서 놀란 것뿐이에요. 절대 무서워하거나 싫어한 게 아니니까 실망하지 마세요.”

리아네는 재빨리 시무룩한 크록에게 달려가 위로했다. 그리고 나와 엘프리드에게 다급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금방 그녀의 의도를 깨닫고 행동으로 옮겼다.

“마, 맞아요! 처음 용혈족을 봐서 조금 당황한 것뿐이에요.”

밝은 표정으로 방금 보였던 반응에 대해서 변명했다. 동시에 아직 멍해 있는 엘프리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도 뒤늦게 입을 열었다.

“윽…… 저도 무서워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검은수리 단원 중에 용혈족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거든요.”

“…….”

다행히도 우리들의 변명이 먹혀들었는지, 크록은 집어 들었던 옷을 다시 내려놓았다. 시무룩해졌던 표정도 조금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용혈족…… 이 친구…….

덩치랑 안 맞게 조금 귀여운 구석이 있을지도?

용혈족의 등장으로 잠시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정리될 때쯤, 상체가 늘어지도록 삐딱하게 앉아 있던 로커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자기소개 시간은 끝난 거지? 더 지루해지기 전에 슬슬 원래 이야기로 넘어가면 안 될까?”

지겹다는 말투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마지막에 카네프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설마 단장님이 옛 단원들이 그리워져서 우리를 부르지는 않았을 거고…… 뭔가 시키실 일이 있는 거죠?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해보세요.”

카네프는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다.

“별것 없어. 누구 밑에서 일 좀 도와주면 돼.”

“단장님 밑에서 일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예전에 단원들 해산시킬 때 했던 말 기억 안 나? 나는 이제 귀찮은 일에 손댈 생각이 전혀 없어.”

로커스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카네프와 일하는 것을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조금 짜증이 난 듯했다. 자연스레 목소리도 퉁명스러워졌다.

“그럼 누구 밑에서 일해야 한다는 겁니까?”

“혹시 여기 오면서 소문 못 들었냐? 여기에 새로운 영주가 취임했다는 소문.”

“술집에 들렀을 때,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어본 것 같습니다. 음…… 영주의 이름이 ‘카디스’라고 했었나?”

“맞아. 그 영주의 일을 도와주면 돼.”

카네프의 설명에 로커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좀 신기합니다. 단장님이 부탁을 들어줄 만큼 친한 귀족이 있었습니까?”

“부탁을 들어준 게 아니야. 정당한 거래를 했을 뿐이지.”

“그래서 그 영주라는 사람은 어딨습니까?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직접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네 옆에 있잖아?”

“……네?”

“너희들이랑 같이 온 저 녀석. 쟤가 카디스 영주야.”

-홱!

로커스와 크록의 고개가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들은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 저 녀석이 새로운 영주라고요? 마족의 뿔도 없어서 조금 특이한 수인인 줄 알았는데…….”

“…….”

쉽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둘.

보다 못한 리아네가 나서서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 계신 시현 님이 정말로 카디스 영주님이에요. 물론 겉으로 봐서는 전혀 귀족 같지 않지만…… 아무튼, 정말로 영주님이세요.”

“…….”

리아네 씨…….

저를 도와주려는 건 알겠는데, 왠지 더 뻘쭘해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요?

상상도 못 한 정체에 놀랐던 로커스는 표정을 수습하더니, 조금은 점잖아진 말투로 내게 말했다.

“흠흠. 워낙 친근하신 모습이라 영주님일 거라고는 예상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정체를 숨기려고 한 건 아니지만, 처음 만났을 때 정확히 소개하지 않은 제 잘못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까처럼 편하게 대하셔도 돼요.”

“그럼…… 그렇게…… 할까?”

“저도 편하게 로커스 씨, 크록 씨라고 부를게요.”

“하하! 이 친구 귀족답지 않게 시원시원해서 좋네. 마음에 들었어!”

로커스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네프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야! 로커스…… 시현 말대로 편하게 하는 건 좋은데. 눈치껏 행동해라. 사람들 많은 곳에서 시현을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던가, 선을 넘었다는 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꿀꺽…….”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는 경고에 로커스의 목에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네가 제일 좋아했던 나와 일대일 대련을 마음껏 하게 될 거야. 물론 그동안 실력이 많이 늘었을 테니까 강도는 최소한 두 배는 돼야겠지?”

“…….”

“처신 잘해.”

-부르르르르!

로커스는 온몸을 심하게 떨었다. 얼마나 그 강도가 심했는지 조금 떨어져 있던 나에게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사장님과 마음껏 일대일 대련이라…… 확실히 엄청 무섭긴 하네. 아마 안드라스 씨가 옆에 있었다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을지도…….

카네프의 살벌한 경고가 끝난 뒤. 나는 함께 일할 두 사람과 좀 더 자세한 협의를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역시 고용 비용이었다.

이런 쪽에 경험이 거의 없어 보수를 얼마나 줘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던 그때. 크록이 먼저 나서서 손을 재빠르게 움직여 보였다.

“뭐∼? 너 그게 무슨 소리야?!”

“…….”

수화를 알아들은 로커스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크록의 옆구리를 퍽퍽 내려쳤다. 정작 맞고 있는 크록은 아주 평온한 모습을 유지했다.

“리아네 씨. 방금 크록 씨가 뭐라고 하신 거예요?”

“으음. 카네프 님께 받은 은혜를 갚고 싶으니, 보수는 필요 없고 잠잘 곳과 식사만 챙겨주면 된다는데요?”

“아…….”

로커스가 왜 저렇게 펄쩍 뛰는지 알 것 같았다.

영지에 돈이 들어갈 곳이 많아서 돈을 아끼면 좋긴 하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와준 두 사람을 공짜로 부려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카네프에게 도움을 받아 두 사람의 보수를 책정하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간에 로커스가 ‘크록은 필요 없다고 했으니, 그 몫만큼 자기에게 두 배로 달라!’는 주장을 펼쳤는데, 카네프의 싸늘한 눈빛 한 방에 금방 제압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의 실력과 경험을 생각해 봤을 때 보수로 책정한 금액은 아주 작은 편이라고…….

간단한 계약서 작성이 끝나고. 로커스는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잘 부탁해.”

“…….”

크록은 다시 손을 움직이며 수화를 사용했다. 느낌상 로커스와 마찬가지로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그런데 일하시는 동안 어디서 지내실 생각이세요? 농장 건물에 빈방이 좀 남아 있는데 여기서 지내실래요?”

“으으…… 나는 됐어. 단장님이랑 같이 일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단장님이 있는 곳에서 지내고 싶지 않거든.”

“잘 생각했다, 로커스. 여기서 뺀질거리는 놈은 안드라스, 한 명으로 충분해.”

“크록 씨는 어떻게 하실래요?”

내 물음에 크록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다시 바쁘게 손을 움직여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리아네 쪽을 바라봤다.

“크록 씨는 어디라도 상관없지만, 로커스 씨랑 같이 있는 게 좋을 것 같데요.”

“쳇!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단장님 계신 곳에 있지, 나는 왜 따라와?”

로커스는 왜 따라오냐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핀잔을 줬지만. 겉으로 말하는 것과 달리 내심 기분이 좋아 보였다.

“두 분의 의견대로 최대한 빨리 지내실 만한 곳을 찾아드릴게요. 혹시 더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내 물음에 크록이 우물쭈물하며 앞으로 나섰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한참 동안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크록 씨……? 혹시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세요?”

“…….”

크록은 아주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손을 움직여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의 수화를 본 카네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리아네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음을, 로커스는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엘프리드만이 그뜻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리아네 씨?”

“후훗, 크록 씨가 시현 님께 일이랑 상관없는 부탁을 하나 하고 싶다는데요?”

“일이랑 상관없는 부탁이요?”

* * *

-무우우우! 무우우우!

-삐이익! 삐이익!

아기 마수들의 즐거운 울음소리가 농장에 계속 울려 퍼졌다.

최근에 아이들이 덩치가 커지면서 마음껏 놀아준 적이 별로 없는데,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모두가 힘껏 뛰놀았다.

그 중심에는 내가 아니라. 커다란 덩치의 용혈족, 크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크록 씨가 저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리아네가 감탄한 대로.

아기 마수들에게 둘러싸인 크록은 아주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보같이 저게 뭐가 좋다고…….”

로커스는 크록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지만,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크록이 말한 ‘일과 상관없는 부탁’은 바로 귀여운 아기 마수들을 가까이서 구경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수들의 귀여움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반가운 부탁이었다. 나는 곧바로 크록을 이끌고 농장 건물을 나서 축사로 향했다.

워낙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크록이라 처음에는 아기 마수들의 경계가 아주 심했다.

나도 처음에 그의 본 모습을 봤을 때 움찔할 정도였는데, 아기 마수들이 받는 압박감은 당연히 더 클 수밖에…….

하지만 내가 또 누구인가?

마왕님께 그 능력을 인정받은 마수 전문가 아니겠는가!

나는 곧바로 크록에게 자세를 최대한 낮추게 하고, 동시에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조절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직접 그의 옆에 자리해서 아이들이 경계심을 낮출 수 있도록 도와줬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조금씩 크록에게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의 꼬드김에 못 이겨 조금씩 다가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경계심을 내려놓게 됐다.

겉모습과 안 어울리게 귀여운 면모를 가진 크룩, 조금 제멋대로인 듯 보여도 내심 동료를 아끼는 로커스.

혼자 상상했던 검은수리 단원의 모습과는 약간 차이가 있긴 했지만. 왠지 이 두 사람과 함께하면 금방 영지 문제를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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